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398화 (398/425)

제398화. 진퇴유곡 (3)

적색 함대는 월해를 타격한 후 해안선에서 먼 원양으로 빠져나간 다음 북상을 재개했다. 이 소식은 대하 하류에 있던 흠차대신 양국번의 귀에 들어갔다.

“양이들이 월해를 공격했다고?”

“예, 대인. 양적들의 함대가 월해에 나타나 포격을 퍼붓고 병사들을 하선시켜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도처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도시를 불살랐다 하는데, 그 불길이 백 리 밖에서도 보일 만큼 피해가 컸다 합니다.”

양국번은 수염을 쓸었다. 대하 하류의 전구를 책임진 그로서는 이 이야기를 간단히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월해는 대하 하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양적들이 이곳을 공격했다는 것은 대하 하류를 치기 위해 ‘신의 방어력’을 시험해본 것일 공산이 농후했다.

“하면 그자들이 이곳 대하 하류를 노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강주 왕 전하께서도 양적들이 대하 하류를 노릴 가능성을 언급하셨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건방진 양적 놈들.”

양국번은 적이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저들에게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이곳 대하 하류가 얼마나 강력하게 방어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축선에 준비된 군사력은 오만. 즉시 대응이 가능한 위치에 이만이 더 있었고, 흠차의 이름으로 소집령을 내리면 수만 명을 더 모을 수 있었다. 양적들이 이곳을 공략하려면 엄청난 피를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일단 대응을 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막료가 의견을 내자 양국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야겠지. 대하 하류를 지원할 수 있는 위치로 병력을 증강해야 할 것 같네. 양적들이 대하 하류로 온다면 강북에서 병력을 불러오긴 어려울 테니 미리 손을 써야 할 터. 그렇지 않겠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면 대하 건너에 있는 여단 둘을 대하 이남으로 불러들이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대인.”

막료가 손을 모아 예를 표시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양국번은 양적들의 공세를 반드시 저지해 ‘전후의 조정’에서 입지를 다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흠차의 명령은 곧 강북으로 전달되었다. 대하 이북에 주둔하고 있던 상승군 제17여단과 19여단은 명령을 받기가 무섭게 주둔지를 정리했다.

그들은 유사시 대하 하류를 지원하라는 승도의 지시를 받고 있었기에 흠차의 명령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꼬박 하루를 투자하여 대하 건너편으로 병력과 물자를 전부 옮겼다.

이 이동 작전을 지원한 대하 함대는 적의 예상되는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강의 중류로 함정들을 물렸다. 강안에 남아 있던 선박들 역시 작전을 마치기가 무섭게 함대를 따라 철퇴했다.

양국번의 조처는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져 대하 하류에 대한 방어는 철저하다 못해 ‘끔찍한’ 수준으로 준비되었다. 원정군이 상륙만 한다면 말 그대로 숫자의 폭력을 보여줄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조처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지나치게 대하 하류의 방어에 주안점을 두고 대응한 나머지, 대하 이북으로 적이 움직일 때 대비하기 어렵게 전력을 재배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는 왕국의 의도를 완전히 오판한 ‘실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를 두고 양국번을 멍청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양국번은 강주 방면에 대한 정보를 매우 느리게 받아보고 있었기에 상대의 의도에 대한 퍼즐 조각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했다. 그는 불충분한 조각을 가지고 새롭게 발생한 ‘상황’까지 보고 판단을 내려야 했기에 오판을 내릴 여지가 많았다.

일류의 전략가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뒤늦게 승도가 보낸 사자가 대하 이북에 주둔해 있었을 상승군 제17, 19여단에 북경으로의 이동 명령을 내리러 왔을 때 그들은 이미 강남으로 전환 배치된 상태였다.

사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맙소사, 이렇게 되면 전하의 계획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는 언제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상대를 간발의 차이로 쓰러트려 온 승도의 방식에 익숙했다.

그랬기에 이 변수가 강주 왕의 전략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하 이북에서 이동해야 했을 부대들을 강남에서 출발시키게 되면 최소 사흘의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오차는 강주 왕이 생각한 것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낼 여지가 있었다.

