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챕터4 격돌 3 (25/34)

챕터4 격돌 3

“깔깔깔. 오랜만이네요.”

월향! 나를 공격한 빛 뭉치의 정체는 바로 월향이 시전한 신성마법이었다.

뿌드득.

서늘하게 이를 가는 내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월향의 옆으로 몇 명의 유저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유저들의 수는 월향까지 포함해 총 다섯 명이었다.

‘베팔, 보티스, 해골, 율칸까지!’

검은 사자 길드의 간부 중, 진짜 실력자는 거의 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해골은 제외지만.

어쨌든 서늘한 기세를 흘리며 등장한 간부들의 모습에 나를 비롯해 염환의 얼굴 또한 참혹하게 구겨졌다.

[염환: 제길. 어떻게 하냐.]

[블러드: 일단 싸울 준비를 해라.]

실력자의 비율은 저쪽이나 이쪽이나 비슷했다.

밤손님 길드의 유저들이 건재하면 몰랐지만 현재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우리 쪽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미미한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염환의 헬 파이어 덕이었다.

물론 밤손님 길드의 유저들의 직업이 체력이 적은 도적이라는 점 또한 한몫하고 있었다.

“호호. 오랜만이지요?”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청순한 웃음을 흘린 월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 청순한 웃음의 진짜 정체가 썩어 빠진 웃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저 웃음은 지켜주고 싶은 충동이 아닌 달려들어 망가트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놈 때문에 죽은 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월향의 곁에 있던 해골이 검을 들고 한발 나와 소리쳤다.

“끌끌끌. 그만 해라.”

그런 해골의 어깨를 스틱으로 밀친 중년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바라봤다.

“베팔!”

“끌끌. 그 멍청한 얼굴은 여전하구만.”

바다의 마도사라는 거창한 별명을 가진 포 스타의 마도사, 베팔이 진득한 웃음을 흘리며 나를 조롱했다.

나를 조롱하는 월향과 해골, 그리고 베팔과는 달리 율칸과 보티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월향의 곁을 지킬 뿐이었다.

전장은 거의 다 정리가 된 상태였다. 들이닥쳤던 밤손님 길드의 유저들은 모래가 되어 사라졌고 남은 유저라고 해봐야 그 수가 스무 명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간부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내가 이곳에 있는 줄 어떻게 안 거냐.”

이것이 바로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이었다.

이내 비릿한 미소를 흘린 베팔이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있을까?”

스르륵. 스윽.

베팔이 손에 든 스틱을 들어 올리자 입구 근처의 어둠 속에서 삼십여 마리의 무언가가 스르륵 기어 나왔다.

이내 신전의 빛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정체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인간 키메라?”

“끌끌. 그래, 과거에 네가 그렇게 반대하던 인간 키메라다. 끌끌. 물론 지금은 완성되었지. 비록 30마리밖에 없지만 말이야. 끌끌.”

끄르륵. 끄륵.

징그러운 베팔의 웃음소리에 맞춰 인간 키메라라 불리는 그것들이 거북한 웃음을 토해냈다.

외양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 몸에 달려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전사로 보이는 한 근육질의 거한의 등에는 네 개의 손이 더 달려 있었는데, 그 손 모두에는 거대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또 마법사로 보이는 한 명의 어깨에는 세 개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아마 마법을 시전하는 스펠의 시간을 단축하려고 만든 키메라인 듯했다.

꾸르륵. 꾸륵.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는 인간 키메라들의 머리 위로는 각자 키메라가 되기 이전의 이름이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NPC들로 이루어진 인간 키메라 군단!

이것이 바로 과거에 나의 반대에 베팔이 접었던 연구였다.

그 당시 게임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나는 베팔의 실험을 반대하고 폐지시켰다.

‘설마 인간 키메라를 완성시켰을 줄이야!’

베팔의 주위로 몰려드는 인간 키메라들의 모습에 내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족장 급 수인족에 필적하는 육체적 능력을 가진 것이 바로 이 인간 키메라다.

한 NPC의 몸에 다른 NPC의 신체 일부분을 접합시키는 실험은 성공할 확률도 낮은 데다, 베팔의 본래 클래스인 마법사가 아니라 특별 퀘스트를 통해 받은 ‘키메라 마스터’라는 직업이기에 그 성공률은 더더욱 낮았다. 하지만 성공한 것이다!

[블러드: 모두 모여라.]

인간 키메라들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이 처리할 테지만 간부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행의 수준 또한 간부들에 비해 그리 처지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고추가침퉤퉤는 아직까지 바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속전속결이다!’

[블러드: 모두 준비해라! 내가 앞으로 나서면 시작이다!]

[마리아: 알겠어요!]

[염환: 그래.]

각자의 방식으로 동의한 일행이 긴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일행의 눈빛에 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마나를 주입하자 우웅 소리를 내며 도를 휘감은 마나가 한층 더 짙어졌다.

“티나.”

“예.”

“야수화해라.”

나지막한 내 부름에 곁으로 다가온 티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하면 야수화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 때문에 야수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끌끌.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있나.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미친 놈. 너나 죽어라.”

“뭐, 뭐야?”

