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6화. 이대도강 (1)
동방 원정군의 육상 작전은 당초 4주의 일정을 가지고 진행될 예정이었다. 강주로 진공하면서 제국 군대를 격파하고 그 전과를 축적하여 신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 이 작전의 목표였다.
이 작전이 성공리에 수행된다면 신은 강남의 방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전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집중은 행동의 자유를 가진 연합왕국에 대단히 유리한 패로 이용이 가능했다. 신의 제한된 병력이 남방에 몰린 사이에 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상을 본격화한 시점에서는 신도 그 행동을 눈치채겠지만, 그때는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육상에서의 병력 수송 자체가 매우 더뎌서다.
신의 역량으로는 아무리 잘 해도 두세 개 여단을 북방에 재배치하는 것 이상은 어려웠다. 북방의 주둔 병력 자체가 없다면 북경을 지킬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원정군은 강주 작전 자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전에 할당된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전체 대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원정군 수뇌부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전비가 버텨주는 한계,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결정적인 승리를 취해 전쟁을 유리하게 매듭지어야 할 사명이 그들의 어깨에 놓여 있었다.
네이선 원수는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만큼, 작전의 거듭된 지연을 초조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몇 차례 회의를 소집하여 장군들과 의견을 나눈 끝에 작전의 첫 단계를 조속히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만전을 기하지는 못했지만 더 시간을 끌다가는 강주 전역을 시작도 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해서다.
네이선 원수의 재가가 떨어지면서 원정군은 2주의 작전 기한을 가지고 공세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제한된 공격 목표는 강주에 훨씬 못 미친 여문으로 국한되었다.
여문은 강주와 금포 사이에 위치한 지점으로 ‘강주’를 적절하게 압박할 수 있는 위치였다.
작전 목표는 다소 유동적이어서 전세가 잘 풀리면 강주도 공격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다. 명령과 함께 각 부대가 깃발을 들고 아문을 출발했다.
선두에 선 왕립 해병대는 반혁명 전쟁 당시 로망스 제정을 상대하며 불렀던 ‘신성한 질서’를 연주하며 행군을 시작했다.
‘우리는 나아간다. 오만한 로망스의 대지로. 그 끝에 기다리는 총칼과 죽음은 두렵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 우리가 마땅히 세워야 할 질서.’
병사들이 군가를 부르며 발을 맞추었다. 프리지아와 왕립 해병대, 정예 보병 연대 모두 군기가 잘 선 면도날 같은 부대들이었기에 그들은 흡사 한 몸이라도 된 듯 발을 놀렸다. 얼핏 보면 기계처럼 보이는 규칙적인 발놀림이었다.
장교들은 병사들의 행군을 지켜보며 기마 정찰을 앞서 보냈다. 정찰병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적의 위치 및 지뢰를 확인한다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며 원정군의 전진을 선도했다.
해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해군은 동방 함대의 패배를 의식하고 있었기에 좁은 강에 다수의 함정을 집중시키기를 꺼렸다. 그들은 기동성이 좋고 잃어도 손실이 적은 포함 4척과 프리깃 4척으로 된 소규모 함대만을 강상으로 올려 보냈다.
해군 입장에서 보면 이 전력도 차출하기가 아쉬웠다. 적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곳에 함정들을 올려 보낸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적 열세에서 전진하는 육군의 화력을 보충하자면 해군의 협조는 불가피했다. 해군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못내 그 전력의 투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육군과 보조를 맞추어 전진하는 이 소규모 함대, 강상 전단을 지휘하는 모크렐 제독 역시 해군 수뇌부의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함대를 다소 방어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전진하는 지상군 선두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를 따르게 했다. 철저히 안전을 위한 행보였지만, 그 태도는 육군 지휘관들에게 반감을 샀다.
그들은 수시로 신호사관을 불러 강상 전단이 좀 더 빨리 뒤를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 적시에 화력 지원이 되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모크렐은 그 요구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함정의 안전을 내세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정군은 다소 ‘삐걱’거리는 상태로 금포를 향한 진군을 시작하게 되었다.
