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챕터1 진실
‘오랜만의 외출이군.’
거울 앞에서 매무시를 하는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모처럼 하는 외출이라 그런지 절로 기분이 들떠 올랐다. 몇 개월 만의 외출은 외출의 이유가 좋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설레게 하고 있었다.
‘카나리아…….’
내가 외출하는 이유는 바로 카나리아를 만나기 위해서다.
내 예전 아이디는 물론이고 내 본명까지 말하며 의심을 산 카나리아에게 협박까지 하며 정체를 물었지만, 그가 한 대답은 현실에서 만나자는 말이었다.
무시하고 등을 돌리려 했지만 카나리아가 주소를 비롯한 내 신상 정보를 줄줄이 말하는 바람에 약속 장소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만나주지 않으면 모든 정보를 해골에게 불어버리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해 어쩔 수 없이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검은 사자 길드의 간부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나에게 많은 피해를 당한 해골이라면 내 현실 주소를 듣자마자 당장 달려와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해골 따위에게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귀찮은 것은 질색이다.
“야, 아직 멀었냐?”
거실에서 TV를 보며 과자를 먹던 염환, 아니 다훈이 기다리는 것에 지쳐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훗.”
투덜거리면서도 끊임없이 과자를 먹으며 TV에서 하는 판타즈마 월드 채널에 집중하는 다훈의 모습에 내 입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당히 심각한 일이었지만 혼자 나가기에는 꺼림칙해 다훈을 불렀다.
솔직히 어느 누가 다훈 같은 험악한 인상 앞에서 기죽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 커다란 덩치를 살려 유도를 배운 다훈이라면 보통 남자 세 명 정도는 가뿐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 됐다. 지금 간다.”
집에서 게임만 해온 나에게 제대로 된 옷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옷장 속에서 썩고 있던, 특별한 날에만 입는 검은색 정장을 입자 내 몸에 붙은 근육이 살짝 드러나 제법 그럴 듯한 모습이 되었다.
“오, 제법 그림이 나오는데?”
빈둥거리던 다훈이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근육이 붙으니까 좀 멋있는데? 다 형님 덕분인 줄 알아라. 으하하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자.”
몸을 옥죄는 옷을 한 번 훑어보고는 구두를 신고 문을 나서자, 그런 내 뒤를 따라 과자봉지를 손에 든 다훈이 따라붙었다. 다훈의 차림은 나와는 달리 간편한 복장이었다.
‘하긴, 아마 다훈이 정장을 입으면 조직폭력배로 오해를 사겠지.’
“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훈의 정장 입은 모습에 내 입에서 또다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띠딕’ 하는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닫히는 문을 뒤로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자 많은 차들이 우리를 반겼다.
다훈이 주머니에서 꺼낸 키의 버튼을 누르자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차 한 대가 나와 다훈 앞에 멈춰 섰다.
틱.
“타라.”
간단한 지문 인식으로 차에 올라탄 다훈이 내 쪽의 문을 열었다.
몸을 조이는 양복 때문에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차에 올라타자 곧 ‘부웅’ 하는 소리를 내며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목적지는 어디냐?”
“월미도.”
“다행히 별로 안 머네?”
월미도는 2045년에 새롭게 개조돼 섬 전체가 유원지로 바뀌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놀이동산이 됐다. 바로 이 놀이동산 안의 한 지점이 약속 장소다.
월미도는 다리로 육지와 이어지긴 했지만 역시 섬답게 여객선 사업까지 활발해 빠른 발전을 했다. 최첨단 이동 기구 같은 수송력을 가지지는 않지만, 여객선이라는 구시대 기계는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놀이기구였다.
또한 우리 집에서 겨우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다. 요즘 도로 사정이 좋아서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후우…….”
“긴장되냐?”
내가 창밖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자 이미 나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들어 알고 있는 다훈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쿡. 운전이나 해라.”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는 달리 창밖을 향한 내 눈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 * *
끼익.
“다 왔다.”
어느새 도착한 것인지 거칠게 주차한 다훈이 키를 뽑으며 말했다.
철컥.
나 또한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연인들로 보이는 남녀와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친구끼리 온 사람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역시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놀이공원답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카나리아와의 약속 장소는 월미도 유원지의 가장 유명한 놀이기구인 바이킹 앞이었기에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다훈이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어 길을 잃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와글와글.
시끌시끌.
많은 사람들을 지나 바이킹 앞에 도착하자 바이킹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나와 다훈을 피했다. 아마 나와 다훈을 어느 특정 직업에 종사하시는 사람으로 오해한 듯했다.
“큼…….”
“으음…….”
다훈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애써 나와 일행이 아닌 척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를 잠시, 곧 짧은 머리의 남자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혹시 강철중 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내가 예상한 카나리아의 모습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혹시 카나리아?”
내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형님은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형님?”
형님 운운하는 남자의 말에 다훈이 신음을 흘렸다.
남자는 나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 아래의 날카로운 눈은 군인 같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어떻게 보면 조직폭력배로도 보였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우리를 안내했다.
“어, 어떻게 하냐?”
“일단 따라가자.”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다훈 앞에 서서 남자를 따라 걸었다.
남자 또한 월미도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남자가 안내한 곳은 월미도 구석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카페에 손님이 없는 이유를 설명이라도 하듯, 구질구질한 카페 구석에는 한 남자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저게 카나리아군.’
게임 속과 같은 모습이지만 붉은 장발이 아닌 반 삭발 머리를 했고, 항상 바보 같은 웃음을 달고 있던 입은 굳게 닫혀 무거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남자가 카나리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형님, 모셔왔습니다.”
“수고했다. 가봐라.”
“예!”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 남자가 카페 밖으로 사라지자 멍하니 커피를 마시던 카나리아가 나와 다훈을 향해 손짓했다.
“앉아라.”
카나리아의 권유에 사양 않고 의자에 앉자 카나리아가 손을 들어 간단한 음료 두 잔을 시켰다.
마침내 음료가 나오자 카나리아가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내 이름은 권중혁이다.”
“내 이름은 이미 알고 있겠지?”
“물론. 그리고 이쪽이 그 유명한 폭염의 마도사라는 것도 알고 있지.”
“쿨럭. 어떻게?”