음침한 웃음을 흘리던 베팔이 염환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는 염환을 바라봤다.

살기어린 베팔의 시선에 염환이 ‘흥’ 하고 콧방귀를 끼며 입을 열었다.

“언제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시냇물의 마도사.”

경로사상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베팔의 별명을 비꼬며 반말을 내뱉는 염환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흘린 베팔이 입을 열었다.

“끌끌. 네놈이 바로 장작불의 마도사로구나. 헬 파이어는 그럴듯했지만 그런 장작불로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거다. 불이 물로 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흥. 물은 불로 증발시켜버리면 그만이지.”

“끄응.”

자신의 비꼬는 말을 익숙하게 맞받아치는 염환의 모습에 베팔이 신음을 흘리더니 스틱을 휘둘렀다.

그러자 서서히 거리를 좁히던 인간 키메라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한층 더 빨라진 속도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무리로 뛰어들었다.

“죽여라!”

끄에에엑!

베팔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방에 널린 인간 키메라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크윽. 모두 대항해 비천한 것들을 죽여라!”

쿠오오오오.

처음에는 당황하던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 또한 리나의 외침에 점차 안정을 찾아가며 인간 키메라들을 향해 반격을 시작했다.

헬 파이어의 영향력에 있어 약간의 상처를 입은 라노톤 또한 침묵의 포효하며 인간 키메라들을 향해 세 개의 머리로 분노를 토해냈다.

치열한 전장을 바라보는 내 입에서 힘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야수화!”

“야수화!”

티나가 야수화를 시전하자 베팔이 무방비 상태인 나와 티나를 향해 황급히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염환의 마법에 막혀 사라졌다.

뿌드득.

“놈!”

“덤벼라, 빌어먹을 늙은이야! 파이어 스피어!”

“흥! 아쿠아 스피어!”

거친 욕설을 내뱉은 염환이 불꽃의 창을 소환해 베팔을 향해 던지자, 베팔 또한 물의 창을 만들어 불의 창을 소멸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염환과 베팔의 대결이 되었다.

“키킥. 네놈은 나와 볼일이 있었지?”

단거리 순간이동 마법인 블링크를 이용해 화려한 마법을 난사하는 염환과 베팔이 싸우는 광경에 빠져 있던 해골이 진득한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 검을 겨눴다.

해골의 검 위로 검은 마기가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다행히 진정한 데스나이트로는 변하지 않은 듯했다.

‘다행이군.’

“응?”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내 곁에 거대한 인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야수화를 끝마친 티나였다.

스윽.

“네놈, 나와라.”

서슬 퍼런 티나의 창끝이 가리키는 상대는 바로 여태껏 침묵하던 보티스였다.

저번 유토리안에서 끝내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이 꽤나 쌓였는지 티나의 얼굴에는 차가운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유일하게 드러난 눈으로 자신을 겨눈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보티스가 월향을 쳐다보자 월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

쉬식.

까강!

월향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서 증발하듯 사라진 보티스가 티나의 앞에 나타나 단검을 휘둘렀다. 과연 검은 그림자라 불리는 보티스다운 날카로운 기습이었다.

하지만 티나는 어렵지 않게 창을 들어 막았다. 고전한 과거와는 달리 야수화를 한 지금은 티나가 한 수 위였다.

까가강!

짙은 오러를 머금은 티나의 단창이 보티스의 단검과 부딪치며 날카로운 불꽃을 튀겼다.

보티스가 티나의 예상외의 반격에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티나의 단창이 그 자리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며 공기를 찢어발겼다.

“죽엇! 키하아앙!”

온몸의 털을 세운 티나가 날카로운 포효를 터트리며 단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보티스의 단검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갔다.

그러나 보티스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콰강!

“노옴!”

애꿎은 바닥을 헤집은 단창을 거칠게 빼낸 티나가 분노 섞인 괴성을 지르며 보티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티나와 보티스의 대결이 진행되었다.

“오랜만이네요? 호호. 사자왕이 정말 사자가 됐네요.”

여유로운 눈으로 전장을 살피던 월향이 나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월향의 모습에 내 입에서 서늘한 소리가 나왔다.

“그래, 오랜만이군.”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마세요. 잡아먹힐까봐 무서워요. 깔깔깔.”

과장된 몸집으로 나를 조롱한 월향이 돌연 웃음을 멈추고는 한쪽으로 비켜서며 입을 열었다.

“무서운 괴물로부터 저를 지켜주시겠지요?”

“낄낄. 맡겨만 주십시오.”

스윽.

월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쪽에 있던 해골과 율칸이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선 해골이 형형한 빛을 뿌리는 검을 들어 나를 겨누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낄낄. 요즘에는 야수왕이라고 불린다지?”

“그래, 쥐새끼 왕.”

“뭐, 뭐야? 빌어먹을 자식이!”

우우웅.

해골의 분노에 동요하는지 해골을 감싸고 있던 옅은 마기가 웅웅 울며 솟구쳤다.

보통 유저였다면 그 위협적인 모습에 위축되었을 테지만 난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해골은 과거와 똑같은 수준이었다. 과거에 해골을 가볍게 상대한 전적이 있는 내가 해골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거기다 난 과거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상태다.

