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4 위기
“안 돼!”
“돼.”
거세게 저항을 하며 절규를 토하던 카나리아가 싸늘한 내 말에 기침을 토하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형님, 제 부탁입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예? 이 동생의 부탁입니다!”
“그, 그래도 나보고 저 자식과 같은 괴물이 되라니…….”
인상을 구기며 말끝을 흐리는 카나리아의 모습에 나를 비롯한 자리에 모여 있던 젤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젤다는 노골적으로 살기를 흘리며 카나리아를 노려보았다.
“으음.”
그런 젤다의 모습에 마주 살기를 흘리던 카나리아가 곧 나를 보고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폭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카나리아의 모습에 폭스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블러드: 빨리 설득해라.]
카나리아를 족장 시험에 내보내기로 합의를 봤기에 바로 카나리아를 불렀고 카나리아에게 혈족을 계승할 웨어타이거 일족의 족장인 젤다까지 부른 상태였다.
처음부터 출신이 정해져 있는 NPC들과는 달리 유저들은 어디 출신의 수인족이든 간에 족장 시험을 참가할 수 있다는 폭스의 말 때문에 젤다를 부른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야수에게 물리게 하여 수인족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미 카나리아로 정한 이상 확실하게 족장을 시키기 위해서는 보통 수인족보다 월등히 강한 능력을 부여하는 혈족 계승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카나리아, 빨리 해라. 어떻게 할 거냐?”
낮은 살기를 피워 올리며 묻는 내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던 카나리아가 곧 결심을 했는지 굳은 얼굴로 폭스와 나를 바라봤다.
“미, 미안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파밧.
“혀, 형님?”
말을 끝냄과 동시에 순식간에 건물 밖으로 몸을 날리는 카나리아의 모습에 건물 안에 있던 폭스와 나 그리고 젤다는 황당했다.
큭, 저 멍청한 놈이!
“멍청한 자식…! 젤다! 티나와 함께 놈을 잡아와라!”
“예!”
못마땅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인 젤다가 티나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음 같아서는 반 죽여서라도 끌고 오라고 하고 싶지만 현재 카나리아의 강함은 젤다와 맞먹을 정도였다.
거기다 카나리아의 성격이라면 죽으면 죽었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방법이라고는 단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바로 폭스가 가서 데려오는 것.
하지만 정작 폭스는 내 옆에서 지금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미미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카나리아의 천적인 티나밖에 없었다.
카나리아보다 강하면서도 힘을 쓰지 않고 카나리아를 압도할 수 있는 존재.
나에게도 주먹을 휘두르는 카나리아를 압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티나였다.
“하하! 형님이 도망쳐버렸네요.”
“멍청한 자식.”
전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는 말은 내뱉은 내 모습에 폭스가 다시 한 번 살랑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그런 폭스를 바라보는 내 얼굴 위로 약간의 다급함이 서렸다.
현재의 나 또한 마냥 한가한 것은 아니었다.
무투 대회를 준비해 레벨을 올려야 했고 게리롱과 만나 작전도 짜야 했다.
해파토스가 주는 아이템이야 마법사의 탑이 알아서 이곳으로 옮겨줄 테니 걱정은 없었다.
예전이면 모르지만 힘이 대등한 지금은 섣불리 다른 짓을 할 수도 없다.
이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나의 레벨 업이었다.
무투 대회 전까지 적어도 쓰리 스타 중급은 만들어야 포 스타인 무라사마를 상대할 수 있다.
거기다 내가 티나를 통해 비밀리에 해파토스에게 받은 아이템을 착용하려고 해도 폭스의 시선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족장 시험을 핑계로 카나리아와 폭스를 떨어트려 놓고 최대한 빨리 쓰리 스타로 레벨 업을 한 뒤, 아이템을 착용하고 나타난다면 폭스가 뭐라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 바로 착용한다고 해도 별다른 말은 안 하겠지만 아이템의 출처나 그런 것을 꼬치꼬치 물어볼 것이 분명했기에 참고 있는 것이다.
“폭스.”
“예?”
“카나리아의 족장 시험은 너에게 맡기겠다.”
“예, 예?”
갑작스런 내 말에 폭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세요? 어디 떠나는 사람처럼…….”
“떠난다.”
“예?”
짐짓 놀란 표정으로 얼빠진 신음을 흘리던 폭스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떠나신다니요? 갑자기 그게 무슨…….”
“레벨 업하러 떠난다. 무투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건 그렇지만, 그러면 이곳의 일은…….”
