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7화. 도강 (3)
원정군은 혁천과의 교섭과 운하 도하에 따른 위험부담 때문에 공격을 주저하다 사흘을 소모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운하 주변의 지리 정보를 꾸준히 수집하며 혁천과도 의견을 나누며 최대한 그 시간을 유용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원정군은 대치 기간 동안 수집한 지형 및 적 병력 배치 상황에 대한 정보와 혁천과의 협의에서 나온 내용을 가지고 북경 진공에 대한 계획을 준비했다.
이 계획은 작전 기획의 프로인 프리츠 대장이 직접 입안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야간을 틈타 원교 서방 삼십 리 지점으로 공병과 병참 부대를 보내 기병이 도강할 배다리를 준비해둔다.
2. 아군 기병 연대들의 이동을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보유한 말에 헝겊을 씌우고 입에 재갈을 물린 다음 야간을 기해 삼십 리 정도 서쪽으로 이동시킨다.
3. 기병이 도착하는 즉시 공병은 배다리를 가설하여 기병이 신속하게 도강을 돕는다. 기병은 도강 이후에도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원교 근처까지 이동, 공격 명령을 기다린다.
4. 새벽녘, 시간에 맞추어 보병 연대들을 운하 변으로 움직인 다음 한 번에 도강을 진행한다. 공격은 적이 반응할 틈을 주지 않도록 배다리를 통해 진행한다.
5. 포병은 보병이 도하하는 것에 맞추어 즉시 운하 가장자리에 전진 배치하여 적을 저지할 태세를 갖춘다.
6. 적이 도강 저지 공격에 나서는 즉시 보병대는 이를 맞받아치며 적 보병을 붙잡는다. 이 교전에서 적 보병의 피로도를 높인다.
7. 일출이 시작되면 본진에서 상황을 보고 기병을 돌격시킨다. 기병이 돌격하여 적 포병을 측면에서 날려버리고, 적 보병의 배후를 강습한다. 이로써 적 주력을 분멸한다.
8. 혁천의 내응을 받아 북경의 남문을 통해 도시에 입성, 제도를 신속하게 함락시킨다. 이 과정에 황제를 생포, 전쟁을 확실히 끝낼 패를 확보한다.
작전 자체는 각 단계별로 무리가 없도록 여유 있게 짰다. 각 단계마다 시간적 여유를 할당해두고 있어 만에 하나의 변수가 생기더라도 통제가 가능했다.
원정군은 이 작전을 통해 적의 주력을 분쇄하고 제도를 장악,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최종 단계에서 혁천의 협조가 없더라도 적의 주력을 격파하면 성문을 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물론 열어준다면 황제도 확실히 잡을 수 있고, 제도 장악에서 흘릴 피도 줄일 수 있으니 만사가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원정군은 성문을 열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한 혁천의 말을 조금 신뢰해 보기로 했다.
밤이 깊어지자 원정군은 계획된 작전에 따라 부대를 움직였다. 우회를 위해 움직이는 병참과 공병, 그리고 기병 부대는 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 움직임이 보이지 않도록 지휘관들은 등화관제(전시에 민간 시설 및 군사 시설, 군의 조명을 통제, 제한하는 것을 말함)를 실시했다.
어둠 속에서 수천 명의 병사와 말이 소리 없이 원정군의 본진을 벗어났다. 그들은 장교들과 준사관의 엄격한 통제 하에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 문제되었던 만큼 밤눈이 밝은 자들이 대열의 움직임을 이끌었다.
기병 연대들이 예정된 작전을 위해 서쪽으로 출발하자 회중시계를 찬 장성들이 참모들과 함께 막사를 나섰다. 그들은 운하 건너에 훤히 불을 밝히고 있는 적진 쪽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마련한 망루 위에 올라 망원경을 들었다.
“야만인들은 아직 우리 움직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군요. 잘만 하면 저들을 여기서 몰살시키고 전쟁을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스틴 중장이 망원경으로 적진을 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 비친 적은 수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한 듯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뭐 무리도 아니었다. 작전을 하기 전부터 밤마다 등화관제를 일상적으로 실시했던 터라 이번에 불빛이 없다고 특별히 이상하게 느낄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요. 야만인들의 전력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니 말이요.”
