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3화. 승천 (2)
강화 조약의 체결이 전쟁의 끝은 아니었다. 적어도 원정군에게는 그랬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식민지로 돌아가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할 처지였다.
원정군은 전쟁 비용으로 쓰기 위해 들고 온 금과 은(주로 병사들의 급여)을 신에 대금으로 지불하고 철수에 필요한 식량과 식수를 공급받았다. 그 비용은 결코 싸지 않았다. 그 물자에 ‘입출국’에 필요한 수속 비용과 항구 사용료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정군은 과자 하나 사 먹을 돈조차 남기지 않고 탈탈 털린 다음 거지꼴로 신에서 철수했다.
그들이 잃은 것은 단지 돈에 그치지 않았다. 5만에 육박했던 원정군 지상군 병력 중 사지육신 멀쩡히 철수를 할 수 있었던 자들은 이만에 불과했다. 사기도, 명예도 모두 잃었다.
그들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식민지의 반란 진압이란 일을 해내야 했다.
원정군의 사정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연합왕국과 프리지아 양국이 체결한 ‘병력 동원 협정의 내용’이었다. 프리지아는 ‘동방 원정’에 대해서는 힘을 빌려주기로 했지만 식민지 반란에 대해서 손을 거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한 명의 병력이 아쉬운 왕국은 프리지아 측에 협조를 다시 요청했지만, 프리츠 대장은 일언지하에 그 요구를 거절했다. 옛날 같았으면 아니꼬워도 왕국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왕국은 철저하게 패배하여 당분간 그 군사적 역량을 발휘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풍부한 경제력도 고갈되었으니 당분간 힘을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본 프리지아 장성들이 구태여 왕국을 위해 피를 더 흘려줄 이유를 느끼지 못한 것은 필연이었다. 그들은 왕국의 협조 요청을 거절하기로 했다.
물론 그들이 이렇게 행동한 데에는 왕국이 약해졌다는 이유 하나만 있지는 않았다. 명색이 우방인 만큼 ‘외교적 도의’에 따라 도울 여지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합왕국에 매몰차게 행동한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원정군이 신을 떠나기 전 신의 최고 권력자 승도는 사람을 보내 ‘프리지아 측’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프리지아와 전쟁을 하긴 했지만 특별한 유감이나 구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향후 양국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모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제의에 프리츠는 반색하며 이렇게 답했다.
‘제국에서 우리 프리지아에 이런 호의를 가지고 말씀을 해주신다면 우리도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귀국을 하는 대로 본국의 국왕 폐하와 내각에 보고를 올려 신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힘을 쓰겠습니다.’
승도의 사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프리지아에 건넬 제안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철수를 하는 길에 힌디아 반란 진압을 돕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아시다시피 연합왕국은 우리 제국의 숙적. 그 적이 국력을 견실하게 다지는 행동은 모두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연합왕국의 국력이 약화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제의에 협조해 주신다면 우리 신은 동영과 려를 비롯한 동방 세계로 프리지아가 독자적인 무역을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줄 생각이 있습니다.’
프리츠는 그 제안에 따라 왕국의 협조 요청을 거절했다. 왕국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압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네이선 원수 이하 원정군 장병들은 이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압 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정세는 이미 연합왕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프리지아 군이 떨어져나가 일만을 겨우 넘는 숫자로 줄어든 원정군 병력으로는 들불처럼 거세진 힌디아 반군을 진압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들이 진압에 나설 당시 둘로 나누어진 힌디아 반군은 각각 십만이 넘는 규모로 팽창하여 아대륙의 패권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정군이 온전한 규모로 돌아왔어도 단시간에 제압하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세력이었다.
그러니 원정군이 이들을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동방 회사와 원정군은 진압은 고사하고 남아 있는 점령지 방어를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교전 속에 ‘동방 원정’에서 살아 돌아왔던 왕국 육군의 베테랑들이 수도 없이 쓰러졌다.
세계를 호령하던 최강의 군대가 식민지 반란 진압에서 자멸한다.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도,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승도가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무렵 그 놀라운 소식은 주변국에도 전해졌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여기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려와 루시, 유구 등은 연합왕국의 패배로 자신들의 안보와 이익이 확보된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여기에 불편한 심경을 보인 것은 동영 한 나라밖에 없었다. 동영 정부는 려와 신에 의해 혹독한 제재를 받고 있던 입장이다 보니 왕국이 승리하여 동방의 판을 재편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왕국의 패배에 불편한 감정을 내비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신은 이제 동방 최강국으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한 상황이었다. 그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동영의 안위를 보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동영의 내각은 여기에 대해 속이 쓰리다 느끼면서도 ‘전승 축하사절’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신은 동영에 그것만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는 연합왕국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 귀국에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여 강주 왕 전하께서는 귀국의 군주가 직접 전승연에 참석하시어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이 전승 축하연 참석이지 실상은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이었던 동영을 ‘가혹하게’ 처우함으로써 주변국들을 길들이려는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동영 정부는 그 제안에 펄쩍 뛰었다. 동영의 군주가 외국으로 나간 전례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은 그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동영의 내각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국왕을 전승 축하연에 보내기로 했다.
