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84화 (384/425)

제384화. 징벌 원정 (4)

“함포 발사.”

제독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일렬로 선 장갑함들이 포문을 열었다. 왕립 해군의 첨병에 선 적색 함대. 그 가공할 타격 집단은 그 위용만으로도 동방 천하를 긴장케 하는 풍모가 있었다.

지상 최대의 장갑함만 두 척. 그를 호위하는 장갑함이 스무 척(로망스로부터 넘겨받은 것들 포함)에 육박했다. 이 어마어마한 장갑함들이 일제 포격을 퍼붓자 대지는 정적에 휩싸인 듯했다.

소음이 너무 커서 잠시 인간의 귀가 마비된 탓이었다. 일부 포수는 귀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격렬한 포격에 항구와 그 주변에 포대가 위치할 법한 장소에서 연거푸 돌가루가 흩날리고 물기둥이 솟았다.

이 엄청난 포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럴 것이다.

제독은 망원경을 든 채로 포격에 박살이 나는 아문의 상황을 보았다. 방어자가 있다 해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포격이 시작된 것은 오전 7시 30분. 겨우 20분도 포격을 하지 않았는데 ‘함포 사격’은 제 역할을 다한 듯했다.

제독은 한 번 더 아문을 본 다음 그 옆에 서 있던 장교 몇에게 물었다.

“포격을 예정대로 두 시간까지 실시하는 것이 좋겠나?”

“안전상의 이유를 생각하면 두 시간을 다 채우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제독은 육군의 네이선 원수가 요구한 ‘두 시간 포격’이 과잉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뭐 아주 수긍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제압 포격을 통해 적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것도 그렇겠지. 그래도 한 지점에 포격을 가하는 건 포탄이 아까우니 포격 지점을 옮겨가도록 하지.”

“어떻게 포격을 진행하라고 전할까요?”

“아문 회랑 방향으로 포격을 옮겨가도록 하게. 어차피 놈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해도 지금 포격으로 확실히 소멸했을 테니 아문 바깥에 위치한 적에게 우리 화력을 과시하는 편이 더 이익이 되니 말일세.”

“명령대로 전해도 되겠습니까?”

함대 참모장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리하게.”

적색 함대 제독의 명령은 신호사관의 손을 거쳐 함대에 전달되었다.

예정된 포격 시간이 끝나자 해군 장갑함들은 자리를 내주고 슬슬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비켜선 자리로 해병대를 실은 상선들이 쭉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그대로 돛을 펴고 일직선으로 항구 안으로 움직였다. 그 유연한 기동에 그리섬의 수염이 보기 좋은 선을 그렸다.

“이번 수송선 친구들은 조함술이 괜찮군. 상선이나 몰기엔 아까운 친구들이야.”

제독의 덕담에 해군 장교들이 피식 웃었다. 상선 선원들 입장에서는 그 말에 동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왕국식 농담인 셈이다.

보통 상선 선원들은 전시에 월급으로 42실링 이상을 받았지만, 해군 수병들은 24실링을 받았다. 일의 강도도 해군 수병 쪽이 훨씬 높았고 위험도 수반되었다.

그렇기에 상선 선원들이 미치지 않은 이상 군함을 탈 이유가 없었다. 로또처럼 떨어지는 나포 포상금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나포 포상금이 언제나 나오는 것이 아니란 것을 생각해보면 셈은 아주 쉽게 나왔다.

상선들은 제독의 칭찬(?) 아닌 칭찬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로 안으로 들어섰다. 제독은 이제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장교 하나로부터 손수건을 건네받았다.

그는 장갑함 실내의 공기 때문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아군의 나머지 부대를 위해 함대의 침로를 잡을 준비를 지시했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했다.

콰앙!

별안간 거대한 충격음이 창밖에서 들려왔다.

제독은 깜짝 놀라면서 망원경을 들었다. 장교들이 당황하며 손가락을 들어 항구 쪽을 가리켰다.

“각하. 사, 상선이 공격받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독은 펄쩍 뛰었다. 항구 주변에 포대가 숨겨질 만한 장소는 모조리 포격을 가해 때려 부쉈다. 적에게 공격을 가할 특별한 다른 수단이라도 있단 건가.

