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94화 (394/425)

제394화. 존망지추 (3)

동방 원정군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지만 전투 자체는 이겼다. 그들은 시체로 가득 찬 둔덕을 차지하고 공세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왔다. 당분간 제국은 그들을 상대로 반격을 할 여력이 없었고 강주 자체도 공격 권역에 들어왔다.

하지만 워낙 피해가 컸던 탓에 현 위치에서 전력의 재정비가 불가피했다. 손실이 큰 연대들이 대대, 심하면 중대 급 이하까지 줄어든 탓에 통폐합을 하지 않고는 군의 전투력 자체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통폐합 작업과 지휘 체계 정비, 그리고 전장 정리 등으로 꼬박 하루를 소모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향후의 전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었다.

이 재편의 결과 해병대는 일개 연대로 통폐합되었고, 프리지아와 왕국 육군 보병 연대들도 각각 3개 연대씩 감축되었다.

에우로페가 아닌 극동에서 이 정도 수준의 전면 재편성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원정군 지휘관들에게는 실로 괴로운 작업이었다.

하루를 소비하여 재편을 완료한 원정군은 이튿날부터 진격을 재개했다. 그들은 적의 저항을 받지 않았음에도 신중한 전진을 계속했다. 한 번 호된 맛을 본 탓에 적의 방어력을 새로운 눈으로 인식한 덕이었다.

원정군은 불과 반나절이면 주파가 가능한 거리를 하루에 걸쳐 진격했다.

도시에는 상승군의 핵심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잘만 하면 그들을 섬멸시켜 지난 전투의 손실을 만회할 것 같았지만 그러긴 어려웠다. 프리지아 포병이 전멸했다는 점 때문이다.

원정군의 포병이 없는 탓에 강주의 수비대는 필요하면 배를 타고 손실 없이 강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 굉장한 이점이었다. 공격자들이 어떻게 계획을 세우더라도 상승군이 강주를 버리고 이탈할 수 있다는 부분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육군은 고심 끝에 해군의 협조를 구한다는 방안을 강구했다. 자력으로는 도저히 강주에서 탈출하려는 적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고, 도시 자체를 공략하면서 내는 손실도 컸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군의 협조를 받아 상승군을 섬멸해야만 지난 전투에서 본 막대한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다. 수적으로 제한된 원정군으로서는 그만한 전과를 거두어야 향후 전투에서 상대하기 불가능한 수의 적과 대치하는 국면을 피할 수 있었다. 손실을 줄여야 하는 것도 물론이었다.

원정군 지상군에서 ‘작전의 당위’를 역설하자 해군은 망설임 끝에 다수의 프리깃을 추가로 차출하여 금포강으로 북상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정군으로서는 나름의 승부수였다.

그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와 금포에서 강상 전단과 합류했다. 열 척이 넘는 프리깃함과 박격포함이 가세하자 금포 앞은 일시적이지만 엄청난 함정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메워졌다.

육군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 주기로 한 해군에 감사의 뜻을 표시하면서 원활한 작전을 위해 연락 장교를 배에 태웠다. 양군의 작전을 조율하기 위해 프리깃에 탄 시드니 중령은 해군 제독과 악수를 나누고 자신이 들고 온 작전 계획서를 보였다.

작전에 따르면 해군은 강상을 따라 북상을 계속하여 강주에 도달한다. 제한 시간은 작전 개시 1일 차 정오였다. 이 시점까지 해군이 도달하지 못하면 육군은 홀로 강주를 공격하다 엄청난 피해만 보고 적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기함의 사관 회의실에서 열린 ‘작전 회의’ 검토가 끝나고 원정군 해군은 닻을 올렸다. 그들은 작전의 성공을 자신하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원정군 해군이 닻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을 주기적으로 선회하던 글라이더 하나가 함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 정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주에 있던 승도의 귀에 들어왔다.

“적 해군이 북상한다면 이는 강주에 있는 우리 병력을 잡아먹으려는 속셈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강주 내에 있는 우리 병력을 수상으로 철수시켜야 합니다.”