서전은 사실 별문제가 없었다. 상승군이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전투와 달리 승도는 적의 옆구리를 치기 위한 준비를 하나도 진행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 병력의 규모 자체가 만만치 않아 전력을 쪼갤 여유가 없었던 탓이 컸다.
전투에 들어가는 전략가가 전략을 세울 때는 언제나 지형만이 아니라 양군의 상대 조건을 합리적으로 검토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조건과 지형만 가지고 전략을 세우면 거기에서 오판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승도는 그 점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지휘관이었기에 그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덕분에 왕국 원정군은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진격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아문 파괴 작업으로 파생된 ‘의외의 변수’였다.
원정군 보병들이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대포가 수레에 끌려가다 길 한가운데로 푹 꺼졌다. 그 사고로 원정군은 잠시 행군을 멈추고 공병들을 불러 ‘도로’를 조사하게 했다.
곧 심각한 문제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 지점부터 약 삼백 피트에 걸쳐 보수 공사가 필요합니다. 지반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 데다 적이 의도적으로 도로 아래에 공동을 만들어둔 탓에 손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겁니다.”
공병 장교의 견해에 병참부서의 장교는 난색을 표했다.
“보수 공사를 하려면 돌과 자갈, 모래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여기는 돌과 자갈의 조달이 쉽지 않습니다.”
금포로 가는 도상은 예로부터 석재 조달이 불편했다. 강에서 돌을 채집하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물살이 거센 금포강의 바닥에 쌓인 돌들은 크기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강변에 쌓인 돌들도 마찬가지였다.
좀 작다 싶은 것들도 크기가 지나치게 커서 자갈로 쓰기에 부적합했다. 깨트려서 쓸 수 있긴 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걸렸다.
왕국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량의 나무판자를 준비했지만, 이 물자는 아문의 가건물 건설 작업에 거의 소진되어 조달할 길이 없었다.
여분의 물자가 자말에 더 있긴 했지만, 당분간 우선순위로 지정된 탄약과 식량, 기타 장비를 실어 나르기도 바빠 그것들을 가져올 방법이 없었다.
“그럼 보수를 이곳의 건자재로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그것 참.”
병참 장교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병참의 핵심은 전진하는 전투 부대에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물자를 보급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 보급은 작금에 이르러 철도에 의존하는 것이 상례였지만, 이 동방에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신에서 기차를 써먹은 다음 철도 궤간을 파괴하고 그 축대까지 무너트려 철도 이용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려 해도 불가능한 것이 증기 기관차와 화차 자체가 보급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보급은 에우로페의 전쟁과 달리 전적으로 우마와 수레에 의존해야 했는데, 그 말은 도로에 병참이 좌우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즉, 도로가 제구실을 못 하면 병참 자체가 실패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단시간에 안 되는 겁니까?”
공병 장교는 그 질문을 받고 입맛을 다셨다. 공병이 어지간한 것은 다할 수 있어도 건자재도 없이 단시간에 도로를 손보는 것은 무리였다.
“어렵습니다. 우리 육군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공병이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창고로 전용한 자재를 가져와서 보수에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무리입니다. 다 못질을 한 것인데 그걸 일일이 분해해서 가져오려면 일만 더 커질 겁니다. 거기에 창고에 수납한 보급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그거 미칠 노릇이군요.”
병참 장교는 이 어이없는 문제에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공병도 자신들 소관의 일이라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욕을 먹긴 마찬가지라 마음이 무거웠다.
두 장교는 둘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일처리’를 재촉하는 장군들의 눈빛에 더 부담감을 느꼈다.
“방법이 정말 없겠습니까? 필요하다면 저희 병참부서의 수레를 좀 뜯어서라도 돕겠습니다.”
“그거로는 너무 모자랍니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것, 해군에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해군에 말입니까? 하지만.”
병참 장교는 그렇지 않아도 병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군의 협조를 요구했다. 상선을 다수 동반해 금포강으로 물자를 실어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하지만 해군은 그 요구를 일축했다. 강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해군이 거절한다고 해도 해야 합니다. 우리 공병은 지금 도로 문제를 단시간에 손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도로를 고칠 때까지라도 대포와 보급품 수송은 해군이 맡아달라고 요구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손가락을 빨고 앉아 있을 거란 사실을 주지시키시면 됩니다.”
