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85화 (385/425)

제385화. 징벌 원정 (5)

동방 원정군의 상륙 첫날은 재앙으로 끝났다. 해병대를 덮친 거듭된 악재로 사상자만 이백 명 이상 발생한 데다, 아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까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네이선 원수는 그 사실을 보고받기 무섭게 ‘당장’ 아문을 정상화해서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라고 닦달했다.

지상군 지휘관들은 그 명령이 무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해보는 데까지는 해볼 수밖에 없었다. 오스틴 중장을 위시한 여섯 명의 장군들이 직접 보트를 타고 현장 지휘에 나섰다.

“현장 복구 매뉴얼은 마련되어 있나?”

“아직 없습니다.”

“그럼, 빨리 우선 사항부터 확인해서 내게 가져와. 일을 할 때는 우선순위부터 확인해서 진행해야 할 것 아닌가?”

오스틴은 직접 지휘관들을 불러가며 일을 감시 감독했다.

말을 타고 항구 주변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장군들의 간섭 때문에 장교들은 말로 다하지 못할 불편을 느꼈다. 하지만 장군들도 위에서 압력을 받는 처지다 보니 부하들의 불편을 배려해줄 여유가 없었다.

오스틴은 공병들에게 지뢰 제거를 맡기고 보병들에게는 가건물 조립 및 부두 건설을 맡겼다. 작업은 장군들이 나서서 일일이 경과를 확인했다.

같은 일도 최고위 계급이 지켜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컸다. 위에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병사와 장교들은 나름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 일의 진척 속도를 높였다.

일부 장군들은 할당량을 빨리 채우는 장교와 병사들에게 나름의 포상을 제공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하여 그들의 일을 독려하기도 했다.

덕분에 복구 작업은 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놀라운 진척을 보일 수 있었다.

병사들은 그 최초의 폐허를 떠올리며 차라리 전투가 쉬웠겠다고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야만인들. 도시를 아주 폐허로 만들었어.”

“부수는 재주는 타고난 놈들이야.”

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나무판자를 조립했다. 왕국 정부가 의도하고 준비한 보급품은 아니었지만, 균일하게 생산된 판자들은 원정군을 위해 요긴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들은 원래 도로 포장용으로 준비된 물건들이었다. 진흙이 많고 도로의 상태가 좋지 않은 신은 기본적으로 대량의 우마와 수레를 끌고 다니기 어려웠다.

과거 전쟁과 최근까지의 정보 수집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왕국은 도로 포장을 위해 판자를 준비했다. 먼저 도로를 파낸 다음, 그 아래에 판자를 깔고 그 위에 자갈을 채운 다음 흙을 덮어 포장하려던 것이 그들의 기본 계획이었다.

그 계획 덕분에 왕국은 ‘창고’ 가설에 필요한 대량의 자재를 전용할 수 있었다. 뚝딱거리는 망치질 소리와 함께 번듯한 창고 하나가 슬슬 모습을 갖추었다.

항구를 따라 창고들이 들어서자 왕국 육군은 그 안으로 미리 정리한 보급품들을 입고시켰다. 탄약과 식량, 식수, 그리고 병사들의 피복과 예비 장비가 그것들이었다.

창고들이 차곡차곡 채워지는 것을 확인한 오스틴은 ‘최초 상륙’에서 부여된 임무가 겨우 완수되어 간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망신을 사긴 했지만 그나마 일을 수행한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동방 원정군 수뇌부는 행정 상륙이 착착 진행되어 궤도에 오르자 지상 병력의 증원에 착수했다. 제일 먼저 상륙이 허가된 것은 육군의 정예라 불리는 고지 보병 연대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대기를 들고 땅에 내려서기가 무섭게 우렁찬 자신들의 군가를 부르며 원정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프리지아 근위 보병 연대가 하선했다. 기계처럼 각이 잡힌 근위 보병 연대는 하선을 마침과 동시에 자신들의 국기와 연대기를 한 번 흔들어 보인 후, 항구로부터 이동했다.

각 부대가 차례로 상륙을 하는 동안, 동방 원정군은 신의 방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보통 상륙 작전은 초기에 가장 어수선한 상태를 맞게 마련이었다.

