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챕터6 광기 (20/34)

챕터6 광기

“제길, 제길, 제길!”

거대한 돔 형태의 칠흑의 공간에 굵은 저음의 욕설이 울려 퍼졌다.

욕설을 내뱉는 남자의 정체는 바로 천급 운영자인 무라사마, 즉 강철중의 또 다른 친구인 현무였다.

현무의 불안한 눈빛이 꽂히는 거대한 홀로그램에는 막 어느 던전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거대한 검붉은 포탈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점차 커져가는 포탈의 입구에 맞춰 현무의 입에서 나오는 욕설 또한 빨라졌다.

“제길, 이 자식은 메시지 보낸 지가 언젠데 안 오는 거야!”

강철중의 부탁으로 블러드를 감시하던 현무가 저 검붉은 포탈을 발견한 시간은 겨우 3분 전이었다.

쾅!

“현무!”

현무의 바람이 통했는지 곧 거친 소리와 함께 열린 문으로 강철중과 함께 붉은 장발의 사내가 들어왔다.

현무는 갑작스런 사내의 등장에 당황하다가, 곧 저 붉은 장발의 사내가 철중과 같은 드래곤 클럽의 멤버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불편한 눈으로 철중을 바라봤다.

현무처럼 하루 살기도 힘든 사람에게 있어 드래곤 클럽의 사람은 그저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친구인 철중은 제외지만.

“SS급 퀘스트라니! 그게 사실이냐?”

현무의 불편한 시선을 무시한 강철중이 그답지 않게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건 강철중의 옆에 있는 붉은 머리의 사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 말로만 듣던 SS급 퀘스트다. 아직 업데이트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말끝을 흐리는 현무의 모습에 강철중과 붉은 머리 사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급 운영자조차 존재를 모르는 SS급 퀘스트라니!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강철중의 아버지이자 판타즈마 월드의 시초라 불리는 강현철의 직속 비서인 유영혁, 그밖에 없었다.

강현철이 내린 명령만을 따르는 비서로 신급의 능력을 가진 유일한 운영자라는 직함 또한 가지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드래곤 클럽의 유희를 허락한 강현철과 드래곤 클럽에 속한 젊은이들의 부모들의 마지막 카드인 유영혁은 드래곤 클럽의 유희가 도를 지나쳤다 싶으면 항상 나타나 유희를 제지했다.

그런 유영혁은 드래곤 클럽에게 있어서 최악의 적이었다.

유영혁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몰랐다.

언제는 거대 길드의 수장으로 나타나 드래곤 클럽에 속한 길드들을 쓸어버렸고, 또 언제는 보스 몬스터로 변해 몬스터들과 함께 드래곤 클럽에 속한 길드들을 공격했다.

그는 항상 그런 식으로 압도적으로 강해지지 못하게 그들의 세력을 견제했다.

“유영혁, 이 빌어먹을 새끼!”

조용히 홀로그램을 바라보던 붉은 머리 사내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건 강철중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체 유영혁은 무슨 생각이 있어서 블러드에게 SS급 퀘스트를 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퀘스트가 발동된 이상 무를 수는 없었다.

물론 멍청한 드래곤 클럽의 쓰레기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를 테지만 적어도 강철중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굳은 얼굴로 신음을 흘리는 붉은 머리 사내의 모습에 강철중의 입가에 짙은 비웃음이 걸렸다.

‘쓰레기 같은 놈.’

그들에게 있어 제물은 항상 자신들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는 원숭이에 불과했다.

그런 원숭이가 손을 물어버렸으니 곱게 자라온 쓰레기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마 붉은 머리 사내가 쓰레기들 중에 똑똑해서 사태를 깨달은 것이지, 나머지 쓰레기들은 여전히 마약에 취해 과거 자신들의 유희거리였던 제물들을 안주로 술을 들이켜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재미있게 됐군.’

비틀린 미소를 흘린 강철중이 여전히 굳은 표정의 붉은 머리의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잘된 일이다.”

“뭐가? 지금 웃음이 나와? 제물이 우리 예상 밖으로 행동하고 있단 말이다! 제길! 하는 수 없어. 다시 계획을 짜서 저 자식을 영구 삭제하거나 지금 죽여 버려야 한다고! 아니면 저 SS급 퀘스트를 소멸하든지!”

횡설수설하는 붉은 머리 사내의 모습에 조소를 머금은 강철중이 말을 이었다.

“저 퀘스트를 누가 줬는지 잊었냐. 바로 그 빌어먹을 유영혁이 준 거다. 겨우 천급 운영자가 소멸할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니다.”

“그럼 어쩌잔 거야! 제기랄!”

“우린 전지전능한 드래곤이다. 제물이 조금 강해지면 뭐 어때.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우린 드래곤이니까.”

조소를 머금은 강철중의 말에 횡설수설하던 붉은 머리 사내가 멈칫하는가 싶더니 곧 광기 짙은 웃음을 흘렸다.

“크큭. 그래, 우리는 드래곤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제물은 우리 손을 벗어나지 못해. 크크크… 그래, 우리는 드래곤이야. 키키킥.”

홀로그램 속 검붉은 포탈을 바라보는 붉은 머리 사내의 눈에는 광기가 있었다.

