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93화 (393/425)

제393화. 존망지추 (2)

하인리히 대령은 포병대를 간단히 유린하고 적의 진지를 차지했다. 이제 그의 앞에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상승군의 지휘부가 있었다.

깃발 몇 개와 보급 마차, 그리고 약간의 경호 부대 외에는 전혀 방어 전력이 없는 적의 수뇌부가 코앞에 있는 것이다.

“각하, 아군의 전방에 소규모 신호 부대가 있습니다. 저들까지 제거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신호 부대? 아마 포병을 위한 연락 부대인 것 같은데, 포병을 날려버린 이상 가치는 없을 것 같군. 저들 대신 보급 마차부터 쓸어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인리히는 자신들의 앞에 노출된 자들이 상승군의 지휘부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로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휘부가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약속된 신호로 부대 전체를 지휘하는 승도의 성향 때문에 지휘부의 규모 자체가 너무나 작았다. 수만 대군을 지휘하는 머리라고 하면 최소 몇 백의 지휘관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상승군의 지휘부는 고작해야 백도 되지 않았다. 연락 임무를 맡은 연락 장교 수십과 상황을 파악하여 보고하는 참모 장교 몇, 그리고 명령 전달을 위한 신호 장교 수십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이들을 지휘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기껏해야 포병대 주위에 있는 신호 부대 정도로 착각하기 쉬웠다.

수뇌부의 규모가 비교적 작은 프리지아 육군을 기준으로 보아도 저들을 ‘지휘부’로 간주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인리히는 자신의 고정 관념으로 상대를 판단했기에 그들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기병이 공격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하인리히가 이들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더 가치가 있는 목표가 널려 있어서였다.

주변에는 상승군을 위한 보급 부대들이 여럿 노출되어 있었다.

“아, 포병의 신호 부대라면 그렇겠군요. 알겠습니다. 보급 부대부터 잡겠습니다.”

하인리히의 입에서 재가가 떨어지자 기병 대대장이 한 무리의 기병을 이끌고 포대에서 출발해 보급 부대 쪽으로 움직였다.

나머지 기병들은 말에서 내린 채로 대포에 못질을 시작했다. 신호 부대를 잡는 것보다는 적 포병 전력을 확실히 무너트리는 편이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대포는 전부 마비시킨다. 야만인들이 충분히 울 수 있도록 놈들의 화력을 철저하게 날려버려라.”

프리지아 기병들은 포병 사냥에 능했다. 이들 왕실 기병 연대는 로망스와 오스티아, 루시를 상대로 수차례의 전쟁을 벌이며 포병을 숱하게 마비시킨 경험이 있었기에 대포 마비도 능숙하게 해냈다.

대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절반 이상이 손상되었다.

이들 대포는 모두 프리지아 산으로 프리지아 인들이 능숙하게 파괴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포를 가지고 수도 없이 마비시키는 연습을 했기에 눈을 감고도 대포를 손상시킬 수 있었다.

대포가 얼추 정리되어 갈 즈음 보급 부대를 공격한 기병들도 제 일을 마쳤다.

그들은 상승군의 귀중한 탄약과 병량을 실은 마차를 모두 불태우고 보급을 맡은 비정규군 병사들을 모조리 살육했다. 전투라고 할 것도 없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프리지아 기병이 대포와 보급 부대에 집중하는 동안, 상승군 보병들은 급하게 아군 본진으로 회군하여 지휘부 쪽으로 움직였다. 지휘부가 공격에 노출된 판이니 후퇴고 뭐고 일단 자신들의 사령관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인리히는 부하들이 못질을 하는 모습을 보다 적 보병의 움직임을 보았다. 흡사 적 보병은 아군 기병과 대각선으로 전개를 한 다음 일시에 포병 진지를 향해 전진하려는 모습을 취하는 듯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포대를 탈환하기 위해 보병이 반응을 보인 것치고는 너무 빠르다. 마치 우리가 나타날 것을 예견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면 전방에서 이렇게 빨리 돌아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보이지 않는 적 기병이 배후에서 퇴로를 차단할 준비를 하고 적 보병이 모루가 되어 우리를 포위 섬멸하려는 건가?’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다. 적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포병을 미끼로 주고 아군 기병을 모조리 사냥한다면 원정군은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정예 기병은 광활한 대륙이라는 작전 환경에 필수적인 전력이었고, 이들의 도움 없이는 전쟁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포병을 주고 기병을 자른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맛이 없진 않았지만 할 만한 도박이었다.