“어차피 먼 곳으로 갈 생각이 없다. 이 근처에 있는 던전으로 갈 생각이니까. 거기다 자리도 잡았고 아이템이야 마법사의 탑에서 이곳으로 잘 배달해줄 것이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내 말에 폭스의 입에서 앓는 신음이 삐져나왔다.
“끄응, 그렇다면 저나 티나 님과…….”
“이번에는 혼자 사냥을 할 생각이다. 레벨 업이 절실한 시점에서 괜히 사람을 늘려 경험치를 나눌 생각은 없다.”
“끄응, 그건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흐리는 폭스의 모습에 모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폭스의 심정이야 말리고 싶지만 내가 약하다면 무투 대회에서 진실을 밝히기도 전에 탈락을 할 확률이 높았다.
1회전에서 바로 밝힐 수도 있지만 그건 마법사가짱이얌의 말대로 ‘효과’가 부족했다.
이내 폭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우, 언제 떠나실 겁니까?”
“지금.”
“지금… 예?”
“지금이라고 했다.”
평소와는 다른 멍한 얼굴로 되묻는 폭스의 모습에 내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확실히 떠나려면 지금이 적격이었다.
카인과 크란이 없어서 약간은 불안할지도 모르지만 현재 상황을 보자면 야수연합에 해를 가할 세력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복수를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와 동시에 내가 레벨 업을 할 시간도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무엇을 보나 지금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내 뭔가를 더 말하려던 폭스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혹시 모르니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가시죠.”
“식인마의 거처로 간다.”
‘식인마의 거처’는 넓고 높은 형태로 흙과 나무뿌리로 이루어져 있는 던전이다.
총 5층까지 있으며 용피병(龍皮病)이라는, 몸에 뱀과 같은 비늘이 돋아나는 병에 걸린 투칸족들이 사는데 용피병에 다른 종족의 고기가 좋다는 말을 들은 환자들이 다른 종족을 납치해서 식인의 행위를 하는 곳이 바로 이 식인마의 거처다.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용마인(龍魔人)이라 불리는 반인반용이다.
나 또한 과거에 사냥을 해보자 했지만 나타나는 확률이 극악해서 3일 동안 고생을 하고도 잡지 못한 몬스터다.
용피병의 시초라 불리는 게르맨더 일족의 이름을 본 따 게르맨더 전사, 게르맨더 주술사, 게르맨더 어쌔신 등으로 불리는 이 던전의 평균 레벨은 300에서 330으로 현재 내 레벨에 조금 벅찬 수준이었다.
‘뭐, 그렇기 때문에 가는 것이지만.’
레벨 업과 더불어 인간형 몬스터와의 실전 경험을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식인마의 거처였다.
“흐음,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하실 건가요?”
“그래.”
“포션은 갖고 계세요?”
“없다.”
내 말에 폭스가 고개를 저으며 거래를 신청했다.
[폭스 님께서 거래를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
띠리링.
[폭스 님께 최상급 체력 회복 포션 200개, 최상급 해독 포션 30개, 귀환 스크롤 3장, 성수 5병을 받았습니다.]
맑은 알림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약간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자 그제야 몸이 익숙해졌다.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나에게 이 정도 포션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것도 아니다.
미리 익숙해지지 않으면 전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 출발하실 건가요?”
“그래.”
망토를 추스르는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인 폭스의 모습을 뒤로하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건물을 나서자 조잡한 건물들로 채워져 있는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 오크들이 살던 곳을 조금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고는 하지만 데스 랜드에 비해서 훨씬 더 뛰어나 보였다.
[블러드: 게리롱.]
식인마의 거처라면 이곳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다.
태초의 숲의 초입에서는 제법 먼 거리지만 내가 있는 마을에서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이내 걸음을 옮기며 게리롱에게 귓속말을 보내고 30분 정도 지나서야 게리롱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게리롱: 미안하다. 약간의 일이 있었다.]
[블러드: 약간의 일?]
[게리롱: 그래, 망할 검은 사자 길드가 ‘밤손님’ 녀석들한테 힘을 빌려줘서 우리 길드를 방해하고 있어서 말이다. 빌어먹을 자식들.]
나직한 욕설로 끝을 맺는 게리롱의 말에 내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밤손님 길드라면 발정 난 낙타들과 더불어 유토리안에서 손꼽히는 도둑 길드다.
‘빌어먹을 무라사마……!’
분명 빌어먹을 무라사마가 나와 게리롱이 손잡은 것을 눈치 채고 밤손님 길드에게 힘을 빌려준 것이 분명했다.
밤손님 길드라면 발정 난 낙타들과 앙숙인 길드였기에 검은 사자 길드의 도움을 옳거니 하고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했다.