또 그런 붉은 머리사내를 바라보는 강철중의 눈 또한 광기로 휩싸였다.

‘미쳤어. 둘 다 미쳤어.’

그런 그 둘을 바라보는 현무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 * *

드드득.

우우우웅.

포탈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짙은 마기에 입고 있는 칠흑의 갑옷과 손에 든 칠흑의 마도가 거침없이 떨렸다.

“으음…….”

온몸을 억누르는 짙은 마기에 내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공간에서 마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오직 마리아뿐이었다.

“큭! 마리아, 빨리 아이템을 챙겨라.”

“아, 알겠어요.”

점차 크기를 키워가는 포탈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마리아가 황급히 용마인에게서 나온 반지와 목걸이, 그리고 가죽 갑옷을 주운 뒤 재빨리 내 뒤에 숨었다.

저 포탈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 마기라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무언가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마리아, 귀환 스크롤을 찢어서 도망쳐라.”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죽어도 같이 죽어요. 분유 값도 벌었으니 손해는 아니네요. 호호.”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인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는 마리아의 모습에 내 입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자신이 해놓고 부끄러운지 붉어진 얼굴로 웃음을 흘리는 마리아의 모습에 내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그럼 최대한 버티다 최악의 경우에는 귀환 스크롤을 찢어라. 스크롤 발동 불가능 지역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알겠어요.”

우우우웅.

이내 거의 5m 정도의 크기로 벌어진 포탈 사이로 드디어 짙은 마기를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거대한 검이었다.

나와 같은 검붉은색의 기묘한 기운이 휘감긴, 거의 3m에 가까운 장검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내 허리 굵기만 한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마기가 휘감긴 검은색 갑옷으로 둘러싸인 팔 다음은 바로 거대한 발이었다.

쿠궁!

쩌저적.

거대한 발이 땅과 만나자 땅이 쩍쩍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촉촉했던 땅이 발과 만나자마자 흉하게 갈라지며 곧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삭막한 땅으로 변했다.

그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람에 일렁이는 검은 망토였다.

내 학살자의 망토와 비슷하지만 그 검은 망토는 액체로 이루어진 것처럼 마구 출렁였다.

드드득.

그 다음은 악마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갑옷이었다.

가슴 부분과 양 어깨에 악마의 얼굴을 조각한 갑옷을 보는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칠흑의 갑옷!’

분명 저 갑옷은 내가 입고 있는 칠흑의 갑옷이 분명했다.

휘감고 있는 마기의 양이나 크기가 더 클 뿐이지 모양은 틀림없는 칠흑의 갑옷이었다.

‘설마!’

우르릉.

꽈가강!

한 가지 의문을 품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포탈 건너편에서 커다란 천둥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검은 투구를 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구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색 안광과 몸 전체를 휘감고 망토마저 펄럭이게 마는 강력한 마기는 이 거대한 전사가 분명 내가 생각하는 존재가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암천왕(暗天王) 라데스!

육악왕(六惡王) 중 최강, 최악의 악왕(惡王)!

암흑투마군단(暗黑鬪魔軍團)의 주인이며 모든 어둠의 전사들의 진정한 주인!

이 거대한 전사는 분명 그 라데스가 분명했다.

던전을 가득 메우는 마기와 계속 떨리는 내 도와 갑옷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형형한 붉은 빛을 흘리는 라데스의 두 눈이 나와 마리아에게 꽂혔다.

[노예는 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어라.]

우르르르.

콰광!

지옥에 사는 악귀의 울부짖음이 저러할까.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라데스의 목소리에 사방에서 천둥이 울려 퍼졌다.

[노예는 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어라.]

똑같은 말을 내뱉는 라데스의 모습에 내가 조용히 앞으로 나서 무릎을 꿇자 뒤에 있던 마리아가 ‘어? 어?’ 하며 당황해했다.

라데스가 말하는 노예는 내가 분명했다.

내가 현재 대 족장으로 있는 수인족 또한 어둠의 전사로 라데스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나와 얼마 남지 않은 용마인의 모래 더미를 바라보던 라데스가 입을 열었다.

[수인족이로군. 그리고 강해. 너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

“그게 무슨…….”

우르릉!

꽈광!

내가 막 질문하려는 순간, 사방에서 천둥과 함께 검붉은 번개들이 아우성쳤다.

[너는 충분히 자격이 있다. 너는 이후에 세상에 나올 ‘나이트메어’와 함께 루키아논 님의 뜻을 펼쳐라. 너에게 군단장(軍團匠)의 자리를 주겠다. 너는 나의 대리인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의 전사들을 모아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넣어라.]

쿠궁!

거침없는 라데스의 말에 뒤통수를 둔기로 맞은 양, 강력한 충격이 느껴졌다.

나이트메어라면 육악왕 중 악몽왕(惡夢王)이라 불리는 악왕이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잔인한 아이의 성격으로 모습 또한 아이의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다.

고곤에서 스톰 자이언트가 말한 그 존재는 이 나이트메어가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충격에 휩싸인 이유는 나이트메어 때문이 아니었다.

군단장!

