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챕터1 작전회의 (28/34)

5권

챕터1 작전회의

“비천한 인간들아! 죽어라!”

번쩍! 콰르르릉!

한차례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몸을 울리는 통증에 나는 처절한 비명을 터뜨렸다.

치지지직.

“크아아악!”

“블러드 님!”

내 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푸른 뇌전에, 뒤에서 보조마법을 사용하던 마리아가 내 이름을 외쳤다.

“크윽, 제길! 치료 마법을……!”

“아, 알겠어요! 힐링! 힐링!”

마리아의 목소리와 동시에 반 이상 깎였던 체력이 서서히 차올랐다. 천천히 아무는 상처와 함께 내 입에서 서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뿌드득.

“발록! 놈을 공격해라!”

“오케이! 으랏차!”

천천히 거리를 벌리며 내가 외치자, 내 옆에서 붉은색의 인영이 튀어나와 번개를 뿌린 적과 마주했다.

“비천한 인간 놈들이 감히!”

우르르릉! 꽈가강!

보라색 피부를 가진 미남자의 손에서 한차례 번개가 뿜어져 나오자 사방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총 12장의 날개와 4개의 뿔을 가진 미남자가 머리 위에서 쉴 새 없이 뇌전을 쏟아내는 전기의 창에 내 얼굴이 참담하게 구겨졌다.

폭풍과 번개의 백작 ‘푸르푸르’.

바로 나와 마리아, 그리고 발록이 상대하는 마족(魔族)이었다.

‘백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악마답게 푸르푸르의 레벨은 포 스타 급인 400으로, 특수 이벤트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몬스터였다. 왼손으로는 폭풍을 다루고 오른손으로 번개를 뿌리는 푸르푸르는 확실히 강적이었다.

폭풍을 쏟아내야 하는 푸르푸르의 왼쪽 옷깃은 허전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바로 내가 목숨을 걸고 휘두른 도에 잘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 또한 배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기는 했지만 마리아의 회복 마법으로 가까스로 회복할 수 있었다.

“죽어라, 비천한 것!”

콰르릉! 쿠르르릉!

“크으윽! 블러드! 이 이상은 무리다!”

거대한 돔을 메우는 번개에 푸르푸르와 대적하던 발록이 신음을 삼키며 황급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 덕에 푸르푸르가 쏟아낸 번개가 애꿎은 땅을 때렸다.

현재 파티원은 나와 마리아 그리고 발록이다.

특수 이벤트의 특성 상 파티원을 한 명밖에 할 수가 없었기에 마리아와 파티를 했는데 그때 마리아와 파티를 하고 있던 발록도 덩달아 나와 함께 파티가 되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에 고민을 하는 것도 잠시, 잠시 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발록이 암흑투마군단에 소속된 유저였기 때문이다.

현재 나의 직위는 암흑투마군단장.

특별히 파티를 하지 않아도 발록을 부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스템에 걸리지 않고 파티가 된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강자들도 파티에 동참시키고 싶었지만 시간 제약 퀘스트인 덕에 부랴부랴 퀘스트를 해야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꼴이었다.

‘제기랄!’

점차 거리를 좁히는 푸르푸르를 노려보는 내 얼굴이 참담하게 구겨졌다.

특수 퀘스트만을 찾아다닌 지 오늘로 33일째였다.

아이템이 아닌 능력치를 올려주는 특수 퀘스트를 미친 듯이 했기에 레벨 또한 상당히 많이 올라가 있었다.

‘제길, 하필이면……!’

마지막 퀘스트인 셈 치고 A+급의 특수 퀘스트를 받은 것이 실수였다.

“뇌전의 마나여, 폭풍의 마나여, 내 손을 떠나 절망의 피보라를 일으켜라! 일렉트로닉 익스플로전(Electronic Explosion)!”

우우웅. 꽈아앙!

푸르푸르의 손을 떠난 전기의 구체가 돔의 바닥을 때리며 엄청난 폭음을 터트렸다.