생각해보면 포병 외에 노출된 것은 쓸모도 없는 보급 부대와 신호 부대가 전부였다.

‘그렇다면 당장 물러서는 것이 상책이다.’

하인리히는 판단을 내리기가 무섭게 나팔을 불게 하여 부하들을 급히 말에 오르게 한 다음 가장 위험이 적을 것으로 보이는 적의 신호 부대 옆으로 후퇴하게 했다.

승도는 적 기병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자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가능성을 애써 배제한 ‘최악의 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그도 이런 일은 몇 번 당해본 적이 없어 당장 대응의 수를 고안하지는 못했다.

‘이걸로 승부는 끝인가?’

승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도박에 나서면서 그는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유리하게 판을 만들기 위해 기획했던 ‘힌디아 건’은 원정군 전력의 분산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 바람에 방어를 준비하며 계획했던 정밀한 전략이 모두 헝클어졌다. 이렇게 기본 전략이 깨진 탓에 그는 임기응변으로 작전을 새롭게 입안해야 했다. 보다 안정적이지 못하고, 위험부담이 큰 전략을 말이다.

일류의 전략가는 자신의 판이 흔들리지 않는, 대국을 지배하는 전략을 짜야 했지만 승도는 그럴 수 없었다. 이번 전략에서 안정을 추구해서는 원정군에 ‘필요한 수준’의 피해를 입히기 어려웠다.

그는 위험을 알고 승부수를 던졌다. 승부사로서 가능한 도박이었지만 그는 허점을 찔렸다.

최악의 위기였다.

승도는 주먹을 쥔 채 망원경을 들었다. 적 기병은 빠르게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가 가슴을 폈다. 비록 적의 총탄에 쓰러지더라도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 채로 최후를 맞고 싶지는 않았다.

“전하, 몸을 낮추십시오. 적의 흉탄이 날아들 수 있습니다.”

“아니. 되었습니다. 이 열기구가 방탄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을 낮춘다고 피할 수 있을 턱이 없겠지요. 괜찮습니다.”

승도는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장교의 만류를 거절했다. 쓰러지더라도 자신에게 도전해오는 적을 끝까지 주시하고 싶은 것이 그의 본심이었다.

그는 이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적을 보았다. 적 기병은 한 발 한 발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아군 보병들에 비해 저들은 너무나 빨랐다.

승도가 망원경을 든 채 적 기병을 주시하고 있는데, 일순 적의 움직임이 약간 이상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휘부를 향해 달려오던 적 기병이 방향을 살짝 틀어 그 옆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 움직임에 승도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었다.

‘저들은 우리를 직격할 생각이 없는 건가?’

승도는 그 생각에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혹시 저들은 이 열기구가 있는, 이 깃발이 있는 곳이 지휘부가 있는 곳이 아니라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었다. 전통적인 지휘부라면 상승군의 수뇌부처럼 규모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적 기병은 그대로 방향을 틀어 상승군의 지휘부가 한눈에 보이는 옆으로 스쳐 숲 쪽으로 내달려갔다.

프리지아 왕실 기병 연대는 이탈하는 순간까지 자신들의 앞에 최고의 먹이가 있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승도는 적 기병이 스쳐 지나간 순간에야 자신이 ‘운명의 주사위’에서 살아남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깊이 안도하며 두 번 다시는 승부사적인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승도가 망원경을 내렸을 때 상승군 보병들은 그대로 지휘부를 겹겹이 둘러싼 채 방진을 갖추었다. 프리지아 기병들은 멀리 숲에 이르러 말발굽을 멈추었는데, 그제야 자신들이 ‘바보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말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상승군의 지휘부는 아까같이 무방비 상태가 아니었다. 벌써 수백 명의 보병이 호위를 하고 있었고, 다시 수천 명이 더 달려오고 있었다.