프리츠의 지적에 지휘관들도 수긍했다. 야만인들이 수세에 처한 것은 사실이나 저들의 군세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여산에서의 전례만 보아도 적에게 상당한 저항 능력이 있을 거란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 고비를 넘기기 전까지는 승리감에 취해 자만하지 말자는 프리츠의 주장은 옳은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적진의 불빛이 사라졌다.
지휘관들은 망루에서 어둠에 사로잡힌 운하 너머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마침내 기병 연대가 이동하고 세 시간이 지났다.
그때까지 서쪽에서 어떠한 총성이나 포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도강은 성공적으로 끝날 것 같았다.
지휘관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참모들에게 보병 연대들의 도강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상황은 이제 완전히 그들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필리어스 대위는 공병으로 잔뼈가 굵은 장교였다. 그는 일개 사병의 몸으로 군대에 투신하여 삼십 년을 일한 끝에 위관 계급장을 받아 사병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겉멋만 든 상류층 애송이들과 달리 필리어스는 부하들의 고충도 이해할 줄 알았고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 모두 불을 켜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상부로부터 도강 준비 지시가 떨어지자 늘어져 있던 부하들에게 횃불을 키라고 명령했다. 시야가 좀 밝아질 때까지 대위는 병사들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공연히 어두운 곳에서 복잡한 작업을 하려다가는 사고를 저지르게 마련이었다.
멍청한 자들은 이럴 때 괜히 불을 켜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게 마련인데, 그렇게 해봐야 일단 움직이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어 수상한 움직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럴 바에 적이 보고도 대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 나았다. 대위는 경험적으로 그것이 옳다고 확신했다.
충분히 주변이 밝아지자 대위는 미리 만들어둔 보트들을 한 번에 운하 변으로 옮기게 했다. 보트들은 모두 배다리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사람이 탈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트를 옮기면서 아군 부대에 엄호를 요청했다. 혹시나 운하 변에서 적이 작업 중인 공병을 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처였다.
도강 준비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배다리 위로 연결한 나무판자와 줄은 가장 짧은 시간에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 작업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위는 겨우 20분 사이에 운하를 도강할 수 있는 배다리를 여섯 개나 만들어냈다. 운하의 폭이 좁고 작업 여건이 좋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주도면밀한 준비와 정확한 작업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병이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하자 보병은 그 가설을 기다렸다 재빠르게 배다리를 타고 운하를 건너기 시작했다.
도강 작업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렇게 속도가 빠르면 상대가 대응할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달아나고 싶어도 바로 뒤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지난번과는 방어 전략을 바꾼 듯 이번에는 연막 대신 바로 운하로 대포를 쏘았다. 보병들이 도강을 진행하는 배다리 주변과 운하 주변으로 포탄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콰쾅!
포탄이 쏟아질 때마다 물기둥이 솟구치고 흙먼지가 날렸다. 그러다 포탄 하나가 배다리 위로 떨어졌다. 포탄이 떨어진 순간 나무파편과 함께 사람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순식간에 운하 위로 붉은 핏물이 섬뜩하게 번졌다.
생각지도 않은 적의 공격에 공병들은 잠시 겁을 먹은 모습을 보였다. 기본적으로 연합왕국의 공병들은 적 앞에서 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적었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전쟁을 치르다 보니 아군을 지원하는 ‘안전한 업무’ 위주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병들이 포격에 잠시 주춤거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필리어스는 그런 부하들의 모습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멍청한 놈들, 지금 거기서 머뭇거리다 아군을 다 죽일 셈이냐. 빨리 다리를 고치지 못해?”
그는 포탄에 잠깐 얼어붙은 부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미 수백 명의 아군 보병들이 넘어간 상태에서 배다리가 끊어졌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았다.
필리어스의 호통이 효과가 있었는지 부하들이 정신을 차렸다. 기본적으로 훈련이 잘된 공병들이었기에 적의 공격에서 회복되는 속도가 빨랐다.