투 스타 급의 마법이었지만 전기를 다루는 마족인 푸르푸르의 손에서 발현되자 거의 쓰리 스타 급 마법의 파괴력이 나왔다.

“으드득, 빌어먹을 놈들!”

내 마도의 능력 때문에 지혈되지 않은 왼쪽 팔을 부여잡은 푸르푸르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봤다. 그와 동시에 내 체력이 모두 회복됐다.

“마리아, 엄호해라! 발록, 가자!”

“예!”

“알았다고!”

타닥.

힘찬 외침과 함께 땅을 박차고 오른 내 도에서 짙은 도기가 솟구쳤다.

우우웅.

한층 더 강맹해진 도기에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도를 잡지 않은 손에 들린 보라색 구슬이 파삭 하고 깨졌다. 바로 나이트메어 신전에서 그레고리를 죽이고 나온 악몽의 집합체였다.

끼아아악! 푸화아악.

구슬이 깨어지자마자 날카로운 비명이 돔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구슬에서 뿜어져 나온 보라색의 안개가 발록과 푸르푸르를 덮쳤다.

“컥! 뭐야!”

안개를 정면으로 받은 푸르푸르가 비명을 지르며 마구 손을 휘저었다.

“크아아악!”

막 번개를 날리려던 푸르푸르가 발광을 하며 땅을 굴렀다.

‘기회다!’

우우웅.

푸르푸르를 향해 몸을 날린 내 눈이 번뜩임과 동시에 내 도에서 뿜어져 나온 강한 도풍에 푸르푸르의 머리가 마구 휘날렸다.

“응…? 헉!”

이내 바닥을 구르며 발광을 하던 푸르푸르가 갑작스런 바람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숨을 삼켰다. 뒤늦게 날개를 펼친 그가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 짙은 도기가 휘감긴 내 도가 푸르푸르의 날개를 갈랐다.

푸화악.

“크아악!”

콰당.

12개의 날개 중 4개의 날개가 내 도에 잘려 피분수를 뿜었다. 당연히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푸르푸르가 중심을 잃고 땅을 굴렀다.

“크윽, 이 빌어먹을……!”

치지직?

한바탕 바닥을 구른 푸르푸르가 막 욕을 토하며 뇌전을 뿜어대려다 말고 그대로 굳었다. 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발록의 도 때문이었다.

“죽어라! 역산흑호조(逆山黑虎爪)!”

콰가가강!

발록의 도가 공기를 가르며 묵직한 파공음을 터트렸다. 이내 세 줄기로 갈라진 도기와 푸르푸르의 가슴이 만나는 순간,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부우욱.

“으아아악!”

두꺼운 공책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푸르푸르의 가슴이 찢어지며 사방으로 검은 피를 비산시켰다. 과연 절정 무공인 대력파산도법의 절초라고 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플라잉 피스트!”

퍼엉.

“쿨럭!”

연이어 시전된 마리아의 마법에 푸르푸르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용히 자세를 잡은 내 눈이 번뜩였다.

파밧.

“죽어라!”

압축된 다리 근육이 폭발적인 힘을 내뿜으며 내 몸을 도약시켰다. 양손에 힘껏 쥔 도가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르르 떨렸다. 그때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든 도가 매서운 광풍과 함께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 푸르푸르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아, 안 돼!”

“돼!”

퍽. 푸화악!

푸르푸르의 머리를 가른 도가 푸르푸르의 가슴팍까지 가르며 거친 피 분수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푸르푸르의 오른손에 모여 있던 노란 뇌전이 ‘푸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끄르륵.”

완전히 짓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푸르푸르의 머리에서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읍!”

콰드득.

한차례 기합을 주며 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가슴팍에 박혔던 도가 푸르푸르의 척추를 으스러트리며 빠져나왔다.

스스스.