이 단어가 뜻하는 바는 단순하지가 않다.

군단장이라면 분명 수인족, 게르맨더족, 다크자이언트, 다크엘프, 다크워리어 이 다섯 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 암흑투마군단(暗黑鬪魔軍團)의 군단장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현재 내가 가진 힘의 서너 배에 가까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엄청난 힘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오히려 사정을 해서라도 받아내야 했다.

“감사합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명을 받들겠습니다.”

[으음.]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던 라데스가 용마인의 모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우우우웅.

라데스의 몸에서 솟구친 마기가 모래와 부딪치자 놀랍게도 모래의 양이 불어나는가 싶더니, 곧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뼈와 근육들이 제 모습을 갖추어 용마인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다.

-크르릇! 주인이시여!

마침내 완전하게 부활해 힘찬 목소리를 흘리는 용마인을 노려보던 라데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본래는 너에게 군단장의 자리를 주기 위해 이곳으로 왔으나, 너는 수인족에게 패했다. 비록 적이 다수였다고는 하나, 패자가 군단장이 될 수는 없는 법! 무적을 자랑하는 나의 암흑투마군단(暗黑鬪魔軍團)의 군단장에게 패배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크르릇. 죄송합니다, 주인이시여!

[너는 이 수인족을 도와 세상에 있는 나의 노예들을 모아라.]

-크르릇. 알겠습니다!

힘찬 목소리를 토해내는 용마인을 뒤로한 라데스가 나를 향해 손을 뻗자 칠흑의 갑옷이 거침없이 울부짖으며 마기를 토해냈다.

그리고 라데스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칠흑의 갑옷과 부딪치자 칠흑의 갑옷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터져 나왔다.

[군단장이라는 증표는 너의 갑옷이다. 이후 어둠의 전사들을 모아 그들의 힘을 모은다면 나의 힘을 담고 있는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라데스를 향해 내뱉는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라데스의 힘을 담고 있는 도라면 분명 신급 아이템이 분명했다.

흥분에 빠져 몸을 떠는 내 앞으로 다가온 라데스가 용마인의 도보다 훨씬 더 커다란 검을 들어 내 양 어깨를 한 번씩 지그시 눌렀다.

[너는 나의 대리자로서 루키아논 님의 노예가 되었다.]

띠리링.

[명칭이 데스 랜드의 지배자에서 암흑투마군단장(暗黑鬪魔軍團匠)으로 변경됐습니다.]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성향이 변경됐습니다.]

귓가를 울리는 여인의 목소리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는 것도 잠시, 곧 내 앞에 있던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며 내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 또한 사라졌다.

“대, 대체 방금 그게 뭐에요? 노예라니? 세상에! 그리고 수인족이었어요?”

-크르륵! 그거 아니다! 주인이다!

라데스를 ‘그거’라고 표현하는 마리아의 포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용마인이 거친 숨을 내쉬며 날카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하나씩 물어라.”

“그, 그러니까…….”

더듬거리며 말끝을 흐리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마리아가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을 거잖아요.”

“아니, 말해주마.”

“정말요?”

눈을 치켜뜨며 묻는 마리아의 모습에 피식 웃자 나를 바라보던 마리아가 양 볼에 가득 바람을 물고 말을 이었다.

“됐어요. 그냥 모르고 지낼래요. 전 아이템으로 만족해요.”

“그래?”

“예, 대신 용마인…에게서 나온 아이템은 제가 다 가져도 되죠? 오늘 본 것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용마인에게 나온 아이템 운운하던 마리아가 내 뒤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용마인을 보고는 잠시 멈칫하다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리아 님이 친구를 신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이것도 인연인데 거절하지는 않겠죠?”

방금 전 용마인에게 겁먹은 모습과는 달리 당찬 모습을 보여주는 마리아의 행동에 내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수락.”

[마리아 님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후훗.”

살짝 웃음을 흘린 마리아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아이들이 급하게 부르네요.”

“그래, 네가 말했지만 이번 일은…….”

“알겠어요. 비밀이요.”

내 말을 끊고 웃음을 흘린 마리아가 돌연 나에게 다가와 내 볼에 입술을 댔다.

쪽.

따듯하고 촉촉한 무언가가 닿았다고 느낀 순간, 귀환 주문서를 찢은 마리아의 몸이 빛에 싸였다.

눈부신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갑자기 뽀뽀를 당한 내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하하…….”

띠리링.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묘한 여운을 남기는 볼을 쓰다듬으며 메시지를 클릭하자 마리아가 보낸 메시지가 홀로그램으로 변해 ‘파밧’ 하고 나타났다.

<설마 뽀뽀 한 번 했다고 화내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자주 메시지 보낼게요. 무시하지 말고 꼭 답장주세요.>

‘웃기는 여자군.’

마치 월향과 같이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마리아의 모습에 내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하지만 월향은 뱀 같은 여자지만 마리아는 봄바람 같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여자라는 차이가 있다.

‘요즘 봄바람은 병이나 안 걸리게 하면 다행이지만.’

“훗.”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흘리던 내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 흠칫했다.

요즘 점점 내 가슴 속에 응어리지고 있는 것들이 풀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직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마리아의 메시지를 삭제하는 내 눈이 살기로 가득 찼다.