음료를 먹던 다훈이 카나리아, 아니 권중혁이 자신의 정체를 말하자 사레가 걸렸는지 콜록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그런 다훈의 반응에 작은 웃음을 흘린 권중혁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직업상 비밀이라고 해두지.”
“확실히 군인은 아닌 것 같군.”
날카로운 내 말에 권중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사람을 움츠리게 하는 날카로운 눈에 절로 위축이 됐지만, 나 또한 평범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 아니기에 애써 마음을 잡으니 권중혁의 눈길을 맞받아칠 수 있었다.
한참의 눈싸움 끝에 마침내 권중혁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후훗. 그래, 난 군인이 아니다. 일단 속여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폭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나?”
“그 쓰레기가 알 리가 없지. 크크큭.”
날카로운 권중혁의 반응에 나는 의아했다. 권중혁의 지금 모습은 게임 속 카나리아와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넌 폭스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나?”
“내가 그 쓰레기를? 크하하! 아주 좋은 개그야. 크크크.”
짙은 광소를 흘리는 권중혁의 모습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권중혁의 모습은 마치 나와 같았다. 복수에 눈이 먼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광기. 그것을 카나리아인 권중혁이 내뿜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권중혁이 돌연 진지한 얼굴로 나와 다훈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고 입을 열었다.
“예전에 하반신이 마비된 동생을 위해 폭력 조직에 들어간 한 남자가 있었다.”
“그게 무슨…….”
“내 말 끝까지 들어라!”
막 입을 여는 나를 향해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 권중혁이 말을 이었다.
“고아였던 그 남자는 동생을 위해 조직에 들어가 무슨 일이든 했지. 다행히 남자는 주먹질에 소질이 있었어. 어린 나이에 조직의 중간 보스 자리까지 갔지.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동생의 하반신 마비는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더군. 담당 의사의 말로는 이 시대의 과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거야. 웃기지 않아? 현실 같은 가상현실 게임이 나오고 우주로 관광 가는 시대에, 겨우 하반신 마비를 고칠 수 없다니. 하반신 마비 때문에 온종일 집에서 지내는 동생의 친구라고는 애완용 새 한 마리가 전부였어. 크크큭.”
짙은 광소를 흘리는 권중혁의 모습에 내 얼굴이 굳었다.
권중혁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어느새 ‘남자’가 아니라 ‘자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어. 그러다 우연히 부하가 한다는 가상현실 게임을 접했지. 그것이 바로 판타즈마 월드였어. 부하가 말하길 그 게임 안에서는 하반신 마비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두 발로 설 수 있다고 하는 거야. 나는 당장 캡슐을 주문했고 동생에게 선물했어. 처음에는 거부하던 동생도 차츰 게임을 즐기더니 마침내 완전히 게임에 빠졌어. 친구라고는 사귀지 못한 동생에게 가상현실은 또 하나의 인생이었지. 동생도 즐거웠고 나도 즐거웠어. 조직 간의 싸움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면, 동생은 게임 속에서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다 말해주었어. 정말 행복했지.”
그 추억을 음미하는지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잠시 숨을 고른 권중혁이 말을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집에 들어와서 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목이 부러진 채 거실을 뒹구는 동생의 새와 반 미쳐버린 동생이었어. 크크큭. 웃기지 않아? 동생이 그렇게 된 이유를 듣는다면 더 웃길걸? 크크크.”
한차례 광기어린 웃음을 터트린 권중혁이 짙은 조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난 반 미친 동생을 입원시켰지. 의사 말로는 강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그렇다더군. 난 당장 한신의 본사로 찾아가 협박했지. 동생이 저렇게 된 이유를 말하라고. 그러자 돈 몇 10억을 주더군. 크크큭. 개 같은 새끼들.”
욕을 내뱉은 권중혁이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부하들을 끌고 가 협박해도 소용이 없었어. 겨우 서울 귀퉁이를 장악한 우리 조직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회사를 상대로 한 싸움에는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지. 크큭. 하지만 난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내 한신의 직원 중 꽤나 높은 자리를 가진 인물의 가족을 납치했지. 크크. 가족을 인질로 잡아 놈을 협박해서 동생이 미친 이유를 들을 수 있었어. 크크. 이유가 무엇인 줄 알겠나?”
“아니.”
내 대답에 권중혁이 짙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드래곤 클럽.”
“드래곤 클럽?”
“그래, 드래곤 클럽. 내 동생은 드래곤 클럽이라는 새끼들의 장난감이었던 거야. 크크큭.”
“그게 뭐지?”
“한신을 처음 만든 인간들의 자식들이지. 크크. 재벌 2세라고 해야 하나? 그놈들이 만든 거다.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즐긴 놈들은 자신들이 신이 되기를 갈망했지. 한 인간을 가지고 놀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했어.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부모들이 만든 가상현실 게임, 판타즈마 월드였지!”
점차 격해지는 권중혁의 목소리에 따라 내 불안 또한 깊어졌다.
‘설마…….’
“크크큭. 놈들은 제물을 고른다. 그다음 제물을 두고 내기를 하지. 내 동생 같은 경우에는 자기들의 유희라고 부르는 지랄이 끝난 후,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두고 내기를 했지. 몇 달간 동생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맛보여준 뒤, 모든 진실을 말하고 동생을 조롱하는 것이 놈들의 유희였지. 물론 ‘할 수 없다’에 건 새끼들이 이겼어. 내 동생은 미쳐서 캡슐을 부쉈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 놈들은 판타즈마 월드 클로즌 베타 때부터 그런 짓을 해왔더군. 크크.”
‘설마…….’
설마 하는 표정을 짓는 내 모습에 권중혁이 짙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네놈 또한 유희의 제물이다. 크크크.”
쾅!
내 뒤통수에 둔중한 둔기가 내려친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몸이 충격으로 부르르 떨렸다.
“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경악에 빠진 나와 다훈을 향해 예의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린 권중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크크큭. 더 멋진 사실을 말해줄까? 놈들의 이번 유희 내용이 뭔 줄 알고 있나? 바로 자신들이 밑바닥으로 타락하게 만든 네놈이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없을까다. 한마디로 네놈을 도와주는 놈들이나 방해하는 놈들이나, 모두 한통속이라는 거지. 크크.”
