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96화 (396/425)

제396화. 진퇴유곡 (1)

동방 원정군은 공세를 중단하고 썰물처럼 후퇴했다. 그들은 수많은 전우들의 시체를 방기한 채 ‘패배자’처럼 강주를 등졌다.

수도 없는 시체를 남기며 간신히 확보했던 강주 초입의 지옥, 둔덕과 여문도 버렸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후퇴에 상관 거리를 코앞에 두었던 일부 장교와 병사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승리를 희석시키려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이 불신은 원정군이 전쟁을 치르면서 처음으로 불거진 것이었다. 그만큼 원정군이 이 후퇴로 ‘심리적인 손실’을 크게 입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정군 수뇌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해군’이 예상하지 못한 적의 ‘해군 세력’의 공격으로 무너졌다고 판단한 이상 다른 선택을 고려하기 어려웠다.

원정군이 썰물처럼 물러나자 승도는 그 의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가 한 것은 적 강상 전단의 섬멸을 통한 ‘협공 가능성’의 분쇄가 전부였다.

그런데 적은 뭐가 그리 급한지 다급하게 금포까지 철수를 이어갔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었던 모든 점령지를 포기하면서까지.

강주 공략과 이 지역 상승군의 괴멸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움직였던 것과는 너무나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는 여기서 혹시나 적이 ‘힌디아 반란’ 소식을 접하고 적이 전면 회군을 결심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적절한 수준의 강화 교섭을 해볼 여지는 있었다. 신의 안보와 미래를 보장받을 수준의 ‘세력권’, 동방에 대한 패권의 인정 정도면 그도 만족할 용의가 있었다.

그에 대한 보장만 확실하다면 포로도 모두 석방하고 왕국과 국교를 회복할 수도 있었다.

전쟁은 끝까지 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시점에서 중단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현명했다.

승도는 이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임경문을 특사로 임명하여 금포로 보냈다.

신 쪽에서 백기를 든 강화 사절을 보내자 허겁지겁 금포로 물러섰던 원정군 쪽은 당연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상대가 ‘이 시점’에서 강화 제의를 한 데에 대해 미묘한 인상을 받았다.

원정군이 급히 회군하긴 했지만 군사적으로 아직 수세에 몰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상대의 의중을 알아볼 필요도 있었던 터라, 원정군은 임경문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그들은 강화 사절의 도착을 네이선 원수에게 보고했다. 원수는 그 보고를 받고 즉시 금포로 달려왔다. 이 자리에서 신의 흠차대신과 원정군 육군 원수는 ‘강화 협상’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당연히 불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원수는 고압적인 태도로 신에서 들어주어야 할 조건들을 늘어놓았고, 임경문은 수세에 몰린 상대가 들어주어야 할 조건을 내놓았다.

서로가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믿고 조건을 꺼내다 보니 협상은 시작부터 난항을 빚었다.

양국의 대표는 첫 교섭에서 뭔가 핀트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협상은 일단 잠시 난항에 빠졌다.

원정군은 이 뜬금없는 상대의 강화 협상에서 적이 뭔가 ‘오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상대는 자신들이 절대적 우세에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우세는 어디에서 확신하는 것인가?

강상 전단을 파괴한 함대?

그거라면 저들도 우세를 자신할 부분은 아니었다. 금포까지는 전열함을 끌고 올라와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립 해군이 위험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그 우세야 간단히 제거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들이 우세를 확신할 근거는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왕국의 최종 전쟁 목표가 강주에 국한된다고 확신할 때였다.

그 가정 하에서라면 저들이 우세를 자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원정군은 일시적이지만 보급의 위험을 느껴 황급히 금포까지 물러섰다. 강주 시내에까지 부대를 진입시킨 상태에서.

이 철퇴로 말미암아 원정군은 추가로 천 이상의 사상자를 내면서 얻었던 전과를 모두 헌납하고, 적이 방어 태세를 재정비할 시간도 주었다.

거기다 원정군이 강주까지 진출시킬 수 있었던 강상 전단까지 파괴되었다. 여러 모로 원정군에 불리한 부분들이었다.

