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2 (2/34)

프롤로그 2

“마스터, 찾으시는 아이템을 구했습니다.”

“뭐? 정말?”

작은 미소를 흘리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무라사마의 모습에 내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나와 함께 게임을 시작한 친구이자 조력자, 그리고 누구보다 믿음직한 동료인 무라사마는 내가 길드 마스터로 있는 ‘검은 사자’ 길드에서 나 다음으로 강한 전사이자 부 길드 마스터로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길드 내의 최고 인기 남이었다.

거기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흑발은 몇 년 동안 게임을 함께한 나마저도 무라사마가 정말 남자인지 혼란을 줄 정도였다.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분위기만 아니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남자였다. 뭐, 그 차가운 분위기가 매력이라며 따라다니는 여자들도 꽤 있지만.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외모에 아무것도 볼 것 없는, 그나마 판타즈마 월드(Phantasm World) 레벨 400, 한 마디로 포 스타(Four Sta)를 이룩한 최고 레벨을 가진 전사라는 것과 검은 사자 길드라는 막강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는 것만 제외하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그저 그런 유저였다.

이내 영롱하게 빛나는 은빛 갑옷을 덜컥거리며 나에게 다가온 무라사마가 아이템을 한 아름 건네며 입을 열었다.

“풍파의 반지와 뇌격의 팔찌, 그리고 제왕의 서클릿, 그림자의 단검. 맞으십니까?”

“와아! 하하하. 고마워.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약간의 시스템을 이용했습니다.”

약간은 불편한 기색으로 입을 열며 자신이 착용한 풍파의 반지와 뇌격의 팔찌를 보여주는 무라사마의 모습에 내 얼굴이 굳었다. 무라사마가 건네준 아이템들은 최소 레어 급. 이렇게 쉽게 구할 리가 없었다.

“서, 설마…….”

무라사마가 말한 약간의 시스템이란 분명 요즘 고레벨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아이템 복사’가 분명했다. 어떤 프로그래머가 만들었는지 국방부보다 더 치밀하다는 판타즈마 월드의 시스템마저 속일 정도의 아이템 복사 프로그램이 떠돌고 있다는 소문이 한창이었다. 설마 무라사마가 그걸 사용할 줄이야!

아이템 복사는 게임 속에서는 NPC 학살보다 훨씬 더 중죄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현금으로 수백만 원어치의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복사해서 판다면 그건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한신 자체의 문제로 커져 나가는 것이다. 또 어떤 길드의 마스터가 강력한 위력을 가진 아이템들을 마구 복사해서 자신들의 길드원들에게 나눠준다면 루안 대륙은 순식간에 그 길드에 장악될 것이다.

물론 운영자들이 조사를 하고 또 다른 유저들이 힘을 합친다면 되겠지만 복제된 아이템에 눈이 멀어 그 길드로 들어가는 유저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현실에서나 게임 속에서나 아이템 복제는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중죄기에 내 얼굴이 한층 더 굳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호호.”

본래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약한 성격 탓에 잠시 무춤하는 사이, 무라사마의 뒤에 있던 인영이 낮은 웃음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스터만 빼고 저희 간부들도 모두 사용하고 있답니다. 다른 길드도 모두 사용하구 있구요. 호호.”

“하, 하지만…….”

손가락에 착용한 풍파의 반지와 손목에 있는 뇌격의 팔찌를 쓰다듬는 여인의 말에 굳었던 내 얼굴이 약간은 풀렸다.

여인의 정체는 무라사마의 게임 속 애인으로 ‘월향’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있는 여성 유저였다. 월향 또한 나와 함께 게임 초반부터 함께한 친구로 판타즈마 월드에서 뽑은 ‘미스 게이머’에 뽑힐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은빛의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그리고 붉은 입술을 가진 월향이 작게 웃으며 어정쩡하게 내 손에 들린 아이템들을 내 손에 꽉 쥐어주었다.

“걱정 마세요. 다른 길드들도 다 사용한다니까요? 괜찮아요.”