병사들은 이내 공격의 공포에서 벗어나 다리 수리 작업에 매달렸다.
수리에 필요한 나무판자와 보트는 얼마든지 있었기에 작업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병들은 다리를 복구하면서 새로운 다리를 계속 가설해 나갔다.
공병들이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도강 작업을 지원하는 사이, 포병대가 운하 변으로 전진했다. 그들은 아군에 대한 집중 공격을 가하고 있는 적 포병을 침묵시키기 위해 포문을 열었다.
아군 포병이 포문을 연 다음부터는 일이 조금 쉬워졌다. 상대적으로 적 포격의 정확도와 규모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필리어스는 이 기회를 살려 가능한 아군 보병들이 빠르게 도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독려 속에 왕국 공병들은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은밀하게 전개된 기병과 공병의 헌신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도강을 한 보병이 협격을 가해 적을 전멸시키는 일뿐이었다.
***
승도는 적진에서 훤하게 켜진 불빛을 보고 적이 곧 공격을 시작하리라고 짐작했다. 그는 협상으로 벌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사흘 안으로 보고 있었기에 적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만일 적의 공격이 이틀 차에 들어왔다면 그도 상당히 난감한 처지에 내몰렸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별로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패가 갖추어져 있었다.
“적이 슬슬 도강을 준비하고 있으니 이쪽도 작전을 준비하도록 하지요. 포병대는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 전하. 명하신 대로 자시를 기해 포병대를 전진 배치해 두었습니다.”
“좋습니다. 열기구를 띄워 관측 준비가 끝나는 대로 포격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연합왕국 쪽이 밤마다 등화관제를 하며 자신들의 움직임을 속였지만 승도는 상대가 무엇을 할지 뻔히 짐작하고 있었다.
저들이 할 일은 결국 도강과 관련된 일이고 그를 위한 움직임을 ‘속이려는’ 것이 주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쉬웠다.
물론 적의 의도를 읽었다고 해서 그 공격을 막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영역이겠지만 말이다.
그는 적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불을 끄고 조용히 포병을 전진 배치하였다.
이는 지난번 상승군 포병이 운하 변에 포격을 가한 것에 주목해 배다리를 만들 가능성을 노린 명령이었다.
잠시 후, 배다리가 하나둘 가설될 즈음 열기구가 떴다. 승도는 열기구에 관측 장교를 태워 포격을 유도하도록 했다. 열기구에서 지상으로 보내는 신호는 손에 든 횃불의 개수로 전달하게 했다.
이 방법은 옛날, 승도의 적이었던 천국 장수 풍겸이 횃불을 이용해 분단된 아군 부대들 간의 연락을 주고받은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사용한 것이었다.
물론 아주 정교한 포격 유도는 불가능했다. 그런 복잡한 신호를 횃불만으로 전달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봉화의 경우에도 횃불의 개수로 신호를 전했는데, 이때에 전할 수 있는 신호의 가짓수는 5개에 지나지 않았다.
승도도 이 점을 알고 있어 열기구가 전하는 포격 유도는 ‘포격 정확 횃불 다섯, 근접 착탄이 횃불 넷, 주변 착탄이 횃불 셋, 방향만 옳다면 횃불 둘, 오발이 횃불 하나’, 이런 식으로 굉장히 단순하게 구성하였다.
단편적으로 포격이 제대로 되는지만 알려주는 정도가 고작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야간에 이 정도의 지원이 있고 없고는 천지 차이였다.
구태여 새벽을 기해 배다리로 도강을 시도한 원정군으로서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유도만으로도 포격이 ‘새벽’치고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정확해졌기 때문이다.
배다리 주변으로 포탄이 계속 쏟아지는 통에 원정군 보병들의 도강 작업은 계속 지연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격이 시작되었다.
운하 너머에서 거친 포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원정군 포병이 자신들의 보병을 지키기 위해 개입한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원정군이 제법 빠르게 움직였어. 이렇게 되면 도강은 조금 더 빨라지는 건가.’
승도는 적의 대응 속도를 보며 턱을 문질렀다.
적 포병이 전진하여 방열을 마치는데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다. 적 포병의 능력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좀 더 위였다.
