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3 암흑투마군단장
데스 랜드의 그것과는 달리 화려하게 치장된 거대한 나무 건물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티나와 폭스, 카나리아를 비롯해 나머지 족장들이 내가 내뿜는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정확히 30분 전에 도착한 마을은 내가 봐도 훌륭했다.
먼저 도착한 전사들이 혹시 모를 기습을 위해 대충이나마 방책을 만들었고 주변의 오크들과 몬스터들을 처리한 뒤 야수들의 소변이나 체취를 발라 영역을 확보했다.
거기다 마주친 수인족 또한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는 카인의 말은 동맹을 원하는 나에게는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폭스, 설명해라.”
“예.”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어색한 미소를 흘리던 폭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족장들이 잘 보이는 곳으로 걸어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확히 10시간 50분 전, 저와 블러드 님 그리고 형님과 티나 님은 워프를 타고 도착한 호수에서 이곳으로 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1시간도 안 돼서 갑작스레 저희를 공격하는 우드 골렘을 만났죠. 아마 수인족이 아닌 저와 형님을 보고 공격한 듯합니다. 어쨌든 블러드 님과 형님이 우드 골렘을 맡는 사이에 저와 티나 님은 주술사를 찾아서 공격했습니다. 꽤나 레벨이 높은지 처음에는 잘 버티다가 갑작스레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더군요.”
말끝을 흐린 폭스가 나를 바라봤다.
아마 내가 소환수를 죽여 그 데미지가 주술사에게 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계속해라.”
“예, 이때를 기회라고 생각한 저와 티나 님은 주술사를 처리했습니다. 아마 주술사가 남림야수왕에 대해 조금만 언급했더라도 공격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거기다 전 전혀 수인족인 줄도 몰랐습니다. 저에게는 티나 님처럼 수인족을 판별하는 능력이 없으니까요. 이상입니다.”
“으음…….”
교묘히 티나에게 책임을 돌리는 폭스의 모습에 티나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반박하고 싶어도 마땅히 반박할 것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폭스보다 티나의 잘못이 훨씬 더 컸다.
덜거덕.
“읽어라.”
아이템 창에 넣어둔 동맹요청서를 폭스 앞에 던졌다.
막 자리에 앉으려던 폭스는 어정쩡한 자세로 동맹요청서를 들고 목을 가다듬었다.
“태초의 숲의 모든 수인족들을 다스리는 남림야수왕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동맹을 요청한다. 이상입니다.”
다른 말은 없었다.
그저 동맹을 요청한다, 라는 말만 간략하게 전하는 동맹요청서를 낭독한 폭스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의견을 말해봐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든 알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동맹 따위가 필요하겠습니까? 대 족장과 저희의 힘이라면 충분히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남림야수왕의 목을 따올 것처럼 살기를 피워 올리는 알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치켜든 젤다가 알카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반대입니다. 일단 동맹을 요청하고 힘을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등한 인간이지 같은 일족이 아닙니다.”
알카와는 달리 나직한 말로 좌중을 압도하는 젤다의 모습에 알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눈 뜨고 당하자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젤다와 알카가 갑작스레 말싸움을 하자 모여 있던 족장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젤다, 알카. 입 다물어라.”
“하, 하지만 대 족장!”
“한 번만 더 입을 열면 추방하겠다.”
살기를 담은 내 말에 막 불만을 토하려던 알카가 얼굴을 굳히며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젤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인족들에게 추방이란 죽음보다 수치스러운 것이다.
평생 일족들에게 쫓기며 죽음의 공포에 떨며 숨어 사는 것이 바로 추방을 당한 수인족의 삶이고, 그건 족장들이라고 해서 피할 수는 없었다.
“폭스, 의견을 말해봐라.”
우직한 NPC들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에 폭스의 의견을 묻자 살랑거리는 웃음을 흘리던 폭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족장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 저들이 동맹을 요청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족장 시험 때문이지요. 현재 족장인 남림야수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수인족의 전통상 적어도 3년에 한 번씩은 족장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곳 태초의 숲의 족장 시험은 과거 데스 랜드와 같은 배틀 로얄 형식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각자 자신들의 일족의 전사들을 족장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지요. 그런 시점에서 저희가 공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완전히 패배하지는 않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동맹을 요청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동맹을 깨고 공격한다면 남림야수왕은 아마 대륙의 수인족들을 설득해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폭스: 야수연합에서도 무시 못 할 전사들이 빠져나갈 것이고요.]
“으음…….”
내 입에서 나온 무거운 신음에 족장들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폭스의 말대로 만약 내가 동맹한 뒤 비밀리에 전사들을 이끌고 태초의 숲의 수인족들을 기습한다면 승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엄청난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거기다 남림야수왕은 죽어도 다시 로그인할 수 있는 유저다.
만약 나의 비겁함을 세상에 알리면서 수인족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대륙에 있는 수인족 NPC들이 몰려들 것이 확실했다.