[블러드: 빌어먹을… 미안하다.]
[게리롱: 푸하하하! 너답지 않게 무슨 개 방귀 뀌는 소리냐! 걱정 말고 기다려라! 이 몸의 계략을 이놈들에게 보여주마! 푸하하핫!]
게리롱의 목소리에 내 얼굴에 작은 웃음이 떠올랐다.
이내 한참을 귓속말로 웃음을 터트리던 게리롱이 잠시 말을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게리롱: 근데 무슨 일이냐? 설마 날이 벌써 잡힌 건 아니겠지?]
[블러드: 부탁할 게 있다.]
[게리롱: 부탁?]
[블러드: 정확히 일주일 뒤에 태초의 숲에 있는 수인족 마을에서 족장 시험을 할 거다.]
[게리롱: 아아, 그거라면 알고 있지. 그게 왜?]
역시 최고로 손꼽히는 정보 길드의 마스터답게 내가 말하기가 무섭게 말을 받아치는 게리롱의 목소리에 내 얼굴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블러드: 다른 게 아니고, 그 족장 시험에 네 길드원들을 조금 투입했으면 좋겠다. 5명 정도로 해서 3명은 감시 역할로 2명은 정말 시험을 치르는 걸로 말이다.]
갑작스런 내 말에 잠시 대답이 없던 게리롱의 목소리가 잠시 후, 다시 울려 퍼졌다.
[게리롱: 해줄 수는 있지만… 감시라니?]
의문 섞인 게리롱의 물음에 폭스와 티나가 동맹요청서를 가지고 온 NPC를 죽인 일부터 시작해 모든 사건을 말하고 마지막에는 카나리아를 족장 시험에 참가시키는 것으로 결단을 내린 것까지 말하자 잠시 말이 없던 게리롱이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게리롱: 폭스라는 놈도 그렇지만 너도 멍청하지는 않구나. 좋아, 아주 좋아. 푸하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좋아, 아주 좋아.’를 중얼거리며 커다란 웃음을 터트린 게리롱이 말을 이었다.
[게리롱: 일주일이라… 그래, 다른 부탁은 없냐? 지금 상황이 상황이라 내가 좀 바쁘다.]
[블러드: 그걸로 충분하다.]
[게리롱: 그래, 열렙하셈!]
초등학생의 말투를 따라하는 게리롱의 말에 인상을 구기며 걸음 속도를 높이자 질퍽한 불쾌한 느낌이 발목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걸음을 옮기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까악까악.
던전 이름이 식인마의 거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시커먼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동굴의 입구에 앉아 있던 불길한 까마귀들이 소란스러운 울음을 토해내며 푸드덕 날아올랐다.
식인마의 거처는 동산 중간에 위치한 형태로 언뜻 보면 광산의 형태와 같았다.
동산의 위에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데스 랜드의 하늘 나무보다 훨씬 더 커다란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나무가 바로 게르맨더족의 수호신이라는 나무였다.
비쩍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까마귀들이 던전 입구의 유저들을 바라보며 눈알을 굴렸다.
“파티 구해요! 투 스타 성직자가 파티 구합니다!”
“쓰리 스타 궁수가 파티 구합니다! 오늘 밤 새실 분만 모집해요!”
각자 자리를 잡고 파티를 찾는 유저들로 시작해서.
“자자. 게르맨더 어쌔신들이 쓰는 독을 단숨에 회복시키는 해독 포션 팝니다! 단돈 1골드!”
“쓰리 스타 연금술사가 만든 포션 팝니다. 효과 끝내주는 포션이 단돈 5골드!”
유저들에게 아이템을 파는 장사꾼들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엘프 족과 투칸 족의 시작 지점인 태초의 숲이라 그런지 거의 80% 가까운 유저들이 모두 투칸족이나 엘프족이었다.
태초의 숲에서 몇 안 되는 던전 중의 하나라 그런지 수많은 유저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템 창.”
그런 유저들을 피해 그나마 사람이 적은 구석으로 가서 아이템 창을 열자 포션을 비롯한 소모성 아이템이 있는 무한의 주머니를 제외하고 해파토스에게 비밀리에 받은 아이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면에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살벌한 토시와 검은 빛의 반지, 그리고 검은 빛의 목걸이였다.
차례대로 아이템 착용하고 상태 창을 열어 아이템 설명을 누르자 ‘파밧’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가장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홀로그램은 가시가 촘촘히 박힌 한 쌍의 토시였는데, 학살자의 망토에 맞게 이름을 주문한 ‘학살자의 토시’였다.
