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403화 (403/425)

제403화. 북상 (3)

제국의 관문 선진은 조만간 전쟁터가 될 예정이었다. 군관들은 긴장 속에 보트를 타고 항구 내를 정리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기뢰를 준비하란 지시를 받았기에 미리 기뢰를 설치할 장소를 확인하고 그 지역에 있는 배들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거기, 빨리 배를 옮기게.”

군관이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오나 아직 군량을 더 실어야 합니다.”

배에 쌀을 싣고 있던 자들이 대꾸해왔다. 평범한 상인들이라면 전시에 군의 요구에 이렇게 당돌하게 반응하는 것이 불가능했겠지만, 이들의 배에 달린 깃발이 문제였다.

그들은 신의 깃발을 달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국가의 깃발을 달고 전시에 운항할 수 있는 배는 바로 군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상인, 즉 군상을 의미했다.

“군량?”

“예. 서쪽에 있는 육관까지 쌀과 밀을 옮겨야 합니다.”

군관들은 그 말을 듣고 품에 있던 서류를 꺼냈다. 그들은 뭔가를 유심히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옮길 필요가 없으니 빨리 배나 옮기게.”

“하오나 대인, 우리는 계약을 지켜야 합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상인들이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군상은 전쟁의 특수성 때문에 대단한 이익을 보장받았다. 이 군상 일에 행상을 비롯한 모든 상인들이 끼어든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익이 크면 위험도 있는 법이다. 군상 일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기한을 못 지키기만 해도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상인들이 납기 문제에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다. 이는 조정의 뜻이니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상인들은 조정의 뜻이란 말을 듣고 물러났다. 과거의 정부라면 신뢰할 수가 없었기에 뇌물을 주고라도 쌀을 실어 보았겠지만, 현재의 정부는 달랐다. 적어도 한 말은 지키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적재를 포기하고 군관들이 유도한 쪽으로 배를 몰아갔다.

인부들은 쌀 적재가 중단되자 조금 마음을 놓았지만, 곧 유협들이 와서 새로운 일거리를 지시하자 투덜거렸다.

“오늘 일은 이걸로 끝 아니었나.”

“제기.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로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날품팔이들에게 일이 빨리 끝나는 것은 꽤나 문제였다. 일이 빨리 끝나야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잠을 청할 수 있어서다.

유협들은 그런 인부들에게 항구 한편에 쌓인 기뢰들을 가리켰다. 이 기뢰들은 로망스 교수들과 기술자들이 신의 장인들을 동원해 계류식으로 개조한 물건들이었다.

“자, 저것들을 전부 보트에 싣는다. 보트 세 개씩인데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실수로 떨어트려선 안 될 물건이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인부들은 유협들의 지시에 따라 무거운 기뢰를 들것에 올린 채 여럿이서 들었다. 그것들은 관을 짊어지는 것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다행히 계류 기뢰는 그 자체의 무게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다.

계류 지뢰는 기본적으로 장대 기뢰보다 무겁지 않았다. 계류식이 계류식인 이유는 기뢰의 아래에 무거운 밧줄과 돌을 달아 해저에 고정을 시켜두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기뢰를 보트에 실은 다음에는 돌을 옮기는 작업도 진행해야 했다.

“모두 서둘러라.”

군민이 합심하여 작업을 서둘렀다.

이를 지휘하고 있던 클레망소는 작업의 진척 속도가 그리 느리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승도가 북경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왕립 해군의 주력이 몰려온다면 이 정도의 준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기껏해야 시간 벌이가 고작일 것이다.

거기다 북양 함대는 교전에 투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적의 후속 보급을 교란하여 전쟁 지속을 지연시켜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 준비를 진행하려 하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나라도 조국 로망스처럼 왕국의 손에 무너지고 마는 것인가.’

클레망소는 그 생각을 하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보아온 강주 왕 오승도란 거인은 그리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었다. 연합왕국을 상대로 불리한 조건에서도 역전의 승리를 거두어 온 천재였다.

그라면 뭔가 다를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

클레망소는 애써 불안을 떨치며 해도를 펼쳐놓고 작업 지휘에 집중하려 했다. 그때 군관 하나가 급히 그의 옆에 와 보고했다.

“각하, 바다에 상선이 다수 접근하고 있습니다.”

“상선이?”

그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전시나 다름없는 지금 선진 앞바다에 상선이 나타나다니. 필경 제국의 것들이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그런 대규모의 상선이 나타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행상의 것들인가?

그렇지만 행상은 선진이 공격을 당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적이 직격해 올지도 모르는 선진에 상선을 집중시킨다?

이건 상인이 아니라 동네 어린아이도 하지 않을 짓이었다.

클레망소는 조금 어이가 없어져 군관에게 말했다.

“방어 준비에 방해가 되니 상선들의 입항을 금지시키게. 서두르게.”

“알겠습니다, 대인.”