특히나 원정군은 준비된 기뢰와 지뢰, 예상치 못한 파괴 작업으로 혼란스런 상태에서 상륙을 하는 입장이었다. 장성들이 나서서 질서를 잡고 있긴 했지만 아직 불안한 상황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신이 지금 공격을 감행해 온다면 부대의 전개와 작전 계획이 다시 한 번 헝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 정도 차질이라면 강주 진공에 있어 심각한 지연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원정군 연대 다섯 개가 상륙될 때까지 신은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문 반도 북쪽에 상당수의 기병이 출현하여 ‘간’을 보는 모습을 보인 것 외에는 어떤 위협도 없었다.

그렇게 원정군은 상륙 초기에 맛보았던 낭패스런 상황에서 벗어났다.

“저것이 왕립 해병대의 깃발. 그리고 그 옆이 왕국 육군 고지 보병 연대의 것. 그 오른쪽이 프리지아 근위 보병 연대의 것입니다. 하나같이 쟁쟁한 부대들의 것이라 이미 상륙한 적의 전력만 따져도 어지간한 로망스 보병 수만과 상대해서 우세를 점할 겁니다.”

아문이 아스라이 보이는 벌판에서 망원경을 든 두 사내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의 뒤로는 수천의 기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신대륙 출신의 지휘관, 유진의 말에 함께 말을 타고 있던 장수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장수는 상승군의 지휘관 중 하나인 로망스계의 알폰스였다.

“그만한 전력이면 조만간 육상으로 공세를 시작하겠군요.”

“그러리라 여겨집니다. 왕국의 교리에 따르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력이 갖추어질 때 지체 없이 공세로 나서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저들이 공세에 나설 시점은 언제 정도이겠습니까?”

“양륙된 병력의 양. 그리고 저들이 짐작하는 우리 병력의 규모에 달렸을 겁니다. 빠르면 사흘, 늦으면 일주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공격 병력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강주 왕 전하께서는 적 지상군의 투입 규모가 최대 삼만을 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셨는데, 유진 경의 생각이 알고 싶습니다.”

“저도 삼만이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금포강을 따라 정비된 도로 자체가 대군을 지탱하기에 부적합한 데다, 동방 함대의 패전을 기억하는 저들로서는 금포강에 해군 전력을 대거 투입하지 않을 테니까요.”

패전의 내용을 모르니 더더욱 금포강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왕립 해군이 전력을 쏟진 않을 것이다. 다분히 심리적인 요소를 찌른 말이었지만, 정확한 말이기도 했다.

어느 전쟁이든 지휘관들이 가장 의식하는 부분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명예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랐기에 전례가 있는 실수를 하길 원치 않았다.

그런 만큼 ‘동방 함대’가 강에서 전멸했다는 사실만 알고 ‘어떻게’ 파멸했는지 모르는 해군의 입장에서는 섣불리 강에 들어서길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 나쁘면 동방 함대의 전철을 밟아 제 명예까지 손상되기 때문이다.

왕국 군대에 복무하여 그들의 속성을 간파하고 있던 유진은 그 점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정도라고 해도 쉬운 상대는 아니군요.”

“물론 쉬울 턱이 없습니다. 적 지상군은 현재 에우로페의 정병만 추려서 보낸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군대이니까요. 이번 전역은 상당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긴 전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긴 하셨지요.”

둘은 망원경을 들고 적의 부대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부대기들은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했다. 모두가 세계를 호령하며 자신들 나름의 전설을 쌓은 괴물들의 깃발이었다.

“하지만 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알폰스는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그의 조국을 희롱하고 굴복시킨 연합왕국에 대한 분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는 이 싸움에서 조국의 앙갚음을 해야 한다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유진 역시 자신의 명예를 빼앗은 왕국 육군에 복수를 해야 한다는 확고부동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강력한 적을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건 그렇다 치고, 슬슬 우리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진이 말을 꺼내자 알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요. 이봐.”

알폰스가 손짓을 하자 장교 몇이 그 옆으로 다가왔다. 알폰스는 그들에게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하게.”

“예, 각하.”