“미친놈들…….”
얼빠진 표정을 한 내 옆에서 다훈이 얼굴을 붉히며 욕을 내뱉었다.
“크큭. 그래, 미친놈들이지. 무라사마, 월향, 그리고 그 밖의 검은 사자 길드의 간부 놈들이나 판타즈마 월드를 좌지우지하는 웬만한 거대 길드의 놈들 거의 모두가 드래곤 클럽이다. 크큭.”
“마, 마법사가짱이얌은? 폭스는?”
“마법사가짱이얌? 아! 크레이언 말인가?”
“크레이언?”
“그래. 크큭. 그게 마법사가짱이얌의 본래 아이디다. 놈의 직업은 스페셜 직업이지. 나도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크큭.”
이어지는 권중혁의 말에 내 얼굴이 멍하게 풀렸다.
몇 년 동안 게임을 한 나를 배신한 이유가 유희 때문이라니!
“이야기를 계속하지.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복수를 하기 위해 놈들을 죽일 기회를 기다렸다. 칼을 들고 일주일을 잠복했고 마침내 기회를 찾아 놈들을 덮쳤다. 하지만 무리더군. 크큭. 나 따위는 상대도 할 수 없는 전문 경호원들에게 나가떨어져야 했다. 놈들은 내가 누군지 아는 듯했어. 바닥에 처박혀 분노로 몸을 떠는 날 웃으며 조롱했지. 크큭. 그중에서도 검은 장발 놈과 붉은 장발 놈은 나를 향해 복수를 할 테면 해보라고 내 주소로 캡슐까지 보내주더군. 크크크. 놈들에게는 나란 인간 자체 또한 유희거리였던 거지.”
“검은 장발과 붉은 장발?”
“그래! 너도 잘 알고 있는 놈들이지. 무라사마와 마법사가짱이얌, 아니 크레이언이다! 크크. 놈들이 바로 드래곤 클럽의 리더지. 놈들은 게임 속에서 복수하라고 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어. 실제로 놈들을 죽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몇 번을 더 시도했고, 모두 실패로 끝났지. 그렇게 며칠을 술에 찌들어 지낸 난 뉴스에서 엄청난 것을 보았지. 바로 게임 속에서 놈들을 실제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그런 방법이 있다고?”
내 옆에 있던 다훈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리고 심각하기로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임 속에서 어떤 사람을 실제로 죽일 수 있다니!
권중혁이 이 사실을 안다면 (주)한신의 다른 직원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분명 이에 따른 조치를 취했을 것이고 하다못해 공지라도 올렸어야 정상일 것이다.
짙은 미소를 흘린 권중혁이 말을 이었다.
“바로 쇼크사다. 크큭. 일정한 고통을 주기적으로 계속 받으면 쇼크사로 죽을 수 있지. 더군다나 마약을 판매하는 판매 상인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놈들은 마약을 복용하고 게임을 한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쇼크사로 죽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지. 크크크.”
‘미쳤어. 이 자식은 미쳤어!’
광소를 흘리는 권중혁을 바라보는 내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다훈 또한 마찬가지로 얼어 있었다.
나의 광기는 이 녀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증오와 광기를 가진 놈이 여태껏 그런 바보 같은 카나리아 흉내를 내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난 무라사마의 죽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놈을 찾아 나를 배신한 이유를 묻고 싶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권중혁의 말을 듣고 난 지금은 아니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네놈들의 유희를 망쳐주마!’
차가운 분노가 내 가슴을 잠식했다.
권중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법사가짱이얌, 아니 크레이언과 더불어 폭스, 그리고 마법사의 탑을 도와준다던 두 길드들 또한 드래곤 클럽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잠깐, 혹시 게리롱과 해파토스도 드래곤 클럽이냐?”
권중혁을 향해 묻는 내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게리롱과 해파토스 마저 드래곤 클럽이라면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고개를 갸웃한 권중혁이 대답했다.
“붉은 낙타 게리롱과 검은 모루 일족의 해파토스 말인가? 부하들이 가져온 명단에는 없었다.”
‘다행이군.’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흘린 권중혁이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하는 말인데 누구도 믿지 마라. 믿는다는 것 자체가 배신당할 확률을 높이니까.”
“쓸데없는 참견이다. 그래, 나에게 원하는 게 뭐냐.”
“없다.”
단호한 권중혁의 말에 나는 물론 다훈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거창하게 설명해놓고 이제 와서 원하는 것이 없다니?
“넌 네 작전대로 복수를 해라.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마지막 무라사마와 크레이언을 끝낼 때, 크레이언의 처리는 나에게 맡겨라. 그렇다면 난 폭스의 곁에 붙어 모든 정보를 너에게 주고 내가 족장으로 있는 수인족들을 너를 위해 아낌없이 쓰겠다.”
승낙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살기를 흘리는 권중혁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권중혁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고맙다.”
“별로. 넌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내 물음에 권중혁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난 계속 폭스 옆에 붙어 있을 거다. 지금 사용하는 캡슐이야 놈들이 보내준 캡슐이 아니니까 상관없고, 지금 등록한 계정도 다른 방법을 썼기 때문에 들킬 염려는 없다.”
복수를 위해 성격까지 바꾸고 폭스의 곁에 있는 권중혁이다. 그런 그가 쉽게 들킬 리가 없다.
내가 음료수를 다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훈 또한 일어섰다.
“그럼 나중에 연락…….”
“동생의 유일한 친구였던 새가 뭔지 알고 있나?”
“글쎄.”
나는 그 새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며 권중혁을 쳐다봤다.
그러자 씁쓸한 웃음을 흘린 권중혁이 창밖을 보며 입을 열었다.
“카나리아다.”
그 말을 끝으로 권중혁이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 * *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다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머릿속은 온통 카나리아와 드래곤 클럽이라는 빌어먹을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카나리아, 아니 권중혁.’
드래곤 클럽의 유희로 동생을 잃은 불쌍한 남자.
복수를 위해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원수의 품으로 들어간 자.
‘드래곤 클럽…….’
삶에 무료함을 느낀, 스스로가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미친 재벌 2세들.
가상현실 속에서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유희를 하는 미친 인간들.
