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4화. 여산 (5)
원정군은 여산을 반원형으로 둘러싸는 포진을 마쳤다. 양익에서 위협적인 기동을 하던 신의 기병 세력과 단련을 신경전을 벌여가며 밀어냈던 터라, 전개에 걸린 시간만 네 시간이었다. 시간 소모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원정군은 상대의 주력이 여산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에 이를 시간 낭비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산에 있는 적의 주력만 깨부숴도 북경은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사실 틀린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약 2만에 달하는 신의 병력을 깨트리면 남방에서 축차로 불러온 병력으로는 도저히 북경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전략적으로 그들은 분명 여유를 부릴 만한 입장에 있었다. 여산에 적 병력이 있다면 말이다.
원정군은 승도가 나름 승산을 가지고 진을 쳤다고 믿었기에 단계적으로 공격을 가해 상대가 자잘한 수를 부릴 여지를 주지 않기로 했다.
보병의 공격에 앞서 포병이 방열했다.
포병대의 지휘는 프리지아의 리히터 대령이 맡았다.
대포가 전개를 마치자 지휘를 맡은 리히터 대령이 손을 들었다. 그가 장갑을 낀 손을 들자 장교들이 그 손짓을 지켜보다 ‘사격 준비’를 외쳤다.
대령은 시계를 한 번 본 다음 예정된 시간이 되자 손을 내렸다.
“포격 개시.”
기수들이 깃발을 내림과 동시에 준비된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우렁찬 포성이 울릴 때마다 백 발이 넘는 포탄이 굉음을 울리며 여산으로 떨어졌다. 상승군의 주요방어선으로 예상되는 지점들은 물론이고 매복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계곡과 개울, 야트막한 잡목 지역까지 포탄이 쏟아졌다.
포탄이 쏟아질 때마다 흙먼지가 솟구치며 무시무시한 파괴의 흔적을 남겼다. 대령은 준비된 사전 포격을 20분 간 실시한 다음 잠시 포격을 멈추게 했다.
그는 부관을 보내 발란틴 장군에게 ‘포격을 지속할지 아니면 중지할지’를 통보해 달라고 말했다. 사전에 지시된 내용대로라면 20분의 사전 포격 이후 상황을 보아 포격을 지속할지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원정군이 초단기전을 계획하면서 가지고 온 포탄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화력을 쏟아붓는 싸움은 지속할 수가 없었다. 가급적이면 포탄도 병사처럼 아끼며 싸울 필요가 있었다.
발란틴도 원칙적으로 그 점에 동의했지만 상대가 워낙 잔 수를 잘 부린다고 생각했기에 이것으로 포격을 그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장은 잠깐 생각해본 다음, 이런 명령을 전달했다.
‘우리 보병을 여산 앞으로 전진시킬 테니, 10분 후에 포격을 재개하시오.’
대령은 그 명령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잠깐 생각해보고 사령관이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는 것을 알았다. 적이 포격을 예상해서 미리 보병을 빼두었다가 아군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방어 위치에 투입할 시점에 맞추어 그 머리 위를 때리자는 나름의 ‘잔머리’였기 때문이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대령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사령관에게 답장을 보냈다.
발란틴은 참모에게 시간을 재개한 다음 보병 6개 연대에 전진을 명령했다. 이 연대들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싱싱한 병력들이었기에 전력상으로 여산의 적을 전부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는 전력이었다.
장교들의 인솔 하에 붉은 코트와 검은 코트 병사들이 발을 맞추어 벌판을 가로질렀다. 기수가 깃발을 흔들며 병사들의 걸음걸이를 조절했다.
보병들의 행렬이 여산의 코앞에 다다랐다. 이제 조금만 더 전진하면 상대 보병의 공격을 받을 만한 거리였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장교들이 ‘부대 정지’를 외쳤다.
병사들이 걸음을 멈춘 바로 그 순간 포격을 쉴 것 같았던 포병대가 재차 포격을 가했다.
아군과 적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워 오발 사고가 날 수도 있었지만, 진지에 투입될 적을 방치해서 나는 피해보다는 ‘손실’이 적을 거란 것이 지휘부의 판단이었다.
포탄이 여산에 쏟아지는 와중에 일부 포탄이 프리지아와 왕국 보병 근처로 떨어졌다.