클레망소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상선에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곧 선진의 앞바다로 상선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만으로 속속 상선들이 진입하는 것을 보던 군관 몇이 손을 흔들었다.

“정지! 선진은 곧 전쟁이 벌어질 곳입니다. 누가 이곳으로 배를 보냈소이까.”

그들이 외치자 범선의 갑판 위에서 사람의 얼굴이 불쑥 나왔다.

“반진유 대인이시오.”

그 이름이 나올 줄 미처 몰랐던 군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보가 빠른 행상이 ‘오판’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 대인께서 상황을 모르고 내리신 결정이실 거요. 배를 돌려 동쪽으로 가시오. 여긴 전쟁터가 될 곳이요.”

“그럴 필요 없소이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질 거란 사실은 우리 행상도 알고 있으니.”

“행상에서 알고도 상선을 모은 거란 말이요?”

“그렇소이다.”

선장의 대답에 군관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색을 표하다 동료에게 눈짓을 했다.

동료 군관은 그 눈짓을 받고 클레망소에게 달려갔다.

클레망소는 방어 작업을 지휘하다 그 보고를 받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말 행상에서 상선을 보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승도로부터 선진이 공격을 당할 것이라고 통보받은 데다 행상으로부터 선진 방어에 대한 당부의 말을 받았던 터라, 이 시기에 상선을 보낸 이유가 이상하게 들렸다.

하지만 이것은 행상이 바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행상의 거인 반진유는 사위의 부탁을 받아 선진으로 상선을 대거 이동시켰다. 이것에 대한 기밀 엄수도 부탁받았기에 반진유는 클레망소에게도 귀띔을 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다.

“어찌해야 합니까. 대인.”

군관이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묻자 클레망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선이 다수 들어오면 방어 준비에 방해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이렇게 되면 예정된 북양 함대의 철수도 당초보다 훨씬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정의 고위직이자 승도의 측근인 반진유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간 보아온 행상의 행보가 아군에 방해가 되진 않았으니 이번에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들여보내게.”

“알겠습니다.”

군관이 서둘러 입항을 진행시키기 위해 부두로 달려가는 것을 보던 제독은 머리를 긁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번 전투의 판이 어떻게 짜이는 것인지는 북양 함대의 수장인 그조차도 내다볼 수 없었다.

‘오리무중이군.’

그는 이 상황에 대한 감상을 짧게 정리하며 방어 준비로 다시 관심을 돌렸다.

***

동방 원정군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점에 후속 부대의 출발을 진행했다.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는 지연이었지만, 이 약간의 시간 차이가 부를 수 있는 결과를 생각하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원정군 지휘부는 지연에 전전긍긍했지만, 부대에 날개를 만들어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속 부대가 생각보다 늦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적색 함대는 발해 만에 머물고 있는 제국 북양 함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수색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임무에는 프리깃 네 척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위해를 출발하여 해안선에서 거리를 두고 선진으로 향하는 침로를 선택했다. 만에 하나 적의 함대가 예상하지 못한 선진 좌측의 해안선에 숨어 있다가 원정군의 측면을 공격할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이 빠른 함대의 지휘는 로 제독이 맡았다. 로는 적색 함대에서 잔뼈가 굵은 지휘관으로 젊은 나이에 제독의 반열에 오를 만큼 유능한 인물이었다.

병사들은 그런 그에게 ‘모범생 로’라는 별명을 주었다. 해군 제독으로서 해군성의 사랑을 받을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붙인 별명이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로는 고속 출세한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매우 성실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부하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피곤한 부분이지만 ‘매뉴얼’대로 일이 돌아가길 원하는 해군성의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지금도 로는 보통의 제독이라면 하지 않을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는 프리깃의 선수에 서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째 망원경을 들고 수평선을 감시하고 있었다.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 상황을 보려 하는 이들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그 부하들 입장에서는 제독이 바람을 맞으며 경계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불편했다. 그들도 눈치가 보여 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는 자신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긴장’이 유지되어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 믿었기에 선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방에 항구입니다.”

로는 그 말을 듣고 보트를 내리게 했다. 제독은 몸소 상황을 살피기 위해 함장과 더불어 종선을 타고 항구를 가능한 한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는 위치로 노를 저어 갔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로는 보트를 멈추게 했다. 그러곤 그 상태에서 망원경으로 항구를 살폈다. 그가 보는 항구는 육관이란 곳으로, 선진 서쪽의 주요한 항구였다.

이 항구는 북양 함대가 은신을 시도할 만한 규모를 가진 곳이었다. 전체를 감추긴 어려워도 일부는 숨길 만했다. 하지만 슬쩍 살펴본 항구에는 흔한 범선 하나 없었다.

연합왕국의 움직임을 알고 배를 피난시킨 것인지 몰랐다. 로는 그것을 보고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위해를 함락시키고 적색 함대의 프리깃이 출격하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신에서 위해가 공격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해도 항구의 배들을 모두 소개시키기엔 시간이 한참 부족했다.