이내 꿈틀거리던 푸르푸르의 시체가 모래가 되어 사라지며 한가득 아이템을 쏟아냈다. 그와 동시에 푸르푸르의 몸에서 솟아난 노란색 기운이 돔을 통과해 저 하늘로 사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큭.”

머릿속에서 울리는 여인의 목소리에 내 입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내 곁으로 마리아가 다가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아이템 많네요?”

“난 필요 없다. 챙겨라.”

“와아, 고마워요!”

나에게 고마움을 표한 마리아가 푸르푸르가 드롭한 아이템들을 챙겼다. 아이템의 대부분이 재료 아이템이었기에 나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발록이 포션을 마시며 입을 열었다.

“마을로 돌아가자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템 창에서 꺼낸 귀환 주문서를 찢자 발밑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스윽.

내가 눈을 뜬 곳은 푸르푸르를 처리한 지하 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저주받은 마을’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특수 퀘스트는 모든 능력치를 50이나 올려주는 엄청난 퀘스트였다. 물론 단 둘이서 푸르푸르를 상대할 만한 수준이 돼야겠지만.

화아악.

이내 내 뒤에서 빛이 뿜어지며 마리아와 발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지.”

“예!”

내 말에 마리아가 힘차게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퀘스트를 받은 이 마을은 ‘보노스’라는 마을로 푸르푸르를 처리한 뒤 1시간 이내에 보노스의 촌장 NPC에게 가야 한다. 특별히 푸르푸르를 처리하고 그 증표를 가지고 오라는 말이 없었기에 빈손으로 촌장이 살고 있는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촌장이 살고 있는 집은 마을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2층 건물이었다.

나와 일행이 도착하자 촌장집 주변에 모여 있던 마을 주민 NPC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촌장에게 안내해라.”

“예, 옛!”

싸늘한 내 말에 붉은색 머리를 가진 남자가 잔뜩 굳은 채 나와 일행을 촌장에게 안내했다.

촌장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앉아 하나뿐인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소이까?”

내가 도착하자 창밖을 통해 탁한 하늘을 보고 있던 촌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푸르푸르를 처리했다.”

“알고 있소. 하늘이 다시 번개를 머금고 살아났구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마리아 그리고 발록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꾸벅였다.

“고맙구려.”

띠리링.

[‘저주받은 마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0 증가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크큭.”

연이어 울리는 목소리에 내 입에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캐릭터 창.”

파밧.

이름: 블러드. 레벨: 322. 속성: 혈(血).

성향: 진마(眞魔). 종족: 야수혈마족(野獸血魔族).

명칭: 암흑투마군단장(暗黑鬪魔軍團匠)

체력: 2835000. 마력: 137000. 신성력: 0.

힘: 1935. 민첩성: 840. 체력: 605.

지혜: 200. 신마력: 200. 행운: 250.

가히 엄청난 변화였다.

엄청나게 증가한 능력치와 체력은 둘째 치고 성향과 종족이 가장 커다란 변화를 뽐내고 있었다. 퀘스트를 하면서 틈틈이 마을에 있는 검은 사자 길드의 동맹 길드들을 박살내고 다니며 엄청난 유저와 NPC를 죽였고 그에 따라 성향이 새롭게 업데이트된 ‘진마(眞魔)’로 변경되었다.

성향이 바뀜에 따라 내 종족 또한 웨어라이언이 아닌 야수혈마족(野獸血魔族)으로 변했다.

총 1개의 스킬이 새롭게 생성되었고 1개의 변화 스킬이 전보다 강력하게 변했다. 거기다 마족의 특성으로 밤에는 내 능력의 3배에 가까운 힘을 낼 수 있다. 천살멸혼도를 다루는 컨트롤 또한 상당히 늘어 나이트메어의 신전사건 이후로도 베팔을 2번, 해골을 5번, 고추가침퉤퉤를 3번 죽일 수 있었다.

