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91화 (391/425)

제391화. 이대도강 (6)

“적의 손실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저쪽 지휘부가 둔덕을 넘어오는 병사들의 움직임을 멈추긴 했지만 누적 손실을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승도는 로망스 장교의 분석에 동의했다. 적은 둔덕 중턱에서 아래까지 검고 붉은 시체들을 수도 없이 깔고 있었다. 최전선에 섰던 연대들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나 중대 급까지 줄어든 부대도 있었다.

이 정도면 조직력이 사라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승도는 흐름을 가늠하다 이쯤에서 보병을 투입해 전과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나치게 시간을 끌면 적이 다른 병력을 전용해서 판을 바꿀 여지가 있었다. 거기에 대항하기에 그가 가진 패는 너무 적었다.

“슬슬 부대를 투입하도록 하지요. 공병을 투입해 지뢰 지대 내의 안전 통로를 확인하고 전 병력을 공세로 전환시키도록 하세요. 선두는 상승군 보병입니다.”

승도는 정면 공격을 명령했다. 지뢰가 조금 문제이긴 했지만 매설한 지뢰는 처음부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용도로 네 줄을 매설한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그 지뢰 지대에 안전 통로를 확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잠깐이면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로망스 장교가 기를 흔들어 신호를 보내자 그 명령은 일시에 전 부대로 전파되었다. 부대 투입 시점만 깃발로 신호하기로 약속해 두었던 터라, 가능한 연락이었다.

최고 사령관의 명령이 전달되자 상승군이 일시에 공세로 전환했다. 수십 개의 열로 나뉘어 대기하고 있던 보병들의 대열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각 장교단과 여단장들의 통제를 받았다.

최선봉에 선 상승군 5여단의 지휘를 맡은 여단장 유진은 모자를 고쳐 쓰고 말에 올랐다. 여단장은 말에 오른 채로 자신의 보병들과 함께 나란히 앞으로 나섰다.

아군 포병이 계속해서 포격을 가하는 가운데 상승군 보병의 첫 열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돌격했다. 공병이 확인해준 안전지대로 검은 물결이 노도처럼 진격하자 동방 원정군의 보병들이 급히 응사에 나섰다.

이들이 보유한 후장식 소총의 가공할 조준 사격에 최초 돌격에 나선 상승군 보병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하지만 전방 부대들 자체가 포격과 기관포, 지뢰에 입은 타격이 너무 커서 화력 자체는 조직력이 온전할 때와 비교해 형편없었다.

검은 군복들은 흐름을 타고 지뢰지대를 단숨에 돌파했다. 양군의 거리가 슬슬 가까워지자 상승군 포병은 아군 보병을 원호하기 위해 가까운 적의 대열로 백린을 쏘았다.

시계를 가리는 백린을 이용해 상대의 눈과 귀를 가려 ‘근거리’의 일제 사격을 막아주려 한 것이다.

그들의 협조 덕분에 보병들은 피해를 최소화하며 혼란스런 적병들의 대열로 얽혀들었다.

“착검!”

거리가 가까워지자 양군 장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착검을 하면 소총을 쏘기에 불편했기에 미리 착검을 하고 돌입한 병사는 없었다. 그들은 거의 상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곳에서 섬뜩한 칼날을 총구에 꽂았다.

“양이들을 죽여라!”

“야만인들을 죽이자!”

양군 보병들이 얽힌 순간 피 보라가 일었다.

양측은 서로를 스치고 지나가며 총검을 찌르고 휘둘렀다. 선두에 섰던 병사들은 그 끔찍한 재앙을 몸으로 겪어야 했다. 자비 없이 휘두른 칼날에 목과 손가락이 잘려 날아갔다.

첫 충돌에서 우세를 점한 쪽은 상승군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그들의 공격 앞에 동방 원정군의 진형이 국자로 파내듯 중앙이 푹 꺼져 들어갔다. 아무리 강한 정예 보병들이라도 포탄을 두드려 맞고 지뢰에 맞고, 기관포에 맞아 조직력이 헝클어진 상태에서 백병전을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상승군은 그 기세를 타고 상대 병사들을 도륙하며 둔덕 위로 천천히 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승도는 이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다 예비대를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단련과 정의군 보병들을 내보내세요. 흐름을 탔으니 지금 보내면 밥값은 할 겁니다.”

승도는 이들 병력을 상승군보다 먼저 투입하려 생각했지만, 적 보병에 돌입도 해보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을 생각해 상승군의 후속 제대로 보내기로 했다.