프리지아 기병들이 다시 달려오려다 말발굽을 멈춘 것을 보며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전장에서는 언제나 쉽게 알아보기 힘든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곤 했다. 그 기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성격의 것’들이 많았다.

만일 프리지아 기병이 좀 더 주의 깊게 상황을 판단하고 반응했다면 상승군은 머리를 잃고 무너졌을지 몰랐다.

하지만 프리지아 기병은 자신들의 임무 성공에 만족하며 자축한 나머지 그보다 더한 성공의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그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이었다.

‘실기한 자’에게 두 번의 성공을 허락할 만큼 승도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검고 붉은 물결이 둔덕으로 쇄도했다. 그 노도 같은 물결이 닥치자 처절한 소모전을 벌이며 자리를 지키던 단련들은 그 무지막지한 충격력을 몸으로 받아야 했다.

아군 포병의 진지를 정리한 후방 연대들의 개입에 악전고투를 벌이던 원정군 병사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야만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지금까지 뒤로 밀리며 치욕을 맛보았던 해병 장교 프란츠가 총검을 들고 외쳤다.

해병들은 이미 많은 전우들을 잃으며 뒤로 밀렸던 터라 그 분노에 찬 외침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야만인들을 죽이자.”

붉은 코트들은 조금 전까지 적에게 고전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게도 총검으로 거세게 상대를 후려쳤다.

누런 군복들은 갑자기 바뀐 적의 기세에 당황했다. 단련 지휘관 연씨는 그 흐름을 읽고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전투에 몰입하고 있어 주변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그는 뒤늦게 수많은 적병들이 새롭게 밀려오는 것을 알았다. 그 수는 자그마치 수천, 아니 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양이 보병 만 이상.

그 파괴력은 가히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몸으로 싸워본 그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정면에 있는 해병도 만만치 않은 판에 만이 넘는 양이 대군이 가세하다니. 결과는 불을 보듯 훤했다.

“빌어먹을.”

그는 전장의 향방이 급속하게 기울 것이란 사실을 절감했다. 그러고 보니 아군의 핵심인 상승군은 이미 뒤로 빠진 상태였다. 전방에 선 것은 단련과 정의군 병력이 전부였다.

‘설마 우리만 남겨진 건가.’

단련 지휘관 연씨의 의문은 이내 전방에서 싸우던 비정규군 병사들 모두에게 번졌다. 두려움은 조금씩 그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파도가 전선에 밀어닥쳤다.

충격이 닿은 순간 원정군은 그대로 단련의 중앙을 파도처럼 밀어내며 수십 미터를 전진했다. 한 번 둔덕 위에서 밀리자 그다음은 급속한 내리막길이었다.

우세한 위치를 점한 채 총검을 내지르며 내려오는 원정군 보병들의 공격 앞에 단련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단련들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뒤로 밀렸다. 질적 수준도 상대가 안 되는 판에 기세와 위치까지 빼앗기자 싸움이 될 턱이 없었다.

한 발 물러설 때마다 단련 수십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원정군은 지금까지 당한 굴욕에 앙갚음이라도 하듯 사정없이 총검을 휘둘렀다.

이제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원정군 보병들은 성난 사자가 되어 단련의 목을 물어뜯었다. 연쇄적인 붕괴가 이어지면서 단련들의 전열이 열 개나 파괴되었다.

그때 후방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그 북소리는 후퇴 명령이었다.

“후퇴 명령이다. 모두 퇴각하라.”

“후퇴! 후퇴!”

후방에서 후퇴 신호가 떨어지자 병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허겁지겁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냥 싸워도 밀리는 판에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원정군 보병의 전진 속도가 배로 올라갔다. 사상자는 후퇴 과정에서 폭증하게 마련.