강주를 방어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원정군이 재차 공격을 감행해도 이제는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만한 부분이었다. 방어 병력만 충분히 증강했다면 말이다.

원정군은 이 점에 주목했다.

적이 강주에 모든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면, 손해를 많이 보았던 이번 강주 전역은 ‘실패’가 아니라 충분한 전략적 이익을 거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은 충분히 해볼 수 있었다.

원정군은 그 가정을 시험해보기 위해 신의 사절에게 ‘강주’로 다시 진격할 수도 있는 입장인데 너무 무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꺼냈다.

당연히 상대가 힌디아의 반란으로 철퇴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임경문은 코웃음을 쳤다.

원정군은 이런 상대의 자신감을 보고 자신들의 추측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그렇다고 하면 그들이 취할 전략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대를 기만하면서 기존의 계획을 강행하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한 수였다.

원정군 사령관 네이선 원수는 상대를 기만할 목적으로 ‘강화 협상’ 이야기에 대해 조건만 수정하면 한 번 들어는 보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임경문은 이 협상 내용을 가지고 승도에게 돌아갔다.

승도는 그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허세가 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 상대가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부분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교에서 약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 외교 전략의 기본이라 해도 자신들의 패가 좋지 않을 때는 협상이 파토가 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타결이 가능한 수준’의 이야기를 제시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조건을 제시했다.

그 말은 상대가 여전히 ‘승산’을 놓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힌디아의 반란으로 병력을 분산해야 하는 원정군이 강주로 재진공하여 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는가?’

승도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대하 이남을 친다면 이익을 볼 수 있을까.

그건 더더욱 무리였다. 대하 이남은 제국의 핵심 수상 교통로이자 제국의 곡창이었다. 그곳에는 단련과 상승군을 합쳐 자그마치 7만이 넘는 대군이 진주해 있었고, 대하 함대도 있었다.

거기다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전개되어 있는 다른 지구의 병력도 지원받을 수 있어 원정군으로서는 가장 승산이 없는 지역이었다.

승도가 ‘가장 아프다’고 생각하고 방어력을 집중시켰었기에 이곳을 치는 것은 원정군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왕국이 정보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들도 아편 상인들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입수하고 있을 터. 그곳을 쳐서 이긴다고 쉽게 생각하진 못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저들이 승산을 점칠 만한 곳은 역시 강주란 말인데, 원정군 병력을 쪼갠 상태에서 승리를 장담하는 것은 무리였다.

‘저들은 강주나 여타 강남 지역이 아닌 다른 곳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제국 군사력의 태반이 집중된 강남에서 전력을 차출할 원정군이 승산을 점칠 만한 곳은 없었다.

저들이 저토록 자신감을 가지려면 강남 이외의 곳에서 제국에 결정타를 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 급소가 제국에 더 있던가.

승도는 후보를 하나씩 생각해 보았다.

먼저,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성경이 있었다. 성경은 북경의 동쪽에 위치한 대도시로 왕조의 발상지였다. 이곳의 종묘와 사직을 손에 넣는다면 제국 정부를 상대로 겁박을 시도할 만했다.

하지만 이미 제국의 실권이 승도의 손에 넘어간 것을 아는 왕국으로서는 이 패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북경이 있었다. 제국의 수도이자 대운하의 종착점인 이 도시는 정치적으로 오승도 정권의 중심에 해당되었다.

이곳은 유목민족과 정주민족을 아우르는 대제국의 ‘심장’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점령하는 즉시 제국을 지배하는 권력에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적당한 황족을 잡아다 옥좌에 앉히면 제국을 내전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다. 여러 모로 제국을 흔들기에 유용한 팻감이 북경이었다.

물론 그 충격으로 오승도 정권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 도시를 상당 기간 점유하면 승도도 불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 도시는 꽤나 매력이 있었다.

세 번째는 유구였다.

유구는 동방 무역의 핵심이자 이번 전쟁의 도화선이 된 땅이었다. 사실상 승도의 세력권에 편입된 이 나라를 장악하고 장기적으로 전쟁을 끌고 간다면 신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라고 하면 왕국이 그런 장기전을 감내할 수준의 국고가 있느냐다.