권중혁의 말대로라면 사실상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적인 셈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허둥거리며 당황했을 테지만 처음부터 아무도 믿지 않고 오직 나만을 믿고 힘을 키운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나에게는 마법사의 탑이나 그 밖의 길드 따위는 없어도 충분히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나에게는 암흑투마군단이라는 힘이 있다.
복수심으로 이를 가는 내 머릿속에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무라사마, 그리고 크레이언!’
한때나마 나와 친분이 있었던 무라사마와 현재 마법사의 탑의 주인인 마법사가짱이얌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크레이언. 이 두 사람이 바로 드래곤 클럽을 이끄는 리더들이라고 했다.
크레이언이 나를 도와주는 것을 보면 아마 그는 내가 복수에 성공하는 쪽에 건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도와줄 리가 없으니까.
‘무라사마는 내가 복수에 실패하는 쪽에 걸었고 말이야.’
뿌드득.
내 입에서 서늘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운전하던 다훈이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 다훈은 문제가 아니었다.
‘두 놈 다 부숴주마!’
놈들의 정체를 안 이상 내 목표는 더 이상 복수가 될 수 없다.
바로 게임 속 드래곤 클럽 놈들의 모든 세력을 철저하게 부숴버리는 것이다.
작전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 억울함을 알리는 날이 바로 무투 대회라는 크레이언의 말대로라면 어차피 무투 대회 때 모두 모일 놈들이다.
‘그때 다 쓸어주마!’
어차피 복수를 끝내면 접을 게임이다.
마지막으로 드래곤 클럽의 쓰레기들과 쓰레기들의 부모가 만든 게임에 엄청난 혼란을 주고 접으면 된다.
부활한 나이트메어와 암흑투마군단을 이끌고 대륙을 암흑시대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암흑시대를 최대한 오래 끄는 것! 그것이 현재 내 목표다.
한신으로서는 나이트메어를 부활시켜 유저들로 하여금 협동심을 발휘해 부활한 나이트메어를 다시 봉인하게 하는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겠지만, 나로 인해 그것이 물거품이 된다면 그것 또한 통쾌한 복수가 된다.
최대한 암흑시대를 오래 끌고 있으면 유저들이 게임에 싫증을 내고 다른 게임으로 옮길 확률이 높다. 그 어떤 유저가 몬스터들이 지배하는 게임을 하고 싶겠는가.
무차별적인 유저 학살.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암흑시대다.
많은 유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애초에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린 내가 다른 유저들을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판타즈마 월드의 몰락!
그것이 내가 바라는 최종 목표다.
물론 하루 빨리 나이트메어를 부활시키고 무투 대회에서 놈들을 쓸어 버려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크크큭.’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는데 차가 ‘끼익’ 하며 부드럽게 멈췄다.
“도착했다. 후우…….”
“그래, 오늘 고마웠다.”
“음하하! 자식, 그러면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주던가!”
권중혁을 만나고 나올 때부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나를 걱정했는지 다훈이 과장스럽게 호들갑을 떨며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등에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 하다니?”
“마법사의 탑 말이다.”
다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친구의 복수를 도와주기 위해 가입한 길드가 친구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원흉이라는 사실을 안 지금, 다훈은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난…….”
마침내 굳게 닫혔던 다훈의 입이 열렸다.
“난 일단 마법사의 탑에 남아 있겠다. 그래야 너에게 필요한 정보를 빼주거나, 적절한 시기에 피해를 입히고 탑에서 나올 수 있으니까.”
“고맙다.”
“푸하하하! 그러니까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란 말이다!”
“그래. 크큭. 한 잔이 아니라 몇 백 잔을 사주마.”
다훈의 어깨를 두드리고 막 차문을 열려던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퀘스트를 받으며 들었던 나이트메어의 신전이라는 장소였다.
“다훈아, 혹시 나이트메어의 신전이라는 곳 알고 있냐?”
“나이트메어의 신전? 나이트메어라면 악몽왕 나이트메어 말이냐?”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생각하는 듯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다훈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이마를 탁 치고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 잘 알려지지 않은 던전이다.”
“던전?”
NPC들이 있는 작은 신전을 예상한 나는 던전이라는 다훈의 말에 당황했다.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다훈이 입을 열었다.
“그래, 총 4층으로 이루어진 수준 높은 던전이다. 1, 2층에는 언데드들이, 3층에는 일정한 분포로 서큐버스와 인큐버스가, 4층에는 나이트메어를 모시는 곳이 있다고 한다. 나야 3층에서 질려서 귀환했지만. 그런데 왜?”
다훈은 아직 내가 암흑투마군단장이 된 것과 라데스에게서 나이트메어를 부활시키라는 퀘스트를 받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망설이다가 시작한 이야기는 내가 마리아 파티를 만난 것으로 시작해 마침내 라데스에게서 퀘스트를 받은 것에서 끝났다.
물론 마지막 나의 목표는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기에 말하지 않았지만.
“캑! 아, 암흑투마군단장?”
이번에는 다훈 녀석 또한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런 다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내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런 것 때문에 나이트메어의 신전을 찾아야 한다.”
“좋아! 그럼 같이 가자고!”
“같이?”
설마 다훈이 같이 가자고 할 줄은 몰랐기에 당황한 목소리로 묻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다훈이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이번 길드 전쟁에서 공을 세웠거든. 마법사가짱이얌? 크레이언? 하여튼 그 빌어먹을 놈이 일주일 휴가를 줬다.”
“좋아. 그럼 너와 나, 그리고 티나가 함께 가는 걸로 하자.”
“아, 그 가디언?”
“그래.”
“흠… 그리고 성직자 한 명 정도는 데려가는 게 좋을 거다.”
“성직자?”
“그래,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말이야.”
“음…….”
무거운 신음을 흘리며 생각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성직자가… 아!’
마침 한 이름이 떠올랐다.
“좋아. 내가 부탁해보마.”
“네가?”
내 말에 다훈이 의외라는 듯이 눈을 치켜떴다.
내가 생각하는 성직자는 바로 마리아였다. 성직자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라그아노의 사제라는 직업에 공격용 스킬까지 가지고 있는 마리아라면 마음 놓고 파티에 넣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그녀는 내가 라데스에게 인정을 받은 것까지 지켜봤다.