-학살자의 토시(A급)-
짙은 살기를 흘리는 토시.
역한 피 냄새와 암울한 기운을 풍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행운이 사라질 것 같은 토시다. 표면의 날카로운 가시로 공격도 할 수 있다.
방어력- 40.
내구력- 90/90.
특수능력- 힘 20 상승. 행운 10 하락.
공격력 3% 상승. 성향 5% 감소.
암흑 속성의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 5% 감소.
성 속성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 3% 증가.
제작자: 해파토스.
약 5cm 정도의 날카로운 가시가 빼곡히 박혀 있는 검은 빛의 토시가 빛을 받아 불길한 빛을 번뜩였다.
그 다음은 검은 빛을 내뿜는 반지와 목걸이였다.
이것들 또한 학살자의 망토와 맞춰서 만든 아이템들이었기에 이름 앞에 ‘학살자’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학살자의 반지(A급)-
짙은 살기를 흘리는 반지.
역한 피 냄새와 암울한 기운을 풍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행운이 사라질 것 같은 반지다. 저주 주문을 하루 3회 사용 할 수 있다.
방어력- 10.
내구력- 45/45.
특수능력- 힘 20 상승. 행운 10 하락.
공격력 3% 상승. 성향 5% 감소.
암흑 속성의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 5% 감소.
성 속성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 3% 증가.
‘블라인드니스(Blindness)’ 하루 3회 사용 가능.
제작자: 해파토스.
블라인드니스라면 일시적인 확률로 일정 시간 동안 대상의 눈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투 스타의 저주 마법이다.
내 지혜가 낮은 만큼 걸릴 확률은 희박하지만 만약 걸린다면 쓸 만한 것을 떠나 엄청나게 유용한 저주 마법이었다.
‘그 다음이… 목걸이였던가?’
-학살자의 목걸이(A급)-
짙은 살기를 흘리는 목걸이.
역한 피 냄새와 암울한 기운 속에서도 은은하게 풍기는 이 신성력의 정체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행운이 사라질 것 같은 목걸이다. 어울리지 않게 엄청난 신성마법이 부여되어 있다. 3일에 1회 사용 가능.
방어력- 5.
내구력- 35/35.
특수능력- 힘 10 상승. 행운 5 하락.
공격력 5% 상승. 성향 3% 감소.
암흑 속성의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 10% 감소.
성 속성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 5% 증가.
‘레저렉션(Resurrection)’ 50% 확률로
3일에 1회 사용 가능.
제작자: 해파토스
“레저렉션?”
내 입에서 튀어 나온 경악 섞인 목소리에 주변의 유저들이 나를 바라보다 곧 미친놈 보듯이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그런 유저들의 반응에도 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해파토스가 어떻게 아이템에 이 마법을 부여한지는 몰라도 이 마법으로 이 목걸이는 순식간에 레어 등급이 될 정도였다.
비록 3일에 1회 사용 가능하긴 했지만 레저렉션이라면 부활 주문이다.
유저야 부활한다고 해도 잃은 경험치를 돌릴 수 없어 별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마법이었지만 나처럼 주변에 NPC들이 많은 유저들에게는 그 어떤 신성 마법보다 좋은 마법이었다.
비록 50% 확률이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사느냐, 죽느냐 이것 또한 반반의 확률이니까.
“크큭, 캐릭터 창.”
파밧.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끓어오르는 새로운 힘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캐릭터 창을 중얼거리자 ‘파밧’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변화를 거친 능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 블러드. 레벨: 278. 속성: 혈(血).
성향: 천악(天惡). 종족: 웨어라이언(Werelion)
명칭: 데스 랜드의 지배자.
체력: 700000. 마력: 45000. 신성력: 0.
힘: 1080. 민첩성: 100. 체력: 100.
지혜: 100. 신마력: 100. 행운: 25.
50이나 상승한 힘과는 달리 행운은 겨우 25가 하락했을 뿐이었다.
거기다 본래부터 민첩성이 낮아 크리티컬이 터질 확률은 극히 적었기에 하락한 행운을 아까워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강력한 위력을 가진 10번의 공격이지 약해빠진 10번의 공격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강력한 1번의 공격이 아니니까.
이내 파티를 구하는 유저들과 아이템을 파는 유저들을 지나쳐 던전의 입구로 들어서자 태초의 숲 특유의 음습한 기운이 몸을 휘감았다.
내 몸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마기 덕분에 몸을 휘감던 음습한 기운이 완전히 내 몸을 휘감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던전이라 그런지 역시나 1층은 몬스터를 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4명 파티는 기본으로 하는 파티도 있었고 한 명의 어쌔신이 몰아 온 게르맨더 전사를 마법사 3명이 대범위 마법을 난사해서 몰이사냥을 하는 모습도 간간히 보이고 있었다.
