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9화. 진퇴유곡 (4)
동방 원정군의 수뇌부는 힌디아의 반란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네이선 원수는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자신들이 굉장히 불리한 입장에 처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는 신과 ‘강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태로운 입장이란 것을 깨달았지만, 강화 협상은 이미 물 건너간 다음이었다.
기만전의 일환으로 ‘대화’를 질질 끈 데에 대해 신의 사절이 불만을 토로하며 협상의 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판에 구걸이라도 하듯 제의를 넣었다간 왕국의 국익이 형편없이 손상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협상이 어렵다면 남은 것은 전쟁의 강행이었지만 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국의 보석 힌디아가 날아가면 수많은 식민지들이 연달아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왕국은 기나긴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철수는 불가피하다. 빠르든 늦든 힌디아를 잃고 대국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세계를 경영하며 무수한 민족과 국가를 지배하는 ‘연합왕국’으로서는 이 반란을 결단코 저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면 소수로서 다수를 지배하는 왕국이 큰 부담을 짊어지기 때문이다. 가능한 문제는 지금 매듭지어야 했다.
‘하지만 철수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네이선은 자신들이 처한 입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미 적색 함대는 적지 깊숙한 곳까지 북상해버린 상태였다. 한 번 항해할 석탄만 싣고 올라간 그들은 아문까지 되돌아올 연료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석탄을 보내기 위해 선단을 보내면 힌디아로 보병을 실어갈 상선을 동원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되면 죽도 밥도 되지 않았다. 적시에 보병을 보내지 못하고 함대의 철수까지 기다리면 신과의 전쟁은 전쟁대로 망치고, 반란 진압도 즉시 철수에 비해 이점을 누릴 수 없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함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고민할 것 없이 철수를 결심했을 텐데.’
하지만 엎질러진 물로, 이미 벌어진 일을 놓고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전장에는 이런 격언이 있었다.
‘포성을 들었을 때는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라.’
이 격언은 상황이 닥쳤을 때 일을 돌이키려 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임을 일러주고 있었다.
전쟁의 강행도, 철수도, 강화도 안 되는 고약한 상황에서 무엇을 고르는 것이 최선이겠는가?
원수는 자신의 입만 바라보는 장성들을 보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왕국의 운명이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그는 말을 하려다 입술을 앙다물었다. 일이 일이다 보니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원수는 고민 끝에 원정군 지휘관들을 불러 ‘작전의 강행’ 방침을 밝혔다.
“작전을 강행합시다.”
“각하, 작전을 강행한다면 힌디아 문제를 방기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공격적인 성향의 오스틴 중장조차 그 말에 적잖게 놀랐다. 힌디아가 차지하는 정치적 중요성을 생각하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한시적으로 방기하잔 거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식민지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렇다고 병력을 철수시킬 수도 없는 일 아니요?”
적색 함대의 철수가 가능했다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일단 철퇴를 결행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전쟁을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현실 속에 원수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원정군 지상군을 돌리면 힌디아 문제는 수습 가능하지만 적색 함대가 결딴이 나고 만다.
그것은 연합왕국이 감내할 수 있는 손실이 아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그렇다면 각하의 방침은 조기에 강화를 이끌어낼 성과를 거두고 철수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리츠 대장이 확인하듯 물었다. 왕국의 사정이 다급하니 전쟁이 오래갈 이유가 없었다.
“그리 보셔도 될 거요.”
원정군 지휘관들은 회의 끝에 북경을 단시간에 공략하고 강화 교섭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전략을 수정했다. 전쟁 이전에 계획했던 신의 굴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무리를 해가며 북경을 공격하는 만큼 ‘최소한의 실리’는 조건에 명시하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방침에 따라 작전은 크게 두 부분이 수정되었다.
기존 계획에서는 병력을 위해로 실어 나르기 전에 물자를 미리 비축하는 과정을 수반해야 했다. 그를 위해 연합왕국은 적에게 수륙 병진의 위협을 한 번 더 가하고자 상선들을 금포에 집결시켰다.
계획이 수정되지 않았다면 이 위협 기간 동안 위해로 보다 많은 물자를 비축했을 것이다.