‘일단 강남으로 간다. 내가 할 일은 최대한 빨리 전하께서 명하신 부대들을 북경으로 보내는 것뿐이다.’

사자는 자신이 다급하게 움직일 시간이란 것을 깨닫고 말을 몰아갔다. 이것은 왕국과 승도가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변수였다.

적색 함대가 북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문으로 한 척의 배가 들어왔다. 배의 마스트에는 동방 무역 회사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회사령 군대가 신과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된 탓에 동방 회사의 선박이 신까지 올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해군 장교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부두로 나아갔다. 일단 회사의 배가 한 척만 온 것으로 보아 회사 쪽에서 원정군에 긴히 전할 말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들이 느긋하게 나루로 내려오고 있는데 배가 채 묶이기도 전에 한 사내가 배 옆에 걸린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그는 급히 나루를 가로질러 달려오다 해군 장교들을 발견했다.

“지금 원정군 사령관 각하를 뵈러 가야 합니다. 원수 각하께서는 현재 어디에 계십니까.”

“네이선 원수 각하라면 금포에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이선 원수는 협상 문제로 금포에 머물고 있었다. 순전히 신을 기만할 목적으로 협상을 이어가려고 머무는 것으로 다른 이유는 없었다.

원수의 행방에 대해 알게 된 사내는 해군 장교들에게 금포강의 해도를 요구했다. 그가 금포로 급히 가려는 이유가 궁금해진 장교들이 잠시 이유를 짤막하게 물었다.

서두른다고 해봐야 몇 분의 차이가 고작이었던 탓에 사내는 어렵지 않게 입을 열었다.

“힌디아에서 대규모 무장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힌디아 부왕과 총독 각하로부터 반란 진압에 필요한 병력을 원정군에 요청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사정이 다급하여 상세한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차후 원정군 지휘부를 통해 들으시기 바랍니다.”

해군 장교들은 그 충격적인 이야기에 입을 딱 벌리다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이 그리 급한 것을 알았는데 발을 잡을 수야 없는 일이다.

회사의 감독관을 태운 배가 다시 돛을 펴고 금포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나서야 해군 장교들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들은 조금 전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힌디아에서 진압하지 못할 규모의 반란이라니. 그곳에는 회사령 군대가 있지 않나.”

“아니면 루시가 개입이라도 한 것인가.”

장교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루시가 개입하지 않고는 힌디아에서 진압하지 못할 반란이 일어나기 어려웠다. 그럴 만한 개연성도 있었다.

힌디아 북쪽 국경 너머에는 수만의 루시 대군이 진주해 있다. 그 빌어먹을 곰들이 개입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큰일이 아닌가. 힌디아는 우리 왕국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그럼 철군인가. 하지만 이미 적색 함대는 위해로 출발해버린 상황일 텐데. 이 상황에서 작전을 중지한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가.”

해군 장교들은 일이 아주 고약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차라리 적색 함대가 출발하지 않았다면 철군을 결심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병력을 쪼갠 상태로 신을 굴복시키기 어렵다는 것 정도는 원정군 수뇌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함대가 출발해 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장갑함들이 ‘편도 티켓’을 끊고 올라가버린 상황에서 후속 부대를 투입하지 않으면 홀로 북상해버린 장갑함들은 그 자리에서 고사당할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싣고 간 석탄이라고 해봐야 선진으로 디딤돌 딛기를 할 분량이 고작이다. 그러니 후속 병력을 보내는 것은 필연이었다. 왕국 해군의 핵심 전력을 전멸시키지 않으려면 도박을 해야 했다.

“불가능하겠지. 적색 함대를 뺀 왕립 해군이 존재할 수나 있던가.”

그들은 지금까지 ‘최소한’ 유리한 입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고 믿었던 확신이 완전히 깨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는 쪽은 신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었다. 한 번 삐끗하면 왕국의 존망이 위협받을 판이었다.