“그래, 그럼 접속해서 나에게 메시지 보내라.”
“그래, 잘 가라!”
턱.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다훈의 차를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자 문의 작은 구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밀 번호를 말해주십시오.]
“문 열어, 미네르바. 나다.”
[비밀 번호가 확인되었습니다.]
철컹.
잠금이 풀린 문을 열고 들어서며 센서를 지나치자 다시 한 번 미네르바의 목소리가 울렸다.
[총 0건의 화상 메일과 0건의 음성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후우… 온수. 1번 정식 준비.”
[예.]
오랜만에 한 외출이라 그런지 별로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상당히 피곤했다.
1번 정식을 준비하고 옷을 벗고 정리했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자 팽팽하던 정신이 약간은 풀렸다.
“후우…….”
그렇게 한참을 욕실에서 몸을 푼 뒤 밖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가자 평상시와 똑같은 음식이 나를 맞이했다.
덜거덕.
우걱우걱.
식탁 위의 음식을 입에 모두 쑤셔 넣고 대충 정리한 다음 TV를 틀었다.
마침 판타즈마 월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내 전원을 끄고 막 일어서려던 나는 TV에서 나오는 MC의 말에 딱딱하게 굳었다.
MC가 전하는 정보는 바로 내가 기다리던 무투 대회에 관한 소식이었다.
막 끄려던 TV를 보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이번 무투 대회는 판타즈마 월드에서 여태껏 해온 그저 그런 무투 대회가 아닌 엄청난 대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단 상품이 신 급 아이템이라는 점이 가장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신검 아실레온’입니다. 라그아노와 다아리엘, 그리고 두 신의 창조물들이 루키아논을 봉인하기 위해 합작하여 만든 이 검은 신 급 아이템에 걸맞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검 아실레온?”
잔뜩 상기돼 있는 MC의 말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작스런 신 급 아이템의 등장!
그건 나로서도 충분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여태껏 침묵을 지키다 왜 하필 이 시점에 나타난 것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천살멸혼도야 퀘스트를 통해 얻은 것이지만 신검은 아니다.
내가 도를 얻자마자 나온다니, 우연이라기엔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놈들 짓인가!’
놈들 모두가 판타즈마 월드를 만든 자들의 자식이라 했으니 약간의 힘을 발휘한다면 신 급 아이템의 출현 정도는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문제는 그 신 급 아이템을 어떻게 가지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무투 대회 형식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무라사마나 크레이언 같은 경우는 무투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충분한 강자이니까.
이런 내 심각한 마음을 모르는 TV 속의 MC가 유쾌한 목소리로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대륙에 처음 선보이는 신 급 아이템의 존재 때문에 대륙의 모든 시선이 이번 무투 대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대륙의 강자들이 이 신 급 아이템을 차지하기 위해 참가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슨. 크큭.’
첫 번째 신 급 아이템은 내가 가지고 있는 천살멸혼도다. 무투 대회의 상품인 신검 아실레온이 아닌.
“어쨌든 아직 상세한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운영자 측에서 말하길 무투 대회와 함께 또 다른 무언가가 업데이트 될 예정이라고 하니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그럼 다음 소식은…….”
삑.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TV를 끄고 캡슐로 걸음을 옮기는 내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운영자 측에서 밝히지 않은 저 무언가는 분명 부활하는 나이트메어가 분명했다.
‘크크큭. 발악해봐라.’
짙은 웃음을 흘리며 캡슐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장비들과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장비들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고 마지막으로 벨크로를 붙이자 묘한 안정감이 내 몸을 덮쳤다.
“판타즈마 월드, 접속!”
둥둥둥.
사아아.
힘찬 북소리와 거대한 모래성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또 다른 세계의 시작점, 태초의 숲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블러드!’
바위 위에 앉아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또 다른 나, 블러드를 바라보는 내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칠흑처럼 짙은 갑옷과 갑옷에 새겨져 있는 악마 상. 그리고 등에 매달린 천살멸혼도와 학살자의 망토와 해파토스에게 받은 학살자 세트. 은은한 마기가 뿜어져 또 다른 효과를 만들었다.
블러드의 모습에 빠져 있던 내 귀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말해주십시오.]
“악어는악어새. 새는악어새.
[총 한 개의 캐릭터가 있습니다. 접속하시겠습니까?]
“접속!”
둥둥둥.
사아아.
힘찬 목소리로 접속을 외치자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블러드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짙은 웃음을 흘리며 블러드의 손을 잡자 판타즈마 월드에 접속할 때와 같은 효과음과 함께 나타난 빛이 나를 덮쳤다.
* * *
짹짹짹.
귀를 간질이는 맑은 새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자 접속 종료한 장소인 침묵의 숲이 나를 반겼다.
일족 우두머리들과 회의를 끝내고 나와 발록과 카나리아를 차례로 만나고 접속 종료를 했기에 내가 눈을 뜬 장소는 당연히 회의장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저릿한 몸을 적응시키기 위해 몸을 이리 저리 돌려보는 나에게 어느새 다가온 티나가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기다렸습니다, 마스터.”
“음…….”
걱정스러운 기색의 티나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자 한산한 침묵의 숲이 보였다.
다크엘프가 사는 공포의 숲이라는 테마에 맞지 않게 숲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염환: 야! 지금 어디냐?]
주변의 풍경에 빠져 있는 내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다훈, 아니 염환의 목소리였다.
[블러드: 지금 침묵의 숲이다.]
[염환: 지금 당장 유토리안으로 와라. 나도 정비 좀 하고 바로 출발하마. 유토리안에서 ‘꽃밭’이라는 주점에서 기다려라.]
[블러드: 유토리안?]
[염환: 그래. 나이트메어의 신전은 유토리안 근처에 있거든. 어쨌든 잠시 후에 보자!]
염환의 힘찬 말에 얼굴을 구기자 티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유토리안이라…….’
지금 그곳은 게리롱이 마스터로 있는 발정 난 낙타들 길드와 밤손님 길드의 전쟁으로 한창 불꽃이 튀고 있다.
거기다 밤손님 길드가 끌어들인 검은 사자 길드 덕에 나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곳이 돼서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했다.
‘어쩔 수 없군.’