“흥.”

해골을 향해 콧방귀를 뀌어 보인 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율칸을 훑어 내리던 나는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고 놀라고 말았다.

“태, 태초의 방패!”

“깔깔깔. 알아보니 다행이네요.”

침묵하는 율칸대신 월향이 들뜬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 같았으면 이를 갈며 쏘아줬겠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붉은빛을 내뿜는 율칸의 전신 갑옷과 어울리지 않는 이 나무로 이루어진 커다란 사각 방패는, 겉모습은 전에 착용했던 아이언 드래곤에 비해 턱없이 약해 보이지만 그 진정한 능력은 감히 아이언 드래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태초의 방패!

이것이 바로 율칸이 들고 있는 방패의 이름인데, 엘프가 사는 태초의 숲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에 사는 NPC인 엔트의 껍질과 엘프의 신목(神木)인 태초수의 껍질을 모아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방패는 내가 특별한 퀘스트로 얻은 방패였다. 그 자체의 방어력과 내구력은 낮지만 이 방패에는 어마어마한, 가히 천 급 아이템과 맞먹는 옵션이 하나 있었다.

오러와 물리 공격에 대한 절대 방어!

전사 계열의 유저들이 내뿜는 오러를 비롯해 모든 물리 공격을 절대적으로 방어하는, 말도 안 되는 옵션이 붙어 있는 방패가 바로 이 태초의 방패다.

당시 나는 AA급 퀘스트로 받은 이 방패를 율칸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여기서 보게 되다니…….’

여유로웠던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내 심경의 변화를 눈치 챈 것인지 월향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죠? 깔깔.”

“입 닥쳐라, 호박.”

“뭐, 뭐?”

“입 다물라고 했다, 호박.”

싸늘한 내 말에 월향이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나를 가리키며 날카로운 목소리를 토해냈다.

“죽여! 놈을 죽여 버려!”

후우웅.

꽝!

월향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해골이 아닌 율칸이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율칸이 그 자리에서 도약하자 율칸이 있던 땅이 움푹 파이며 엄청난 소리를 터트렸다.

그렇게 쿵쿵거리며 나에게 다가온 율칸이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장검으로 나를 내리쳤다.

까강!

오러를 두르지 않은 도와 검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금속성을 토해냈다.

율칸의 공격은 여유롭게 막았지만, 뒤늦게 날카로운 기합을 지르며 몸을 날린 해골이 나와 율칸 사이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큭.”

야수화로 인해 높아진 민첩성으로 피하기는 했지만 망토가 잘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재빨리 거리를 벌리는 나를 향해 혀를 찬 해골이 율칸을 향해 말했다.

“율칸 님도 놈에게 보여주시죠. 낄낄.”

‘보여주다니?’

나는 해골의 말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율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기운에 내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우우우우.

“거, 검강? 설마 포 스타?”

경악한 내 외침과는 상관없이 핏빛의 검강을 내뿜은 율칸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낄낄. 아무리 포 스타라고 해도 저렇게 강한 검강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 낄낄.”

음침한 웃음을 흘리는 해골의 말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블러드 문 소드?”

율칸이 포 스타라고 하더라도 이제 겨우 포 스타 초급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아무리 포 스타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형형한 검강은 무리였다. 과거 최초의 포 스타였던 나 또한 저런 검강은 뽑아낼 수 없었다.

레벨에 맞지 않는 저런 검강을 내뿜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이번 업데이트와 함께 대륙에 나타난 천 급 아이템인 블러드 문 소드를 사용하는 것!

사용자의 체력을 갉아먹어 검강을 만드는 저주받은 마검!

지금 율칸의 손에 들린 수수한 장검이 바로 그 블러드 문 소드인 것이다.

“빌어먹을!”

태초의 방패와 블러드 문 소드라니!

내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해골이 율칸과 함께 점차 거리를 좁혔다.

“악왕의 기운. 파천기.”

우우웅.

악왕의 기운과 함께 파천기가 도를 휘감고 ‘푸확’ 하고 타올랐다.

몸을 감싸는 충만한 힘을 느끼며 막 몸을 날리려는 순간, 율칸과 해골의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인드! 바인드! 바인드!”

무려 3중으로 중복된 바인드 주문에 내 발 밑의 땅이 터지며 굵은 나무뿌리를 뽑아냈다.

내 하체에 나무뿌리가 휘감기려는 순간, 내 뒤에서 대기하던 마리아가 힘차게 외쳤다.

“안티 매직!”

멈칫.

마리아의 외침에 내 하체를 휘감으려던 나무뿌리가 다시 땅속으로 사라졌다. 물리 공격이 아닌 마법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안티 매직(Anti Magic)의 효과인 듯했다.

“이익. 빌어먹을 년!”

자신의 마법이 소용없게 된 것이 꽤나 분한지 월향이 앞으로 나서 마리아를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웬만한 여자라면 몸을 떨게 할 월향의 눈초리에 잠시 주춤한 마리아가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년? 어머, 호박이 말도 하네?”

“뭐, 뭐야?”