장교들은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보다 머리가 더 복잡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을 네이선 원수였다.

그는 이제 두 가지를 저울에 올려놓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힌디아의 반란 진압을 우선시하면 적색 함대가 고립되고, 적색 함대를 위해 전력을 돌리면 힌디아의 반란이 제어 불가능한 수준까지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승도가 줄곧 해왔던 ‘위험한 주사위 던지기’를 왕국이 던질 차례가 된 것이다.

***

원정군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있을 무렵, 승도는 강주 방면에 대한 적의 추가적인 공세 가능성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가 확신을 가진 근거는 금포로 들어온 다수의 상선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수륙 병진 작전을 재개하려 한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건 무리였다. 철제 난간을 넘지 못하고 강상 전단이 몰살한 것을 본 원정군이 군함보다 약한 상선들을 동원해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배를 모았다는 것은 역시 수송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저들이 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할 것이라는 것인데, 역시 대하 하류를 공격할 가능성은 낮았다. 승도 본인이 원정군 사령관의 입장이라면 그곳을 공격할 바에 다른 전장을 고르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곳은 역시 당초 공격을 예상했던 북경밖에 없었다.

손바닥만 한 유구를 치려고 생각했다면 저토록 많은 상선을 금포로 불러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건 시간 낭비, 물자 낭비, 인력 낭비였다. 전쟁을 오래 끌 수 없는 원정군이 그런 헛짓거리를 할 여유 따윈 없었다.

‘결국 놈들이 노리는 것이 북경이라. 꽤 불안하지만 이미 대응의 포석은 두었다. 패만 놓고 본다면 이쪽이 밀릴 이유는 별로 없다. 서전만 이긴다면 승부는 쉽게 가져올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

가장 중요한 전장이 될 북경 전역을 지휘할 사령관이었다. 북경에는 그를 대신할 건문, 반진유, 오유도 세 사람이 있었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왕국의 유능한 장교단을 상대하기에 벅찬 인물들이었다.

모사로서는 도움이 되어도 전략에는 아직 미덥지 않은 건문과 상인으로서 경륜이 풍부한 장인과 아버지에게 군권을 위임하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그들을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것과 능력을 신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일국의 수반으로서 승도는 그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럼 누가 가야 하나. 신대륙 지휘관들을 보내야 하나?’

이번 전쟁에서 괜찮은 역량을 보인 유진을 위시한 신대륙 장교단이라면 믿어볼 만했다. 로망스 장교들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지휘한다면 어느 정도의 방어는 기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역량으로 승산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부분이었다.

더 걸리는 부분은 이들이 콧대 높은 북경의 지역 유지들을 다루고 얼러 방어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이었다. 이는 외국인인 그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요소였다.

그렇다면 흠차대신 임경문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한배에 탄 인물이 아니었다. 누란지세의 위기에서 함께 손을 잡고 있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황실에 충성하는 관료였다. 그런 그에게 북경의 군권을 맡겼다가 전후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문제가 되는 부분이었다. 역시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가야 하는 거군.’

그가 아니고는 이 모든 단점을 극복할 인재가 없었다. 오직 그만이 북경에서 모든 역량을 뽑아내 방어에 투사할 수 있었고,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었다.

전후의 정치적 안배를 고려해도 가장 중요한 북경의 공을 타인에게 양보하는 것은 정권의 안정에 좋지 않았다.

승도는 셈을 마치고 턱을 문질렀다. 그렇다면 그를 대신해 강주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흠차대신 임경문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강주는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아 이곳을 맡긴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일군의 지휘관으로서 임경문은 꽤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수하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여 독단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기에 ‘모험’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강주를 맡김에 있어 이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더욱이 그는 오랜 시간 강주에 재임하며 이곳 지리에 밝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임 대인이라면 잘 해내줄 것이다.’

승도는 이 부분에서는 별 고민을 하지 않았다.

이튿날 승도는 강주의 지휘관들을 모아 어젯밤에 고민한 사항들을 통보하였다. 그들은 승도가 북경으로 달려가 방어하겠다는 말에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전공에 목이 마른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최고 지휘관과 함께 가고 싶다고 나섰다.

