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5화. 존망지추 (4)
오전 열 시.
태양이 하늘에 떠올랐다.
약속된 공격 시간이 다가오자 줄을 선 붉은 코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대를 지휘하는 장교들은 수시로 코트 자락에 있는 회중시계를 들춰보며 시간을 보았다.
해군이 도착할 시점에 맞추어 최적의 효과를 내려면 열한 시부터 공격을 시작해야 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고조되었다.
장교들이 전열의 앞을 오가는 동안 병사들은 자신의 손에 들린 무기를 한 번 더 점검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포병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전투이니 만큼, 초기 교전은 자신의 소총밖에 믿을 것이 없었다.
긴장 속에 왕국 육군 장성들이 대열의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선두를 맡을 연대의 지휘관들과 악수를 나누고 공격 방향에 대해 간략한 지침을 내렸다.
육군의 쇼 중장은 연대장들에게 강주의 운하를 따라 안으로 쪼개고 들어가듯 전진할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전진해 들어가서 상관 거리를 장악해 상승군을 항구 쪽으로 철저히 몰아넣는 것이 그들 계획의 핵심이었다.
작전 지시를 마친 장성들은 참모들을 거느리고 뒤로 물러났다. 연대 장교들은 그 지시를 확인하며 시간을 다시 보았다. 작전 개시 시간은 이제 이십 분도 남지 않았다.
최선두에 서서 공격을 선도하는 임무를 맡게 된 밀버러 연대의 대대장, 하운드는 망원경을 들고 자신의 공격선상에 위치한 도시의 방어선을 살폈다.
방어선에 해당하는 담 벽에는 수천의 적 보병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수적으로 보자면 밀버러 연대가 단숨에 돌파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하지만 적의 수는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연대는 왕국 최강의 정예 보병이었다. 왕국 제일 영웅의 이름을 부대 명으로 받은 그들에게 돌파할 수 없는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전투에서도 밀버러 연대는 투입되자마자 적의 중앙을 쪼개고 들어가며 전투의 승리에 일조한 공로가 있었다. 이번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장성단이 직접 찾아와 ‘다시 한 번’ 큰일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운드는 손에 장갑을 끼고는 자신의 권총에 탄창을 채우고 허리춤에 끼웠다. 이제 전투 개시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숨 막힐 것 같은 긴장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양군 모두 충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하운드 중령은 부대의 앞으로 나섰다. 기수가 그의 옆에 서 있다가 자세를 바로 하며 깃발을 높게 들었다. 중령은 그 어깨를 두드려준 다음 아군의 공격 신호를 기다렸다.
열한 시 정각.
아군 본진에서 나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신호로 하운드가 큰 소리로 외쳤다.
“대대 전진!”
그의 한마디에 기수가 사자기를 앞으로 향하게 했다. 보병은 그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군화를 앞으로 내딛었다. 대대가 전진하자 연대가, 원정군 전체가 한 발 한 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척척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거대한 군대의 움직임은 압도적인 인상을 주었다. 단숨에 강주로 들이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다가서는 동작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보병들은 동료들과 간격을 맞추며 담 벽을 향해 다가섰다. 그들이 다가옴과 동시에 상승군들 쪽에서 ‘사격 준비’라는 외침이 들렸다. 하운드 중령은 그 소리를 무시하며 기수와 함께 부대의 전진을 지휘했다.
곧 ‘쏴’ 소리와 함께 무자비한 총성이 붉은 코트들의 귓전을 때렸다.
그 소리와 동시에 수십 명의 병사들이 푹푹 쓰러졌다. 하지만 붉은 코트들은 그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거리를 좁혔다. 무리하지 않는 신중한 전진이었다.
적에게 기관포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밀버러 연대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전진 속도를 조율하기로 했다. 그 판단은 전술적으로 꽤 손실을 가져왔지만, 심리적으로는 상당한 이익을 주었다.
총격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똑바로 한 발 한 발 전진해오는 적의 의연한 모습에 상승군이 약간의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열 전투 시대에도 이 정도 수준의 보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연대는 적을 단지 ‘전진’만으로 위협하면서 담 벽을 오십 미터 앞둔 지점까지 다가섰다.