천연덕스러운 마리아의 말에 월향이 눈을 치켜뜨며 마리아를 노려봤다.

“죽어! 어머니여! 창조는 또 다른 끝! 모든 창조를 담당하는 어머니의 힘을 빌려 간절히 바랍니다! 끝없는 파멸을 자행하는 무지한 적을 겁화의 손으로 감싸소서! 버닝 핸즈(Burning Hands)!”

“아버지여! 파멸은 창조의 또 다른 뜻! 모든 파멸을 담당하는 아버지의 힘을 빌려 간절히 바랍니다. 파멸의 길을 거부하고 사도의 길을 걷는 어리석은 적에게 단죄의 주먹을 내려치소서! 플라잉 피스트(Flying Fist)!”

월향의 손에서는 불타는 손이, 마리아의 손에서는 검은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먹이 나타나 서로를 향해 쏘아졌다.

쿠와아앙.

“크윽.”

“윽.”

거대한 두 주먹이 만들어낸 폭발에 나를 향해 다가오던 율칸과 해골이 신음을 삼키며 몸을 사렸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폭발의 영향을 피해 몸을 낮췄다.

폭발의 여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연기 속에서 월향이 마리아를 향해 몸을 날리며 앙칼지게 외쳤다.

“이 빌어먹을 년! 바인드! 바인드!”

“흥. 호박 주제에! 안티 매직! 데스 스웜!”

월향이 소환한 나무뿌리가 마리아의 마법에 사라졌고, 마리아가 소환한 죽음의 벌레들이 월향이 소환한 빛의 구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염환과 베팔만큼은 아니었지만 성직자들의 싸움도 나름대로 화려했다. 회복이 주능력인 성직자 간의 싸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전투를 펼치는 마리아와 월향의 얼굴에는 지고 싶지 않다는 독기가 가득했다.

“끄응. 어서 이 자식을 죽이고 도와주죠.”

“…….”

월향을 보며 앓는 소리를 한 해골이 다시 검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율칸 또한 묵묵히 검과 방패를 들어 자세를 취했다.

“흐읍.”

나 역시 자세를 잡고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크게 부풀어 오르는 내 가슴에 무언가를 눈치 챈 해골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내 입에서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허어엉!”

끄에에엑!

크르륵!

신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제왕의 포효에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를 몰아붙이던 인간 키메라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그에 힘을 입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이 반격을 가했다.

“크윽. 이 빌어먹을 자식!”

쉬식.

제왕의 포효에 잠시 비틀거린 해골이 욕을 내뱉으며 나를 향해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까강!

“크윽.”

마기가 휘감긴 도와 검의 격돌에 해골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왔다.

같은 마기라고 하지만 애초부터 나와 해골의 마기는 그 등급 자체가 다른 것이다.

쿠구구구.

“크윽. 큭.”

내 도를 휘감고 있던 마기가 해골의 검을 타고 올라 해골의 마기를 마구 압박했다. 그에 맞춰 창백하던 해골의 얼굴 위로 푸른 힘줄이 마구 돋아나 꿈틀거렸다.

“크하압!”

스응.

푸욱.

한차례 거친 기합을 지르며 도를 밀자, 간신히 버티던 해골이 비틀거리며 가슴에 도를 허용했다.

다른 도와는 달리 날카로운 도의 끝의 해골의 가슴에 깊게 파고들었다.

“캬악!”

피 대신 마기를 흘린 해골이 비틀거리며 비명을 토해냈다.

이내 황급히 거리를 벌리는 해골의 곁을 지나 한 인영이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율칸이었다.

쿠우웅!

꽝!

그 거대한 몸에서 나온 엄청난 힘과 블러드 문 소드가 만들어낸 검강, 그리고 내 도를 휘감은 파천기와 도기, 마기와 섭혼기가 만들어낸 엄청난 충격파에 몸을 사리던 해골이 울컥 검은 마기를 토해냈다.

스으응.

까강!

내 도와는 달리 가벼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른 율칸의 마검이 내 도와 부딪치며 날카로운 금속성을 토해냈다.

까가가강!

몇 번의 격돌이 더 이어졌다.

보통 검이었다면 몇 번의 격돌로 검이 갈라졌겠지만 율칸이 들고 있는 검은 보통 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기를 이용해 율칸을 압박할 수도 없었다. 율칸의 마검이 뿜어대는 마기 또한 무시 못 할 기운이기 때문이었다.

해골 같은 어정쩡한 마기가 아닌, 마검에 스며든 강력한 마기에 내 도를 휘감은 마기가 마구 날뛰며 힘을 토해냈다.

카가각.

마도와 마검이 얽히며 거북한 금속음을 흘렸다.

‘치잇! 역시 레벨 차이인가?’

율칸의 검이 천 급 아이템이라고 하지만 내 도는 신 급 아이템이었다. 그럼에도 나와 율칸의 힘이 비슷한 이유는 바로 레벨 차이에 있었다. 이제 겨우 쓰리 스타가 된 나와 포 스타 초반인 율칸의 레벨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죽여주마!”

접전을 치루는 나와 율칸의 틈에 검은 마기를 뿌리는 해골이 끼어들어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오직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뿐인지, 몸에 나 있는 상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스으응.