하지만 공격은 현실이었다. 상선들은 급히 선회하며 항구의 수로에서 돌아 나오고 있었다.

해병 중장 오스틴은 해군의 삽질(?)을 보고 기가 막혔다. 머저리 같은 왕립 해군의 실수는 정말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안전을 확보했다고 큰 소리를 쳐서 수송선을 들이밀었더니 느닷없이 공격을 받았다.

그 사고로 말미암아 상선 하나가 그 자리에서 침몰했다. 해병만도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정말이지 계급장만 꿀리지 않았으면 보트를 타고 장갑함으로 건너가 크리그 원수와 그리섬 대장(적색 함대 사령관)의 멱살을 잡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꼬이면 결국 욕을 먹는 것은 그였다. 네이선 원수가 상륙에 지장이 없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꼬장꼬장한 늙은이에게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중장은 짜증을 내다 상선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라고 명령했다. 해병대가 자리를 비켜주자 해군이 항구 안으로 앞장서 들어왔다. 그들은 ‘포격’의 가능성 외에도 신무기 ‘기뢰’를 염두에 두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기뢰 쪽이 가능성이 높았다. 대포는 숨을 곳도 없었고 있었다면 눈에 띄었을 테니까.

중장은 입술을 질겅이며 해군의 기뢰 수색 작업을 지켜보았다. 한참 바다를 수색한 해군 보트가 깃발을 흔들었다. 이상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적당히 보트를 뒤로 물리는가 싶더니 긴 장대 같은 것으로 물속을 쑤셨다.

곧, 굉음과 함께 물기둥이 솟구쳤다. 보트는 그 충격에 수 미터를 밀려났다.

‘기뢰였나.’

그 폭음에 중장은 기뢰가 자신들 앞에 매복해 있었음을 알았다. 기뢰라면 해군이 알아채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왕립 해군이 실수를 한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들은 적에게 기뢰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뢰의 존재를 알면서도 실수한 것은 원정군이 적의 의표를 찔렀다고 지나치게 과신을 한 탓이 컸다. 허를 찔렀으니 대비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기에 스스로에게 속아 넘어가 피를 보고 말았다.

해군 보트들은 부지런히 항구 내를 수색했다. 그들이 장시간 수색을 하는 동안 기함에서는 수도 없이 신호가 올라왔다.

언제 상륙할 거냐고 묻는 네이선 원수의 재촉이었다. 오스틴은 그 재촉이 못내 불쾌하면서도 다급해졌다. 프리지아 촌놈들 앞에서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실로 망신스런 일이었다.

그는 회중시계를 초조하게 바라보다 신호사관에게 신호를 보내게 했다.

‘기뢰 제거는 언제 끝나나.’

오스틴 중장은 그런 질문을 신호로 보냈다. 항구 안의 해군은 그 신호를 받고 답을 보냈다.

‘한 시간만 기다려 주시면 충분합니다.’

한 시간. 웃기는 소리였다. 그 시간이면 순서대로 도착해 연대 하나를 내리기로 한 프리지아 육군이 이 촌극을 구경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헛소리였다.

오스틴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신호를 보냈다.

‘수로 안은 확실히 정리가 되었나.’

‘정리는 완료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주변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정밀 수색을 해보기 전에는 안전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스틴은 그 대답에 격분했다.

“수로 수색이 끝났으면 다 된 거지, 어디까지 놈들이 기뢰를 부설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머저리들은. 우리도 바쁜 몸이란 말이다.”

오스틴은 해군에게 당장 길을 비키라고 신호를 보내고 부하들에게도 출발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해병대를 실은 상선들이 재차 항구 안으로 들어섰다. 수로는 해군의 말처럼 깨끗했다.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

해병대는 무리 없이 부두까지 상선을 몰고 갔다. 그들의 상선이 부두 근처에 이르렀을 때, 오스틴은 생각했다.

‘역시 이 뱃놈들은 멍청해. 수로가 안전하면 된 것이지, 무슨 놈의 시간 낭비를 그렇게 한단 말인가?’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상륙을 서두르라고 입을 떼려던 찰나였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부두에서 울렸다. 동시에 접안을 하던 상선 하나가 한쪽 측면을 완전히 노출시킨 채로 급속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해병과 해군 장병들이 당혹감에 젖었다.