모두 레벨이 낮은 유저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식인마의 거처가 다른 던전에 비해 크기가 크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내 나무로 이루어진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 코너를 돌자 1층 보다는 조금 더 적은 인원이 사냥을 하는 2층이 모습을 드러냈다.
1층보다는 적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간간히 몬스터가 보이면 파티를 한 유저들 중, 궁수나 마법사가 장거리 공격으로 자신들의 파티 쪽으로 끌고 갔기에 나처럼 혼자 사냥하는 유저들은 사냥을 하기가 어려웠다.
“으음.”
짜증 섞인 신음을 흘리며 간신히 찾은 3층으로 가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이제는 음습한 기운이 아니라 불길한 사기(邪氣)가 풍기는 던전 3층이 나를 맞이했다.
역시나 난이도가 높은 3층이라 그런지 1층이나 2층처럼 저레벨의 유저들이 모여 사냥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고레벨 성직자와 고레벨 전사 2명이 파티를 하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솔로 플레이나 성직자 한 명을 데리고 사냥을 하는 경우였다.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하기에 유저들이 잘 오지 않는 던전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짙은 사기가 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를 움직였을까.
이내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발걸음에 손을 등 뒤로 뻗으며 안력을 돋우자 던전의 어둠과는 이질적인 색의 2m 정도 되어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너울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정도 덩치라면 게르맨더 전사가 분명했다.
“파천기.”
우우웅.
등에서 꺼낸 도를 손에 쥐고 파천기를 중얼거리자 ‘웅웅’ 하는 공명음과 함께 도가 낮게 몸을 떨며 짙은 검은 빛에 휩싸였다.
이내 마나를 끌어올려 도로 보내자 낮은 진동과 함께 나타난 핏빛 도기가 검은 파천기와 어우러져 기묘한 색의 기운을 피어 올렸다.
-크르륵, 거기 누구냐?
짙은 마기를 피워 올리는 나를 발견하고 어둠 속의 게르맨더 전사가 가래 끓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래 같았으면 바로 공격을 하겠지만 게르맨더족 자체가 몬스터로 설정이 되어 있기에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보고는 나를 아군으로 판단한 것이다.
입가에 떠오르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가장 많은 마기를 피워올리는 도를 앞으로 뻗으며 한 발짝 다가서자 빠른 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던 게르맨더족이 거의 내 앞까지 다다른 지점에서 멈칫했다.
-크륵? 동료 맞나? 살기가……?
“큭, 죽어라!”
후우우웅.
퍼억.
더 이상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게르맨더 전사를 향해 일갈을 내뱉으며 재빨리 도를 휘두르자 대기를 찢어발긴 도의 끝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딸려왔다.
바로 방금 전의 공격으로 반쯤 부서진 어깨 보호대였다.
“제길……!”
-적이다! 크르륵. 적!
쒜에엑.
까강!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쏘아진 무언가에 재빨리 도를 들어 얼굴을 가리자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30cm 정도 길이의 침이 떨어졌다.
침 끝에 바른 독으로 은은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침에 내 얼굴이 작게 구겨졌다.
이와 같은 독을 바른 침 종류의 암기는 게르맨더 전사가 아니라 게르맨더 어쌔신이 사용하는 무기였다.
“게르맨더 어쌔… 헉?”
후우웅.
꽝!
‘신’이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어둠을 가르는 묵직한 파공음에 숨을 삼키는 것도 잠시, 이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살기에 재빨리 뒤로 몸을 날리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방금까지 내가 있던 바닥의 흙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르륵! 적이었군. 그리고 나의 병을 낫게 해줄 약이야! 크르륵.
진득한 살기를 날리며 다시 한 번 불쾌한 소리를 흘린 거대한 그림자가 게르맨더 일족 특유의 기다란 팔을 휘적거리며 어둠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게르맨더 전사였군.’
혹시나 게르맨더 어쌔신인가 하는 내 의구심은 모습을 드러낸 게르맨더족 머리 위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대는 ‘게르맨더 전사’라는 이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살기를 뿜어내자 도를 비롯한 내 몸에서 다시금 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크르륵?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침없는 기운에 잠시 멈칫한 게르맨더 전사가 뱀의 눈을 연상시키는 가로로 갈라진 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손에 들린 거대한 도끼를 만지작거렸다.