“용마인!”

-크르릇. 예!

차가운 내 부름에 내 곁으로 다가온 용마인이 고개를 숙였다.

키가 커서 그런지 고개를 숙였음에도 나보다 더 커다란 용마인의 모습에 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내가 군단장을 맡은 이상, 용마인은 나의 수하나 다름없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라데스의 대리인이었기에 나를 대하는 용마인의 태도가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크큭. 캐릭터 창.”

이름: 블러드. 레벨: 301. 속성: 혈(血).

성향: 악중악(惡中惡). 종족: 웨어라이언(Werelion).

명칭: 암흑투마군단장(暗黑鬪魔軍團匠).

체력: 1750000. 마력: 85000. 신성력: 0.

힘: 1580. 민첩성: 700. 체력: 450.

지혜: 150. 신마력: 150. 행운: 200.

바뀐 성향과 명칭은 둘째 치더라도 용마인을 죽이고 오른 레벨과 엄청나게 오른 능력치에 내 입에서 들뜬 웃음이 터져 나왔다.

레벨이 오르면서 주어진 스탯을 힘에 투자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 능력치에 야수화까지 한다면 무라사마나 포 스타라고 할지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거기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 갑옷과 어둠의 전사들을 모두 모았을 때 받는다는 라데스의 힘이 깃든 신급 아이템이라면 무라사마는 물론이고 베팔까지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현재 내 휘하에 있는 야수연합과 2천의 드워프 전사들, 그리고 게리롱의 힘이라면 마법사의 탑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복수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내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나를 배신한 검은 사자 길드나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마법사의 탑이나 다 똑같은 것들이었다.

“크크큭.”

낮은 웃음을 흘리며 익숙한 손길로 갑옷의 설명을 누르자 모양은 같지만 내용이 완전히 변해버린 갑옷의 설명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천섭혼갑(暗天攝魂鉀)(S급)-

라데스의 힘을 머금은 갑옷.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끌어 모아 착용자의 힘으로 만들어주는 저주받은 갑옷으로 오직 라데스의 대리자만이 착용할 수 있다. 암흑투마군단장의 권한을 나타내는 두 가지 증표 중 한가지로 섭혼강기를 사용할 수 있다.

방어력- 2500.

내구력- 무한.

특수능력- 하루 1회 섭혼강기 사용 가능.

-섭혼강기(攝魂强氣)-

암천섭혼갑의 권능이 스며든 안개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안개 안의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력과 함께 다시 빨아들이는 것.

마나 소모- 없음.

특수능력- 10m 안의 모든 생명체의 체력 10% 흡수.

5%의 확률로 10m 안의 적 이상상태에 빠트림.

하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하는 스킬이었다.

특히나 나처럼 적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전투를 치르는 전사들에게는 무엇보다 좋은 스킬이었다.

“용마인.”

-크르릇. 예!

내게 다가온 용마인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당장에 용마인만 하더라도 검은 사자 길드에서 붉은 기사라 불리는 율칸과 대등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나 대신 군단장의 이름으로 모든 어둠의 전사의 지도자를 모아라.”

-크르릇! 제가 어떻게 감히…….

용마인이 흉측한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몸을 떨었다.

만약 내가 내 이름과 함께 군단장이라는 지위를 내걸고 어둠의 전사들을 모은다면 분명 내 곁에 있는 폭스가 눈치를 챌 테고 그렇다면 마법사의 탑에서도 제재가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수인족까지 모인다면 태초의 숲에 있는 수인족의 족장의 귀에도 내 이야기가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카나리아가 족장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내가 군단장이라는 것을 카나리아가 안다면 그 녀석은 분명 폭스에게 고자질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거추장스럽지만 대리인을 세우려는 것이다.

그리고 정체를 감추기 위한 방법은 이미 생각해뒀기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상관없다. 날짜는 3일 후. 위치는 절망의 숲 중앙에 있는 동굴이다.”

-크르릇. 절망의 숲, 3일 후. 알겠습니다.

“모든 어둠의 전사들을 모아라! 지금 당장!”

-크르릇! 예!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용마인의 모습에 내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절망의 숲이라면 태초의 숲 외곽에 있는 커다란 숲으로 어둠의 전사들 중 한 일족인 다크엘프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수는 적지만 수인족보다 레벨이 높고 강한 다크엘프들이 사는 절망의 숲이라면 마법사의 탑에서 나에게 붙이려는 감시자들조차 쉽게 따라붙지 못할 것이기에 모임 장소를 그곳으로 정한 것이다.

“휴우…….”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리자 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곧 등장할 나이트메어를 도와 세상을 혼란으로 빠트리라는 라데스의 명령은 둘째 치고 암흑투마군단은 나에게 엄청난 힘이었다.

“크크큭.”

낮은 웃음을 흘리며 노란 빛이 반짝이는 스킬 창을 클릭하자 몇 개 없는 스킬이 나열되어 있는 스킬 창이 나타났다.

수인족으로 변하면서 얻은 제왕의 포효와 야수화,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을 착용하면서 얻은 레저렉션과 블라인드니스, 마지막으로 검붉은색의 불꽃 모양의 섭혼강기였다.