이 시점에서 상승군은 그다지 강한 화력을 동원하지 않고 있었다. 강주라는 도시 자체의 핵심 방어선인 ‘운하’와 상관 거리의 담장에 방어력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시의 외부 방어선에 해당되는 벽에 자원을 많이 할당하지 않았다.
붉은 코트들의 물결은 도시의 성벽 앞에 도달한 시점에서 걸음을 뚝 멈추었다.
하운드는 병사들이 정지한 것을 확인하고 칼을 뽑아들었다.
“보병 사격 준비!”
장교들이 대대장의 명령을 복창하며 사격 준비를 지휘했다. 곧 병사들이 사격 준비를 마치자 하운드가 칼날을 내리며 외쳤다.
“발사!”
붉은 코트들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중대 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대대 하나가 순차 사격을 퍼붓자 벽을 끼고 사격을 가해오던 상승군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것을 본 연대의 나머지 병력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돌진했다. 하운드의 대대가 위험을 무릅쓰고 저속으로 전진하며 기관포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붉은 코트들이 함성을 지르며 도시 안으로 돌입하자 상승군은 간헐적인 총격을 가하며 안으로 물러섰다. 적이 외벽을 넘겨줄 뜻을 보이자 밀버러 연대는 그 뒤를 바싹 추격하며 쐐기처럼 파고들었다.
비단 돌파에 성공한 것은 밀버러 연대 하나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연대들 역시 이곳저곳에서 돌파에 성공했다.
그들 역시 기관포가 없는 것을 확인하며 신중한 돌파를 시도했기에 꽤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 손실을 대가로 무사히 도시 안에 발을 들인 만큼 손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각 연대가 도시 안으로 진입하면서 전투는 시가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전원 돌입한다.”
아군 보병들이 돌입한 것을 확인한 하운드 중령이 명령했다. 엄호 사격을 하며 아군의 돌입을 지원하던 대대는 그의 지시에 따라 도시 안에 발을 들였다.
연대는 그대로 강주를 겹겹이 감싼 첫 번째 운하까지 들어섰다. 그들의 앞에는 이런 운하가 무려 다섯 개나 있었는데, 그것들을 돌파해야 강주의 핵심인 상관 거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장악해야 강주의 교통을 차단시켜 적을 항구로 몰 수 있었다. 해군이 도착하는 시점에서 적을 전부 수장시킬 수 있도록 몰아 버리려면 정오까지는 상관 거리를 장악해야 했다.
하운드 중령은 운하를 건널 수 있는 다리를 확인하고 이 다리를 지나기 위해 보병들을 투입했다. 다리를 지키는 적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의 지시에 따라 보병들은 동료들을 엄호하면서 다리 건너편의 적에게 계속해서 총격을 가했다.
머리를 들 수 없는 압도적인 사격에 상승군은 하나둘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운드는 몇 분 안에 첫 난관을 돌파할 거란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그 확신은 곧 순식간에 무너졌다.
“불이야!”
느닷없이 다리 한가운데에서 불길이 일었다. 도시 안쪽에서 날아온 불화살들이 다리에 와 닿는 순간 일어난 화재였다.
그 화재에 다리 위로 막 올라서서 총격을 퍼붓던 붉은 코트 대여섯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 끔찍한 모습에 하운드는 이를 갈았다. 적은 처음부터 다리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나무로 만든 다리에 기름을 적셔 두었다가 아군이 돌입하는 시점에 불을 질러버리는 것이 저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방어를 시도한다면 다리 공략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하운드는 생각 끝에 보병 일부를 헤엄쳐서 운하를 건너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맨몸으로 건너는 보병은 운하 건너편에서 엄호하고, 무사히 도착한 보병들에게 총기를 던져 위치를 확보하게 하면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방식이 가능한 것은 첫 번째 운하의 폭이 고작해야 몇 미터 남짓한 덕이 컸다.
곳곳에서 원정군 장교들은 이런 방식으로 상승군이 준비한 방어선을 돌파했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임기응변의 대응 능력으로 무장한 이 중하급 지휘관들이야말로 원정군이 자랑하는 최강의 자산이었고, 그들은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상승군이 마련한 첫 번째 저지선은 어렵지 않게 돌파 당했다.
상승군은 생각한 것보다 빠른 속도로 상관 거리를 향해 한 발 한 발 밀렸다. 원정군은 그렇게 밀리는 적을 보며 자신들에게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이대로 항구까지만 적을 밀어내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
“양적들이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인!”