승도는 그들 중 몇몇을 골라 수행원으로 골랐다. 신대륙 출신의 장성인 유진과 이번 강주 전역에서 제1여단을 지휘해 공적을 세운 로망스 출신의 로이 등 쟁쟁한 지휘관들이 그 진용에 포함되었다.

물론 이름이 높은 지휘관들을 모두 거느리고 가지는 않았다. 강주를 지킬 장교단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승도는 꼭 필요하다 싶은 만큼의 인재들만 골라낸 다음, 나머지는 강주에 남아 임경문을 보필하라는 뜻을 보였다.

늙은 흠차대신은 자신에게 강주를 맡긴 승도의 뜻에 사의를 표하며 양적으로부터 그의 고향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승도는 늙은 관료와 악수를 나누며 그에게 기대를 걸겠다고 말했다.

지휘관들과 인사를 마친 승도는 행상에서 준비한 질 좋은 전마에 탔다. 그는 느린 마차 대신 말을 타고 대륙을 단시간에 가로지를 생각이었다.

보통의 권력자들이라면 이런 피곤한 여행을 감수하려 들지 않았겠지만, 그는 전생의 평생을 전장을 떠돌며 보낸 사내였다. 이 정도의 괴로움은 능히 견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젊음까지 있으니 못 할 것이 없었다.

승도와 수행원들은 그대로 말을 타고 강주를 출발했다. 그의 호위는 이곳까지 경호를 맡았던 상승군 기마 보병 대대가 맡았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도상에 강주 왕에 대한 ‘불만 세력’이 득실거리고 있어 이 정도의 호위는 필수적이었다.

불만을 품은 지역 유지들 중에는 천 단위의 사람도 동원할 수 있는 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륙을 종단하는 여정에서 숙식의 불편을 느낄 가능성은 없었다. 숙소가 되어 줄 역참이 대륙 전역에 꼼꼼하게 정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신속,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통치가 잘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승도는 부정부패로 유명무실해졌던 역참을 말끔하게 뜯어고쳤다.

그 정비는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져 대륙을 오가는 관원들에게 충분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구실을 다하고 있었다.

이 역참이 없었다면 승도 본인도 말을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달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승도는 관도를 따라 말을 달려가며 자신이 그간 이룬 것이 꽤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달리는 이 관도, 관도를 따라 설치된 역참, 이것들을 지원하는 국가의 튼튼한 재정, 그 재정을 유지 지탱시켜 주는 제도, 그 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 관료 사회의 기강. 그가 한 일들 하나하나의 의미도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인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그 업적이 모여 세계 최강의 열강, 연합왕국과 전쟁을 벌일 기본적인 요건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덩치만 크고 부패했던 과거의 신이라면 감히 그런 전쟁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삶에서 하지 못한 국가의 발전을 이룩했으니 자부심을 가질 일인가.’

승도는 쓰게 웃었다. 전생의 자신은 세계적인 열강의 힘을 가졌던 로망스를 가지고 전쟁만 벌였다.

개혁도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전쟁을 위한 것이었다. 그 기나긴 전쟁에서 로망스는 백만이 넘는 인구를 잃었다.

신에 비하면 한 줌의 인구를 가진 로망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희생이었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로망스는 ‘그럴듯한 허울’만 보였을 뿐 나라 자체를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영광의 그늘에서 치른 희생은 그 잠깐의 영예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현생의 통치는 달랐다. 그는 신이란 나라의 내실을 놀랍도록 다졌다. 전쟁을 하기는 했지만 모두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치른 방어적 목적의 싸움이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신의 국력은 몇 배로 커졌다. 과거에는 왕국이 날린 잽만 맞고도 쓰러졌을 나라가 그 펀치를 수십 번이나 두드려 맞고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그리고 앞으론 맞을 일도 없겠지.’

승도는 말을 몰아가며 자신이 새롭게 구축한 제국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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