단련들은 그냥 밀릴 때보다 몇 배의 사상자를 내며 둔덕 아래로 쭉쭉 밀렸다. 하지만 이 시점에 내려진 후퇴 명령은 적절한 것이었다.

여기서 후퇴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단련의 피해는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싸우면서 둔덕을 내려가는 선택을 했다면 적 보병의 총검에 모두 죽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단련들은 적에게 등을 보이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붉은 코트들과 검은 코트의 원정군 보병들이 사납게 포효하며 추격했다.

총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단련들이 비참하게 쓰러졌다.

전투는 바야흐로 학살의 양상을 보였다. 수도 없는 시체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둔덕 아래에 쌓여 있던 원정군 병사들의 시체 위로 단련과 정의군의 시체가 겹겹이 쌓였다.

어찌나 시체가 늘었는지 추격을 하는 원정군 병사들조차 헛발질을 하다 넘어지기 일쑤였다. 단련들로서는 다행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행운은 제국 병사들에게 마지막까지 웃어주지 않았다.

둔덕 아래를 등진 숲에서 나팔소리와 함께 대규모 기병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뒤늦게 전장의 포성을 듣고 방향을 바르게 찾아온 왕국 기병들이었다.

측면에서 엄청난 수의 기병이 그 두려운 모습을 보이자 단련들은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놀렸다.

적이 자신들의 아가리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눈치챈 기병들은 정렬을 마치고 권총을 뽑아들었다.

선두에 선 기병 장교가 외쳤다.

“연대 돌격!”

왕국 기병은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그대로 부채꼴로 쫙 퍼졌다. 방진을 이룬 적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을 하는 것이었기에 최대한의 살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부대를 넓게 편 것이다.

대규모 적 기병의 돌입에 단련들 중 일부가 급히 총검을 들어 대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기병들은 그대로 내달리며 권총을 쏘았다. 몇 발의 연발 사격에 저항하려던 자들이 순식간에 분쇄되었다.

기병은 그대로 내달리며 적병들을 말발굽으로 짓밟고 칼을 뽑아 등을 내려쳤다.

기병이 왜 보병의 학살자인지 보여주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기병은 전장에 개입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아 수많은 보병 연대가 그 배의 시간을 싸워서 죽인 것만큼 많은 병사들을 죽였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진 이 살육 기계들 앞에 단련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내주었다.

왕국 기병이 학살을 자행한 것과 동시에 방향을 틀어 온 프리지아 기병이 반대쪽 방향에 나타났다. 그들 역시 칼을 뽑아들고 단련 학살에 가담했다.

그들은 조금 전 상승군 지휘부를 코앞에서 놓친 데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단련을 하나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태도로 칼을 휘둘렀다.

기병들이 내달리며 살육을 이어간 탓에 둔덕 아래로 도달했던 단련 셋 중 하나가 죽었다.

사상자는 순식간에 배로 늘어났다.

승도와 제국으로서는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이 손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단련과 정의군 병사들은 인구가 수억에 달하는 대륙에서 어렵지 않게 보충이 가능한, ‘대체 가능한 자원’이었다.

전략적으로 사석으로 던져도 될 병력이었다.

단련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동안, 원정군 지휘관들은 전진하는 아군 병사들의 뒤를 따라 둔덕 위에 섰다. 그들은 광대한 벌판을 가득 뒤덮은 엄청난 숫자의 시체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일선에서 적의 함정에 걸린 것은 이미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피해 상황을 확인한 순간 자신들이 본 피해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이상의 병력이 날아간 듯싶었다.

강력한 동방 원정군이라 해도 이 정도 손실을 보면 신을 굴복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강주 방면의 적을 섬멸했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적의 2선급 병력은 대거 제거하고 있었지만, 그 핵심 전력은 저 멀리 퇴각하고 있었다.

저들을 살려둔 상태에서 전투에서 득을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원정군은 ‘전략적’으로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소한 기병의 측면 공격으로 적의 핵심 병력인 상승군은 전부 잡아먹어야 둔덕 아래에서 본 손실을 되갚아 주었다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전장을 내려다보다 망원경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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