내 귀를 간질이는 나긋한 목소리와 손을 감싸는 따스한 체온에 굳었던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래. 괜찮겠지…….”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1주일도 가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헤라클래스 님? 아이템 복사 혐의로 심판의 탑에 가주셔야겠습니다.”

“무, 무슨 소리야!”

황금빛 기운과 함께 천(天)급 운영자가 나타났다.

‘심판의 탑’이란 게임 속의 재판장으로 운영자가 어떠한 잘못을 한 유저를 재판하는 곳이었다. 평소 착실하게 게임을 한 나로서는 가지도, 또 구경도 못해본 곳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도착한 심판의 탑에는 나를 제외한 검은 사자 길드의 거의 모든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다 나에게 복사 아이템을 건넨 무라사마와 월향마저 모여 불안한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복사 아이템으로 보이는 무수히 많은 풍파의 반지와 뇌격의 팔찌, 그리고 제왕의 서클릿과 그림자의 단검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족히 수십 개는 되는 아이템에 내 얼굴이 굳었다. 저것이 복사 아이템이 아닐 수도 있지만 각자 다른 코드를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수십 개일 리가 없었다. 한 코드의 아이템이 수십 개라는 것은 곧 그것이 복사 아이템이라는 소리였다.

“나, 난……!”

이내 뭔가 항의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있던 월향이 나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외쳤다.

“저자예요! 저자가 이 아이템을 나눠줬어요! 다른 길드의 간부들에게 지지 말라면서 아이템을 줬다고요! 난 아무 죄가 없어요! 흐흐흑.”

“뭐, 뭐?”

갑작스런 월향의 말에 당황하는 나를 향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간부들의 원망스러운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맞습니다. 저 자식이 우리에게 아이템을 줬습니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모두 저 자식 잘못이라고요!”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간부들의 모습에 내 얼굴에 당황함이 떠올랐다.

“무, 무슨 소리야! 이 아이템은 무라사마가 준 거라고!”

절규하듯 외치는 내 외침에 나를 향해 욕을 하던 간부들이 경멸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건 월향과 무라사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스터, 증거가 있는데 그러실 겁니까?”

경멸의 표정으로 입을 여는 무라사마의 모습에 내 얼굴이 굳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증거가 있다는 무라사마의 말에 내 얼굴에 작은 웃음이 맺혔다. 무라사마의 말대로 정말 증거가 있다면 나에게 해가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그래! 증거를 보여줘!”

거칠게 항의하는 내 모습에 커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재판관으로 보이는 운영자가 경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기자 곧 커다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홀로그램의 주인공은 나였다. 그것도 야비한 표정을 흘리며 복사 아이템들을 간부들에게 건네주는 홀로그램을 보는 내 입에서 경악 섞인 외침이 튀어나왔다.

“저, 저건 내가 아니야! 무라사마! 월향! 제, 제발! 해골, 좀 설명해봐! 내가 아니잖아? 응? 범인은 무라사마잖아!”

“키키키. 무슨 소리십니까. 당신이 저에게 아이템을 주셨잖습니까.”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해골의 모습에 커다란 둔기가 내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강렬한 충격이 내 몸을 휩쓸었다.

“서, 설마……!”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최악의 가정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것은 바로 나를 제외한 모든 간부들의 배신이었다. 가짜 동영상 따위를 만드는 것은 쉬웠다. 운영자와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다면 약간의 데이터 조작으로 홀로그램 속의 나는 정말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이내 충격에 싸여 허우적거리는 내 귀로 어느새 판결을 끝낸 운영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꽂혔다.

“캐릭터 명, 헤라클래스! 성명, 강철중! 게임 내 1급 범죄에 해당하는 아이템 복사 혐의로 캐릭터 삭제와 아이템 압류, 그리고 3달 동안 게임 접속 거부를 조치한다! 자세한 것은 메일로 통보한다. 이상!”

“나, 난 범인이 아니야!”

발부터 모래로 변해 사라지는 내 절규에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월향의 입이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열렸다.

바, 보.

월향의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난 범인이 아니야!”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절규를 끝으로 어둠이 나를 덮쳤다.

난, 난 범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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