강주 관리로서 단련들을 이끌고 전장에 참가한 관씨는 자신의 담당 구역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양이들의 파도 같은 기세에 치를 떨었다.
운하 건너편에서 쉬지 않고 총격을 퍼부어대는 양이들의 화력으로 보건데 저들과 정면 승부를 벌였다간 순식간에 몰살할 것이 자명했다.
그나마 단련들의 머릿수와 운하 덕에 비등한 전투를 치를 뿐이었다.
“사격!”
운하 건너편에서 양적들이 세게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양적들의 총이 재차 오렌지 빛 섬광을 토했다.
무지막지한 총성에 관씨가 고개를 움츠렸다. 단련들도 몇 발씩 총을 쏘다 하나둘 머리가 으깨지며 널브러지는 통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휘관부터 병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적을 보지 못하고 총을 쏘았다.
관씨는 몸을 움츠린 채로 손을 올려 한 발을 쏘았다. 대충 감으로 쏘는 것이라 효과는 별로 없었다. 단련들이 그를 따라감으로 견제 사격을 가하는 동안, 양이들은 운하 변에 바싹 붙었다.
곧 일부가 총을 쏘며 견제하는 사이, 일부 양이들이 운하에 몸을 담갔다. 단련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모른 채 견제 사격을 한 발씩 띄엄띄엄 쏘았다.
이내 운하를 건너온 양적들은 소총을 건네받기가 무섭게 측면에서 단련들을 습격했다.
타당. 타당.
총성이 울릴 때마다 엎드린 채로 견제 사격을 하던 단련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제야 관씨는 적들이 운하를 넘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양적들이 운하를 건너왔다!”
그의 외침에 단련들이 급히 총구의 방향을 바꾸었다. 양쪽은 그 상태로 치열한 총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단련 쪽의 승산은 없었다. 운하 건너에서 날아오는 총탄도 상대하기 버거운 판에 같은 쪽 운하에서도 총탄이 날아오니 견딜 재간이 없었다.
단련들은 순식간에 시체로 변하며 하나둘 바닥을 굴렀다.
휘하 병사 수십이 순식간에 벌집이 되자 관씨는 침을 삼키며 총탄을 총구에 넣었다. 이렇게 무식한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 전투에는 결코 나서지 않았을지 몰랐다. 아니,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강주 왕 오승도가 코앞에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관료로서 잘 보이고자 공명심에 나섰던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그는 멍청한 선택을 한 자신을 자책하며 숨을 골랐다. 이제 양적 놈들이 그를 조준하고 총격을 가하기만 하면 그의 생명도 끝이었다.
‘미안하오, 영영. 그대와 함께하는 시간은 이걸로 끝인 것 같소.’
관씨는 눈을 질끈 감으며 다가올 양적의 총격을 기다렸다.
타탕탕.
갑자기 전혀 다른 방향에서 총격이 울렸다. 그러더니 적병들 쪽에서 답답한 신음이 터지는가 싶더니 적병들의 총성이 급속하게 잦아들었다.
‘어찌 된 일인가.’
관씨는 침을 삼키며 눈을 살짝 떴다. 거북이처럼 몸을 움츠린 관료가 눈을 뜨자 그 앞으로 수십 명의 건장한 검은 군복들이 보였다.
그들은 기괴하게 생긴 칼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군복은 익숙했다. 상승군의 군복이었다.
그는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그들을 올려다보다 헛기침을 했다. 제국 관료의 체면에 얼굴도 새카만 작자들에게 못 볼꼴을 보였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했다.
새카만 얼굴들은 그런 그를 보고 피식 웃더니 그대로 운하로 뛰어들었다.
검은 군복들은 동료들의 지원을 받아 운하를 능숙하게 건넌 다음, 적병 사이로 파고들어 그들의 목을 쳐 날렸다. 그들 앞에 그토록 강하던 양적들은 단지 전과를 제공하는 전리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그들이 멀리 사라지고서야 그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국 관료로서 체면을 살린, 그 나름의 감사 방식이었다.
“손실이 상당합니다. 제국 놈들의 저항이 격렬하여 도시를 점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군이 빨리 도착해야 합니다.”