유진은 왕국의 전쟁 방식에 익숙했기에 이들이 노리는 것이 강주의 병력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병력을 강주에서 철수시키는 것만으로도 적의 의도는 간단히 무산시킬 수 있었다.

그의 발언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지요.”

유진이 반문하자 승도는 눈짓을 해서 지도를 가져오게 했다. 하인이 지도를 가져오자 승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펼쳐진 지도는 금포강 전역을 그린 상세한 지도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쿡 짚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강주를 버리고 물러서게 되면 적 육군은 간단히 여기를 접수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저들은 어렵지 않게 염화포대까지 접수하여 수로에 더 많은 함정을 들일 수 있게 됩니다. 고립된 철제 난간도 저절로 떨어지게 되겠지요. 일이 그렇게 돌아가면 공연히 이르게 움직였던 우리 군대는 강 상류로 밀려 올라가게 되고 고립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건 적이 원하는 그림입니다. 처음부터 강주에 머무르지 않고 내륙으로 물러났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선 맞지 않는 전략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곳 강주에 머무른 채로 적과 대적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잠수함을 쓰기에는 물살이 지나치게 빠른 곳이고, 우리 쪽의 군함들은 이전 전투에 쓰기 위해 대포를 모두 탈거시켜 알몸이나 마찬가지이니, 아무리 보아도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로망스 해군 장교 하나가 해군 전력의 빈약함을 지적했다. 승도는 지난 전투에 해군을 위해 준비한 대포를 대거 탈거시켜 전투에 동원했던 터라, 강주에 몇 두지 않은 함정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거기에 잠수함도 활용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여러모로 적 해군이 올라오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를 자침시켜 수로를 막아버리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승도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무식한 방법을 입에 올렸다. 그 말에 장교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로망스 해군은 왕립 해군의 공격을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항구로 들어오는 입구에 상선을 자침시켜 길을 막아버리곤 했다. 이렇게 하면 천하의 왕국 해군도 도리가 없었다.

승도의 단순무식한 해결책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생각해보면 간단하지만 실전에서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방법이기도 했다.

“배를 자침시켜서 길을 막아 버린다면 확실히 대응책이 되긴 하겠군요. 하오시면 어디에 자침을 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철제 난간 뒤편이 좋겠습니다. 거기에 상선을 스무 척 정도 침몰시키면 수로가 확실히 막힐 겁니다. 왕국 해군으로서는 돌파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겠지요.”

승도는 은자 수십 만 냥을 강바닥에 쓸어 넣어 적을 저지하기로 했다.

“왕국 해군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대응책일 듯합니다.”

“그럴 테지요. 이 승부수만 막아낸다면 왕국은 강주 공략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겁니다. 저들로서는 이미 입은 손실이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승도는 이것으로 강주의 위기는 거의 해소될 거라고 보았다. 적 육군으로서는 상승군을 잡지 못하는 선에서 손실이 추가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하, 제게 상선을 맡겨 주십시오. 철제 난간의 뒤를 확실히 막아 왕국의 진격을 막겠습니다.”

로망스 해군 장교가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경에게 배와 사람을 내주겠습니다. 왕국이 올라오는 것만 막아내세요. 그리고 배에 실을 돌이 부족하다면 쌀가마도 내주겠습니다. 우리 행상의 창고에는 그만한 쌀은 비축되어 있으니 배가 무조건 길을 막을 수 있게만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전하.”

이것으로 상승군은 동방 원정군의 한 수에 대항하는 패를 던졌다. 남은 것은 양자가 던진 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사위의 수가 나오는 것뿐이었다.

***

금포와 강주 사이에는 행상이 수년의 시간과 십만 냥이 넘는 돈을 들여 만든 ‘철제 난간’이 있었다. 이 위대한 난간은 금포강이 만든 거친 협곡에 있었는데, 강의 수면으로부터 자그마치 200미터나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난간은 현존하는 왕국 해군의 모든 무기 체계로 타격이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왕국 해군은 이 무지막지한 괴물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것 하나 때문에 왕국은 번번이 강주로 함대를 올려 보내려던 생각을 접어야 했다. 전략의 가짓수를 줄인다는 점에서 철제 난간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하고 있었다.

