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92화 (392/425)

제392화. 존망지추 (1)

프리츠는 자신들의 공격적인 전술을 역으로 이용하여 함정을 판 상대의 계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둔덕 아래에서 쓴맛을 본 원정군이 전투를 포기하지 않고 후속 전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반격에 나설 것이란 걸 적은 통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가장 절묘한 시점에 기병을 투입해 이쪽 병력의 허를 찌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공격이 조금만 늦었다면 여문 바깥에 있는 나머지 보병들까지 불러들여 전열을 재정비하고 포병을 끌고 와 둔덕 아래에서 밀고 올라온 적 보병을 싹 쓸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쪽의 움직임을 계산이라도 한 듯 자신들의 전력이 우세하고, 이쪽이 가장 취약한 시점에 한 번 더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반전의 기회를 무산시켰다. 이쪽 포병을 습격해 판을 반전시킨 것이다.

그 점은 높게 평가할 만했다.

‘그렇지만 전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긴 우리와 마찬가지군. 이쪽을 생각보다 과소평가하고 있어.’

프리츠는 상대가 던진 승부수가 가진 맹점을 냉정하게 뚫어보았다. 기병을 던졌다는 말은 상대의 본진이 비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쪽이 포병을 지키기 위해 기병을 불러들인다면 그 한 수는 성공적이겠지만, 그 바람에 따라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는 북쪽과 남쪽으로 향한 기병에게 새로운 기동 명령을 내렸었다. 적이 둔덕 아래에서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그는 ‘방어’ 대신 ‘공격’으로 승부를 보려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 기병들은 사태 수습을 위해 보병들이 방어하는 위치로 오는 대신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적의 측면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불시에 옆구리에 나타나 포병 세력부터 강타하고 적 지휘부를 쳐버리면 전세를 일거에 뒤집어버릴 수 있어서다.

물론 그들 전력이 정확한 시간에 적 측면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이쪽 기병이 뒤를 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긴장해야 마땅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여문 서쪽의 나머지 보병들이 달려오는 시점에서 적은 승세를 이어갈 여지가 없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승산이 없다는 걸 계산하고 싸움을 걸었던 건가.’

그렇다고 하면 적의 의도는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아군의 전력을 크게 깎아 강주 진공 자체를 단념시키는 데 있는지도 몰랐다. 실제 적의 의도는 기병 돌격의 시점에서 대부분 달성된 상태였다.

아군 포병 전력을 날려버렸고, 보병 전력에 추가적인 타격도 주었다. 이 엄청난 손실을 생각하면 저들 병력의 상당수만 살려낼 수 있어도 강주 진공은 손익 계산을 한참 해보아야 결심할 수 있는 영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를 부분이군. 알고도 결심했다면 실로 대담한 판단이라고 해야겠지.’

프리츠는 망원경을 들고 둔덕을 차지한 적 보병들의 대열을 살핀 후 말문을 열었다.

“나머지 보병들을 돌려 포대를 탈환하고 적 기병대를 축출한다. 적에게 이대로 승리를 허락하진 않겠다.”

“예, 각하.”

프리츠의 명령이 떨어지자 후미에서 재정비를 마친 보병 연대들이 기수의 신호를 받아 포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증원 병력의 손실을 늦춤으로써 일선 보병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지금 보는 손실은 잠시 후에 거둘 전과를 위한 투자였다.

쌍두 독수리의 깃발을 펄럭이며 프리지아 보병들이 새카맣게 후방으로 향했다. 일선에서 본 손해가 엄청나긴 했지만 원정군의 전력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프리지아 보병의 전진에 맞추어 왕국 보병들도 예비대를 보냈다. 포대를 차지한 채 못질을 하던 기병은 적의 신속한 도전에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못질은 아직 다 되지 않은 건가?”

포대를 마비시키기 위해 여러 개의 여벌 못을 챙겨왔던 기병들은 아직 대포 전체에 손질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리지아의 대포 구조 자체가 전장식과 달라 어디를 봉쇄해야 할지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예,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기병 장교는 그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얼굴빛을 본 하얀 황소도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대포를 전부 마비시킬 때까지 현 위치를 고수한다. 굳은 바위, 위치를 지키자.”

“알겠습니다, 족장님.”