오스틴은 그것을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작전 초반, 해병대의 상륙은 재앙으로 점철되고 있었다.

***

승도는 아문으로부터 백 리 이상 떨어진 여문에 사령부를 두고 있었다. 그는 서전이 금포강 유역에서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아문에 시선을 두었다.

“예상대로 양적들이 아문에 상륙했습니다, 전하.”

“그건 좋은 소식이군요.”

승도는 얼마 전에 실시한 아문의 파괴 작업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적이 무얼 생각하건 그의 ‘선수’가 먹혔다는 것은 긍정적이었다.

최소한 적의 시간을 빼앗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그것은 전략가가 가장 얻고 싶어 하는 이익 중 하나였다. 상대가 전략을 펼침에 있어 필요한 시간을 줄인다면, 이는 자신의 시간을 늘려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무모하게 연합왕국과 아문에서 한바탕 결전을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곳의 지형은 신에 불리한 데다, 군사적으로도 열세였다. 신의 병력을 한 지점에 모으지 않고는 왕국의 예봉을 꺾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몇 가지 좋지 않은 정보도 확인되었습니다.”

“좋지 않은 정보라니요?”

승도는 로망스 장교의 말에 반응을 보이면서도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연합왕국 해군이 동원한 함정 중 장갑함의 수가 우리 예상보다 너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육안으로 확인한 것만 이십 척에 육박했습니다.”

“장갑함이 이십 척?”

“예, 각하.”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왕립 해군의 장갑함이 많다면 해전에서 승산은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 주력 함대가 북상만 할 수 있다면 해상에선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심각한 부분이군요. 잠수함을 고려한 아군의 전력으로도 승산이 없으니. 다른 좋지 않은 소식이란 것은 무엇인가요?”

“예. 잠수함이 확인한 정보이온데 왕국 해군이 아문만이 아니라 왕국 섬까지 동시에 전초 기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 조금 상반된 움직임이라 주의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왕국 섬을 전초 기지화한다?”

승도는 그 의외의 이야기에 미간을 좁혔다. 이 가능성은 그가 생각해보지 않은 이야기였다. 왕국 섬은 아문과 달리 바다에 떠 있었다.

해군 입장에서는 그곳에 보급품을 부려봐야 육상인 아문으로 한 번 더 실어 날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한마디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헛짓인 셈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꾼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아문을 육군의 병참 기지로, 왕국 섬을 해군의 병참 기지로 쓴다면 그럴 수 있었다. 해군이 필요로 하는 석탄은 섬에 두어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왕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승도는 그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물론 왕국이 아예 북상을 염두에 두었다면 보다 유리한 입지를 가진 주산 군도를 점령하고, 그곳을 병참 기지화하는 편이 유리했다. 아문과 그 앞바다에 병참을 집중하는 것은 북상이란 전략 면에서 보자면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것이 함정일 수도 있지. 우리를 속이기 위해 아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북상을 하려는 속임수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 계산을 복잡하게 만들어 방어력을 분산하게 하려는 술수일 수도 있다. 이 점은 좀 더 깊게 고민해야 한다.’

승도는 장교의 정보에 대해 심사숙고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승도는 육군 장교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적이 움직이려 해도 최소 사흘 이상은 강주 방면으로 움직일 수 없을 거란 사실에 이해를 같이하며 다음 방어 작전 준비에 골몰했다.

아문의 앞바다에는 연합왕국 섬이 있었다. 이 섬에는 해군의 보급 기지가 마련되어 이미 대량의 석탄 양륙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군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미리 준비한 목재를 조립해 임시 저탄소 건설을 서둘렀다.

그 분주한 움직임 속에 세 사내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바다 건너편의 아문과 그 앞에 떠 있는 왕립 해군의 함정들을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작 전하, 왕국 친구들이 쓴맛을 호되게 보았나 봅니다. 상륙 시간을 지키겠다고 큰 소리를 치다 불벼락을 맞은 모양인데, 일이 좀 우습게 되었습니다.”