그의 판단은 적절했다.

단련과 정의군은 적절한 수준의 전투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공세에는 부적합했다. 안정된 진지와 방어선을 준다면 제구실을 해도 공세에서는 별 역할을 못하는 것이 그들이었다.

아마 돌격을 시켰다면 적진으로 다가서다 몇 번을 머뭇거리며 시간을 낭비했을지 몰랐다. 이번 작전에서 적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중요했다. 그 자원을 아끼기 위해 상승군의 손실을 감수한 것은 전략가로서 내려야 할 결단이었다.

“예, 전하.”

장교가 재차 신호를 보내자 상장 풍겸의 진영에서 군기가 올라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룡의 깃발을 든 수십 개의 대열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체 투입 병력의 규모는 모두 육만(여문과 둔덕 전투 포함).

이번 강주 전역의 분수령이 될 이 전장에 승도는 강주 방면에 보유한 전력을 전부 쏟아부었다. 여기서 패한다면 그는 미련 없이 강주를 버리고 물러날 생각이었다.

패하고 강주로 물러나 방어를 생각했다간 ‘운하’라는 강주 특유의 지형 덕분에 도시 안에 갇혀 압도적인 적 포병에 두드려 맞다 전 병력이 몰살하는 결과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황룡의 깃발을 든 보병의 대군이 새롭게 투입되자 상승군의 기세는 탄력을 받았다. 별 도움이 안 되는 전력이긴 해도 머릿수가 주는 심리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압력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해병들이 엄청난 속도로 밀려 올라갔다. 최초에는 둔덕에서 천 미터 이상 내려와 있던 해병들이었지만, 어느새 그들 병력은 그 거리의 절반 이상을 밀린 상태였다.

수도 없이 밀려들며 총검을 쑤셔대는 상승군 보병들의 공격에 해병 하나가 답답한 신음을 토하며 고꾸라졌다. 일부 장교들이 나서서 칼을 휘둘러보긴 했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할 수는 없었다.

상승군이 오합지졸이라면 해볼 만했겠지만, 그들은 정강한 정예 병력이었다. 조직력 면에서 타격을 거의 입지 않은 싱싱한 병력이었기에 전력 차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동방 원정군은 어느새 둔덕의 고지가 목전에 이른 곳까지 밀렸다.

‘이건 말도 안 돼.’

뒤늦게 상황을 보고받고 둔덕 위로 달려온 오스틴 중장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참담한 전투 내용’에 입을 딱 벌렸다.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될 거라 여겨졌던 전투가 ‘예상치 못한 적의 함정’으로 웃기게 돌아가고 있었다.

둔덕 아래에서 중턱에 이르는 대지는 온통 아군의 시체로 덮여 있었다. 그 시체 위를 차지한 것은 검고 누런 적의 보병들이었다. 그 수는 지나치게 많았다. 적게 잡아도 오만은 족히 될 수였다. 그것을 보고서야 오스틴은 자신이 적의 의도를 오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주에 있을 것이라 여겼던 적은 바로 이 둔덕 뒤에 도사린 채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승부수에 멋지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내가 야만인들에게 기만을 당한 건가.’

그는 자신이 승리로 간다고 확신했던 몇 개의 퍼즐 조각을 떠올렸다. 여문에서의 너무나도 쉬웠던 승리가 첫 번째 조각이었다. 상당히 교묘한 술수를 펼쳐 해병에게 피해를 주긴 했지만, 적은 시간벌이에 집중하는 인상을 보이다 물러섰다.

이 때문에 그는 상대가 강주에 있는 예비대를 불러올 시간을 벌려 한다고 굳게 믿었다. 실제 상대의 병력이 이곳에 와 있는 줄도 모르고.

두 번째로 적은 부대를 셋으로 갈라 후퇴를 했다. 이들 부대들은 각각 북쪽과 남쪽, 동쪽으로 갈라져 후퇴했는데,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북쪽과 남쪽으로 기병이 추격하게끔 만들었다.

그 바람에 동쪽으로의 추격은 보병들만이 수행하였다. 만약 기병이 둔덕을 넘어갔다면 수가 적은 그들은 어렵지 않게 덫에서 빠져나와 ‘반전’할 수 있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 경우의 수는 그 후퇴를 이용해 ‘아주 자연스럽게’ 봉쇄했다.

그리고 세 번째, 상대는 둔덕 앞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방어선을 적은 매우 허술하게 두었다. 그렇지만 적은 아군이 공격해오자 ‘급하게’ 방어하는 시늉을 했다.