‘생각해보면 다른 곳을 노릴 가능성은 결국 북경과 유구인데. 전자는 단기전을 목표할 때 공격해볼 만한 표적이고, 후자는 장기전을 생각할 때 시도할 만한 표적이다. 하지만 원정군 전력이 힌디아의 반란으로 대폭 축소된 상태에서 북경 공략을 시도하기엔 무리수가 많을 텐데.’

승도는 그 생각을 하니 쉽게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의문을 풀지 못하고 밤새 고민을 이어갔다.

***

아문에 주둔해 있던 크리그 원수는 네이선 원수의 전문을 받아보고 무릎을 쳤다. 적이 강주에 시선이 묶여 있다면 이제 그들이 할 일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북상해서 위해를 점령하고 적의 북양 함대를 제거하는 것.

그렇게만 하면 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은 식은 수프 핥기였다.

원수는 적색 함대 사령관인 그리섬 제독에게 2단계 작전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막강한 장갑함 세력과 이를 지원할 대량의 상선을 이끌고 북상하여 위해를 단숨에 확보하고 후속하는 육군의 작전을 지원하는 것이 그에게 내려진 임무였다.

그리섬은 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함대의 보급 담당 장교들을 불러 위해로의 항해에 필요한 석탄을 산출해 장갑함에 실어둘 것을 명령했다. 나머지 여분의 석탄은 모두 상선에 싣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태풍과 함께 북상을 하는 과정에서 원정군은 몇 척의 석탄 보급선을 잃었다. 그 바람에 원정군은 최초에 양륙해야 하는 양보다 훨씬 적은 양의 석탄을 아문과 왕국 섬에 비축한 상태였다.

이 부족분은 2단계 작전 돌입이 늦추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작전이 앞당겨지면서 문제가 되었다.

병참 장교들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지연을 가져올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석탄이 조금만 부족해도 작전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급이 일시적으로 불가능한 지역으로 올라가는 것이니 예측된 수요량은 가능한 한 모두 채우고 가야 했다.

그렇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말 그대로 요행을 바라는 도박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병참 장교들은 이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았다.

그들은 프리깃을 마중 보내 상선을 견인해보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그런 얕은 수를 써봐야 석탄 약간을 한 시간 더 빨리 받아보는 이상의 이익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병참 장교 레이필드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산책을 하며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던 그의 눈에 띈 것이 하나 있었다.

‘아문 철도?’

신의 군대가 의도적으로 훼손시키고 철수한 물건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잠시 생각하다 ‘아문 광산’에 생각이 미쳤다. 아문 반도 북쪽에는 여러 개의 광산이 있었다. 그 중에는 탄광도 여럿 있었다.

이 광산들은 신과 연합왕국이 우호적이던 시절에 아문의 저탄소로 석탄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고 못 할 것은 없었다. 석탄은 분명 운반하기에 지나치게 부피가 큰 물건이었지만, 부족분을 채우는 정도라면 어떻게 해볼 만했다.

레이필드는 이 아이디어를 동료 장교들에게 제안했다.

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괜찮은 생각’이라고 동의했다. 병참 장교들은 상부에 석탄 부족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 보고를 받은 해군 지휘부는 ‘그 해결책’을 즉시 사용하라고 말했다.

문제 해결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은 레이필드는 해군 수병 오천 명과 병참 부서에 종사하는 병사 이천 명, 그리고 수천 필의 우마를 동원하여 탄광에서 석탄을 가지고 온다는 구상을 실천에 옮겼다.

그 구상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왕국은 상선 네 척의 침몰로 천 톤이 넘는 석탄의 부족분을 감수해야 했는데, 레이필드의 조처 덕분에 추가 석탄 보급을 기다리지 않고 보충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 작업을 더 쉽게 해준 것은 아문 탄광의 석탄이 이미 채취된 상태로 광산 주변의 저장고에 들어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레이필드는 이 석탄을 가져다 해군의 부족분을 채움으로써 자칫 지연될 수도 있었던 작전을 제때 이루어지는 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 ‘놀라운 구상’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승도의 눈에 들어갔다.