나에게 꼭 필요한 나이트메어의 신전이 유토리안에 있다면 가기 싫어도 가야 했다.
방법은 최대한 충돌을 피하는 것뿐이었다.
“티나, 유토리안으로 간다.”
부욱.
티나의 대답이 채 나오기도 전에 아이템 창에서 꺼낸 유토리안 전용 귀환 주문서를 찢자 발밑에서 뿜어져 나온 밝은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막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내 눈에 나와 같이 빛에 몸을 맡긴 티나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바탕 빛에 몸을 맡긴 뒤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에 눈을 뜨자, 청명한 숲이 아닌 후끈한 열기를 내뿜는 사막 도시가 나를 맞이했다.
바로 도둑들의 천국이자 보석의 도시라 불리는 유토리안이었다.
몸을 찌르는 열기에 학살자의 망토를 끌어당겨 몸을 가리자 조금은 괜찮아졌다.
내 뒤를 이어 나타난 티나 또한 뜨거운 열기에 얼굴을 찌푸리더니 망토 하나를 꺼내 몸에 휘감았다.
“가자.”
염환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꽃밭’이라는 주점이었다. 나와 염환이 레벨이 낮았던 당시 항상 들리던 주점이다.
다행히 귀환한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익.
낡은 2층 목조 건물인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란스러웠던 주점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전과 같이 소란스러움을 뽐냈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피해 주점의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자 십대 후반의 소녀 NPC가 와서 주문을 요구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자주 와본 곳이기에 익숙하게 주문했다.
“차가운 레몬 티 두 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총총 걸음으로 사라지는 종업원 NPC를 보내고 주점 내부를 둘러보자 많은 유저들과 NPC들이 보였다. 사냥을 가려는 듯 진지한 얼굴로 회의를 나누는 유저들을 시작해서, 주점의 주인에게 퀘스트를 받는 유저, 그리고 요즘 시장에 대해 떠드는 NPC들까지. 현실보다 더욱 더 현실감이 느껴졌다.
‘이럴 때가 아니지.’
염환에게 자신 있게 성직자를 데려오겠다고 했으니 빨리 마리아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옵션에서 친구 목록을 열자 다행히 마리아 옆에 ‘접속’이라는 빛이 반짝였다.
‘다행이군.’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마리아의 아이디를 클릭한 뒤, 귓속말을 눌렀다.
[블러드: 마리아?]
[마리아: 예, 무슨 일이세요?]
귓속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울려 퍼지는 마리아의 목소리에 작은 미소를 흘리며 다시 귓속말을 시작했다.
[블러드: 지금 나를 도와줄 수 있나? 지금 퀘스트 중인데 성직자 한 명 부족하다.]
[마리아: 지금요? 흐음… 지금은 조금…….]
당연히 도와줄 줄 알았던 마리아가 말끝을 흐렸다. 큭. 제길.
[블러드: 오면 한 달 치 분유 값 정도는 벌 수 있을 거다.]
[마리아: 정말이죠? 당장 갈게요! 어디에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서운 기세로 내 위치를 묻는 마리아의 목소리에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블러드: 유토리안 서쪽 입구에 있는 꽃밭이라는 이름의 주점이다.]
[마리아: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꼼짝 말고 기다려요!]
다급한 마리아의 목소리에 옵션 창을 끄자 종업원 NPC가 주문한 레몬 티를 건넸다.
“요금은 30실버입니다.”
딸랑.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 NPC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자 두 잔의 레몬 티 중 하나를 티나에게 건넸다.
“마셔라.”
“감사합니다.”
데스 랜드에서 평생을 살아온 티나는 레몬 티 같은 것이 처음인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레몬 티를 바라보다 마시기 시작했다.
숲의 마녀라 불리는 그녀답지 않은 모습에 큭 하고 웃음을 흘리자 레몬 티를 홀짝이던 티나가 얼굴을 붉혔다.
티나를 향해 다시 한 번 웃어 보인 뒤 고개를 돌리는 내 앞으로 몇 명의 유저들이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어이, 잠깐 우리 좀 봅시다.”
건들거리는 말투를 사용하는 유저의 뒤로는 총 세 명의 유저가 서서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투 스타 도적들이 주로 입고 다니는 간편한 옷과 허리춤에 매달린 단검이 이들의 직업이 도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긴. 도적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도시니까.’
납득하며 몸을 세우는 내 시선이 막 나를 향해 말을 건 유저의 허리춤에 매달린 두건에 꽂혔다.
검은색 두건에 있는 초승달 문양! 바로 밤손님 길드를 상징하는 두건이었다.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유저 하나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아, 그렇게 겁먹을 건 없어. 내가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야. 이거, 당신 맞아? 저기 저 초록 머리의 여자는 누구지?”
스윽.
나에게 말을 건 검은 옷의 유저가 건넨 종이를 보는 순간, 나는 떨 수밖에 없었다.
검은 옷의 유저가 건넨 종이에는 바로 나와 티나가 세밀하게 그러져 있었다. 너무 세밀해 그린 것이 아니라 스크린 샷을 찍어 그대로 복사한 것 같았다.
나와 티나의 그림 밑에는 ‘죽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면 1천 금화, 신고하는 자에게 300금화를 포상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길!’
“어? 이 새끼가 맞나 본데?”
혹시 모를 사태에 등으로 손을 뻗는 내 모습에 나를 노려보던 밤손님 길드 녀석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티나, 준비해라.”
놈들이 내 정체를 안 이상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최선의 선택은 놈들의 원군이 오기 전에 재빨리 놈들을 처리하고 다른 장소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바싹 긴장한 내 모습에 가장 먼저 나에게 말을 건 푸른 장발의 도적이 허리춤에 매달린 단검을 손에 쥐며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오늘은 운이 좋군. 당장 동영상 촬영해! 돈 한번 벌어보자.”
동료들을 향해 동영상 촬영 기능을 켜라고 부추기는 푸른 장발의 행동에 내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죽엇!”
“헉!”
내가 날카로운 기합을 지르며 도를 뽑아들자 푸른 장발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때는 이미 내 도가 푸른 장발의 팔을 파고든 후였다.
콰드득.
“크아악!”