일부가 아군 포탄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도 했지만, 병사들은 의연하게 뒤에서 날아오는 아군 포탄의 공포를 이겨냈다.
장교들은 ‘침착하라’고 병사들을 다독이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예정된 돌입 직전 포격은 약 10분이었다. 10분만 공포를 이기면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모두 열 발의 오발탄이 원정군의 머리 위에 떨어져 이십 명의 전사자와 삼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그다지 아픈 손실이라 볼 수 없었다.
포격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란틴은 보병에 돌입 신호를 보냈다.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원정군 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여산으로 몰려 올라갔다.
이제 방어 진지로 들어오려다 포격을 맞고 넋이 나갔을 적 보병들을 일시에 쓸어버리고 여산의 적을 전멸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원정군 지휘관들은 승리의 단맛을 볼 시간이 다가왔다고 여기며 악수를 나누었다. 길고 긴 고난의 시간은 그것으로 끝난 듯싶었다.
포격이 여산으로 쏟아졌다.
구릉의 정상에서 이 무자비한 포격을 지켜보고 있던 승도는 혀를 찼다. 적은 아군이 여산에 있다고 확신을 한 나머지 반 포위를 해서 몰이를 할 준비를 마친 것도 모자라 포병까지 끌고 와 방열했다.
거기에 소모한 시간만 따져도 자그마치 하루에 가까웠다. 그들이 허비해준 시간 덕분에 그는 의외로 손쉽게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군의 허와 실을 적이 모두 파악한 것이 도리어 독이 된 듯싶었다.
‘결국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가진 탓에 스스로를 과신한 것이 저들의 패인인 셈인가.’
승도는 부관을 불러 기구를 준비하게 했다. 포격을 가했으니 잠시 후, 적 보병의 돌격이 시작될 것이라 보였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적진에서 수많은 보병의 물결이 천천히 나아오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인상적인, 잘 훈련된 보병들이었다. 각이 잡힌 걸음걸이와 흔들림 없는 대오, 이를 통솔하는 장교들의 적절한 통제. 모든 면에서 저들은 신보다 질적으로 우월한 군대였다.
확실히 정면에서 정공법으로 싸운다면 답이 나오지 않는 강적이었다.
원정군 보병의 물결은 천천히 여산 앞까지 몰려왔다. 그 느긋한 전진을 지켜보던 승도에게 부관이 열기구가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승도는 나머지 참모들에게도 열기구에 오르라고 명령하고 망원경을 내렸다. 그가 열기구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육중한 포성이 들렸다.
그 벼락같은 굉음에 승도가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까 포격이 떨어졌던 자리로 다시 포탄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것은 돌입 직전에 쏘는 견제용의 포탄 몇 발이 아니었다. 방어선에 돌입하는 아군 보병을 사냥하기 위해 준비된 집중 포격이었다.
승도는 그 포격을 보고 어이가 없어 웃었지만, 사실 조금은 적의 전술에 감탄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전투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바보짓이 되고 말았지만, 적의 생각 자체는 훌륭했다.
이쪽 보병이 포격을 피해 미리 물러나 있을 가능성을 계산하고 자신들의 보병을 보내기 직전에 포격을 가한다. 정석대로 싸웠다면 승도 자신도 한 번은 당했을 법한 괜찮은 수였다.
승도는 포격을 지켜보다 참모들에게 열기구를 띄우라고 말했다.
승도와 상승군 지휘부를 태운 열기구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포격이 그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정군 보병들이 해일처럼 상승군의 깃발이 늘어서 있던 방어선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들에게 보인 것은 비참하게 찢긴 상승군의 시체가 아니라 박살이 난 허수아비와 찢어진 군복, 그리고 전장식 소총 약간이 전부였다.
그들이 멀리서 본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니었다.
승도는 적 보병들이 아군 진지를 헤집고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적이 단단히 화가 났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군의 병력이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미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앞에서 ‘하루’를 날려먹었다.
이것은 전술적으로 정말 말도 안 되는 바보짓이었다.
그 바보짓을 한 쪽에서는 열이 뻗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하루가 신의 전력을 엄청나게 증강해줄 시간이 되리란 것을 저들도 모를 턱이 없었다.
‘그런 만큼 여산 점령 직후에는 그 움직임을 빠르게 가져갈 것이다.’
승도는 적의 다음 수를 예상했다.