동영 정부는 이 상황이 매우 ‘굴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비밀리에 국왕의 출국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 안에서 폭동이 일어날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영에서 국왕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동시에 인간의 몸으로 존재하는 신이었다. 그런 존재가 외국에 인사를 하러 나간다는 것은 동영인들의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동영 정부가 국왕의 출국 문제를 비밀리에 처리하기 위해 조심스레 그 준비를 진행하는 사이, 동영에 주재하고 있던 행상은 한 가지 소문을 퍼트릴 준비를 했다.
그들은 승도의 밀명을 받고 동영을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강압으로 동영의 왕을 전승연에 부르기로 했는데, 이 건을 동영 정부에서는 비밀에 부치려 할 겁니다. 여기에 대한 소문을 은밀하게 퍼트려 주세요. 물론 소문을 퍼트리면 당분간 동영이 시끄러워질 것은 불문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동영 정부는 우리 제국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자들입니다. 적당히 혼란을 야기하여 그 기반을 무너트린 다음, 경제적으로 완전히 우리에게 종속시키세요. 그 정도는 해두어야 이 사람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상은 승도의 지시에 따라 동영 국왕의 출국에 대한 소문을 퍼트렸다.
당연히 군주의 출국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나라 전역이 들썩거렸다. 동영인들은 ‘신’이나 다름없는 신성한 군주가 외국의 전승연에 불려 나간다는 사실 자체에 격노했다.
그들은 신에 강한 반감을 보이면서, 동시에 이런 요구를 수용한 정부에 대해서도 비난을 퍼부었다.
곳곳에서 ‘나약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 일어났고, 관청 습격이 벌어졌다. 동영 정부는 신의 제재로 충분한 수의 군대를 갖지 못한 탓에 사태를 쉽게 수습하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동영 정부는 급한 대로 신에 양해를 구하고 국왕의 파견을 없던 일로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행상에서 ‘정부’가 잠깐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유언비어를 계속 퍼트렸기 때문이다.
동영으로서는 이도저도 안 되는 진퇴양란의 상황이었다.
이 지경이 되자 동영 정부는 급한 대로 ‘신’의 양해를 얻어 군비를 늘리는 일이라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신에 광산의 일부를 내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동영 정부에 대한 동영인들의 신뢰는 바닥을 쳤다. 이권을 외국에 넘기는 ‘매국적인 정부’에 대한 조세 납세 거부 운동까지 벌어지자 동영은 반란 진압을 위해 행상에 자금 지원까지 요청했다.
이것으로 동영은 완전히 신에 목줄이 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그래도 본국의 내정에 관해서는 일정한 자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국가의 재정 자체를 신에 의존하게 된 마당이니 어떻게 보면 괴뢰 정권 신세가 되었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승도는 이런 간단한 술수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었던 동영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
전쟁이 거의 막바지를 향해 치닫던 무렵, 대양을 건너온 몇 통의 전보가 연합왕국에 도착했다. 전보가 도착할 즈음만 해도 왕국 의회는 ‘전쟁’이 거의 승리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소식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힌디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에 가담한 것은 식민지 출신 장교들과 병사들로 기존의 평범한 반란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자칫 잘못하면 힌디아 식민 제국이 왕국의 통제에서 벗어날 위험도 있다.’
‘힌디아’에서 대반란이 일어났다는 충격적인 전보였다. 왕국 의회는 여기에 기겁을 하면서 즉각적인 반란 진압 준비에 들어갔다. 본토가 텅텅 빌 정도로 육군을 동원한 탓에 군대를 다시 보내자면 ‘모병소’부터 추가로 설치해야 했다.
‘당장 모병을 시작해서 일만의 진압군을 편성해야 합니다. 힌디아는 왕국의 명운이 달린 식민지입니다.’
왕국 의회는 급한 대로 모병소를 다시 설치하는 한편, 신대륙으로도 전보를 보내 대륙에 주둔한 남은 연대들에 파병 준비를 서두르게 했다.
일이 잘 풀린다면 원정군이 회군해서 반란을 진압하겠지만, 그래도 반란이 확산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준비는 당장 시작해야 했다.
그들이 이렇게 겨우 ‘반란 진압’ 준비를 시작했을 때 두 번째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강주 전역에서 날아온 연이은 참패를 담은 소식이었다. 치열한 공방 끝에 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패퇴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군대는 자그마치 일만이 넘는 사상자를 냈습니다. 강주를 공격해 적의 주의를 돌리려던 시도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가 너무 비쌌습니다.’
언론은 이 패전 소식을 일면에 싣고 연일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왕국 정부는 이 패전의 의미를 최대한 희석하면서 원정군이 전략적으로 ‘후퇴’했으며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원정군 지휘부가 세운 북경 진공 전략에 대해 언급하면서 ‘왕국의 승리’는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머리가 있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원정군이 순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 만 단위의 사상자가 날 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다.