“연합왕국 해군이 우리 탄광에서 석탄을 캔다고 했습니까?”

승도는 아문 반도 북쪽으로 정찰을 나간 아군 척후의 보고에 차를 도로 뱉어내며 물었다. 그것은 생각지도 않은 정보였기에 그는 적지 않게 놀랐다.

“예, 전하.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양적 놈들이 석탄을 캐고 있다. 우리 탄광에서?”

그는 그것이 하나의 중요한 단서라는 것을 직감했다. 석탄은 중요한 군수물자였다. 적의 핵심 전력 중 하나인 기범선과 장갑함들을 움직이게 하는.

그것이 없으면 적 해군은 움직일 수 없었다.

적이 의도적으로 이쪽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술수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예감은 적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경고했다. 강주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공격할 가능성이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생각해보면 힌디아의 반란을 조기에 진압했을 수 있었다. 쉽게 생각하긴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왕국은 지금까지 수백 년간 광대한 식민 제국을 무리 없이 경영해온 나라였다.

그런 그들이라면 피지배층을 다루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외부에서는 심각하게 보는 사안도 가볍게 다룰 재주가 있을지도 몰랐다.

승도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기로 했다. 지나치게 자신을 가지고 ‘위험한 가능성’을 배제한 결과 한차례 죽을 고비를 맛보았다. 그 경험이 그를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들었다.

적이 반란을 진압했다면 원정군은 배후를 걱정하지 않고 대군을 북상시킬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크나큰 위협이었다.

‘적이 다른 목표를 공격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방어 전력을 준비해야 한다. 적이 지금부터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상승군은 최대 3개 여단까지 북경에 집결 가능하다. 거기에 단련을 비롯한 전력을 소집한다면 얼추 머릿수는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전력이 너무 열세다.’

승도는 원정군이 전력을 동원한다는 가정 하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결과는 참패였다. 현재 준비된 전력으로는 신의 승산이 없었다.

‘하면 패를 조금 바꿔야 한다. 전력을 좀 더 보충할 필요가 있다. 연합왕국이 오기 전에 북경으로 증원 가능한 군대가. 일단 려가 있나.’

승도는 려를 떠올렸다. 려는 승도와 혈연 동맹을 맺은 우방으로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나라였다.

정치적으로도 동영 문제 등을 통해 ‘빚’을 지워둔 만큼 협력을 요구한다면 기꺼이 한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도움을 준다면 확실히 기대를 걸 만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들 군대가 제시간에 북경에 도착할 수 있느냐. 그 부분이었다.

승도는 곰곰이 생각해보다 그다지 고민할 것이 없는 부분이란 것을 알았다. 려에는 승도가 동영에서 빼앗아 넘겨준 상선이 있었다. 명목상 려의 것이지만 행상이 위탁 관리해주는 배들이다.

이 배들에 려의 병사들을 태워 선진으로 싣고 온다면 북경 방어에 한 팔 거들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왕국이 아무리 강력한 기동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중간 기착지도 확보하지 않고 북경을 직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승도는 상대가 보인 승산에 대항할 수를 고민해 내기가 무섭게 붓을 들었다.

그가 편지를 쓸 사람은 모두 세 사람이었다.

북경에서 행상 업무를 관장하는 그의 장인 반진유가 첫 번째였다. 그에게 서신을 써서 려의 병력 수송을 지원하게 해야 했다.

두 번째 사람은 려의 집정 대신. 사적으로 혈연 동맹을 맺은 그에게 려의 핵심 전력을 파병해 달라고 요구해야 했다.

세 번째 사람은 북경에 남아 있는 건문이다. 그에게 원정군의 북경 진공 가능성을 알리고 방어 준비를 서두르게 해야 했다.

승도는 이 세 사내에게 동방의 운명을 결판 지을 서신을 써서 보냈다. 이 서신은 연합왕국이 세운 ‘대담한 북경 진공 전략’에 대한 그 나름의 카운터이자 제국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수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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