자신들의 정예 병력 일부를 투입하면서까지.

그 때문에 오스틴은 확신을 가졌다. 적이 아직 예비대를 투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를 찔렀다고. 그렇기에 적이 가공할 전력을 준비했으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거짓 패배를 감수한 적은 예정된 각본대로 둔덕 뒤로 후퇴했고, 방심한 상태로 둔덕을 넘어 추격해온 동방 원정군의 일선 부대들에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실로 능수능란한, 하늘을 속일 교활한 한 수였다.

‘하지만 우리 전력은 아직 충분하다. 승리를 자신하기엔 이를 거다.’

오스틴은 즐비하게 깔린 아군의 시체를 보다 주먹을 쥐었다.

***

상승군의 일원으로서 장시간 복무해온 비슈누는 이번 전투만큼 처절한 혈전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오합지졸의 적들과 달리 동방 원정군 보병들은 ‘잘 훈련된’ 전쟁의 프로들답게 간단히 죽어주지 않았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준사관과 장교들의 지휘 아래 최대한 전열을 유지해가며 뒤로 물러나는 그들의 대응은 실로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시체를 겹겹이 쌓아 가면서도 조직적인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공격자들도 만만찮은 피해를 내어야 했다. 둔덕 아래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만 명이 넘었다. 전투의 치열함을 생각하면 그 수는 오히려 적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우리가 이겼다.’

비슈누는 달려드는 적 보병의 목을 치면서 둔덕 위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아직 아군 병사 중 둔덕 위로 올라선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것을 깨닫기가 무섭게 근처에 쓰러져 있던 아군 기수의 깃발을 주워 힘껏 흔들었다.

비슈누가 깃발을 흔들자 상승군 병사들의 공격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고지 위까지 올라갈 아군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고무되었다.

반대로 자신들이 지고 있다고 느끼는 자들은 그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비슈누가 흔든 깃발은 양군에 그런 상반된 효과를 가져왔다.

“아군 보병이 둔덕 위에 도달했습니다. 중앙 쪽으로 곧 돌파구를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망원경을 보던 로망스 장교가 말했다. 승도 역시 그것을 확인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 시점이라면 적도 상황은 충분히 알고 있을 거다. 둔덕을 넘어오지 않은 나머지 병력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려 하고 있겠지. 지금이 적기일 듯싶다.’

승도는 판단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아군 기병에 투입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적의 기병 세력이 복귀하기 전에 적 포병을 타격, 적의 전력에 결정타를 가하세요.”

“예, 전하.”

승도의 명령에 로망스 장교가 힘차게 대답했다. 곧, 둔덕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수천의 기병이 일시에 기동을 시작했다.

이들 기병은 신대륙 기병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기병 연대와 전통의 기마 보병 연대, 유목민 기병 연대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대규모 기병 세력은 승도가 전과 확대를 위해 아껴둔 최후의 예비대였다.

지금까지 신의 기병은 전면전에서 그 가치가 크지 않았다. 가공할 전력을 자랑한 동방 원정군의 보병과 기병 때문이었다. 이들은 어느 하나의 전력만 가지고도 신의 기병을 간단히 압도할 역량이 있었다.

그래서 승도는 기병을 단순 견제, 위협 용도로 쓰며 전장에 투입하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동방 원정군은 일시적이지만 엄청난 타격을 받고 조직력이 크게 무너진 상태였다.

전체 병력에 비하면 그 피해가 ‘재기불능’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병의 충격을 견디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적 보병이 충분한 역량을 하지 못하고, 기병이 전과 확대에 나서며 전장에 없는 지금이야말로 신의 기병이 밥값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승도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기병의 물결이 전장 중앙으로 새카맣게 쇄도했다. 말에 탄 원주민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칼날을 휘두르며 이를 드러냈다.

“기병이 지나간다!”

보병 장교들이 급하게 고함치며 길을 열게 했다. 보병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 물러서자 보병들의 대열 가운데로 길이 뻥 뚫렸다. 그 길로 기병들이 거침없이 치고 들어왔다.

장대한 기병의 물결이 보병들의 사이를 가르며 도도한 흐름을 만들었다.