“큭!”

율칸에 비해 약하다고는 하지만 해골 또한 쓰리 스타였다.

도를 잡은 손에 가하는 힘을 유지하며 몸을 비틀자, 내 옆구리로 날카로운 검이 스쳤다.

그에 맞춰 내 도와 부딪친 율칸의 검이 한층 더 강한 힘을 뿜어대며 나를 압박했다.

‘제길!’

해골이 내 신경을 거슬러 틈을 만들면 율칸이 그 틈을 공격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빌어먹게도 완벽한 작전이었다.

‘해골을 먼저 처리한다!’

일단 해골을 먼저 처리해야 율칸과 대적할 수 있었다.

소극적으로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나는 해골을 향해 쏘아갔다.

“죽어라!”

“낄낄. 도망을… 허억!”

후우웅.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던 해골이 갑작스런 내 반격에 숨을 삼키며 재빨리 휘두르던 검을 회수해 방어했다.

꽈앙.

“크악!”

애초에 율칸과는 달리 민첩성에 투자한 해골이 내 검을 버틸 리 없었다. 가까스로 내 도를 막은 해골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내 곁을 맴돌며 기회를 노리던 율칸 또한 내 행동이 의외였는지 유일하게 드러난 눈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큭. 닥쳐라, 빌어먹을 자식아!”

후우웅.

꽝꽝꽝!

허공으로 치솟은 도가 다시 해골의 정수리를 가린 검을 향해 내리 꽂혔다.

제2격, 3격… 이어진 내 도에 해골이 비명을 지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율칸이 형형한 검강을 내뿜으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내 도가 해골의 어깨를 내려친 후였다.

후우웅.

콰드득.

야수화로 인해 250cm에 가까워진 키와 합쳐진 힘 때문에 해골의 어깨를 보호하던 갑주가 단숨에 부서져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파천기의 힘으로 두 배의 힘을 머금은 도가 해골의 어깨에 박혔다.

“캬아악!”

콰드득. 콰직.

해골의 입에서 전에 어떤 비명보다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가 해골의 어깨의 박힌 도에 더욱 힘을 주자 3분의 2쯤 박힌 도가 더욱 깊이 박혀 들어가나 싶더니,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해골의 오른팔이 툭 떨어졌다.

“파, 팔! 내 팔! 캬아악!”

옅은 마기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은 해골이 비명을 지르며 펄떡거리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이내 바닥을 펄떡거리던 해골의 팔이 옅은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마기로 이루어진 팔이 마기의 근원인 해골의 몸과 떨어지면서 나타난 형상이었다.

쨍그랑.

해골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차가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캬아악. 워, 월향 님! 치료해주세요! 캬악!”

휘잉.

꽝!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마구 발광하는 해골을 지나친 율칸이 땅을 박차고 튀어 올라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의 명예!”

우우웅.

율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율칸의 몸에서 짙은 적색 기운이 솟구쳤다. 클래스를 나이트로 선택한 유저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보조 스킬인 기사의 명예였다. 율칸의 몸이 1.5배 거대해졌다.

“우어엉!”

꽝!

괴상한 기합을 내지른 율칸이 방패를 앞세워 나를 향해 실드 챠징을 시전했다.

땅을 박찬 율칸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왔다.

피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에 재빨리 도면을 이용해 막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찌릿한 통증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타다닥.

재빨리 거리를 벌려 재빨리 포션을 꺼내 입속으로 흘려 넣자 체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이 아마 실드 챠징으로 인해 일시적인 스턴에 걸린 듯했다.

“크윽.”

일렁이는 시야에 신음을 삼키며 다시 거리를 벌리려는 내 앞으로 거대한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태초의 방패를 앞세운 율칸이었다.

“우어엉!”

꽝!

“큭.”

다시 이어지는 율칸의 실드 챠징에 내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튀어 나왔다.

‘제길! 야수화를 해도 이 정도라니!’

몸을 울리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다시 이어질 공격에 대비해 온몸의 마기를 끌어올렸다.

휘이잉.

율칸의 공격을 대비해 마기를 끌어 모은 내 몸을 강타한 것은 율칸의 공격이 아닌 매서운 바람이었다.

내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혹시 모를 공격에 살며시 고개를 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수많은 칼날이 박힌 몸으로 월향을 감싸고 있는 율칸이었다.

마리아가 시전한 킬링 윙이라는 마법 때문에 공기로 이루어진 칼날이 율칸의 몸에 박혀 푸스스 사라졌다.

물리적 공격이 아닌 마법 공격이라 태초의 방패로도 방어하지 못한 듯했다.

‘대체 왜!’

월향을 대신해 마법을 맞은 율칸을 노려보는 내 시선이 복잡하게 변했다.

아무리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약간의 통증은 있다. 그리고 약간의 통증조차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거기다 율칸의 레벨은 포 스타. 여기서 죽는다면 순식간에 쓰리 스타로 레벨이 하락하는 것이다.

월향이 율칸을 보호하면 보호했지, 결코 율칸이 월향을 보호할 상황은 아니었다.

“무, 무슨…….”