언뜻 봐도 2m 30cm 정도 되어 보이는 커다란 키와 왜소한 몸,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형적인 긴 팔과 부대자루를 거꾸로 덮어쓴 듯한 복장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번들거리는 비늘은 어떻게 보면 리자드맨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겨우 레벨 150인 리자드맨이 레벨 300인 게르맨더족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어이, 도마뱀.”
-캬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의 비늘을 곧추세운 게르맨더 전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위협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이내 오른쪽으로 도를 흘리며 다리를 약간 구부려 도약할 자세를 취하자 나를 노려보던 게르맨더 전사가 전의 그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나를 향해 들려 들었다.
“파천기!”
-크르륵. 먹혓!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린 게르맨더 전사의 도끼가 무거운 파공음과 함께 내 망토를 자르고 옆구리를 스쳤다.
간발의 차이로 갑옷을 긁은 도끼에 게르맨더 전사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내 얼굴에는 약간의 분노가 떠올랐다.
큭, 폭스 같은 자식!
“아끼는 망토였단 말이다!”
-크륵?
뜬금없는 내 외침에 게르맨더 전사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잠시, 이내 옆으로 흘렸던 도가 무거운 소리와 함께 게르맨더 전사의 옆을 스치자 순간적으로 굳었던 게르맨더 전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도 잠시.
이내 게르맨더 전사를 스쳐 위로 치솟았던 도가 그대로 원을 그리며 반대쪽 방향으로 돌아오자 게르맨더 전사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크륵! 아, 안 돼!
“돼!”
푸화악.
깔끔하게 베는 소리가 아닌 무참히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게르맨더 전사의 미지근한 피가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몸을 적셨다.
-크르릇! 크릇!
“죽어라!”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베이지 않은 쪽의 손으로 도끼를 들어올리는 게르맨더 전사의 모습에 내 손에 도가 다시 한 번 낮은 울음을 흘렸다.
서걱.
방금 전과는 달리 깔끔한 소리와 함께 도끼를 들고 있던 게르맨더 전사의 팔이 반으로 갈라지며 피를 뿌렸다.
-크르릇!
까강.
날카로운 비명을 흘리며 팔을 부여잡은 게르맨더 전사의 앞으로 방금 전까지 게르맨더 전사가 휘두르던 도끼가 떨어지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짙은 핏빛의 도기가 휘감긴 도가 게르맨더 전사의 가슴을 갈랐다.
스걱.
푸화악.
팔이 잘릴 때와는 다르게 무거운 소리와 함께 게르맨더 전사의 가슴이 쩍 갈라지며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엄청난 피에 망토를 거두며 재빨리 거리를 벌린 뒤 도를 들어 게르맨더 전사를 겨누자 자리에 선 채로 피를 쏟아내던 게르맨더 전사가 털썩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륵, 크르륵…….
“이제 그만 죽어라.”
우우웅.
갑작스런 내 말에 게르맨더 전사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잠시, 이내 낮게 우는 도에 게르맨더 전사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크릇. 난 여기서 이렇게 죽지만… 곧 라데스 님이… 우릴 이끌고… 세상의 종말……!
“닥쳐라.”
푸욱.
부르르.
라데스의 이름을 들먹이며 마지막까지 저주를 퍼붓는 게르맨더 전사의 목에 도를 박아넣는 내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고곤의 장로들에게 받은 퀘스트에서 처리했던 스톰 자이언트 또한 이 세상에 나올 뭔가를 몹시도 두려워했다.
그러면서 뇌물을 바쳐야 산다고도 했다.
하지만 스톰 자이언트가 말한 아이의 순수함이나 그런 것을 보자면 ‘암천왕 라데스’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어둠의 전사들의 대왕.
그것이 바로 암천왕 라데스다.
다크워리어, 다크자이언트, 다크엘프, 게르맨더 일족 그리고 내가 이끄는 수인족을 비롯해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의 전사들의 진정한 대왕이자 루키아논의 군대 중, 가장 강력한 암흑투마군단(暗黑鬪魔軍團)의 주인이었다.
육악왕 중에 가장 말이 적고 무거운 라데스와 스톰 자이언트가 말한 아이의 순수함은 거리가 멀었다.
‘제기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꼬여가는 현실에 막 인상을 구기며 모래가 되어 사라진 게르맨더 전사에게 나온 몇 개의 금화를 수거하고 몸을 돌리는 내 앞으로 또 다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륵. 거기 누구냐? 동료?
“크크큭! 그래, 동료다.”
우우웅.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다가가는 내 도가 살기 어린 울음을 흘렸다.
푸욱.
-크르륵. 아, 악마……!
작은 떨림을 끝으로 모래가 되어 사라지는 게르맨더 주술사의 마지막 중얼거림에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 소리는 지겹도록 들었다.”