공병 장교의 설득에 병참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내용을 장군들에게 보고했다.
이 ‘사소한 해프닝’은 원정군의 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수륙 병진을 의도하지 않았던 원정군이 일시적인 수단이나마 상선의 전력을 빌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
“저기 붉은 코트들이 보입니다.”
동승한 로망스 장교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임경문과 승도는 그 손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기존의 2인승보다 조금 더 큰 4인승의 대형 열기구에 타고 있었다.
신의 지휘부는 이 열기구에 탄 채로 강을 따라 전진해오는 적의 움직임을 한 손에 들여다보듯 지켜보고 있었다.
승도의 보좌역으로 탑승한 화가 하나가 적의 움직임을 부지런히 화폭에 담았다. 또한 망원경을 들고 적의 움직임을 보다 입술에 침을 발랐다.
“역시 무서운 정병들입니다. 적으로서 대하기엔 두려운 상대예요.”
승도의 말에 로망스 장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이 세상 최고의 군대라 할 만한 상대이니 그런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저들이 강주에 발을 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함께 망원경을 들고 있던 임경문이 한마디 했다. 승도는 그의 의견에 공감의 뜻을 보였다.
“물론 그리될 겁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적이 행군하고 있는 도로 위로 선을 그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적의 시간을 계속해서 빼앗았습니다. 아문에서 적의 양륙을 방해했고, 전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견제했습니다. 이어 진격 도상의 도로에도 손을 써 그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적은 이미 그 기본 전략의 상당 부분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그 외 한 수가 더 있으신 겁니까?”
임경문이 묻자 승도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다면 여유를 보일 이유가 없겠지요.”
승도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연합왕국에 루이를 보내 그 후방을 어지럽힐 첫수를 두었다. 그리고 판을 흔들 그의 말은 그 하나에 그치지 않았다.
두 번째 포석은 루시.
북방의 이 대국은 연합왕국의 흥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왕국의 승리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이미 적지 않은 규모의 군대를 시비르로 이동시킨 상태였다.
그들에 대항해 연합왕국은 적지 않은 식민지 부대를 만전의 상태로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 두 가지 포석이 동시에 맞물린다면 실로 가공할 폭약이 되어줄 터였다. 즉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힌디아는 삽시간에 대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왕국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승도는 상대가 보일 움직임이 눈에 보였다. 당장 병력의 일부를 쪼개 힌디아의 문제를 해결하려들 것이 자명했다. 그 작전을 위한 움직임은 연합왕국이 의도하고 계획한 모든 판을 원점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게임은 그가 결정한 룰대로 흘러간다.
승도가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판을 짜고 그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싸운다면 질려야 질 수가 없었다. 그가 멍청한 삼류 지휘관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승도의 자신감에 임경문도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전하께서 자신감을 보이신다면 확실한 것이겠지요. 어린 시절부터 전하께서는 그만한 그릇을 보여 주셨으니, 이 늙은 관료도 안심이 됩니다.”
“믿어주시니 기분이 좋군요.”
그들이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글라이더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천천히 왕국 군대의 근처로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지켜보던 로망스 장교가 망원경을 다시 들었다.
“글라이더로 적 상선이 병참에 동참하는지만 확인하면 대강 확인할 사항은 모두 파악한 듯싶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럼 슬슬 내려가 보도록 할까요?”
승도가 눈짓을 하자 장교가 아래를 향해 손을 저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몇몇이 줄을 당겼다. 스스로 위아래로 움직이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 열기구라 ‘수동’으로 아래에서 당겨주는 편이 가장 간편했다.
승도는 천천히 지상으로 하강하는 열기구 안에서 바람이 자신의 쪽으로 흘러온다고 느꼈다. 분명 서전에서 승리의 여신은 그에게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안심할 수 없지.’
그는 천천히 시야 아래로 가라앉는 붉은 코트들의 깃발을 바라보며 모자를 고쳐 썼다.