마리아 또한 월향 대신 율칸이 자신의 마법에 맞은 것이 의외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스윽.

약간의 통증이 느껴질 만도 하건만 아무런 기색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율칸이 아직까지 몸에 남아 있는 공기의 칼날을 손으로 부스러트렸다.

율칸의 품에서 안전하게 마리아의 마법을 피한 월향이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마리아를 노려보는가 싶더니 곧 손에 들린 스틱으로 율칸의 몸을 후려쳤다.

퍼억. 퍽.

“그, 그만해!”

교묘하게 마법에 의해 상처를 입은 곳만 때리는 월향의 만행을 보다 못한 마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율칸은 묵묵히 자신을 때리는 월향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마리아에게 당한 것을 분풀이라도 하듯, 한참을 율칸을 구타하던 월향이 경악한 얼굴의 나와 마리아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NPC 따위를 동정하는 거야? 깔깔깔!”

“무, 무슨!”

월향의 말에 내 입에서 경악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율칸이 NPC라니!’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도 잠시, 곧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크크큭.”

“……?”

갑작스레 웃음을 흘리는 내 모습에 월향과 마리아는 물론이고 팔을 부여잡고 발광을 하던 해골까지 의문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드래곤 클럽의 진실을 알기 전의 나였다면 말도 안 된다며 길길이 날뛰겠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지금은 아니었다.

월향 또한 드래곤 클럽의 멤버. 드래곤 클럽의 멤버들 모두가 (주)한신의 고위급 인사의 자식이다.

그들이 약간만 힘을 쓴다면 포 스타의 NPC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 NPC의 정체가 율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율칸이 NPC라면 오히려 내가 환영할 바였다.

유저는 죽으면 다시 접속하면 그만이지만 NPC는 아니다.

부활 마법을 이용해 살아나는 경우도 있지만 나에게는 천살멸혼도에 딸려 있는 스킬 멸혼이 있다.

율칸은 검은 사자 길드의 간부 중에서도 중요한 간부.

멸혼을 이용해 율칸이라는 NPC 자체를 소멸한다면 검은 사자 길드에 있어 커다란 타격이 분명하다.

놈들이 후에 율칸과 같은 NPC를 또다시 만들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멸혼이라는 카드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함부로 만들지는 못할 것이 분명하다.

“크크큭.”

우우웅.

낮은 광소를 흘리는 내 모습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월향이 황급히 자신의 몸에 방어막을 걸쳤다.

‘큭. 멍청한 계집!’

그런 월향을 향해 차가운 조소를 흘린 내가 발도의 형태를 취하기 위해 도를 허리춤에 걸치자, 해골이 움찔하며 황급히 월향의 뒤로 숨었다.

하지만 율칸만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월향을 보호하는 모습으로 검을 들고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우우우웅.

이내 내 허리춤에 걸쳐진 마도가 거친 울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마도를 중심으로 주체할 수 없는 마기와 섭혼기가 모여들었다.

두두두두.

도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엄청난 마기에 신전의 땅이 마구 들썩였다.

우우우웅.

신전의 중앙에 있는 뾰족한 탑이 마기와 공명하며 마구 울음을 흘리자,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의 몸 위로 옅은 보랏빛의 기운이 솟아났다. 내 마기로 인해 일종의 보조 마법 효과가 나타난 듯했다.

크레레렉!

키에엑!

인간 키메라들 또한 내 마기에 공명한 듯 공격을 멈추고 몸을 들썩이며 게거품을 흘렸다.

“무슨…….”

“저, 저럴 수가!”

언령으로 대결하던 바젤과 고추가침퉤퉤는 물론이고 염환과 바젤, 그리고 티나와 보티스 또한 두려운 눈으로 점차 유형화하는 마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기로 이루어진 폭풍의 눈에는 바로 내가 있었다.

스윽.

콰가가강.

슬며시 손을 내려 도의 손잡이를 잡자 도가 마구 들썩이며 광포한 기운을 뿌렸다.

“노, 놈을 죽여 버려!”

방어막 속에서 덜덜 떨던 월향이 돌연 나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외치자, 멀뚱히 서 있던 율칸이 땅을 박차고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상처를 입어서 그런지 전과 같은 재빠른 몸놀림이 아니라 평소의 반밖에 안 되는 굼뜬 움직임이었다.

“크와아아!”

쿵쿵쿵.

마리아에게 입은 상처로 인해 분노한 것인지 율칸이 괴성을 터트리고는 쿵쿵거리며 몸을 날렸다.

쿠구구구.

율칸의 분노에 동요한 것인지 율칸의 손에 들린 블러드 문 소드, 그 저주받은 마검이 율칸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형형한 검강을 뿜어냈다.

스으응.

이내 불길한 붉은 검강을 두른 율칸의 검이 막 내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 내 허리춤에 걸린 도가 스윽 움직였다.

탁.

도와 율칸의 태초의 방패가 부딪치며 가벼운 타격음을 흘렸다.

음속보다 빠른 도의 속도 때문에 뒤늦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쓰아아아앙.

콰가가가.