“그 잘난 왕국 친구들이 말인가?”

프리츠 대장은 피식 실소를 지었다. 이번 전쟁에서 프리지아에 힘을 실어준 데에 대한 보답이라도 받으려는 듯 숫제 상국 행세를 하려 하던 왕국이 당했다는 이야기는 상쾌함마저 주었다.

“예, 야만인들이라고 얕보더니 아주 망신을 톡톡히 사게 된 모양입니다.”

참모장은 왕립 해병대의 참패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뢰에 걸려 두 번이나 엿을 먹은 것도 모자라 상륙 단계에서 지뢰까지 밟아 아주 쓴맛을 보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적의 얼굴도 보기 전에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으니 왕국 입장에선 그야말로 엿을 먹었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망신, 아니 개망신이었다.

“그거 재미있군.”

대장과 프리지아 원정군 참모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뒤를 따르던 사내가 끼었다.

“하지만 각하,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이번에 이렇게 작전 일시가 꼬이게 되면 강주 공략 자체를 시도할 시간적 여유가 줄어들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럴 테지.”

“각하, 그건 곤란하지 않습니까? 모처럼 우리 프리지아의 입장을 반영해서 세운 작전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그건 나도 그리 생각하네. 그렇지만 이번에 왕국 친구들이 쓴맛을 보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도 잠깐 들더군. 신의 내륙에 깊게 들어가는 편이 우리 안전에 나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말일세.”

“무슨 말씀이십니까?”

발란틴 장군이 묻자 프리츠는 뒷짐을 진 채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야만인이라고 칭하긴 하지만 이 나라 신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니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거창한 군사력을 몰고 오지도 않았겠지. 그들에게 왕국 친구들을 이렇게 멋지게 우롱할 잔재주와 우리 움직임을 뚫는 통찰력이 있다고 하면, 좀 더 적을 조심스레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그렇기에 내륙으로 깊게 들어가자고 했던 나의 기존 전략이 수정되어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걸세.”

“하지만 그리되면 각하의 체면이.”

“체면? 별로 상할 것도 없네. 왕국 친구들이 깨진 덕분에 작전을 접는다고 해도 우리 쪽 체면이 그리 구겨지진 않겠지. 그렇지 않나?”

프리츠의 말에 발란틴이 고개를 숙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프리지아의 명장은 정확하게 상황을 보고 판단했다.

짧은 해프닝에서 위험성을 읽어내고 전략의 수정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범인이 가질 것이 아니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오스티아와 로망스라는 두 강대국을 침몰시킨 현 에우로페 최고의 명장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면모였다.

“옳으신 지적입니다.”

“그리고 아문이 작전을 강행할 처지도 아닌 것 같더군. 그렇지 않나?”

프리츠가 확인을 구하자 참모장이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아문 항구의 주요 시설은 거의 다 박살이 나 양륙에 이용할 시설이 없습니다. 기뢰를 설치한 부두 외에는 다 날려버렸고, 그나마도 기뢰가 폭발하면서 박살나 버렸으니까요. 거기에 도크마저 못 쓰게 만들었고 창고도 모두 날려 버렸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아문의 가치는 우리가 당초 예상한 것의 1할도 못 됩니다. 이런 폐허에 의지해 작전을 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렇지. 병참이 확보되지 않은 싸움은 이길 수가 없다네. 그걸 위해서 시간을 죽이면 신은 강주 주변에 충분한 병력을 모아들이겠지. 그럼 볼 것도 없네.”

프리츠는 자신의 작전이 가치를 잃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각하, 그렇다 해도 아주 손을 놓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겠지. 이왕 전쟁에 나선 것, 우리 실력을 보이긴 해야 할 테니.”

프리츠는 자신들이 단지 전비 때문에 파견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 프리지아 육군은 당분간 왕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그들 조국이 왕국의 훌륭한 파트너로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할 사명이 있었다. 그러자면 그들의 전투력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프리츠도 강주 진공은 무리라도 육상 공세 자체를 아예 단념할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기회가 온다면 물론 강주도 취해보면 좋겠지.’

프리지아의 검은 매, 프리츠는 휘하 장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다 건너를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는 강주가, 그리고 오승도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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