분명 내 밑에 속한 수인족들 또한 많은 수가 남림야수왕의 밑으로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한 번 우두머리는 영원한 우두머리지만 그 우두머리가 비겁한 행동으로 우두머리의 자존심을 버린다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바로 수인족이다.
‘제길, 골치 아프군.’
동맹에 응하자니 나중 일이 문제였다.
동맹요청서를 가지고 온 NPC 따위야 어떻게든 처리하면 될 테지만 족장 시험이 끝난 경우 그쪽에서 취할 행동이 문제였다.
만약 족장 시험을 끝내고 일방적으로 동맹을 파기하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멍청하게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 또한 남림야수왕의 비겁함을 알리면서 힘을 모으면 될 테지만 그러기에는 복수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기다 나 또한 무투회와 복수를 앞두고 레벨을 올려야 했기에 마냥 느긋한 것만은 아니었다.
[폭스: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응?’
파미 음성창이 아닌 나만 들을 수 있는 귓속말로 들려오는 폭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나를 바라보던 폭스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폭스: 일단 동맹을 하시죠. 동맹 건은 크란에게 맡기면 해결될 겁니다. 죽은 NPC 일은 대충 둘러대라고 하면 크란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어차피 그쪽에서도 죽은 NPC보다는 족장 시험이 더 중요할 테니까요.]
“으음…….”
확실히 현재 가장 좋은 방법은 동맹뿐이다.
폭스가 말하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땅히 동맹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바라보던 폭스가 한층 짙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란.”
“예!”
나직한 내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난 크란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번 동맹은 너에게 맡기겠다. 대륙에서 맡기는 첫 임무다. 야수연합의 책사로서 걸맞은 성과를 보여라!”
“목숨을 걸고 명령을 완수하겠습니다!”
책사라는 말에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크란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좌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 이름뿐이라고 해도 책사는 책사지.’
내 속내를 모르는 크란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크란은 허울뿐인 책사 자리가 꽤나 마음에 드는 것인지 붉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카인을 바라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카인이 고개를 꾸벅이고는 내 말을 기다렸다.
“카인은 백사자단을 이끌고 크란과 함께 책임지고 동맹을 성사시켜라!”
“예!”
본래는 크란과 함께 백성단이 가야 했지만 육체적 능력보다 주술적 능력이 높은 백성단보다는 육체적 능력이 가장 강한 백사자단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에는 적합했다.
거기다 카인이라면 전대 대 족장.
그 연륜과 카리스마라면 나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카인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족장들을 바라보자 저마다 끓어오르는 눈빛을 빛내며 족장들이 내 명령을 기다렸다.
“다른 족장들은 각자 전사들과 함께 경계를 강화하고 내 명령을 기다려라!”
“예!”
우렁찬 대답을 토해낸 족장들이 각자 일족의 전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건물을 나서 지정된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오직 티나만이 떠나지 않고 내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내 살랑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떠나가는 족장들을 보던 폭스가 내 곁에 있는 티나를 보고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폭스: 티나 님도 나가라고 하시죠.]
[블러드: 티나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한 폭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곁에 붙어 있는 카나리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형님, 죄송하지만 잠깐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블러드 님과 제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앵? 저 자식과 둘만 있겠다고?”
“하하, 제가 저번에 형님에게 한 말 있잖아요. 블러드 님의 그…….”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는 폭스의 모습에 투덜거리던 카나리아가 이마를 치며 내심 불쌍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쯔쯧, 마음 좋은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군. 문 앞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라.”
문을 나서면서까지 나를 향해 혀를 차며 나가는 카나리아의 모습에 내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폭스, 대체 무슨 말을…….”
“하하하! 블러드 님, 날씨 참 좋죠?”
“끄응…….”
과장된 웃음을 흘리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폭스의 모습에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의자를 끌고 옆에 다가온 폭스가 내 곁에 있는 티나를 향해 눈짓을 했다.
“음… 티나, 너도 일족에게 돌아가 전사들을 정비해라.”
“예.”
힘차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사라지는 티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던 폭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혹시 생각해둔 것이 있나요?”
“없다.”
단호한 내 말에 폭스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에 폭스의 작전을 먼저 들어보자는 생각에 조용히 폭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던 폭스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태초의 숲에 사는 수인족들의 족장 시험은 일주일이 남았습니다.”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치켜들자 묘한 웃음을 흘린 폭스가 말을 이었다.
“동맹을 하거나 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우리 쪽 누군가가 족장이 되기만 하면 될 텐데요. 그렇지 않나요? 블러드 님이 데스 랜드에서 하셨던 것처럼, 족장이 된 우리 쪽 인물이 대충 핑계를 대고 블러드 님과 함께 힘을 모으는 척하면서 그들을 선두에 세우면 이쪽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할 겁니다.”
“으음…….”
무거운 신음을 흘리는 내 모습에 잠시 멈췄던 폭스가 말을 쏟아냈다.