나와 율칸을 중심으로 주변의 공기가 광포하게 날뛰었다.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퍼지는 공기에 율칸의 얼굴 위로 당황한 감정이 떠올랐다.

당황한 눈빛을 흘리는 율칸을 향해 나는 차가운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사라져라, 불쌍한 인공지능. 멸혼(滅魂)!”

꽈아아아앙!

내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내 도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회색 기운이 율칸의 방패를 후려쳤다.

타닥.

“크어억.”

멸혼을 시전한 나까지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엄청난 위력에 율칸이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검을 든 손을 들어 방패를 든 손을 도왔다.

카가가각.

신까지 소멸할 수 있는 기술인 멸혼과 오러와 물리 공격에 대한 절대 방어의 권능을 지닌 태초의 방패가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터트렸다.

멸혼의 회색 기운은 날카로운 검으로 변해 태초의 방패를 뚫기 위해 끈임 없이 태초의 방패를 때리고 있었고, 태초의 방패는 태초의 방패대로 꿋꿋하게 멸혼을 방어하고 있었다.

최강 공격 기술과 최강 방패의 대결에 주변의 모든 존재들이 싸움을 중단하고 이 광경을 주시했다.

카가각.

쩌적.

마침내 태초의 방패의 표면에 미약한 금이 한 줄 그어졌다. 그리고 그 금이 시작이었다.

쩌저적. 쩌적.

“저, 저!”

점차 그 면적을 넓혀나가는 금에 해골이 경악하여 외침을 토해냈다.

태초의 방패를 든 율칸의 손이 눈동자와 함께 불안하게 떨렸다.

부르르.

‘크윽.’

멸혼을 시전하고 있는 내 손 또한 율칸과 마찬가지로 거세게 떨렸다.

멸혼의 기운을 쏠 때는 멸혼을 쏘아낸 뒤에서 목표가 멸혼에 격중당해 죽기 전까지 멸혼의 기운을 유지해야 한다.

도를 잡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서 마지막으로 쥐어짠 모든 힘이 기합과 함께 쏘아졌다.

“크아아합!”

꽈가강.

슉.

“크억!”

“캭.”

“크왁!”

복잡한 비명이 한차례 울리고 나자 잠시간의 고요가 신전을 잠식했다.

화려한 움직임도, 신전을 뒤흔드는 폭음도 없었다. 그저 태초의 방패를 가루로 만든 회색 기운이 그대로 율칸의 가슴을 뚫고 나와 해골의 가슴을 지나쳐 마지막으로 멍하니 서 있던 고추가침퉤퉤의 가슴에 박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 무슨…….”

털썩.

월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율칸과 해골, 고추가침퉤퉤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율칸과 해골, 고추가침퉤퉤의 몸에 있는 모든 구멍, 심지어 땀구멍에서도 검붉은 피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부들부들.

율칸과 해골, 고추가침퉤퉤를 바라보는 월향의 손이 공포로 떨렸다.

“마, 말도 안 돼!”

아무리 강력한 기술이라 할지라도,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던 ‘소드 오드 더 히어로’도 태초의 방패를 부수고 세 명을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었다.

율칸의 레벨이 포 스타라는 것과 고추가침퉤퉤가 스페셜 직업인 언령사라는 것을 따지기 전에 소드 오브 더 히어로로는 태초의 방패도 부술 수 없었다.

“유, 율칸?”

공포로 몸을 떨던 월향이 입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율칸을 불렀다.

하지만 멸혼으로 소멸당하고 껍데기만 남은 율칸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율칸이 유저였다면 24시간 뒤에 다시 접속할 수 있겠지만 율칸은 NPC다. 멸혼에 의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이, 이 빌어먹을 자식! 홀리 스피어!”

“실드!”

꽝!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월향이 시전한 새하얀 창이 마리아가 시전한 투명한 막에 부딪혀 사라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본 월향이 말을 이었다.

“네놈이, 네놈이 감히!”

나를 향해 한바탕 욕을 하려던 월향이 말을 잇지 못하고 멈칫했다.

바로 율칸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 때문이었다.

모래가 되어 사라지는 고추가침퉤퉤와 해골과는 달리 계속해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누워 있던 율칸이 거세게 들썩이는가 싶더니 곧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혈수(血水)로 변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때는 붉은 기사, 혹은 아이언 나이트라 불리던 율칸의 혈수가 주르륵 천천히 흘렀다.

생전에 율칸이 입었던 갑옷과 블러드 문 소드를 그대로 지나친 혈수가 스멀거리며 끈적거리는 몸에서 움직이는 속도를 높였다.

“뭐, 뭐야!”

경악한 마리아가 외쳤다.

움직인 혈수의 도착점은 바로 눈 조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었다.

우우웅.

혈수와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 웅웅 울며 표면에 새겨진 눈들이 옅은 마기를 뿜어댔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물론이고 인간 키메라와 싸움을 하던 나머지도 탑이 뿜어대는 공명음과 마기에 취해 넋을 놓고 탑과 점차 거리를 좁히는 혈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의문 섞인 얼굴로 혈수를 보던 내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월향 패거리와 전투를 치루기 전에 바젤이 말했던 신탁에서는 분명 나이트메어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별이 새겨진 심장을 탑에 바치라고 했다. 그래야 나이트메어가 부활한다고 했다.