루이는 전쟁 관련 소식을 비교적 늦게 알았다. 외지인 갈라타에는 상대적으로 정보가 느리게 도착했다. 식민지 관리들에게도 자세한 전쟁 관련 이야기가 넘어오지 않아서 ‘자말’에서 언제 원정군이 출발할지에 대한 정보는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이 점은 분명 승도와 루이의 계산을 뛰어넘은 부분이었다. 그들은 적시에 정보를 입수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릴 것을 가정했지만, 정보 전달 단계에서 오차가 생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서 저지른 오판은 승도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왕국 원정군의 강주 진공 단계에서 승도가 믿던 패가 ‘시간차 문제’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힌디아에서 문제가 터져도 그 소식이 전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 패가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다.
루이도 뒤늦게 ‘원정군 출발’ 소식을 접하고 날짜를 계산해본 다음, 계산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로서는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오승도 전하께서 이겨 내시리라 믿고 일을 벌려보는 수밖에.’
그는 승도의 능력에 기대를 걸고 늦었지만, 자신의 일에 착수했다.
그는 왕국 육군에 납품하기로 한 총기 윤활유의 서류를 살짝 고쳤다. 쇠기름을 납품하기로 한 부대로 보낼 창고를 돼지기름 창고로 바꿔치기했던 것이다. 돼지기름을 납품하기로 한 곳도 마찬가지였다.
서류에서 글자 몇 자만 고쳤을 뿐이지만, 그것이 가져올 효과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식민지 군대에서 물자를 받아가기 위해 사람들을 보내왔다.
“물건 받으러 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군대에서 부리는 고용인들이었다. 일부는 식민지 출신 장교들이었다.
루이는 그들에게 미리 준비한 서류를 건넸다. 돼지기름과 쇠기름을 그에게 납품한 업자들이 어디 창고로 물량을 보냈다는 확인서였다.
그 내용만 믿는다면 돼지기름이 있는 창고에는 돼지기름이, 쇠기름이 있는 창고에는 쇠기름이 있어야 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서류를 확인한 장교들은 납품이 절차대로 이루어져 ‘군납업자’의 창고에 들어갔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물건을 검수하지 않고 그대로 우마에 싣기 시작했다. 식민지 사교계에서 단시간에 이름을 날린 루이였기에, 그의 물건을 의심하는 일은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버린 것이다. 아마 왕국 본국이었다면 이런 무사안일주의는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루이는 적의 느슨함에 감사를 표하면서 물건을 모두 넘겼다. 그러면서 슬쩍 식민지 장교들에게 몇 마디를 건넸다.
“물건은 괜찮은 것 같습니까?”
“그런 듯합니다. 아주 잘 조달해 주셨습니다.”
“나도 마음이 흐뭇합니다. 한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총기 윤활유는 한 동물의 기름만 써도 될 텐데, 굳이 두 종류를 각각 분리해서 쓰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게 종교상의 이유가 좀 있습니다.”
식민지 장교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루이는 그 말에 눈을 살짝 떴다.
“그래요? 그럼 돼지기름을 받던 부대는 앞으로도 돼지기름만 받아야겠군요.”
“물론입니다.”
“하면 조금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한데.”
“뭐가 말입니까?”
“식민지 관리들 말이 앞으로 관리 편의상 조달되는 기름을 그냥 공급하자고 하더군요. 보급은 조달 편의도 중요하다면서. 아,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루이는 실수로 말을 흘린 듯 정리하며 장교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그저 나온 이야기니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들 보시지요.”
루이는 그들을 돌려보내면서 미소를 얼른 감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서서 짐을 운반하는 장교들의 표정에 고민의 빛이 담겨 있었다. 저 상태에서 자신들이 지급받은 기름이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면 어떻게 될까?
‘폭발이 일어나겠지.’
루이는 자신이 뿌린 불씨가 곧 폭발하리란 것을 짐작했다. 그는 식민지 군대가 물자를 가지고 출발하기가 무섭게 의복을 갈아입고 지폐가 가득 든 가방만 챙겨 자신의 거처를 떠났다.
짧았지만 화려했던 루이의 사교계 생활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