굳은 바위는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다음 동료 기병들을 주변으로 불렀다. 그는 기병총을 든 채 포대 앞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신대륙 원주민 기병들이 방어선을 굳히는 동안, 나머지 기병들은 대포를 최대한 망가트리는 작업에 나섰다. 못질이 가능한 것은 못질을 하고, 그게 되지 않으면 유산탄을 이용해 포탄을 유폭시키기도 했다.

나름의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한 그들의 노력으로 대포들은 빠른 속도로 무력화되어 갔다.

하지만 대포를 부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다가온 적 보병의 반격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속보로 다가온 프리지아 보병의 제 일렬이 유효 사거리에 들어섰다. 기병들은 경험상 거리를 가늠하지 못해 판단을 하지 못했지만 프리지아 인들은 달랐다.

장교의 명령에 병사들이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총구를 겨누었다.

“부대 쏴!”

사격이 준비되자 프리지아 장교가 외쳤다.

벼락같은 총성이 일시에 울렸다. 잘 훈련된 프리지아 보병들은 기병들보다 더 먼 거리에서 제대로 된 조준 사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후장식 소총과 기병총의 차이도 있었지만, 훈련도의 차이가 컸다.

일제 사격이 퍼부어지자 기병들 여럿이 일순간에 벌집이 되어 널브러졌다. 그제야 기병들도 총구를 적에게 겨누었다.

프리지아 병사들이 재차 사격을 준비하는 동안 기병들이 첫 총탄을 쏘았다.

“발사!”

기병들도 나름대로 침착하게 사격을 가했다.

기병들의 일제 사격에 프리지아 보병 여럿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전열 전투의 방식으로 양군은 총격을 주고받았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교전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프리지아 쪽은 일 초라도 시간을 아껴야 포대를 구할 수 있었기에 보병들에게 엄폐동작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반대로 기병 쪽은 후장식이 아니었기에 엄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기묘한 우연 탓에 전열 전투가 종결된 시대에 양군은 ‘전열 전투’를 다시 벌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병들의 승산이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머릿수와 훈련 수준, 화력에서 모두 우세를 점한 것은 프리지아 보병들이었다. 거기에 왕국 보병들까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오래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발사!”

프리지아 보병들의 두 번째 일제 사격에 기병들의 전열이 무너졌다. 적의 화력이 충분히 약해졌다고 판단한 프리지아 보병들은 그대로 총구에 칼날을 끼운 채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시간을 끄는 만큼 대포를 더 잃게 되니 그들도 마음이 급했다.

프리지아 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원주민들도 기병총에 총검을 끼웠다.

양측은 그대로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총검을 휘둘렀다.

충격의 순간 밀려난 쪽은 원주민들이었다.

기병들은 기본적으로 보병들의 전투에 익숙하지 못했다. 거기다 조직적인 프리지아 보병들의 공격력을 감당하기엔 수가 너무 적었다.

원주민 여럿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방어선이 밀렸다.

그 상태에서 붉은 코트들이 착검을 한 채 끼었다.

아군 병사들이 사정없이 밀린 것을 확인한 로망스 장교가 다시 물었다.

“대포는 얼마나 못질을 한 건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빌어먹을.”

그는 이를 갈면서 앞에서 싸우고 있는 원주민 기병들을 바라보았다.

하얀 황소는 기병총 대신 허리에 차고 있던 도끼를 꺼내 휘둘렀다. 도끼는 칼과 달리 리치 거리가 짧고 공격의 범용성이 떨어졌지만, 다루기에 따라 그 단점을 만회할 수 있는 좋은 무기였다.

투척도 편리했고 검보다 공간을 적게 요구한다는 점도 좋았다.

하얀 황소는 자신의 앞에 선 하얀 악마 하나의 머리를 그대로 도끼로 쪼갰다. 이어 옆으로 달려들던 적병을 발로 걷어차면서 도끼로 상대가 내지른 총검을 막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하얀 악마들에 맞서 싸우다 주변을 살폈다. 용맹하게 싸우던 그의 병사들 중 상당수가 벌써 주검이 되어 땅을 구르고 있었다.

적의 전력은 상상 이상으로 무지막지했다. 하얀 악마들이 총을 쓰지 않으면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막연한 추측은 오만이었다.