적은 이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가능한 한 빨리 북경 근처로 진출해 이쪽의 전력 증강을 가로막고 공성을 시작해야 했다.
그 행동을 서두른다면 아직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남방에서 이동하고 있는 상승군 여단들이 합류한다고 해도 적의 병력이 생각보다 많아 신이 한판 싸움에서 패할 가능성이 상당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니 다음 작전 목표는 마지막 증원 병력이 올 시간을 벌기 위한 승리라고 해야겠지.’
승도는 멀리 보이는 적의 대군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
원정군은 뜻밖에 자신들이 기만을 당했다는 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찢어진 군복과 허수아비를 직접 보고 바보처럼 하루를 날렸다는 사실에 장성들은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았던 오승도조차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닭 쫓던 개 신세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분노와 충격도 잠시였다. 그들은 현실로 돌아와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계산해 보았다. 날려버린 것은 하루의 손실. 거기에 더해 상당한 양의 탄약이었다.
시간 손실은 원정군의 ‘확실한 승리’를 불확실한 것으로 바꿀 만큼 뼈아픈 것이었다.
그들은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행동을 빠르게 해야 한다는 데에 이해를 같이했다. 원정군 지휘부는 다소의 불안 요소를 무시하고 북경으로 부대를 빠르게 움직이기로 결정을 보았다.
원래의 계획에 따르면 북경 진출에 앞서 제도로 통하는 세 개의 주요한 교통로를 사전에 차단하고 도시를 고립시키는 작전을 취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 도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증원 병력의 움직임을 늦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것 다하면서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하루를 낭비한 탓에 북경은 이미 방어 병력을 꽤나 증강한 상태였고, 추가 증원 병력도 속속 달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기존 계획대로 움직이면 승리의 가능성은 절반 이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확실한 승리를 보장해줄 것이라 여겼던 기존의 계획을 포기하고 승산이 높은 쪽으로 판돈을 전부 걸어야 했다.
이 계획에 따라 원정군은 여산에 집결시켰던 전 병력을 몰아 북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진공에 앞서 기병 연대들이 먼저 움직였다.
기병은 가능한 한 기존 계획에서 얻으려 했던 ‘공포 효과’를 얻기 위해 북경으로 움직이는 도상에서 초토 작전을 벌이기로 했다.
비츨레벤 소령이 지휘하는 기병 중대 역시 이 파괴의 대열에 끼었다.
넓은 밀밭을 가로지른 기병대의 앞에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평범한 집성촌이었다.
소령은 그 마을의 전경을 훑더니 칼을 뽑아 들었다.
“야만인들을 쫓아내고 밭은 불태운다. 중대 돌격!”
소령의 명령에 따라 기병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무기를 뽑아 든 채로 평화로운 일상 속에 난입했다.
갑작스레 무장을 한 양이들이 말을 타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이내 조상들이 유목민 침략자를 보고 그랬듯 비명을 질렀다.
“오랑캐들이다. 오랑캐들이 왔다.”
마을 주민들은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가족의 안위가 걸려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일부 남성들은 자신들의 여자를 지키기 위해 농기구를 들고 기병에 맞서는 모습을 취하기로 했다.
기병들은 그런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해 죽이지 않고 달아날 길을 열어주며 위협만 했다.
당연히 죽을 생각이 없었던 주민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함께 적이 열어준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귀찮은 야만인들.’
소령은 농기구를 들고 건방지게 대항하려 한 자들을 보며 혀를 찼다.
기병들은 지휘관이 내린 지시에 따라 마을 주민들을 몰이하듯 마을 밖으로 밀어냈다. 만만한 나라 같았다면 모두 목을 잘라 냈겠지만, 상대는 왕국 주민을 수만 명이나 포로로 잡고 있었다. 학살을 벌였다간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만큼 민간인 학살은 그들 입장에서 지양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이 전쟁에서 이미지를 잔뜩 구긴 왕국 내각의 입장을 생각하면 똥물을 더 튀게 해선 곤란했다.
소령은 마을 주민들을 마을에서 쫓아낸 것을 확인하고는 기병 몇을 말에서 내리게 했다. 말에서 내린 기병들은 적당한 아궁이를 찾아 불을 가져왔다. 그러곤 가지고 온 불을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불은 2인에 1개씩이다. 할당된 구역으로 돌면서 모두 불태우고 돌아온다. 실수가 있어선 안 되니 주의하면서 일을 진행하도록.”