내가 죽인 율칸의 레벨은 포 스타! 그 말은 곧 율칸이 나이트메어를 죽이기 위한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오오오!”

어리둥절한 사람들 틈에서 오직 바젤만이 감탄을 내뱉으며 연신 탑을 향해 절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나머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들 또한 바젤과 함께 탑을 향해 절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갑작스런 상황에 염환과 치열한 격전을 벌이던 베팔이 월향의 곁으로 다가와 당황하여 외쳤다.

[염환: 무슨 일이냐.]

염환 또한 내 곁으로 다가와 파티 음성창으로 물었다.

[블러드: 아마 나이트메어가 부활할 것 같다. 모두 내 곁으로 모여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리아와 염환이 내 곁으로 왔다.

보티스와 격전을 벌이던 티나 또한 내 곁으로 다가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치열한 격전을 치룬 듯, 티나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쪼로로록.

흘러가 탑에 도착한 혈수가 탑을 타고 올라 눈 조각 곳곳에 스며들었다.

스스스스.

우우웅.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혈수를 빨아들인 새하얀 눈 조각이 혈수를 다 빨아들이자마자 웅웅 울며 짙은 마기를 뿜어댔다. 그와 동시에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들이 한층 더 짙어졌다.

크에에엑!

퀴에엑!

숨 막히는 엄청난 마기에 인간 키메라들이 마구 발광하며 날뛰었다.

어떤 놈은 동료를 공격했고, 또 어떤 놈은 팔로 자신의 몸을 마구 내리치며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크에에엑!

키에엑!

“큭. 이, 이놈들! 모두 멈춰라! 멈추란 말이다!”

진득한 침을 흘리며 발광하는 인간 키메라들의 모습에 베팔이 신경질적으로 스틱을 휘둘렀다.

하지만 인간 키메라들은 여전히 미친 듯이 발광할 뿐이었다.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 인간 키메라들의 모습에 베팔이 막 인상을 찌푸리며 품속에서 무언가 꺼내려는 순간, 엄청난 폭음이 탑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푸화아악.

“뭐, 뭐냐!”

“꺄아악.”

폭음과 함께 터져 나온 마기에 베팔이 경악하여 비명을 질렀다.

여자인 월향과 마리아 또한 비명을 질렀다.

나 또한 태연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바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탑의 마기에 내 손에 들린 도와 입고 있는 갑옷이 웅웅거리며 낮게 울었다.

‘드디어!’

“오오! 아버지시여!”

털썩.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기에 몸을 떨던 바젤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신전 곳곳에 자리 잡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오오, 아버지여!”

“아버지가 오신다!”

우우웅.

자신을 경배하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짙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탑이 한층 더 짙은 마기를 흘렸다.

몸을 압박하는 엄청난 마기에 나는 물론이고 베팔과 나머지 사람들 또한 움직이지 못한 채 점차 갈라지는 탑을 바라봤다.

쩌적. 쩌적.

우우웅.

탑이 깨지는 거북한 소리를 내며 탑에 조각된 눈들이 하나 둘 눈을 뜨며 형형한 안광을 뿜어냈다. 눈을 뜨는 조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탑을 가르는 금의 수 또한 많아졌다.

쩌적.

이내 마침내 쩍 하는 소리와 함께 탑이 반으로 갈라지며 매캐한 연기를 뿌렸다.

“무, 무슨… 읍! 수, 숨을 멈춰라!”

신전을 메우는 보랏빛 연기에 베팔이 화들짝 놀라며 숨을 멈추고는 황급히 방어막을 형성했다.

보티스 또한 어둠에서 나와 마리아 곁으로 숨었다.

그에 맞춰 월향과 염환, 그리고 마리아 또한 방어막을 형성해 각자 스스로를 보호했다.

바젤과 서큐버스, 인큐버스와 야수화한 나와 티나는 보랏빛 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인간 키메라들은 아니었다.

크에에엑!

크르륵!

베팔의 명령도 무시하고 마구 발광하던 인간 키메라들이 연기의 영향권에 들어서자 발광을 멈췄다.

“뭐, 뭐야?”

자신의 명령도 듣지 않던 인간 키메라들이 잠잠해지는 것에 대해 베팔이 분노해서 외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베팔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바로 인간 키메라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크르륵.

크륵.

털썩.

움직임을 멈춘 인간 키메라들이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탑을 바라보며 하나 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라였다.

“이, 이럴 수는 없어! 내가 마스터인데! 그리고 인간 키메라는 이성이 없을 텐데!”

나는 경악한 베팔의 외침에 조소를 흘리며 고개를 돌려 반으로 쪼개진 탑을 바라봤다.

베팔의 말대로 인간 키메라들은 이성이 없다. 인간 키메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키메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직 마스터의 명령만 들을 뿐이다. 그것이 키메라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키메라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본능이었다. 사라진 이성 대신 몇 배는 더 강해진 본능.

이 본능이 부활하는 나이트메어의 기운을 느끼고 마스터인 베팔의 명령 까지 무시하고 굴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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