이는 작전 기간을 다소 여유롭게 잡고 그 기간을 지탱할 만큼의 병참을 제공하는데 목적을 둔 준비였다.
하지만 새 계획에서 이 부분이 달라졌다. 원정군은 물자 비축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후속 부대를 위해로 출발시키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렇게 하면 위해가 중간 전진 기지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다할 수 없게 되어 원정군의 작전 지속 역량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자가 충분히 비축되지 않는 만큼 장시간 보급품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물론 해상에 떠서 계속 도착하는 선단이 있기에 식수와 식량이 동이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부피가 큰 대포와 건초의 부족 문제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선진에 상륙해서 일주일 안에 전투의 승패를 보지 않으면 마필이 아사하고 탄약이 떨어지는 위험을 맞을 공산이 컸다.
그럼에도 원정군은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다급한 처지였다. 세계 최고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난감한 처지에서 도박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원정군은 위해에 잠시 머무르며 신의 내정에 약간의 공작을 가해 전세를 좀 더 유리하게 가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것도 수정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 공작이란 것이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경 진공 이전에 아편 상인들을 통해 북경 일대에 유언비어를 퍼트려 ‘공포 전략’을 구사하려 했다.
이 수법이 먹혔다면 방어자의 역량을 크게 떨어트렸을 테지만, 이 역시 시간문제로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승도와의 수 싸움에서 이길 패를 준비했던 원정군이지만, 예기치 않은 거대한 돌발 변수에 자신들의 패를 던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원정군이 작전 변경으로 갖게 된 장점이 없진 않았다. 인간사가 그렇듯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신의 방어 병력을 훨씬 더 적게 상대한다는 부분을 들 수 있었다. 이 점은 단기전을 치러야 하는 원정군의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장점이었다.
네이선 원수와 프리츠 대장도 이 이점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짚었다. 일이 잘 풀린다면 적이 여유 병력 일개 대대도 동원할 시간을 주지 않고 북경을 직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생각했다.
두 번째로 위해를 일회용 작전 기지로 사용함으로써 이곳의 유지에 돌려야 할 병력까지 전투에 투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한 번의 싸움으로 적을 쓰러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분명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병력의 집중은 전장에서 전략가들이 가장 얻고 싶어 하는 장점이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원정군 장성들은 이 이점에 의해 최소 한 개 연대 이상의 병력을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을 높게 보았다.
병력이 아슬아슬하게 부족할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연대 하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소모전으로 전체 병력 규모가 줄어든 원정군에게는 괜찮은 이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계획한 것처럼 만만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의 계획처럼 아슬아슬하게 위해에 도착해 병력을 추스르고 바로 선진을 직격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않은 지연’이 생길 경우 파국은 피하기 어려웠다.
외줄타기 속에 모든 요소를 빡빡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기존 계획에서 그 좋은 이점들을 무시하면서 작전 기간을 여유롭게 짰던 것도 결국은 이 지연 부분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원정군 수뇌부도 이 같은 부분을 모르지 않았지만 최대한 빠르게 작전을 밀고 나갈 필요가 있었던 만큼 이 위험은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원정군 지휘부는 이 같은 결정 사항을 회사 감독관에게 통보했다. 감독관은 원정군이 전쟁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이 나름의 고초를 털어놓으며 ‘최대한 빠른 조기 철수 계획’을 밝히자 일단 납득하는 태도를 보였다.
원정군의 전 병력이 회군만 할 수 있다면 식민지 반란 진압은 늦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그 약속을 믿기로 하고 원수의 서한을 품에 넣고 배에 올랐다.
***
승도와 원정군 양쪽이 상대의 허를 찌르는 한 수를 놓기 위해 고심할 즈음, 푸른 바다 위로 한 척의 거대한 범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배의 이름은 운월.
유구에 주둔한 신의 통상 파괴 전단의 일원으로 남방 수역을 주기적으로 공격하는 대형 프리깃이었다.