띠리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미약한 신음을 끝으로 모래가 되어 사라지는 게르맨더 족장의 목에 박힌 도를 뽑음과 동시에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에 내 얼굴에 걸린 씁쓸한 웃음이 한층 짙어졌다.
“캐릭터 창.”
파밧.
이름: 블러드. 레벨: 296. 속성: 혈(血).
성향: 천악(天惡). 종족: 웨어라이언(Werelion)
명칭: 데스 랜드의 지배자.
체력: 717000. 마력: 49800. 신성력: 0.
힘: 1134. 민첩성: 100. 체력: 100.
지혜: 100. 신마력: 100. 행운: 25.
현실 시간으로는 7일, 게임 시간으로는 14일 동안 엄청나게 올라간 레벨과 능력치에 짙은 웃음을 흘렸다.
처음 3일은 3층에서 게르맨더족의 전투 방법에 익숙해지기 위한 전투였고 나머지 4일은 2마리 혹은 제법 많은 수의 게르맨더족이 무리를 이루어 나오는 4층에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사냥을 했기에 이만큼이나 오른 것이다.
폭스에게 받은 물약은 처음 3일에 모두 사용했기에 2일에 한 번씩 폭스가 보낸 심부름꾼이 주는 물약을 받고 속칭 ‘물약발’로 사냥을 했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무리를 이루어 나오는 게르맨더족과 싸울 때는 그 대단한 물약발도 소용이 없었다.
게르맨더 전사 2마리와 게르맨더 어쌔신 1마리, 그리고 게르맨더 주술사 1마리, 총 4마리로 이루어진 이 무리는 용마인이라 불리는 식인마의 거처의 보스 몬스터 다음으로 가장 강한 몬스터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나마 계속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은 확률로 나오는 것이기에 상대할 수 있던 것이다.
몇 시간 전에 대화를 나눈 폭스 말로는 이제 막 카나리아가 족장 시험에 참가했다고 했으니 아마 늦어도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카나리아를 수인족으로 만드는 데 엄청난 고생을 했다며 불만을 토하는 폭스의 목소리를 생각하자 내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다시 사냥을 해볼까.”
용마인을 잡기 위해 5층으로 가는 파티를 제외하고는 유저들을 보기 힘든 4층이었기에 마음 놓고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몇 시간 뒤에는 나가야 했기에 마지막 사냥이라고 생각하며 꺼낸 포션을 아낌없이 마셔 체력을 회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 몸을 따라 옅은 마기가 일렁였다.
식인마의 거처에 오면서부터 짙어지는 마기에 의아해하며 몇 걸음을 옮긴 것도 잠시, 이내 옅은 안개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 무리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길, 연속으로 두 무리를 만나다니.’
방금 전 처리한 게르맨더 주술사 또한 4마리로 이루어진 게르맨더 무리의 게르맨더 주술사였다.
체력이야 포션을 이용해서 괜찮겠지만 정신적 피로는 포션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왕의 기운.”
우우웅.
내 몸을 휘감는 검은 기운에 나를 향해 다가오던 그림자 무리가 멈칫하는 것도 잠시, 이내 그림자 무리 중, 게르맨더 전사로 보이는 2개의 인영으로 앞으로 나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조금만 가까이 와라.’
용피병에 걸리기 전에는 라그아노를 따르는 투칸족이었다고는 하지만 용피병에 걸려 식인마의 거처로 온 게르맨더족은 모든 어둠의 전사들의 대왕인 라데스의 충실한 노예다.
그런 게르맨더족이 라데스의 기운을 품고 있는 악왕의 기운을 몸에 두른 나를 적으로 의심할 리가 없었다.
‘다섯 걸음만 더!’
부르르.
꽈악.
강맹한 힘을 머금은 다리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부르르 떨었다.
그와 동시에 도를 잡은 내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우우웅.
끓어오르는 살기에 반응이라도 하듯 손에 들린 칠흑의 마도가 낮은 울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해 다가오던 게르맨더 전사가 막 다섯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걸음을 멈칫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크르륵? 동료?
“크허어엉!”
오늘 들어 처음으로 터진 제왕의 포효에 앞의 게르맨더 전사들은 물론이고 뒤에서 대기하던 게르맨더 주술사와 게르맨더 어쌔신 또한 몸을 들썩였다.
그와 동시에 힘을 머금고 잔뜩 팽창했던 내 다리가 힘차게 도약했다.
“크하압!”
쓰으응.
푸확.
-크아아악!
-키아악!