여론이 흉흉하게 돌아가자 집권 보수당은 급한 대로 왕실에 협조를 요청했다.
로스실트 의원이 나서서 윌리엄 공작을 구슬린 끝에, 여왕 엘리자베스가 전면에 나섰다.
“우리 연합왕국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하나로 뭉쳐 위기를 돌파해온 전력이 있습니다. 지금 잠시 왕국의 사정이 어렵다고 하여 비난만 하는 것은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정부에 힘을 실어주며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여왕의 연설은 그나마 들불처럼 끓어오르던 여론을 누그러뜨리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다시 불만이 폭발하리란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보수당은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면 더 이상의 변수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들은 이를 위한 포석으로 루시에 선을 대기로 했다. 언제나 유연하게 적과 아군을 바꾸는 왕국의 외교력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왕국은 특사를 보내 루시 정부를 매수, 힌디아에 대한 그들의 개입을 완화해 보기로 했다. 나름대로 그 조처는 현명한 것이었다.
루시 쪽도 그 제안에 혹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연합왕국이 어느 정도는 국력을 보존해 주어야 신이라는 ‘이웃’을 적절하게 견제하며 이익을 챙길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루시는 그 대가로 부동항을 요구했다.
연합왕국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왕국 정부는 ‘안전판’을 마련했다고 자평하며 원정군이 승리만 하면 만사가 해결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동안 지구 반대편의 전쟁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정군이 전쟁에서 참패한 것이다.
패전에 관한 내용이 속속 전해지자 연합왕국 정부는 끓어오르는 비난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집권 보수당 내각은 여론의 비난을 이기지 못해 ‘내각 총사퇴’를 결정했다.
거리는 분노에 찬 대중들의 물결로 가득 찼고, 도처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시위대는 ‘내각 총사퇴’를 넘어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경제인과 정치인의 책임을 물었다. 그들은 영광스런 연합왕국을 굴욕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자들은 모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무능한 자들이 권좌에 앉아 나라를 망쳤다. 탐욕으로 나라를 망친 죄, 감옥에 들어가 반성하라!’
평범한 국가였다면 국민들이 이렇게 강렬한 분노를 표현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분노한 것은 왕국의 영광을 국민 개개인의 자부심과 결부시켜 ‘세계 제국의 일원으로서의 긍지’를 부르짖으며 국민의 희생을 당연시하던 구호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였다.
일부에서는 국채 발행을 지원한 왕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가 좀처럼 그 세를 잃지 않고 구호를 높이면서 왕국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그 바람에 왕국은 기껏 모병한 병사들과 신대륙에서 불러들인 연대들을 식민지로 파견하지 못하고 ‘치안 유지’에 투입해야 했다.
나라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자 금융가도 그 충격에 휩쓸렸다. 패전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것도 모자라 ‘시위’로 국가 전반이 마비된 탓에 그 피해는 더욱 컸다.
전 세계 경제의 심장 구실을 하던 론디니움의 금융가는 패전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연일 폭락세를 이어갔다. 그 후유증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던 국채의 기준 금리도 최고조로 올랐다.
이대로 가면 왕국이 ‘도산’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왕국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흔들리자 외국인 투자자들도 급히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왕국 경제는 믿기가 어렵다. 아직 안정적인 로우랜드나 세이비아로 자금을 옮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왕국이 안정되어 있어 믿고 자금을 맡길 수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각국 왕실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대량의 자금을 한 번에 회수하자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자본이 회수되자 공장들이 연달아 문을 닫았고, 일자리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세계 최강 연합왕국 경제에 공황이라는 무서운 적이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안정된 삶을 위해 고된 노동과 적은 임금도 감수하며 살던 다수의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지난날’ 일으켰던 ‘기계 파괴 운동’과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으며 왕국 정부에 ‘생존’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전쟁의 패배로 빈사 상태에 빠진 왕국 정부가 그들을 구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부가 구제를 포기하자 이제는 ‘과격한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들은 ‘폭력’으로 왕국 정부를 뒤엎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야 혼란과 빈곤에 처한 국민을 구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정부는 더 이상 우리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다. 이제 나라를 이끄는 것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가자, 무기를 쥐고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자.’
그 주장에 따라 시위는 도처에서 ‘대규모 무장 봉기’로 변질되었고 왕국의 혼란은 ‘내전 양상’으로 변화했다.
왕국 정부가 이렇게 혼란에 빠지자 에우로페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왕국이 에우로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왕국의 재정 지원을 받던 로망스 반군은 갑자기 지원이 뚝 끊어지면서 ‘로망스 정부군’에 급격히 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국가의 정규군을 대부분 보유한 로망스 정부 측에 대해 반군이 우위를 점하던 부분은 자금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로망스 정부군은 약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로망스 전역을 제압했다.
빈사지경에 처한 연합왕국으로서는 ‘적대국’ 하나가 제정신을 차렸다는 것만으로도 기함할 일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연합왕국은 궁지에 몰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승도의 반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