원래 신은 연합왕국의 해군력을 분산시킬 목적에서 유구에 주둔한 대형 프리깃들을 3척 단위로 출격시키곤 했다. 이 배들은 단함 단위로 분산하여 신과 남방 식민 제국을 오가는 상선들을 습격했는데, 왕국은 이 위협에 대항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적지 않은 함정을 금포강에서 잃은 데다 전장이 위해까지 확장되면서 해군이 커버해야 할 수역이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침공 초기에는 거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왕국 상선들이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빈번하게 대형 프리깃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지난 한 주간에만 두 척의 상선이 나포를 당했는데, 작은 손실 같아도 무시할 수 없는 피해였다.
이렇게 전과가 점점 커지자 신은 이 해역에 대한 작전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운월만 해도 휴식을 취할 순서였지만, 전과가 극대화되는 시점이라고 판단한 유구 주둔 해군 사령관이 출동을 명령했기에 바다로 나온 참이었다.
물론 왕국도 이 점증하는 위협에 손을 놓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전열에서 쪼개기 아까운 전열함 6척을 차출해 남방 수역에 투입했다.
이들 함정은 2척 단위로 작전에 나서 대형 프리깃으로부터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벌였다.
대형 프리깃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지만, 실제 이들이 신의 통상 파괴 전단을 격파할 가능성은 없었다. 대형 프리깃에 비해 지나치게 느렸기 때문이다.
망원경을 들고 수평선을 훑던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요 며칠 단독 항해를 하는 상선을 찾지 못하고 있었기에 절로 목이 탔다. 왕국의 상선을 하나 나포할 때마다 떨어지는 포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오늘도 허탕인가.’
함장 아르님은 고개를 저으며 망원경을 내렸다.
연합왕국 상선들은 하루에 서른 척 이상 남방 수역을 오가고 있었다. 그 항해 밀도를 생각하면 지금은 재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바다는 넓고 배는 그에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언제나 상선을 만날 수야 없는 일이었다.
그때 수평선 저쪽에 얼핏 마스트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본 아르님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적함이다! 돛을 펼쳐라!”
우렁찬 함장의 목소리에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은 ‘적함’이라는 말에서 상대가 전열함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재빠르게 달아나기 위해 돛을 당겼다.
대형 프리깃은 기본적으로 전열함과 대등한 체급을 갖고 있었다. 크기만 놓고 보면 꿀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양자의 진정한 역량 차이는 탑재한 대포 문수에 있었다. 전열함과 대형 프리깃이 격돌했다간 2배의 화력 차이에 박살이 나게 마련이었다.
통상 파괴 업무에 종사하는 대형 프리깃으로써는 그들과 싸울 이유도,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다.
대형 프리깃이 돛을 활짝 펴자 멀리서 전열함이 포성을 울렸다. 나름 운을 노리고 쏜 포탄인 듯싶었다.
재수가 좋으면 배에 타격을 주어 도주를 막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쏘는 포탄이었다.
아르님은 이런 포격도 은근히 무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과거 ‘말도 안 되는’ 행운의 포격을 두 눈으로 구경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아르님은 로망스와 왕국 해군의 ‘합동 해적 토벌대’에 소속되어 해적 진압에 나섰는데, 거기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해군의 접근을 눈치채고 엄청난 거리를 두고 달아나는 해적선을 향해 왕국 군함이 포격을 가했는데, 명중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포격의 최대 유효 사거리가 2킬로미터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3킬로미터 밖에서 나온 명중탄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전장에서는 종종 이런 ‘행운’의 변수가 있었기에 상대의 포격을 아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아르님은 선원들에게 좌현으로 방향을 틀 것을 명령했다.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 적이 포격하기 어려운 각도를 골라 달아나기 위해서였다.
경험이 없는 지휘관들은 바람을 이용할 줄 몰랐지만 그는 이 부분에선 프로였다. 부하들이 능숙하게 반응하지 못해 조함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다행히 그 시간 동안 포격은 없었다.
대형 프리깃이 점차 속도를 내며 거리를 벌리자 추격하던 전열함에서 포성이 멎었다. 추격을 포기한 듯 체념한 태도였다.