짧게 당겨 자른 도에 푸른 장발의 팔과 옆구리가 부욱 갈라졌다.
푸른 장발은 방어력에 제일 약한 천 종류의 방어구를 착용해 보통 유저들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밀리노!”
“저 새끼가!”
푸른 장발이 피를 쏟으며 뒷걸음질 치자 그의 동료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막 나를 향해 달려들려는 놈들을 향해 내 입에서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바로 제왕의 포효였다.
“크허어엉!”
“크악!”
“컥!”
“꺄아악!”
쨍그랑.
푸른 장발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주점 안에 있던 다른 유저들과 NPC들 또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찬장에 정리되어 있던 유리잔들이 깨지면서 소란이 극에 달했다.
제왕의 포효에 직격당한 것이 꽤나 커다란 데미지였는지 멍한 얼굴로 서 있는 푸른 머리와 나머지 놈들을 향해 몸을 날리자, 내 뒤를 단창을 꺼내 든 티나가 따랐다.
“티나, 붉은 머리를 처리해라!”
“예!”
쉬시식.
그나마 제왕의 포효에 영향을 받지 않은 붉은 머리를 향해 몸을 날린 티나가 현란하게 단창을 휘둘렀다.
나 또한 마나를 끌어올려 짙은 도기를 도에 덮은 뒤, 푸른 장발을 마무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파천기.”
우우웅.
방어력이 약한 천이라지만 방어구는 방어구. 천이 찢어진다면 파천기의 영향으로 몇 배의 데미지가 더해질 것이 분명했다.
이내 음울한 기운이 손목을 타고 올라와 도를 휘감았다.
이내 정신을 차린 푸른 장발의 동료인 검은 장발이 푸른 장발을 제치고 나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스스슥.
까가강!
현란하게 그려지는 단검의 잔영에 맞춰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칫.”
짧게 혀를 찬 검은 장발이 이번에는 나머지 손으로도 단검을 잡고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건방진 놈!”
쿠궁.
폭스와 같은 스페셜 직업이 아니라 이런 평범한 도적이라면 내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내 입에서 터친 일갈과 함께, 내딛은 발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쐐애애액.
“헉!”
묵직한 파공음에 막 나를 향해 몸을 날리려던 검은 장발이 숨을 삼키며 재빨리 양손에 든 단검을 던졌다.
까강.
단검이 부딪친 도면에서 노란 불꽃이 튀었다.
검은 장발을 향해 도를 휘두르려는 내 앞으로 노란 머리가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빠른 속도로 무작정 휘두르는 단검에, 내 입에서 가소롭다는 듯 날카로운 일갈이 터져 나왔다.
“그대로 갈라주마!”
콰르르.
도가 검은 궤적을 따라 허공을 가르자 노랑머리가 이를 깨물며 대비했다.
콰앙!
“크윽.”
도와 단검의 그림자가 만나며 커다란 폭음을 토해냈다.
노랑머리가 의외로 내 도를 잘 버티자 내 눈이 동그랗게 커졌지만, 애초에 힘에 모두 투자한 나에게 민첩성을 중점으로 투자한 노랑머리가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어리석은 놈!’
노랑머리를 향해 짙은 비웃음을 날리며 도에 잡은 손에 힘을 가하자 노랑머리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크으윽.”
쩌적.
점차 짙어지는 노랑머리의 신음에 맞춰 노랑머리의 단검에 생긴 금이 전체로 퍼졌다.
“제, 제길. 밀리노, 도와…….”
“크아악!”
퍽.
노랑머리가 푸른 장발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들려오는 것은 처절한 비명이었다.
어느새 붉은 머리를 처리한 티나가 밀리노라는 푸른 장발의 머리에 단창을 박아 넣은 것이다.
“제기랄! 누가 좀 도와…….”
쩡!
주변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려던 노랑머리가 순간 울려 펴진 날카로운 소리에 ‘헉!’ 하고 숨을 집어 삼켰다.
그와 동시에 노랑머리의 단검을 바스러트린 내 도가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꽈앙!
쓰리 스타로 레벨 업을 하며 더욱 더 강력해진 도기와 파천기가 노랑머리의 가슴과 만나며 커다란 폭음을 터트렸다.
도에서 뿜어져 나온 섭혼기와 마기 때문에 검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몽글몽글 솟아났다.
“크아아악!”
검붉은 기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노랑머리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반 이상 날아가 버린 가슴을 부여잡았다.
다른 유저들을 생각해 필터링 처리가 된 것인지 펄떡이는 심장과 폐 대신 검은색의 공간이 있었다.
내가 바닥에 길게 늘어트린 도를 들어 올리자 검은 기운이 도를 따라 꿈틀거리며 함께 다라 올라왔다.
“죽어라.”
스응.
퍽.
“꺽.”
차갑게 말하며 휘두른 도에 노랑머리의 머리가 터져 피를 뿌렸다.
이번에는 필터링이 되지 않은 것인지 주점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재빨리 도를 회수한 뒤, 단창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내는 티나를 향해 외쳤다.
“제길! 티나, 떠날 준비를 해라!”
“예!”
이곳은 밤손님 길드의 구역이니 이놈들이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놈들이 올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까지는 유저였던 모래 더미에서 밤손님 길드의 증표인 두건을 챙겨 재빨리 입구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주점의 입구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악! 이, 이게 뭐예요!”
비명의 주인은 바로 내가 연락한 마리아였다.
마리아의 비명을 시작으로 주점 여기저기에서 갖가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 미친! 대낮에 살인이라니! 어서 경비병에게 연락해!”
“밤손님 길드의 녀석들이었다고!”
“어서 도망치자고! 연관되면 좋을 거 없다고.”
경비병 NPC를 찾는 사람으로 시작해 내가 죽인 놈들의 정체를 알고 경악하는 사람들과 재빨리 돈을 지불하고 자리를 뜨는 유저들까지, 주점은 혼란에 휩싸였다.
‘큭. 제길!’
“티나, 가자!”
“예!”
멍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 있는 마리아를 그대로 품에 안고 어두운 골목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 내 뒤로 망토로 몸을 가린 티나가 따라 붙었다.
“블러드 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내 품에 안겨 붉어진 얼굴로 묻는 마리아를 무시하고 전력을 다해 골목에서 골목으로 옮겨 다니기를 몇 분.