신의 정보 전달 체계가 전신에 의존하고 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로는 신의 통신이 기본적으로 역참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좋지 않아.’

그는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단순한 상선의 소개였지만 이것은 신이 공격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조짐이었다. 적이 북경이 목표가 되리란 것을 위해가 공격당하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원정군이 세운 작전의 대전제는 근간부터 부정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의 의표를 찔러 손쉬운 결과를 얻기는 고사하고 생각한 것 이상의 강력한 방어군과 대결해야 할지 모른다.

제독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함장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입을 열었다.

“각하, 상선이 다수 철수한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정보가 샌 것 같습니다. 신이 우리 의도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상선을 움직였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아직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요.”

로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듯 희망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상선의 철수만으로 신이 원정군의 의도를 읽었다고 확신할 근거는 없었다. 우연히 상선들이 움직였을 수도 있는 일이고, 제국 해군에서 뭔가 생각을 가지고 배들을 징발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함장은 로의 말에 동의하며 보트를 돌리게 했다.

제독이 돌아오자 프리깃은 신속하게 항해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교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해안선에서 관측되지 않는 위치에서 종선을 살짝 내려 상황만 살피고 모선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프리깃들은 적을 자극하지 않는 ‘정찰’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선진에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선진에 다가갈수록 왕국 해군은 불길한 인상이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나친 항구마다 범선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은 모든 상선을 소개시킨 상태였다.

로는 그 때문에 더욱 긴장이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선진에 적의 상선 대신 군함만 들어차 있다면 적은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이쪽을 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는 그 생각을 하니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몇 시간의 항해 끝에 프리깃 전대는 선진 앞바다에 도착했다. 로는 보트를 내리게 했다. 적의 주의를 끌지 않는 선에서 항구를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리 준비한 신의 깃발을 보트에 내걸고 항구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위치까지 다가갔다.

“저기, 제국 해군의 주력입니다.”

함장이 손을 들어 항구의 좌측을 가리켰다. 항구의 좌측은 강력한 포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적 북양 함대는 항구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저곳이 모항이나 다름없으니 이곳에 머무는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그는 전열함과 장갑함 등으로 구성된 적 함대의 위용을 살폈다. 겉으로 보이는 규모만 놓고 보면 에우로페 이류 해군국의 수준에 다다른 전력이라 할 만했다.

교전을 벌인다면 격파에 제법 시간을 소요할 세력이었다.

그는 적의 군함들을 살피다 ‘우연히’ 큼직한 장갑함 하나를 발견했다. 그 배는 온통 검은 칠이 되어 있어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로는 그것을 보고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흑 태자. 어떻게 저 배가 놈들에게.”

제독이 중얼거린 말에 함장이 망원경을 들었다. 그도 적 장갑함의 실루엣을 확인하고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흑 태자라니. 지난 전투에서 실종된 줄 알았는데 저게 왜 야만인들의 깃발을. 설마 나포된 것입니까.”

“그렇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놈들의 깃발을 달고 있을 턱이 있겠나.”

“하지만 놈들에게 흑 태자를 잡을 화력이 있긴 합니까.”

“뭔가 더러운 수를 부리지 않았겠나. 놈들은 그러고도 남을 족속이지.”

로는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왕립 해군이 전력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 야만인들에게 몇 번이나 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흑 태자가 넘어간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더라도 잔 수를 잘 구사하는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충격입니다.”

“우리 왕국의 위상함이 아닌가. 해군으로서 위상함이 넘어간 꼴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세.”

로는 흑 태자의 존재에 왕국 해군의 사기가 적잖이 꺾일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았다. 왕국 위상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는 자들이라면 저 배를 적으로 돌렸을 때 얼마나 끔찍한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었다. 동방 함대가 전멸한 것은 저 괴물이 개입한 영향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흑 태자가 끼었다면 그를 잡을 화력이 없는 동방 함대가 패배하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왕국 해군의 일개 함대를 전멸로 몰아갔다고 말하면 흑 태자에 대한 두려움만 더 배가될 뿐이었다.

로는 망원경으로 적의 해군을 훑다 항구의 우측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에는 다수의 ‘상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로는 확신했다.

적은 원정군의 북경 공격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그랬기에 비장의 카드나 다름없었을 흑 태자도 숨기지 못했을 것이고, 상선들 역시 대피시킬 여유를 갖지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원정군에게는 좋은 징조였다. 적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충분히 기습을 감행할 여지가 있었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로는 정찰에서 원정군이 북경 진공을 해도 좋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뜻하지 않게 적 해군의 전력이 강하다는 정보도 얻었지만 기습의 이점만 누린다면 못 싸울 것도 없었다.

로는 보트를 돌리게 했다. 남은 것은 적색 함대에 상황을 보고하고 타격을 서두르는 일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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