이 난간에는 최근에 새로 배치한 신형 대포 20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대포들은 모두 왕국의 최신형 전장식 대포들로 그 속사 능력은 후장식에 비해 조금 떨어졌지만, 사거리와 위력은 후장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일격에 군함을 잡도록 만들어진 요새포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이 포대를 관리하는 병사의 수는 모두 오백으로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워낙 험준한 곳에 위치해 공략을 할 수조차 없어 포대를 지키는데 부족함은 없었다.

포대의 지휘관 경씨는 망원경을 든 채로 강상을 내려다보다 멀리 돛을 편 채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 함정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망원경을 내리고 부하들에게 포격을 준비시켰다.

병사들은 능숙하게 포탄을 장전한 다음 미리 맞추어둔 조준점에 적 함정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포탄은 압도적인 위치 에너지에 힘입어 수직으로 떨어졌기에 함정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간단히 타격할 수 있었다.

이 수직 하강 탄에 견딜 수준이 되려면 최소한 수십 센티미터 이상의 강철판을 둘러야 했는데, 그런 함정은 장갑함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장갑함들도 이런 수직 하강 탄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경씨는 적이 포대의 사정거리에 들어서자 당과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발사!”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포대의 대포들이 불을 뿜었다. 열 문의 대포가 연달아 포탄을 내뿜었다. 포탄들은 일반적인 다른 포탄들과 달리 잠시 수평으로 날다 포물선을 그리며 강을 향해 기울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거의 구십 도의 경사를 이루었다.

쿠앙!

강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연이어 솟구쳤다.

함정들은 그 포격을 보면서도 대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북상을 시도했다. 자살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가공할 포대 앞에서 어설픈 기동을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간 두드려 맞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었다.

콰앙!

다시 포탄이 떨어졌다. 이번 포탄은 선두에서 전진하던 왕립 해군의 프리깃 블루로즈의 중앙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포탄이 떨어진 순간 목재 파편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 파편에 갑판에 늘어서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프리깃은 그 충격을 견뎌낸 듯 묵묵히 전진하는가 싶었지만 점차 속도가 줄어들더니 그 상태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단 일격에 선체가 관통당한 것이다.

가공할 위력을 가진 수직 하강 탄 앞에 프리깃 정도의 방어력으로 견디는 것은 무리였다. 직격당하면 한 방에 격침당했고, 빗맞기만 해도 대파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다. 경씨는 이런 무지막지한 포격을 감수하며 전진하는 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포탄을 한 발 한 발 정확하게 쏴라. 양이 놈들이 다가온다고 해도 우릴 쏠 방법이 없지 않나. 여유를 가지고 조준을 하는 거다.”

경씨는 부하들을 독려하며 포탄이 떨어지는 지점을 살폈다. 포탄은 정확히 적 함대의 이동선상에 떨어지고 있었다.

꽝!

이윽고 강상에서 대폭발이 한 번 일어났다. 우연히 떨어진 수직 하강 탄 한 발이 프리깃의 탄약고를 직격해 유폭을 일으킨 것이다.

프리깃은 사방으로 엄청난 파편을 뿌리며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다. 말 그대로 굉침이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몇 분 되지 않아 벌써 프리깃이 세 척이나 침몰했다. 피해를 감수하고 왔다고 해도 가공할 포대의 화력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으리라.

저들이 무얼 노리고 이곳을 지나가려는지 알 것 같았지만 저들의 의도는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상승군이 적시에 저들의 행동을 눈치챈 시점에서 승산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경씨는 적을 향해 혀를 차면서도 약간은 감탄스럽다는 빛을 보였다. 죽음이 보이는 전장임에도 ‘작전’ 하나를 수행하겠다고 그것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과연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자들답다고 칭찬해줄 만했다. 신에는 저들처럼 투지가 있는 자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 용맹이 너희를 죽게 하겠지.’

“마드리스가 침몰합니다. 순 손실은 이제 다섯 척입니다.”

함대 참모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군 수병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참모와 제독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도리어 육군의 연락 장교로 온 시드니 중령이 기가 질렸다.