스윽.

섭혼강기를 사용할 생각으로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리자 곧 짙은 마기로 변한 마나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섭혼강기!”

푸화아악!

내 몸을 휘감고 있던 마기가 터지듯 한꺼번에 사방으로 뻗어나가 주변을 덮쳤다.

스킬 설명란에 있는 10m라는 사정거리대로 사방으로 뻗어나간 검붉은 마기가 다시 내 몸에 스며들었다.

사정거리 안에 생명체가 없어서 체력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러웠다.

후우웅.

예전에는 조금 버겁다고 느껴지던 도의 무게 또한 가벼웠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폭스에게서 받은 귀환 스크롤을 찢자 발밑에서 터져 나온 빛이 내 몸을 감쌌다.

“대 족장께 인사드립니다!”

딱딱한 땅의 느낌이 발에 느껴짐과 동시에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흐릿한 눈을 뜨자 통나무를 나르던 10명의 수인족이 통나무를 내려놓고 일제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인족들이 고개를 들고 통나무를 들고 사라졌다.

“으음.”

사방을 둘러보는 내 입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러 나왔다.

누가 조치했는지는 모르지만 마을의 모습은 내가 떠난 7일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마을 외곽을 둥그렇게 둘러싼 굵은 통나무 방벽과 곳곳에 있는 망루는 혹시 모를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용도였다.

비록 급하게 만드느라 허접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수인족들의 인사에 일일이 답하며 마을 중앙에 있는 거처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내 눈에 생전 처음 보는 수인족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5천에 가까운 수인족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5백의 수인족 무리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같은 수인족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거기다 수인족 무리가 진을 치고 있는 곳이 바로 내가 기거하는 건물 바로 앞이었다.

이내 수인족 무리 앞에 서 있던 짙은 흑발의 수인족 한 명이 나를 보고는 나에게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앞의 수인족 무리와는 다른 익숙한 기운, 바로 웨어울프 일족의 족장인 알카였다.

“대 족장을 뵙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앞에 있는 수인족 무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수인족 무리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데스 랜드의 지배자이시며 태초의 숲의 또 다른 주인이신 야수왕(野獸王) 님께 인사드립니다!”

“야수왕?”

내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수왕이라니?

“현재 대륙에서 대 족장을 칭하는 호칭입니다.”

내 곁에 다가와 소곤거리는 알카의 말에 내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과거의 나였다면 야수왕이라는 멋들어진 별명에 좋아했겠지만 정체를 숨겨야 하는 지금은 아니었다.

수인족 전사들의 주인인 내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당연했지만 달갑지 않았다.

“이 수인족들은 뭐지?”

“예, 본래부터 태초의 숲에 거주하는 수인족들의 새로운 지도자인 수인왕의 부하들입니다.”

‘야수왕과 수인왕이라… 이름은 잘 만들었군.’

자부심 가득한 얼굴의 수인족 무리를 뒤로하고 알카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 안에 앉아 있던 수인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 족장을 뵙니다!”

건물 안의 수인족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는데, 내 휘하에 있는 수인족과 밖의 수인족과 같은 기운을 풍기는 수인족이었다.

다른 기운을 풍기는 수인족은 총 10명이었는데 그중 7명이 유저고 3명이 NPC였다.

“어서 오십시오.”

중앙에 내 자리를 비워두고 그 옆에 앉아 있던 카인이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화려하게 치장된 의자에 앉자 나와 내 앞의 인영을 제외한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검은빛 투구로 빈틈없이 얼굴을 가린 이 수인족이 바로 태초의 숲에 존재하는 수인족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수인왕이라 불리는 유저가 분명했다.

[블러드: 카나리아냐?]

움찔.

“내, 내가 바로 태초의 숲의 수인족 우두머리인 수인왕이다.”

귓속말의 대답은 오지 않았지만 내 앞의 이 수인왕은 카나리아가 확실했다.

귓속말을 하기가 무섭게 떠는 것은 둘째 치고, 굵게 내려고 애를 쓰는 목소리는 카나리아의 것이 분명했다.

떨리는 카나리아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카나리아 곁에서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수인족 무리가 낮은 기침을 토해냈다.

이내 고개를 치켜들고 건물 안을 둘러본 내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쯤 내 옆에 붙어 재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귓속말로 수다를 떠는 폭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블러드: 폭스?]

보이지 않는 폭스를 향해 귓속말을 보내자 카나리아 곁에 앉아 있던 수인족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아무도 보지 못한 교묘한 수인족의 행동에 내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떠올랐다.

[블러드: 설마 폭스냐?]

경악한 내 물음에 나에게 윙크한 수인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폭스: 바로 맞추셨네요.]

폭스와 같은 초록색 머리를 가진 이십대 초반의 수인족이 익숙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러드: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설마 수인족이라도 된 거냐. 거기다 그 모습은…….]

내가 알기로는 수인족으로 변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몸의 털색이 바뀔 뿐이지 폭스처럼 얼굴이 바뀌는 경우는 없었다.

[폭스: 어색한가요? 그래도 꽤나 잘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변했다고?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는 초록 머리의 수인족 폭스의 모습에 의문이 짙어졌다.