거친 파육음과 함께 내 도에 걸린 두 개의 그림자가 각자 비명을 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 게르맨더 전사는 목이 반쯤 잘려 죽음이 분명한 상태였지만 다른 한 마리는 잘린 팔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칫, 짧았나?’
안타까움을 토하며 도를 들어 다시 공격을 하려는 순간, 몸을 들썩이던 게르맨더 주술사가 나를 향해 완드를 겨누며 음산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크르릇! 사빌라트 욤 나하바르 카빌라!
푸화악.
게르맨더 주술사의 기묘한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낸 10cm 정도 크기의 기묘한 벌레들이 윙윙 울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게르맨더 주술사 곁에 있던 게르맨더 어쌔신이 벌레의 뒤를 따라 붙으며 손에 들린 단검을 움켜잡았다.
‘제길……!’
“크허어어엉!”
-끽!
-크륵?
두 번째로 내지른 제왕의 포효에 코앞까지 다가온 벌레들이 발작을 하며 애꿎은 어쌔신을 물어뜯었다.
-크르릇!
“크하압!”
퍼억.
힘찬 기합과 함께 올려친 도가 마구 몸부림치던 게르맨더 어쌔신의 가슴을 쪼개고 피를 흠뻑 들이켜며 낮은 울음을 흘렸다.
이내 도를 뽑아 눕혀 납작한 도면 부분을 세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휘두르자 게르맨더 어쌔신을 물어뜯던 벌레들이 도면과 부딪히며 진물을 터트렸다.
도에 묻은 질퍽한 진물을 털어낸 뒤 게르맨더 주술사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뭔가 주문을 외우던 게르맨더 주술사가 내 곁에서 죽어가는 게르맨더 어쌔신과 게르맨더 전사를 동시에 가리키며 음습한 외침을 토해냈다.
-크릇. 욤 사할라 욜카딘토 카빌라 노칼드라! 부르탄트 라흐칸!
솨아아아.
게르맨더 주술사의 외침과 동시에 음습하게 피어 오른 검붉은 안개가 게르맨더 어쌔신과 게르맨더 전사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자신의 몸으로 스며드는 붉은 안개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내 게르맨더 어쌔신과 게르맨더 전사의 몸이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곧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며 사방으로 살점을 퍼트렸다.
푸푸푸푹.
“크아악!”
살점 하나하나가 데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갑옷을 입었는데도 찌릿찌릿 하는 데미지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지끈거리는 옆구리의 통증에 무심코 손을 가져다 댄 내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큭……?”
갑옷과 갑옷이 교차하는 교묘한 부분에 박힌 날카로운 무언가를 뽑은 내 손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일 정도로 얇은 5cm 길이의 침이 볼품없이 구부러져 있었다.
우드득.
“제기랄.”
침 끝에 바른 독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갑작스레 일그러지는 시야에 욕을 내뱉으며 재빨리 아이템 창에서 해독 포션을 꺼내 마시려는 순간, ‘푸슉’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내 손에 들린 해독 포션이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손을 적시는 해독 포션의 차가운 감촉과 짙은 시금치 냄새에 인상을 구기며 또 다시 해독 포션을 꺼내려는 순간, 둔탁한 무언가가 내 등을 후려쳤다.
꽈아앙.
“커헉!”
등을 후려치는 엄청난 힘에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힌 내 입에서 고통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취하려고 해도 일그러지는 시야에 맞춰 몸 또한 마구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큭, 빌어먹을!
‘해, 해독 포션을……!’
푸슉.
쨍그랑.
“제기랄!”
막 입에 쏟아 부으려던 해독 포션이 깨어지는 소리에 내 입에서 거친 욕이 튀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음습한 존재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곧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내 배를 올려쳤다.
퍼억.
“컥!”
다행히 날이 있는 무기 종류가 아니라 해머나 몽둥이 종류의 무기 인 듯, 배 위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에 숨을 삼키며 몸을 굴려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또 다시 음습한 기운의 무언가의 존재감이 점점 가까워졌다.
푸슉.
푹.
마지막 사살이라도 하 듯, 다시 한 번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이어 목 위로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가뜩이나 어지럽던 시야가 이제는 바로 앞의 사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제길,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나!’
이 상황을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야수화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마침 체력 또한 아슬아슬하게 3분의 1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길, 야수……!”
“아버지여! 파멸은 창조의 또 다른 뜻! 모든 파멸을 담당하는 아버지의 힘을 빌려 이 앞의 아버지의 자식을 괴롭히는 저속한 기운을 파멸하소서! 큐어 포이즌(Cure Poison)!”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내 시야를 일그러트리던 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