남은 병사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갔다. 일부 하얀 악마들은 벌써 포대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굳은 바위가 외쳤다.

“족장님, 이대로 가다간 모두 전멸합니다. 후퇴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 친구들이 아직 후퇴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우린 전사로서 해야 할 일을 받았고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하얀 황소는 피로 얼룩진 도끼를 쥔 채 굳은 바위의 말을 잘랐다. 굳은 바위는 그런 족장의 단호한 결정에 수긍했다.

전사로서의 명예는 고향을 버리고 떠나온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기둥이었다. 그것마저 버릴 수 없다는 족장의 결의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알겠습니다.”

굳은 바위는 짧게 답하고 자신의 앞으로 달려드는 하얀 악마를 향해 도끼를 들었다.

하얀 황소도 밀려드는 적을 향해 도끼를 높게 들었다. 원주민 기병들의 처절한 전투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

“중앙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기병이 적 포대를 장악했습니다.”

승도는 보고를 받고 처음으로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로군요. 훌륭합니다.”

그는 기병대가 거둔 전과에 만족했다. 승도는 애초 기병이 보병의 전열을 돌파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기대한 것은 기병이 전장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적의 대열이 수습되는 시간을 좀 더 방해하여 둔덕 전투에서 거둔 전과를 확대하는 ‘기회’로 잡고자 했다.

그렇게만 해도 강주 진공을 단념하게 할 정도의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동방 원정군 입장에서 이만한 보병 손실을 본다면 진격 자체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병은 그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적의 전열을 돌파하고 들어가 포대까지 도달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이익을 얻었다. 적 포병 세력을 마비시킨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강주로 내몰려 후퇴한다고 해도 적에게 간단히 섬멸당할 가능성은 없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전략적으로 선택지가 넓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이 전과에 들떠 승리감을 맛보려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들뜨기에 동방 원정군은 너무나 강한 상대였다.

승도는 이내 입가에 번졌던 미소를 싹 지우고 냉철함을 회복했다.

‘기병이 거둔 성과는 분명 대단한 것이다. 그렇지만 전세 자체는 우리에게 불리하다. 이 전투. 이 판 자체가 이길 수 없는 승부이기 때문이다.’

승도는 전투를 설계하면서부터 패전을 염두에 두었다. 거듭된 계교를 부려 적을 완전한 함정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산은 없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현재 동방 원정군의 일선 병력으로 투입된 9개 연대 병력은 그야말로 박살이 나고 뭉개져 전력이 처참하게 감소했지만, 여문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던 나머지 연대들은 아직 전력이 멀쩡했다.

이들 병력이면 격전으로 지친 상승군 여단들과 단련들을 전부 쓸어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여문이란 공간이 너무 좁아 넘어온 병력이 작았을 뿐 원정군 전체 전력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거둘 수 있는 만큼만 전과를 채우고 아군 전력을 최대한 온존해야 한다.’

승도는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아군 부대에 지시를 전해주세요. 상승군 여단들은 이만 후방으로 물리고 단련과 정의군을 일선에 세우세요.”

“비정규군을 전방에 말입니까?”

“상승군 전력의 소모는 이미 심각합니다. 그들을 더 소모시키는 것은 이롭지 않습니다. 그러니 철수시키세요.”

“명대로 전하겠습니다.”

로망스 장교는 얼른 깃발을 들고 기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의 명령이 전해지자 검은 군복 병사들이 둔덕 위에서 천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단련과 정의군 병사들이 메웠다.

승도는 그렇게 물러나는 상승군 병력을 우선적으로 후퇴시킬 생각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전체가 물러나는 모양새를 보였다간 적이 꼬리를 물고 추격에 나서며 퇴각 자체가 엉킬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승도는 망원경을 들고 상승군 부대들의 깃발을 보며 각 여단이 무사히 물러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후퇴만 제때 마무리하면 전투는 패배하더라도 결과는 그런 대로 만족할 수 있다. 후퇴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승도가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을 때, 갑자기 로망스 장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전하, 저길 보십시오!”

“뭔가 신호라도 온 것입니까?”

그가 묻자 로망스 장교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 아군의 측면을 가리켰다.

“적 기병입니다.”

예상을 아예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예비대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일대 승부수를 던졌다.