[블러드: 닥치고 어떻게 된 건지나 말해라.]

[폭스: 제 모습이요? 아니면 저희가 왜 여기 왔는지에 대해서요?]

[블러드: 둘 다.]

난처한 듯 볼을 긁적인 폭스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수인족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기 계신 수인왕 님의 오른팔로 그린 울프 일족의 족장인 듀크라고 합니다.”

[폭스: 일단 제 모습에 대한 답입니다. 간단히 말해 스페셜 스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상은 비밀입니다.]

귀와 동시에 머릿속을 울리는 폭스의 목소리에 내 얼굴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스페셜 스킬이라면 스페셜 직업에만 딸려 있는 특수한 스킬로 여타 스킬보다 더 막강한 위력을 가진다.

아마 폭스의 스페셜 스킬의 정체는 지정된 인물로 변하는 스킬 같았다.

물론 그런 스킬은 도둑이나 어쌔신에게도 있는 스킬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운’이었다.

아무리 똑같은 모습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일정 레벨의 고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일정 레벨 이상이 되면 캐릭터에게서 기운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지금 폭스가 내뿜는 기운은 정말 쓰리 스타의 수인족이 내뿜는 기운과 똑같았다.

만약 폭스가 내 귓속말에 반응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지금 폭스의 모습은 그린 울프 일족의 족장인 듀크였다.

“일단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바로 저희와 야수연합의 영구적 동맹을 위해서입니다.”

폭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수연합에 속한 수인족들이 웅성거렸다.

“조용.”

“…….”

좌중을 울리는 무거운 내 목소리에 웅성거리던 수인족들이 입을 다물고 폭스의 말을 기다렸다.

“같은 수인족끼리 피를 흘려봐야 우리만 피해라는 생각을 하신 수인왕께서는 야수왕 님과 그 휘하에 계신 유능한 족장님들, 그리고 용맹한 전사들과 영원한 동맹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으음.”

폭스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조용히 있던 카나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수인족들 또한 폭스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의 경우 카나리아 밑에 있는 수인족 유저들 중 족장급의 유저들 모두 마법사의 탑에 소속된 유저일 확률도 있었다.

꼭 마법사가 아니라고 해도 마법사가짱이얌이라면 분명히 다른 세력을 만들어뒀을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아니라면 마법사의 탑과 함께 내 복수를 돕겠다는 2개의 세력에서 나온 인물들이거나.

“으음,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지. 배웅은 하지 않겠다.”

명백한 측객령에 잠시 멈칫한 폭스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좋은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폭스가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카나리아가 일어나 폭스의 뒤에 따라붙었다.

누가 본다면 카나리아가 아니라 폭스가 우두머리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광경에 야수연합에 속한 수인족들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하긴, 오직 강한 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설정되어 있는 NPC들에게 있어 진짜 인간의 저런 모습은 이해가 가지 않겠지.

“카인.”

“예.”

“저 밖의 방책과 망루는 누가 지시한 거냐?”

“제가 지시했습니다. 대 족장께 아무런 말없이 지시해 죄송합니다. 벌을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바짝 굳은 얼굴의 카인을 바라보는 내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말했다고 정말 벌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카인이 한 일은 일족에게 도움을 줬다면 도움을 줬지 해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또한 정말로 벌을 준다면 다른 족장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벌 받는 것이 두려워 내 명령만을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아니다. 네가 한 일은 일족에게 도움이 되는 일! 오히려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감사합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고개를 꾸벅이는 카인을 뒤로하고 나머지 족장들을 바라보자 내 눈빛을 받은 족장들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암흑투마군단장으로 명칭이 변화된 영향을 받은 것인지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서는 옅은 마기와 살기가 항상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다른 유저들이 본다면 마족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구석에 쌓인 짐 꾸러미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티나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수인왕이 가져온 약간의 성의입니다.”

제법 많은 양의 은화와 가죽, 그리고 은은한 빛을 내뿜는 매직 아이템 몇 개가 수인왕 카나리아가 가지고 온 약간의 성의였다.

건물 밖에서 느껴지던 많은 기운이 점차 멀어지는가 싶더니 곧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고 알카와 함께 폭스가 들어와 아무 일도 없는 양 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수인왕이라는 직책 때문인지 항상 폭스 옆을 지키던 카나리아는 오지 않은 듯했다.

[블러드: 무슨 수작이냐.]

[폭스: 수작이라뇨. 저는 단순히 블러드 님을 위하는 마음에…….]

[블러드: 카나리아는?]

[폭스: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하하!]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는 폭스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자 족장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수인왕이 우리에게 동맹을 요청했다.”

“…….”

“반대하는 자 있는가?”

“저는 반대합니다.”

단호한 목소리를 뱉은 족장은 바로 알카였다.

전에도 동맹에 반대한 알카가 이번에도 반대한 것이다.

동맹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나는 반대의견을 낸 알카를 향해 내뱉은 목소리가 절로 싸늘해졌다.

“이유는?”

“일단 저쪽에 비해 우리가 밀릴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따위 아이템이야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계속 해라.”

싸늘한 내 목소리에 움찔한 알카가 말을 이었다.