도시에 진입한 연대들은 수시로 연락 장교를 지휘부에 보내 전황을 보고했다. 시가전 상황이었지만 전황은 비교적 정확하게 보고되고 있었다.
지휘관들은 그 보고를 받으면서 회중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50분인데 아직까지 해군의 소식은 없습니다. 이거 작전 취소를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닙니까.”
“아직 10분은 기다려봐야 합니다. 정오까지라고 작전 계획에 못을 박았습니다. 해군은 그 약속을 지켜줄 겁니다.”
오스틴 중장이 애써 해군을 변호했다. 하지만 프리지아 쪽에서 아픈 지적을 꺼냈다.
“그렇다면 최소한 포성은 들려야 하지 않습니까. 강주의 서남쪽에는 포트 헬리오스가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포대를 감안하면 지금쯤 포성이 들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조금 늦을 수도 있는 문제 아닙니까. 작전에서는 약간의 오차는 계산에 넣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조해할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오스틴 경께서 하나 간과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몇 분의 지연 동안에 날아가는 병사들의 목숨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만한 손실을 감수할 전력이 없습니다. 차후 제국에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서라도 전력은 아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왕국 육군 장성들도 불안을 내비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소모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군이 가능한 한 빨리 도우러 들어와서 강주에 ‘포격’을 가해 승부에 쐐기를 박아주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강주는 그들의 피를 빨아내는 참혹한 소모전의 전장이 되고 말 터였다. 그런 싸움은 결코 그들이 바란 그림이 아니었다.
전투는 그들이 시계를 보는 중에도 계속되었다. 사상자 수가 천을 넘어서자 장군들은 발로 땅을 구르기도 했다.
마침내 약속 시간을 훌쩍 넘었다. 그때까지 인내하며 입을 다물고 있던 프리지아의 프리츠 대장이 입을 열었다.
“포성이 아직도 들리지 않는 걸로 봐선 해군 쪽에서 작전을 수행해줄 가능성은 희박한 듯합니다. 최소한 작전을 중지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상관 거리도 손에 넣기 전에 작전을 중지한다면 막상 해군이 왔을 때 재미를 보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확신이 없는 문제가 아닙니까.”
장군들은 한참 갑론을박을 벌이다 작전의 잠정 중단에 동의했다. 그들은 금포에 연락 장교를 보내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지 문의해보고 작전을 포기할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들이 겨우 ‘논의’를 마치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금포로부터 해군의 연락 장교가 도착했다.
이 장교는 한 시간도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달려온 듯 기진맥진한 얼굴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육군 장성들에게 말했다.
“작전을 중지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린가.”
오스틴 중장이 묻자 연락 장교는 숨을 고른 후 참혹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해군 강상 전단이 전멸했습니다. 이번 작전에 해군은 더 이상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강상 전단이 전멸하다니.”
장성들이 놀라 묻자 연락 장교는 입맛을 다셨다.
“자세한 상황은 저희도 모릅니다. 그저 강 상류에서 다량의 폐목과 시체가 떠내려 온 것을 보고 금포에 남아 있던 상선 한 척을 상류로 진출시켰다가 침몰한 배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상황을 알리러 온 것이 전부입니다.”
“맙소사. 강상 전단이 전멸하다니.”
장군들은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적의 포대가 강력해도 강상 전단을 전멸시킬 수는 없었다. 최소한 몇 척은 강주로 돌파를 할 수 있었다. 그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적은 그 불가능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 말대로라면 적은 의외로 엄청난 전력을 강주와 금포 사이의 강에 숨겨두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건 그 나름대로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면 저들은 역으로 금포로 내려와 우리 후방을 포격할 수 있다. 아직 보급품 태반을 금포에 남겨둔 우리로서는 최악의 이야기다. 상선이 다 쓸려나가면 무엇으로 전쟁을 한단 말인가.’
그들은 강상 전단의 전멸이라는 말에서 ‘퇴각의 당위성’을 발견했다. 강주 공략과 적 병력의 섬멸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렇게 배후가 위험한 상황에서는 그 어떤 작전도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퇴각합시다.”
침묵 속에 프리츠가 퇴각을 제안했다. 그 제안은 강주 전역이 왕국과 원정군의 패배로 끝났음을 알리는 가장 상징적인 발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