승부수를 던진 시점에서 그는 상대가 기병을 아군의 측면으로 가져올 가능성을 애써 배제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적은 그 의표를 냉혹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내가 적을 너무 과소평가한 건가.’

승도는 해일처럼 밀려드는 적 기병의 물결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야만인들을 죽인다. 연대 돌격!”

하인리히 대령이 이끄는 프리지아 왕실 기병 연대가 상승군의 측면에 출현한 것은 승도의 상승군 후퇴 지시가 내려지고 2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들은 다른 기병들보다 먼저 상승군의 옆구리에 도착했다. 왕국 기병들이 길을 헛갈린 탓에 제때 도착하지 못한 데 반해, 프리지아 기병은 길을 잃지 않고 정확하게 이동해왔다.

그들이 이런 기동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도주하던 단련 지휘관 하나를 잡아 이 지역 지도를 손에 넣은 덕분이었다.

작전에 나선 승도는 단련 지휘관들에게 지도의 휴대를 금지시켰지만, 이 명령은 지켜지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는 생각에 확실히 지리를 이용하려 한 몇몇 지휘관이 지역 지도를 휴대한 탓이었다.

이 포로들 덕분에 프리지아 기병은 정확한 지도의 도움을 얻어 상승군이 위치한 곳까지 내달려올 수 있었다. 그것은 실로 승도에게 재앙과 같은 결과를 불렀다.

프리지아 기병은 숲을 뚫고 나타나기가 무섭게 둔덕 아래에 구축된 상승군 진지의 측면을 치고 들어왔다.

이 진지에는 예비대 자체가 하나도 없었다. 적의 의표를 찌르고자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탓이었다.

진지에 남은 것은 기관포와 야포가 전부였다. 포병이 급히 여기에 대항하고자 포신을 돌렸지만 무거운 대포는 방향을 전환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검은 기병의 파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미터를 좁혔다. 그 시간 동안 겨우 방향 전환을 완료한 대포는 소수였다. 포병들은 기관포 몇 문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발사!”

장교들의 명령을 받기가 무섭게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타타타타 소리와 함께 총탄의 빛줄기가 기병들의 중앙을 관통했다.

프리지아 기병들은 그 공격을 받기 전에 벌써 대형을 넓게 벌리고 있었다.

그들은 기관포 앞에서 어설픈 회피 기동을 하지 않고 직선으로 내달렸다.

옆으로 피하는 기동을 해봐야 사신의 낫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들은 에우로페에서 이미 로망스와 오스티아를 상대로 ‘기관포’의 맛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실전 경험이 기관포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반응을 가능하게 했다.

프리지아 기병들은 200발의 총탄이 떨어질 때까지 직선으로 달렸을 시, 기병이 입는 손실이 생각보다 작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관포 공격을 받고 이리저리 회피기동을 하면 도리어 피탄 면적이 늘어나 전체 손실이 증가하는데 비해 직선 공격은 손해가 훨씬 적었다.

그들은 그 전훈을 살려 돌격했고 ‘그 믿음’대로 기관포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거리를 좁혔다.

검은 기병의 물결이 진지 근처까지 육박해오자 포병을 지휘하던 로망스 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얼굴을 본 프리지아 기병들이 잔혹한 사신의 미소를 지었다.

과거 대 로망스 전에서 로망스 포병들을 상대로 지었던 광기에 찬 표정이었다.

그들은 그대로 내달리며 포병들을 짓밟고 로망스 장교들의 목을 쳐 날렸다. 포병들이 뒤늦게 대포를 버리고 달아났지만 프리지아 기병들은 그들을 추격해 모조리 목을 날렸다.

에우로페에서의 전쟁이라면 대포를 못 쓰게 했겠지만, 동방의 전쟁은 달랐다. 여기서는 교육받은 포병이란 자원 자체가 모자란 탓에 사람을 죽이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프리지아 기병들은 포병대를 간단히 유린하며 상승군의 화력을 꺾었다.

그들이 조금만 더 적극성을 발휘해 상승군의 지휘부까지 직격한다면 상승군의 전 병력이 고사당할 수도 있었다. 머리가 날아간 뱀은 그 자리에서 몸부림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탓이다.

둔덕 아래에서 전투를 시작하며 동방 원정군에 큰 타격을 주었던 승도의 최대 위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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