그 거센 물결이 다가오자 동방 원정군의 보병들은 크게 동요하는 빛을 보였다. 상대 보병과 싸우기도 버거운 판에 기병 세력의 돌격을 받게 되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보병들은 대열을 갖추려 했지만 기병들은 그대로 내달려오며 기병총을 앞으로 향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원정군 보병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기병들은 그대로 한 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보병들을 짓밟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수천의 기마가 파도처럼 쓸고 지나가는 통에 보병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방진을 구축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밀고 밀리면서 조직력이 다 무너진 보병들은 그런 역량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기병들은 그런 적 보병들을 닥치는 대로 짓밟으며 그대로 둔덕을 넘어섰다. 그들은 적의 중앙을 돌파하기가 무섭게 후방으로 내달렸다.

그 후방에는 급하게 전열을 수습하고 있던 원정군의 후방 연대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어수선한 상태에서 회복되려 하고 있었기에 불쑥 중앙을 뚫고 나타난 기병에 대응하지 못했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것은 원정군이 다국적군이라는 데 있었다. 그들은 양군의 사이를 정확히 노리고 들어오는 적에게 누가 대응을 해야 할지 즉시 판단하지 못했다.

그 잠깐의 망설임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굳은 바위, 길을 연다.”

“예, 족장님.”

하얀 황소는 기병총을 쥔 손을 높게 들며 부족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굳은 바위가 칼을 휘두르며 적진 사이로 제일 먼저 뛰어들었다.

그는 그대로 어설프게 서 있던 적병의 머리를 쳐 날렸다.

뒤늦게 상황을 인식한 적병들이 총을 들었지만 아군 사이로 파고든 기병에게 총을 쏘기란 쉽지 않았다. 일부 보병들이 총을 쏘긴 했지만 아군이 맞을 것이 염려되어 일제 사격을 퍼부을 수도 없었다.

기병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 보병들의 방어선을 단박에 돌파했다. 평소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지만 ‘약간의 운’과 ‘상황’이 그들의 돌파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갑자기 둔덕을 넘어 나타난 적 기병이 바람처럼 보병들의 방어선까지 뚫고 자신들을 향해 쇄도해오자 포병들도 당황했다.

프리지아 포병들은 급하게 자신들의 장비를 방열하고 기병에 대항할 준비를 갖추었다.

포병이 자랑하는 최강의 대기병 전투 장비라면 역시 근래에 도입된 기관포가 있었다.

“사격 준비!”

장교들은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장교들의 침착한 명령에 병사들도 평정을 되찾고 포탄을 대포에 밀어 넣었다. 야포들은 산탄을, 기관포는 총탄을 준비한 채로 적 기병에 대항할 준비를 마쳤다. 모든 장비가 준비되기 무섭게 포병 지휘관이 외쳤다.

“발사!”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포병들의 대포가 불을 뿜었다. 무지막지한 산탄이 일시에 수백 발이 쏟아졌다.

기병을 반드시 저지해야 하는 포병의 입장에서는 포탄을 아낄 겨를이 없었다.

무자비한 첫 탄막이 기병의 머리 위를 쓸었다. 폭발과 함께 말과 사람이 갈가리 찢어졌다. 살점과 피가 튀고 비명소리가 화음처럼 섞였다.

폭음 속에 주인을 잃은 말이 혼자 달리기도 했고, 끔찍한 몰골이 된 인마가 바닥에 누워 함께 최후를 기다리기도 했다.

산탄의 위력은 끔찍했지만 기병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천의 기마를 저지하려면 대포 수백 문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첫 포격에 다수의 기병이 쓸려 나가긴 했지만 기병 태반은 건재했다. 그들은 그대로 쓰러진 동료를 일별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 도도한 행진에 포병은 마지막 저지의 희망을 기관포에 걸었다.

타타타타타.

미친 듯이 총탄을 쏟아내는 악마의 병기 앞에 말들이 연달아 쓰러졌다. 최후 저지선 앞에서 순식간에 서른 기의 기마가 쓸려나갔다. 기병들이 연달아 쓰러지는 통에 승도의 명령을 받고 온 연락 장교는 ‘작전 실패’를 보고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한한 화력을 자랑하는 것 같았던 기관포는 얼마 되지 않아 총탄을 모두 소모하고 잠시 그 악마적인 위력을 봉인하였다.

포병들은 재빨리 다음 총탄을 준비하려 했지만, 기병이 그럴 시간을 줄 이유가 없었다.

기병들은 그대로 포병들의 대열로 뛰어들어 칼을 휘둘렀다. 포병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장비를 방기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보통의 포병이었다면 돌입 이전에 달아났겠지만, 잘 훈련된 프리지아 포병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

기병들은 포병들을 간신히 물리치고 적의 대포에 못질을 시작했다. 그것은 원정군의 강주 공략 가능성에 적색 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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