덕분에 상승군 포병은 신나게 재미를 보다가 적 포병의 공격까지 신경 쓰며 포탄을 날리는 통에 점차 포격의 집중도와 정확성을 잃어갔다.
포병의 저지력이 떨어지고 공병이 배다리를 계속 늘리자 원정군 보병의 도강은 탄력을 받았다.
승도는 적의 도강 작업을 지켜보다 일부 여단과 단련에 교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모든 병력을 투입해 적을 저지하는 대신 예비대를 확보해 두었다. 적이 간단한 정공법만 쓰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따른 판단이었다.
“전하의 명령이십니다. 속히 전진, 적 보병의 도강을 방해하라는 지시입니다.”
진즉에 말에 탄 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들은 위치에 있나?”
“물론입니다.”
부관이 힘주어 대답하자 유진은 말고삐를 잡았다.
“그럼 기다릴 것이 뭐 있나. 부대를 출발시키세.”
유진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서자 지휘관들이 차례로 나팔을 불게 했다. 상승군 여단들은 이 신호에 맞추어 병사들을 도열시켰다.
경험이 적은 신병들이 앞에 서고 노병들이 그 뒤에 섰다. 기본적으로 베테랑 병사들의 소모를 줄이기 위한 포진이었다. 유진을 위시한 신대륙 출신 장교들은 각 여단에 왕국 육군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부대 진형을 적용시켰다.
이는 로망스 육군의 기본 대형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로망스는 병력 자원 자체를 귀하게 여겼던 터라 노병들을 앞에 세우고 신병들을 뒤에 두었다.
이 차이는 소수 정예를 지향하여 병역 자원 수급에 부담을 느끼지 않은 왕국과 다수의 국민군을 운영한 로망스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연합왕국의 방식이 유용했다.
부대가 정렬을 마치자 지휘관들은 횃불을 흔들어 각 부대를 출발시켰다.
검은 물결이 서서히 나아오자 원정군 보병들도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원정군은 도강을 마친 다섯 개 연대 병력으로 세 겹의 전열을 짠 채로 위치를 고수하려는 뜻을 보였다.
양군 모두 후장식 소총을 쥐고 있었던 만큼 기존의 전열 전투와는 전혀 다른 교전이 불가피했다.
양쪽의 거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총탄이 오가기 시작했다. 양군 지휘관들은 약속이나 한 듯 병사들에게 ‘엄폐’ 후 사격을 명령했다. 이어 신호를 보내던 기수들에게 횃불을 끄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되자 양쪽 보병은 어둠 속에서 총격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진은 교전 양상이 이렇게 변하자 병사들의 대열을 넓게 벌리게 했다. 가능한 한 피탄 면적을 줄이면서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여단장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부대의 간격을 넓혔다.
이렇게 하자 원정군은 꽤나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원정군 보병들은 좁은 도강 지점으로 건너오면서 포격도 맞으면서 더 많은 사격 기회도 허용해야 했다.
곳곳에서 붉은 코트와 검은 코트들이 쓰러졌다. 교전은 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여건에서 치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상자는 신 쪽이 좀 더 많았다.
기본적으로 단련을 포함한 제국군의 질적 수준은 원정군 보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수준의 훈련과 실전 경험, 그리고 우수한 장교단의 뒷받침을 받는 그들은 불리한 여건에서도 간단히 밀릴 만큼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야전에서 애초 승산이 없다고 로망스와 신대륙 출신 장교들이 예상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어지간히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도 싸움 자체가 힘들었다.
전체 병력이 상승군의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제국군의 상당수는 단련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넘을 수 없는 질적 격차가 원정군의 불리한 입장을 만회해 주었다.
이렇게 손실이 누적되자 차츰 아군 보병들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타격이 집중된 단련들 쪽의 사상자 수는 정말이지 굉장한 수준이었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일출 시간을 넘기기 어려울 듯싶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회중시계를 슬쩍 보았다. 별빛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시간은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일출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시계가 밝아지면서 적 보병의 사격 정확도는 배로 올라갈 것이다. 그 순간에 가해질 압력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유진은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앙다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