프리깃에 비하면 토끼와 거북이에 비교할 정도로 느린 전열함의 추격은 에너지 낭비나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추격을 포기한 걸 알았지만 아르님은 일단 함을 계속 앞으로 진행하게 했다. 혹시나 적이 생각을 바꾸어 추격을 해왔는데 돛을 내리고 있다간 운 나쁜 포탄에 맞아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을 기하자면 확실히 상대가 따라오기 어려울 만큼 거리를 벌려두어야 했다.
운월은 나는 듯이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시간여를 나는 듯 달리는 동안 조함을 지휘했던 아르님은 피로를 느끼며 선임 위관에게 조함을 맡기려 했다.
그때 장루원이 외쳤다.
“우현에 왕국 상선 출현입니다.”
그 말에 아르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선임 위관을 밀어내고 함교의 자리를 차지한 채 외쳤다.
“적함을 추격한다. 우현 전타.”
함장의 말에 이어 선임 위관이 외쳤다.
“전원 전투 준비!”
간만에 수당을 챙길 수 있다는 기쁨에 선원들도 신속하게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대형 프리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상선을 향해 다가섰다. 함 자체는 상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지만 구조 자체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덕이었다.
대형 프리깃의 실루엣을 뒤늦게 목격했는지 상선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상선은 다급하게 짐을 내던지며 속도를 높이려 들었다.
특이하게도 상선은 실은 짐이 많지 않았는지 물목을 별로 버리지 않았다. 최소한의 생필품에 해당하는 물과 빵 따위를 버린 모양이었다.
곧, 선수부의 대포 2문이 적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다.
꽝!
첫 포성과 함께 상선의 뒤로 물기둥이 치솟았다.
아르님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포격이 서툴다고 말했다. 사실 포격이 서툰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해상에서 포격 역량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최소 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육지와 달리 흔들리는 해상 위에서 대포를 쏠 때 정확성을 얻으려면 오랜 훈련과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급속으로 길러낸 신의 수병들이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두 발째도, 세 발째도 포탄이 연달아 빗나갔다.
아르님은 그것을 보며 파이프를 질겅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슬슬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바람의 힘을 받지 못한 두 배의 속도가 떨어지면서 포격이 조금 더 정확성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열 번째 포탄이 상선의 뒤에 박혔다. 목재 파편이 튀는 것을 본 아르님이 주먹을 쥐어보였다.
곧 상선에서 백기가 펄럭이자 아르님은 자신의 함을 상선 쪽으로 몰게 했다. 프리깃이 상선의 옆에 접안을 하자 상선 선원들이 자연스레 두 손을 들고 섰다.
아르님은 수병들과 함께 상대 선박으로 건너갔다.
보통 나포를 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상대 선박의 항해 일지와 금고의 접수였다. 이는 함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었기에 관례적으로 행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르님은 수병과 함께 선실로 들어갔다. 선실에는 회백색 가발을 쓴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내는 어딘지 모르게 범상치 않은 인상을 주었다.
아르님은 사내에게 통성명을 하며 신분을 물었다.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신분을 밝히는 것이 관례였기에 사내는 그 예를 따라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왕국 해군성 관리요.”
하지만 아르님은 오랜 경험으로 사내가 해군성 관리가 아니란 것을 알아보았다. 사내가 숨기려 했지만 미처 치우지 못한 위임장에는 동방 무역 회사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상대는 해군성이 아니라 동방 무역 회사의 관리였다.
아르님은 이번 전쟁에 회사가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회사의 관계자가 이 전쟁터에 있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사내는 그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아르님은 그런 상대의 얼굴을 보다 수병들에게 눈짓을 해 그 품을 뒤지게 했다.
무례라면 무례일 수 있었지만 전쟁터에서 때론 필요에 따라 예의가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수병들은 감독관의 품에서 한 장의 서신을 찾아냈다.
서신에는 동방 원정군이 힌디아로 철수할 수 없는 이유와 함께 조기 철수를 위한 군의 작전 개요가 담겨 있었다.
‘이거, 굉장한 걸 건졌군.’
아르님은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사내의 얼굴을 보며 희죽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