“대륙 진출을 마음먹은 이상, 우리와 같은 수인족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도 만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복잡하게 동맹을 맺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강하게 밀고 나가 다른 종족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대 족장께서 그러하셨듯이 노예 아니면 적! 이렇게 분류해야 합니다!”

“으음.”

“흐음.”

호전적인 수인족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알카의 말에 나머지 족장들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비해 폭스의 얼굴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큭.’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당황한 것인지 얼굴을 굳히던 폭스가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움찔거렸다.

[폭스: 만약 블러드 님의 세력과 형님의 세력이 부딪친다면 양쪽 다 큰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블러드 님의 복수는 그만큼 멀어지는 것이지요.]

복수 운운하는 폭스를 향해 차가운 조소를 흘리자 폭스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딱딱하게 굳었다.

암흑투마군단장이 된 지금 나에게 수인족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물론 있다면 훨씬 더 좋겠지만 없다고 해도 커다란 피해는 없었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난다고 해도 암흑투마군단이라는 이름 하에 모여들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러 피해를 입을 필요는 없지.’

어차피 내 밑으로 모일 전사들이지만 일부러 피해를 입혀 전력을 약화할 필요는 없었다.

“들어라.”

좌중을 짓누르는 내 목소리에 족장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잔뜩 긴장한 표정을 보이는 알카와 폭스를 향해 조소를 흘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맹을 추진한다. 이번 동맹은 크란에게 맡기겠다.”

“목숨을 걸고 수행하겠습니다!”

“대, 대 족장!”

“내 말 안 끝났다.”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알카를 향해 싸늘하게 일갈한 뒤 말을 이었다.

“우리들의 적은 하등한 인간들이다! 비록 저들이 우리보다 약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저들과 동맹해야 한다! 우리는 마성의 숲을 누비던 전사들! 진정한 전사는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하물며 그 약자가 같은 종족일 경우에는 더더욱!”

우우웅.

“……!”

짙은 살기와 마기를 풀풀 흘리는 내 모습에 족장은 물론이고 폭스마저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는 마성의 숲을 누비는 진정한 전사들이다! 크허어엉!”

사나운 포효로 끝을 맺는 내 모습에 족장들이 감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포효를 토해냈다.

“대 족장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크허엉!”

[폭스: 잘 생각하셨습니다.]

포효와 함께 들려오는 폭스의 웃음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젓자 각 족장들이 각자 일족의 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오직 내 가디언인 티나만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돌아가 내 명령을 기다려라.”

“예!”

타닥.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티나가 몸을 날려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수인족의 그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건 티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가 하는 일은 더러운 일.

만약 티나가 안다면 분명 나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지고 반감도가 높아질 것이 뻔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보낸 것이다.

“그럼…….”

“마스터의 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단번에 내 말을 자른 폭스가 내가 되물을 시간도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레벨 업은 착실히 하고 있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투회를 기대하지. 그리고 언제 한번 얼굴 좀 보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는 2개 세력의 마스터들도 함께 모이는 자리다. 약속이 잡히는 대로 폭스를 통해 통보하겠다. …이상이 마스터의 말씀입니다.”

“메시지로 보내도 될 텐데, 어지간히 할 짓이 없나보군.”

이죽거리는 내 말에 살랑거리는 웃음을 흘리던 폭스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표정을 관리한 폭스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동맹은 만족스럽게 성사됐네요.”

“그래, 그럼 이제 카나리아는 못 보는 건가?”

아무리 바보 같기는 하더라도 약간의 정이라는 것이 들었기에 내 목소리가 절로 무거워졌다.

‘훗, 이게 미운 정이라는 건가.’

내 기분을 눈치 채기라도 한 건지 조용히 나를 바라보던 폭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혹시 형님이 없어서 서운하신가요?”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라.”

계속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는 폭스를 향해 얼굴을 구기자 움찔한 폭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애써 딴청을 피웠다.

능글거리는 폭스를 향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새하얀 장발에 근육질의 거한, 바로 카인이었다.

“대 족장!”

평소 침착한 모습과는 대조되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들이닥친 카인이 쿵쿵거리며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냐.”

“그분의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분?”

-크르릇. 크르릇!

내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에서 들리는 게르맨더 일족 특유의 거친 숨소리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빨리 왔군.’

분명 내가 용마인에게 명령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온 게르맨더 일족이 분명했기에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카인을 향해 되물었다.

“그분이라니?”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의 전사들의 주인이자 최강, 최악, 최고의 전사들의 단체인 암흑투마군단의 영원불멸한 주인이신 암천왕 라데스 님의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라데스 님의 사자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말을 최대한 길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는지 평소답지 않게 줄줄 말을 흘리는 카인의 모습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폭스에게 시선을 돌리자 여태껏 봐왔던 그 어떤 표정보다 잔뜩 굳은 표정의 폭스가 나를 바라봤다.

‘크큭.’

잔뜩 굳은 폭스의 모습에 작은 희열을 느끼며 카인의 안내를 받아 건물 밖으로 나가자 수많은 수인족들에게 둘러싸인 거대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칠흑의 비늘을 뽐내는 거대한 존재의 정체는 바로 용마인이었다.