“돌파가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왕립 해군에게 불가능은 있어도 포기는 없네. 육군과 공조를 한 이상 우리는 전멸할 때까지 전진할 걸세.”

제독은 시드니에게 단언했다.

해군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해군 스스로 얼마나 단단한 결의를 다졌는지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사이에도 포탄은 강상으로 수도 없이 떨어졌다. 새로운 수직 하강 탄에 프리깃 하나가 파편을 튀기며 멈추었다.

새로운 아군 함정 하나가 다시 멈춘 것을 본 시드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해군의 전투 의지는 탄복할 만했다. 육군과의 연계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모습은 그간 예산을 독식하는 ‘배불뚝이 뱃놈들’이라고 욕해온 그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그는 두 번 다시 해군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다짐하며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해군 장교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고르곤, 대파. 함대 선두는 적 포대의 최소 사거리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좋아. 아군 포함에 신호를 보내 백린을 쏘게 해. 이제부터 놈들이 시계를 확인하기 어렵게 하면 피해는 줄일 수 있을 테니.”

제독의 명령에 신호사관이 급히 신호를 보냈다.

선두에 섰던 포함에서 로켓이 솟아올랐다. 로켓은 그대로 철제 난간을 향해 치솟았다. 하지만 최대 상승 고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들이 다시 포물선을 그리며 난간 아래쪽 벼랑에 부딪쳐 폭음을 일으켰다.

새하얀 백린이 사방으로 번지며 엄청난 연기를 일으켰다. 그 연기는 그대로 바람을 타고 난간 위로 솟아올랐다.

일시적이지만 포격의 정확도가 낮아지기를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시드니 중령은 해군의 노련한 움직임에 감탄하며 이들이 임무를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았지만 난간 아래까지 다가섰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그곳을 지나 강주로 향하는 수로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만 하면 임무는 성공이었다. 몇 척이라도 도달한다면 이 게임은 왕국의 승리였다.

해군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임무였다.

회백색 연기가 난간을 뒤덮은 통에 포격의 정확도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해군 함정들의 손실은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줄었다. 선두에 선 박격포함은 계속해서 로켓을 쏘며 조금 더 전진했다.

좀 더 앞으로 움직이면 적 포대의 공격 권역을 벗어나는 것도 가능했다. 이 연막과 해군의 대담함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내 해군의 선두 함정이 난간을 지났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며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

이 최초의 함정은 그대로 난간의 뒤로 돌입하며 신호기를 올렸다.

제독과 시드니는 그 신호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해군이 도박에 성공했다는 것이 절로 실감되었다. 이렇게 되면 강주에 있는 적 상승군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승리감에 취해 여왕 폐하 만세를 부르짖었다.

승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난관을 극복한 자신감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힘을 주었다.

그들이 승리감에 취한 바로 그 순간, 선두에 섰던 박격포함이 무언가에 걸렸다. 끔찍한 소리를 내며 배가 멈추자 장교들이 급히 보트를 내려 주변을 살피고는 급히 신호를 보냈다.

제독은 신호사관을 닦달해 그들의 신호를 읽게 했다.

‘야만인들이 강바닥에 상선을 침몰시켜 수로를 막은 것 같습니다.’

제독은 그 신호를 해독하고 나서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 이 염병할 야만인들이 강을 봉쇄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하면 수로 하나만을 이용해야 하는 해군으로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독 각하, 왜 그러십니까?”

시드니가 신호를 읽고 당황한 제독에게 묻자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작전은 실패한 것 같소.”

“작전이 실패라니요?”

“놈들이 강바닥에 장난을 쳤소. 우리 배들은 여기서 더 올라가기 어렵게 되었소.”

제독이 이를 간 순간 포대의 화력이 두 배로 증가했다. 열 문만 포격을 가하다 이십 문이 일시에 포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왕립 해군을 통과시켜줄 듯 적당한 화력만 내보이며 포대 아래로 끌어들인 다음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상대를 무자비하게 물어뜯었다.

왕립 해군이 출동시킨 강력한 강상 전단은 그렇게 철제 난간 앞에서 모조리 수장을 당했다.

강주의 상승군을 전멸시키려던 야심찬 계획의 종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