장교들은 그 명령을 받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기병들에게 지시를 전달했다. 유진과 알폰스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아문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저들에게 피해를 줄 방법은 없었지만, 조금 놀라게 해줄 수는 있으리라. 그것이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사소한 복수였다.

***

“야만인들의 군대가 아문 반도 북쪽으로 접근해오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공격을 해온다는 건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이군. 이 신의 지휘관이란 자들은.”

오스틴 중장은 혀를 차면서도 상대를 경시하지 않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작자들에게 한 번 콧대를 세게 얻어맞은 만큼, 그 의도를 우습게 볼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참모를 맡은 대령이 물었다.

오스틴은 그에게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지금 부대를 재배치하다간 전체 전개가 꼬이지 않나. 포병으로 막아야 할 테니, 해군에 신호를 보내고 포병여단에 포격을 명령해. 내가 그것까지 지시해야 하나?”

“아닙니다. 즉시 지시하겠습니다.”

대령이 고개를 숙이고 해군 신호사관과 기수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오스틴이 망원경을 들고 아문 반도 북쪽을 바라보았다.

곧, 해군과 육군의 대포가 회랑을 겨눈 채로 적 기병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 기병의 선두가 도착하더니 회랑의 입구를 가볍게 선회했다. 그들의 행동에 오스틴은 그것이 ‘단순한 무력시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멍청한 놈들. 그런 시위로는 눈 하나 깜빡할 성싶으냐.’

오스틴은 코웃음을 치며 적이 한 발만 더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벌판 저쪽에서 기적 소리가 울리더니 증기 기관차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기차?”

오스틴은 그제야 적이 단지 기병을 투입하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설마?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쟁 초에 신은 열차를 이용해 아문 회랑에 연막을 지피고 요새의 시계를 막으며 회랑을 돌파한 전적이 있었다. 이번에 거꾸로 해군의 시야를 막는다면, 적은 다시 한 번 아문 회랑 돌파라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의도대로 된다고 하면 적의 공격은 눈에 보이는 기병에 그칠 턱이 없었다.

적의 대규모 공격을 알리는 신호였다. 아군 병력이 아문 내에 채 전개되지 않은 시점, 어수선한 행정 상륙의 막바지를 노려 아군 병력을 일거에 청소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놀랍다 못 해 두려움이 느껴졌다. 휘하 장교들과 다른 장성들도 그 두려움을 공유했다.

“기차라면 놈들이 전쟁 전야에 사용했던 그 연막작전을 쓰는 장치가 아닙니까?”

장군은 황급히 기수들을 불렀다. 이것이 적의 의도된 작전이라면 부대 전개가 엉키더라도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그 바람에 질서정연하게 정리를 기다리고 있던 부대들이 급하게 불려나왔다.

프리지아와 왕국 육군, 해병대를 가리지 않고 가장 가까운 위치의 부대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방어선을 구축했다. 거기에 한창 폐허를 정리 중이던 병사들까지 소집되었다.

이 혼란 통에 기차는 무서운 속도로 아문 회랑으로 다가왔다. 연막이 결코 펼쳐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해군과 육군의 포대가 일제히 포문을 개방했다.

쾅! 쾅! 쾅!

거인이 무섭게 땅을 내려쳤다. 그 묵직한 진동에 땅이 들썩들썩했다. 그 분노한 거인의 주먹질이 조금씩 기차가 올 궤간으로 향했다.

콰앙!

마침내 해군의 포탄 한 발이 화차의 옆구리를 뜯고 지나갔다. 그 일격에 열차가 부르르 떨었다.

원정군 장교들은 그 광경을 보며 침을 삼켰다.

한 발, 또 한 발이 기차와 그 주변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된 기차는 그대로 멈추더니 대폭발을 일으켰다. 안에 화약을 실어둔 듯 기차는 유폭을 일으켰다. 그리고 새카만 연기가 자욱하게 올랐다.

오스틴은 그것을 보고 장교들을 닦달했다.

“곧 놈들이 올 거다. 해군에 해안선 구역을 맡기고 나머지 부대들의 화력 지향 지점을 조율하게 해. 시간이 없다.”