‘용마인?’

[폭스: 설마, 진짜 용마인은 아니겠지요?]

믿을 수 없다는 듯 폭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또한 당황했다.

설마 용마인이 직접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군.’

만약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용마인이 아닌 다른 게르맨더 일족이 왔다면 내가 입고 있는 암천섭혼갑이나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라데스의 기운에 내 정체를 알아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갑작스런 용마인의 등장에 당황해하는 폭스와는 달리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용마인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내 등장에 흠칫하며 불안한 기색을 보이던 용마인이 리자드맨의 그것과 비슷한 얼굴을 갸웃하며 거친 목소리를 토해냈다.

-크르릇! 네가 두 무리의 수인족 중 한 무리의 우두머리인가?

“그렇습니다.”

-크르릇. 3일 후, 절망의 숲의 중앙에 있는 동굴로 모여라. 이건 우리들의 영원한 주인이신 라데스 님의 명이다!

“알겠습니다.”

잠시 동안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던 용마인이 쿵쿵거리며 짙은 녹색의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수인족들이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멀쩡한 사람이라고는 나와 폭스, 그리고 몇 명의 족장들뿐이었다.

용마인이 뿜어내던 엄청난 마기 때문이었다.

나야 모든 어둠의 전사들의 위에 군림하는 군단장임과 동시에 라데스의 대리자이기에 마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폭스를 비롯해 몇 명의 족장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용마인의 마기를 억눌렀기에 그나마 버티는 것이었다.

만약 용마인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전사들처럼 바닥에 주저앉았을 터였다.

용마인이 사라지자 침묵에 휩싸여 있던 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

계속 소란스러움이 더해지자 참다못한 카인이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조용하고 각자 처소로 돌아가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우렁찬 외침에 소란스러웠던 좌중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곧 소곤거리던 전사들이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대 족장,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간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말속에 내포된 뜻을 읽은 족장들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내 휘하에 있기는 하지만 만약 라데스가 수인족들에게 나를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수인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라데스가 수인족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설정 전에 라데스가 보통 수인족들보다 훨씬 더 높은 등급의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에는 많은 등급이 있고 무작정 높은 등급을 가진 인공지능이 낮은 등급의 인공지능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라데스와 같이 천급 운영자의 힘을 가진, 그리고 같은 성향의 인공지능만이 가능했다.

“모두 처소로 돌아가 대기해라.”

족장들을 향해 싸늘하게 명령한 뒤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멍하니 있던 족장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역시 보스 몬스터답네요. 근데 절망의 숲에는 왜 모이라는 건가요?”

나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온 폭스가 물었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천연덕스러운 폭스의 물음에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도 모른다. 가봐야 알겠지.”

싸늘한 내 목소리에 움찔한 폭스가 말을 이었다.

“동맹이야 크란이 알아서 할 테고 모임은 3일 후이니 그때까지 뭐하죠? 형님이야 한동안은 바빠서 나오지도 못할 거구요.”

“일단 난 좀 쉬겠다.”

식인마의 거처에서의 사냥 덕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기에 정신적인 피로가 많이 쌓였다.

육체적 피로쯤이야 포션을 먹거나 치료 마법을 받으면 가뿐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정신적 피로였다.

정신이 피곤하면 전투에서 잡생각이 떠올라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기에 내가 이렇게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식인마의 거처에서 사냥하기 위해 12시간의 제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풀로 게임했기에 피곤한 것은 당연했다.

“로그아웃해야겠군.”

무투회 전이라 레벨 업에 신경을 써야겠지만 이런 정신 상태로는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예? 사냥은요?”

폭스 또한 내 말이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정확히 12시간 뒤에 돌아오지. 로그아웃.”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그래.”

[감사합니다. 또 하나의 세상, 판타즈마 월드였습니다.]

“브, 블러드 니임!”

머릿속에 울리는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폭스의 목소리를 끝으로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 * *

푸슉.

찌직.

심장에 붙은 벨크로를 거칠게 떼어내는 내 얼굴에 기분 좋은 찬바람이 닿았다.

익숙한 손길로 장비들을 해제하고 캡슐 밖으로 나오자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나를 맞이했다.

‘밤인가.’

요즘 들어 해를 본 적이 드물다는 생각을 하며 땀에 전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서자 자동으로 온수가 흘러나왔다.

쏴아아.

“미네르바, 1번 정식 준비.”

[예.]

몸으로 쏟아지는 미지근한 물줄기를 맞으며 게임하느라 뭉친 근육을 풀어주자 곧 나른함이 몸을 지배했다.

“으음.”

나를 유혹하는 수마(睡魔)의 유혹을 애써 뿌리치며 욕조에서 일어나 미네르바가 미리 준비한 간편한 옷을 입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자 김을 내뿜는 음식들이 나를 맞이했다.

깨끗이 음식을 비운 뒤 영양제와 함께 저지방 우유를 먹고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러자 잠시 물러갔던 수마가 다시 나를 유혹했다.

“으음… 미네르바, 12시간 후에 알람 설정.”

[예.]

귓가를 때리는 차가운 목소리를 끝으로 마치 로그아웃하는 것처럼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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