그제야 발견한 한적한 골목에 품에 안은 마리아를 내려놓자, 잠시 조용하던 그녀가 질문을 쏟았다.
“대체 뭐예요! 설마 주점에 있던 모래들이 블러드 님이 하신 것은 아니겠죠? 이곳 유토리안의 경비병들은 다른 곳보다 강하기로 소문났다고요. 까딱하면 퀘스트고 뭐고 없다고요!”
내 옆에 달라붙어 잔소리를 해대는 마리아 때문에 나는 물론 티나까지 얼굴을 찌푸렸다.
‘제길.’
마리아의 말대로 유토리안의 경비병 NPC들은 다른 곳들의 경비병 NPC보다 강하다. 바로 거대한 사막인 라흐라 때문이었다. 몬스터들이 들끓는 모래의 바다 라흐라 때문에, 당연히 라흐라를 끼고 있는 유토리안의 경비병들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는 마리아를 무시하고 염환과 게리롱에게 귓속말을 보내려고 했다.
[염환: 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너 어디야!]
‘큭!’
귀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얼굴을 작게 구기자 잔소리를 하던 마리아가 자신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줄 알았는지 잔소리를 멈췄다.
[블러드: 지금 꽃밭에서 나와서 한적한 골목이다. 너는?]
[염환: 어쩐지! 혹시 꽃밭에서 밤손님 녀석들을 죽인 게 너냐? 지금 경비병들하고 밤손님 길드 녀석들이 몰려와서 장난 아니란 말이다!]
“끄응…….”
염환의 말이 끝나자 내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들통 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들통이 나다니.
나는 혀를 차며 다시 귓속말을 보냈다.
[블러드: 어쨌든 지금 파티 만들어서 신청할 테니까, 이곳으로 와라.]
[염환: 빨리 해라!]
나를 재촉하는 염환의 말을 흘린 뒤, 잠잠한 마리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마리아, 네가 파티를 만들어라.”
“제가요?”
“그래. 혹시나 다른 놈들이 파티 정보를 봤을 때 파티장이 내 이름으로 되어 있으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야.”
“아, 알겠어요.”
내 얼굴이 알려져 있다면 이름쯤이야 진즉에 알려져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일부러 마리아에게 파티를 만들라고 한 것이었다.
바로 파티를 생성하려는 것인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든 마리아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자, 머릿속에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리아 님이 파티에 초대하였습니다. 파티에…….]
“수락.”
여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락’을 중얼거리자 잠시 멈칫한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파티명 ‘바보’에 동참하였습니다.]
마치 나를 겨냥하고 만든 듯한 파티 명에 얼굴을 구기자 마리아가 찔끔하며 내 시선을 피해 티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파티에 티나 님이 동참하였습니다.]
머리를 울리는 여인의 목소리에 웃음을 흘리며 마리아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염환이라는 이름을 파티에 초대해라.”
“염환이요?”
“그래.”
“알겠어요. 자, 잠깐! 염환? 혹시 폭염의 마도사 염환이요?”
내 말에 염환을 파티에 초대하려던 마리아가 뒤늦게 염환의 정체를 눈치 챘는지 호들갑을 떨며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 건지 강하게 내 어깨를 쥐고 흔드는 마리아에게 인상을 구기며 신음을 흘리자, 그제야 마리아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큭.”
흔들리는 시야에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쓰다듬자, 조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마리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괘, 괜찮아요?”
“괜찮다.”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 내 상태를 마리아 또한 알았는지 내가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치료 마법을 시전했다.
“미, 미안해요.”
“…….”
몸을 휘감는 포근한 은빛 기운을 만끽하며 아무 말 없이 마리아를 바라보자 마리아가 내 시선을 피했다.
“염환이나 초대해라.”
“알겠어요.”
풀이 죽은 마리아가 허공을 향해 몇 번 손을 더듬거리자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띠리링 하는 종소리와 함께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염환 님께서 파티에 동참하였습니다.]
“진짜 폭염의 마도사예요?”
“그래.”
“우와,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꺄아.”
얼굴을 붉히며 소란을 피우는 마리아를 무시하고 몸을 돌리는 내 귀로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바로 게리롱의 목소리였다.
[게리롱: 인마! 너 지금 유토리안이지?]
[블러드: 그래.]
[게리롱: 그럴 줄 알았다. 길드원들이 널 봤다고 했을 때는 혹시 했다. 지금 밤손님 녀석들이 꽃밭이라는 주점으로 몰려가는 중이라는데, 네 짓이냐?]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이기에 순순히 답했다.
[블러드: 그래.]
[게리롱: 끄응…….]
낮은 한숨을 내쉰 게리롱이 말을 이었다.
[게리롱: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유토리안에는 왜 온 거냐. 그것도 폭염의 마도사까지 데리고 말이야.]
‘역시 알고 있었군.’
대륙 최고의 정보 집단이라 자부하는 길드의 마스터답게 역시나 염환의 출현을 알고 있었다.
[블러드: 별 일 아니다. 퀘스트 때문에 왔다.]
[게리롱: 퀘스트?]
[블러드: 그래. 나중에 설명해주마. 그건 그렇고, 물어볼 게 있다.]
[게리롱: 물어볼 것?]
“나 왔다!”
게리롱의 물음에 대답하기도 전에 골목 입구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체를 숨기려고 그랬는지 평소에 착용하던 화령의 로브가 아니라 약간 특이한 재질의 붉은색 로브를 걸친 염환이었다. 같은 파티원들끼리는 지도상에 붉은 점으로 위치가 표시되는데 아마 그것을 보고 온 듯했다.
“너 대체!”
“잠시만 기다려라.”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향해 쏘아붙이려는 염환을 막은 뒤 게리롱을 향해 귓속말을 보냈다.
[블러드: 지금 꽃밭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골목이다. 지금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밤손님 길드 아지트가 어디냐? 너무 큰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게리롱: 너 설마…….]
내 말을 들은 게리롱이 설마 하는 의문을 흘렸다.
[블러드: 걱정 마라. 적어도 너한테 해가 되는 일은 아니니까.]
짙은 웃음을 흘리는 내 모습에 염환과 마리아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