소령은 부하들에게 마을을 돌면서 집을 전부 불태우게 했다. 이 행동은 사람을 죽이는 것 못지않게 잔인한 행동이었다. 집을 모두 태워버리면 결국 먹고 잘 곳이 없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기병들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철저하게 파괴를 진행한 다음, 마지막으로 밭에 불을 놓게 했다. 춘궁기에 주민들이 먹을 밀밭이 한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기병들은 밀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먹을 콩과 조, 수수, 가축을 위한 갈대에도 불을 놓았다.
소와 돼지, 닭 등은 보이는 대로 사격을 가해 죽인 다음 고기는 먹지 못하도록 마을 공용 변소에 버렸다. 말 그대로 마을의 경제 근간을 지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령은 파괴 작업을 마치자 부하들을 불러들인 다음 다른 표적을 찾아 이동을 준비했다. 작전을 위해 그들이 소모한 시간은 단 1시간이었다. 1시간 만에 천 명 이상이 살던 마을 하나를 완전히 끝장내버린 것이다.
원정군 주력이 북상하는 동안 제도 부근에서 2개 기병 연대가 이런 식으로 파괴한 마을이 모두 이백 개가 넘었다.
제국은 이를 저지하고 싶었지만 신의 기병들에게는 적의 측면을 위협하며 움직임을 늦추어야 하는 임무가 있어 대응은 불가능했다.
보병을 나누어 대응하기에는 당장의 방어 준비도 급했다.
원정군은 이 파괴를 통해 방어 준비의 지연과 북경의 혼란을 기대했다. 하루를 날려버린 그들 나름의 마지막 승부 수였다.
‘양이들이 다가온다.’
폭풍전야의 고요함 속에 북경으로 몇 가지 소식이 들어왔다. 양이들의 대군이 여산을 지나 북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근심 걱정을 내비쳤다.
천하의 영웅 승도라면 그들이 제도 목전까지 적이 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모두가 믿었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자국의 수도 목전까지 외국군이 육박해오면 사람들이 동요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승도도 가능하면 제도에 적이 오기 전에 그들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흉흉한 공기 속에 총판장경 건문은 몇 가지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제도가 뒤숭숭해지자 지금까지 움직임을 자중하고 있던 몇몇 황족들이 총리아문으로 서한을 보내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요지의 의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말만 듣고 보면 그 의기에 감탄하며 기꺼이 허락할 일이었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건문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이 구더기 같은 놈들은 난을 핑계 삼아 팔기를 다시 재건하려고 하는군. 그렇게 해서 전력을 갖추게 되면 가장 결정적인 시점에 이 북경을 장악하고 전하를 역적으로 몬 다음 왕국과 교섭을 하려 들겠지. 보지 않아도 안다.’
건문은 상대의 속내를 어렵지 않게 읽었다. 이미 공사 하워드와 결탁해 제국 내에서 반란을 조장한 전력이 있는 인간들이 황족들이었다.
지금까지는 적을 기만하기 위한 ‘역정보’를 흘리는 창구로써, 그리고 정적들을 조율하는 도구로 쓰기 위해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자꾸 필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조처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총판장경 각하, 전하의 서신입니다.”
건문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 관리가 들어와 공손히 서신을 바쳤다.
총판장경은 그 서신을 받고 봉인을 뜯어 천천히 읽다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적과 내통하는 자를 만들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것인가.’
적이 목전까지 다가오는 판국에 내통하는 자를 만들라는 명령은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현재 상승군은 내일까지 합류할 전력을 모두 합쳐 다섯 개 여단에 해당되었다.
이 전력이면 아슬아슬하게 원정군을 상대로 방어전을 시도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이 판에 내통자를 만들면 될 싸움도 되지 않았다.
‘전하의 의중을 도무지 알 길이 없어.’
건문은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물론 승도의 명을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그가 읽지 못했을 뿐 뭔가 뜻이 있으리라 여겨졌다.
그는 마침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 이 황족들이라면 승도의 의중에 맞는 도구가 되리라 생각했다.
건문은 적당한 후보자를 떠올리자마자 붓을 들고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 이 구더기들도 승도가 유용하게 쓰리라 생각하면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