“현재 태초의 숲에 있는 수인족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데스 랜드와는 달리 유저들에게 사냥을 당하는 입장이니까요. 수인족 유저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NPC들은 그리 수준이 높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폭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수인족을 사냥하고 피를 얻기 위해 대륙에서 떨어진 데스 랜드까지 오는 사냥꾼들이 데스 랜드까지 오는 이유는 바로 태초의 숲에는 수인족 사냥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남림야수왕이 태초의 숲을 통일해 요즘에는 줄어들었다고 해도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군.’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한 작전이지만 어설픈 동맹보다는 괜찮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동맹이야 이미 결정한 것이니 상관은 없지만 만약 폭스의 말대로 우리 쪽 인물의 누군가가 태초의 숲에 사는 수인족들의 족장이 된다면 엄청난 힘을 얻는 것이다.
‘우리 쪽 인물 중 누가 족장을 하냐가 문젠데…….’
“블러드 님?”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눈치 챘는지 나를 부른 폭스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뛰어난 유저를 한 명…….”
“허락 못한다. 차라리 카인이나 내 밑에 있는 족장을 보내겠다.”
단호한 내 말에 잠시 멈칫한 폭스가 입을 열었다.
“카인이나 다른 족장들은 모두 데스 랜드 출신이라 하고 싶어도 못할걸요? 자격은 태초의 숲의 수인족들에게만 주어지는 거니까요.”
으드득.
나를 약 올리려는 듯 살랑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폭스의 모습에 내 입에서 서늘하게 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빌어먹을 자식!
저 빌어먹을 자식은 자기 쪽의 인물을 어떤 식으로든 족장으로 만들어 이용해 먹을 것이 분명했다.
앞에서는 나를 도와주는 척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뒤통수치겠지!
“별다른 방법이 있나요?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락 못한다.”
절대 허락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만약 허락한다고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유저를 보내거나 폭스뿐만이 아니라 내가 부리기 쉬운 유저를 선택해야 했다.
그런 내 생각을 눈치 챈 것인지 작은 한숨을 내쉰 폭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저희가 블러드 님의 뒤통수를 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블러드 님과 저희는 같은 배를 탄 동료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블러드 님 주위에 족장을 할 만한 사람이 있나요? 폭염의 마도사님이요? 해파토스 님이요? 하핫.”
낮게 웃음을 흘린 폭스가 말을 이었다.
“마스터께서도 말하시길 블러드 님이 제의를 거절하시면 앞으로 어떤 도움도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마법사가짱이얌이?”
“예.”
‘제길!’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떡이는 폭스의 모습에 내 입에서 절로 거친 욕이 튀어 나왔다.
마법사가짱이얌이 나를 견제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바로 지금일 줄이야!
확실히 현재 내 힘만 하더라도 마법사의 탑과 대적할 수 있다.
1만의 야수군단은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거기다 2천의 드워프 전사들이라면 어쩌면 검은 사자 길드마저도 이기는 게 가능할지 몰랐다.
이번 제의는 강해지는 내 힘을 두려워한 마법사가짱이얌의 계책이 분명했다.
만약 내가 태초의 숲에 있는 수인족들마저 흡수한다면 내가 마법사의 탑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법사의 탑이 내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시 한 번 묻는 폭스의 모습에 내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제길.’
어쩔 수 없이 허락해야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물론 게리롱을 시켜 몇 명의 유저들을 수인족으로 만들어 족장 시험에 참가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허락을 하기에는 억울했다.
“좋아, 허락하지.”
“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단,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환한 웃음을 흘리며 감사를 표하던 폭스가 이어지는 내 말에 얼굴을 굳히며 나를 바라봤다.
크큭. 빌어먹을 자식. 두고 봐라.
“네가 아는 유저가 아니라 카나리아를 추천한다. 카나리아가 아니라면 나 또한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카나리아 님이요?”
“크큭, 그래.”
낮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이번에는 폭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카나리아는 분명 폭스의 편이 확실했지만 음모나 암계 따위와는 거리가 먼 성격이다.
그렇다고 돈에 혹하는 성격도 아니다. 무식하고 생각 없고 단순하고 우직하다.
어떻게 보면 이용해 먹기 가장 쉬운 타입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타입이었다.
“설마 저 밖에 있는 카나리아 님은 말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맞다.”
“하지만 카나리아 님은 이미 직업이…….”
“직업 따위야 그만두면 그만이지. 설마 절친한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까? 크큭.”
능청스러운 내 말에 폭스는 구겨진 얼굴을 애써 폈다.
내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판타즈마 월드는 한 번 선택한 직업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단 한 번 주어진다.
스킬 또한 새로운 직업 레벨에 맞게 주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바꾸는 유저는 거의 없었다.
그 이유가 바로 스탯 때문이었다.
힘을 중점으로 검사를 키우던 투 스타 유저가 직업을 마법사로 바꾸고 다시 시작하면 분명 다른 투 스타 마법사들처럼 마법을 쓸 수 있지만 그 위력은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엄청나게 약했다.
거기다 마나의 양 또한 몇 배로 적을 것이 분명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사에게 힘은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카나리아는 처음부터 힘 위주로 키운 캐릭터.
직업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다.
“자, 어떻게 할 거지?”
내 입가엔 미소가, 폭스의 입가에 실망이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