그의 명령에 장교들은 부산을 떨었다. 신의 기병들은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느긋하게 연막을 향해 다가왔다.

해군과 육군은 상대의 움직임에 맞추어 다시 포문을 개방했다. 절대 진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필사의 포격이었다.

기병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막 안으로 계속해서 진입했다.

왕국 군대는 그것을 보고 더 긴장했다. 틀림없이 적 기병은 연막을 돌파하여 아군의 전열을 흔들고 그사이에 적의 주력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왕국 군대가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의 화력은 좁은 아문 회랑으로 진입하는 상대의 병력을 일시에 갈아 버리고도 남을 만큼 막강했다. 육군의 상륙 병력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럼에도 왕국이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은 아문 패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왕국은 아문을 사수할 거라고 믿었지만, 너무 어이없게 허를 찔리며 간단하게 도시와 민간인들을 내주었다.

그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원정군의 과한 반응을 불렀다.

포성이 어이지는 동안 왕국 지휘관들은 상대가 공격을 뚫고 나오는지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다행히 적 기병은 하나도 연막 너머로 나오지 못했다. 적이 간단히 화력에 분쇄된 듯하자 오스틴은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때 해군 쪽에서 그에게 전문을 보냈다. 해군은 육군과 달리 연막으로 가려진 아문 북쪽의 벌판을 관측할 수 있었다.

해군의 전문을 받은 오스틴의 표정은 놀랍게 구겨졌다.

‘연막으로 적 기병이 살짝 몸만 걸치는 시늉을 하고 바로 옆으로 빠져나갔다고?’

그렇다면 상대는 아군의 포격을 유도하며 포탄 소모를 의도하려는 것인지 몰랐다. 오스틴은 급히 포격 중지를 명령했다.

잠깐 사이에 해군과 육군이 쏜 포탄은 3천 발이 넘었다. 실로 무지막지한 포탄 낭비였다.

돈으로 따져도 어지간한 갑부 한 명을 만들 돈이 사라진 셈이다.

오스틴은 자신이 또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적 기병은 보란 듯이 몸을 돌려 벌판 위쪽으로 향했다. 그것을 보니 오스틴은 배알이 뒤틀렸다.

상대는 겨우 기차 한 대를 투자해서 육군과 해군 전체의 포격을 끌어내고, 그것도 모자라 아문의 복구 작업을 방해했다. 거기다 부대의 정리도 흐트러트려 놓았다.

급히 방어를 위해 부대들을 끌어낸 바람에 각 연대를 다시 정비하는 데만 꽤 시간을 잡아먹어야 했다.

새로 부대들이 속속 양륙되고 물자가 들어오는 것을 생각하면 손발이 꼬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산더미 같은 일거리를 선물해주고 간 셈이다.

“염병할 놈들.”

오스틴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가 이를 갈고 있는데 프리지아 육군의 프리츠 대장이 다가왔다.

오스틴은 동맹국의 수장을 보고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프리츠는 오스틴 주변에 모인 장군들을 힐끗 보다 그에게 물었다.

“소동이 일어났다고 해서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무슨 일이요. 우리 병사들까지 전부 어수선하게 불려나온 것 같던데.”

“그것이.”

오스틴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목이 탔다. 적에게 또 한 방 먹었다고 하려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국 장군 앞에서 망신을 두 번이나 당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프리츠는 대충 그 속내를 짐작한다는 듯 더는 묻지 않고 망원경을 들었다. 그러곤 아문 북쪽을 슬쩍 살피고는 말했다.

“뭐, 적 병력이 움직이는데 대응을 하지 않을 수야 없을 거요. 그렇지만 부대 전개가 자꾸 늦어지는 건 귀국의 원수께서도 바라시지 않을 일일 테니, 좀 더 주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오스틴은 프리츠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망신스런 일이었지만 고개를 숙여야 했다.

프리츠는 손을 들어 가볍게 답하고는 휘하 참모들과 함께 휘적휘적 자신의 관사로 할당된 가건물로 향했다.

오스틴은 그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프리지아 촌놈에게 이렇게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은 모두 염병할 야만인들 때문이었다. 그는 신의 야만인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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