모두 검은 사자 길드에서 나를 죽이기 위해 보낸 척살대에 위의 3명이 포함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 보낸 척살대가 번번이 몰살당하고 자신들의 조력 길드들이 나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자 이에 검은 사자 길드는 나를 ‘야수왕’이라 칭하며 내 목에 엄청난 수배금을 걸었다.

“크크큭.”

엄청난 능력치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밖으로 나서자 내 뒤를 마리아와 발록이 따라왔다. 촌장의 집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NPC들이 내가 나가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긴.’

야수혈마족으로 종족이 변하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마기를 내뿜는 나였다.

NPC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를 피하는 NPC들에게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발록과 마리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난 이만 로그아웃하겠다.”

내 말에 발록과 마리아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로그아웃하야겠네요. 빨래가 밀려서.”

“누나가 하면 나도 해야지.”

마리아가 나간다고 하자 발록이 냉큼 따라붙었다. 그런 발록의 모습에 내 얼굴이 작게 구겨졌다.

[블러드: 모임에 늦지 마라.]

[발록: 걱정 말라고!]

“나 먼저 나갈게, 누나!”

점차 흐릿해져가는 발록의 모습을 보던 마리아가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그만 가봐야겠네요.”

“으음. 자, 잘 가라.”

어색하게 인사하는 내 모습이 웃긴 것인지 마리아가 풋 하고 웃었다.

“저번처럼 고아원에 오셔서 좀 도와주세요.”

“아, 알겠다.”

어눌한 말투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아가 작게 웃었다.

“쿡쿡, 기대할게요.”

현실 시간으로 10일 전, 나는 마리아의 권유에 못 이겨 마리아가 살고 있는 고아원에 갔다. 우연인지 집과는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어쨌든 마리아가 사는 고아원에 간 나는 하루 종일 그곳의 일을 도와줬고 발록과 우코바치 그리고 팅커벨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마리아와는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다.

“그럼 가볼게요. 몸 생각해서 게임해요!”

스르륵.

이내 마리아의 몸 또한 발록처럼 흐릿하게 흩어졌다.

“후우.”

마침내 마리아가 완전히 사라지자 내 입에서 묵직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요즘 들어 변해가는 내 모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복수를 하기도 전에 변해가는 내 모습이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로그아웃.”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그래.”

[감사합니다. 또 하나의 세상, 판타즈마 월드였습니다!]

여인의 말과 함께 사방에서 어둠이 뿜어져 나와 나를 덮쳤다.

“…….”

눈을 뜬 곳은 작은 마을이 아닌 검은색의 캡슐 속이었다.

스윽.

“후우.”

낮은 한숨을 쉬며 헬멧과 함께 몸에 부착되어 있는 장치들을 떼고 캡슐 한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피슉’ 하는 소리와 함께 캡슐의 문이 열렸다.

후우웅.

물밀듯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만끽하며 밖으로 나와 욕실로 향했다.

“미네르바, 온수 가동. 1번 정식 준비.”

[예.]

집 안을 울리는 미네르바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서자 때에 맞춰 김을 내뿜는 온수가 쏟아져 나왔다.

“후우.”

옷을 벗고 욕조에 눕자 뜨거운 물이 뭉친 근육들을 어루만졌다.

“으음.”

욕조에 몸을 맡긴 내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몽롱하게 풀리는 기분을 만끽하며 몸을 닦는 것도 잠시, 곧 욕조에서 나와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뒤 옷장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움직였다.

부글부글.

주방에는 언제나 먹던 정식 1번이 준비되어 있었다. 재빨리 밥을 먹고 내일을 대비해 침대에 몸을 뉘었다.

‘빠듯하군.’

내일만 해도 무려 2가지나 약속이 잡혀 있다.

일단 암흑투마군단의 대장들과의 회의.

또 하나는 염환과 게리롱 그리고 해파토스를 비롯해 나를 도와주기로 한 조력자와의 회의였다. 크레이언과 피너스 그리고 데스트론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후우.”

점차 눈이 감기고 내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것도 잠시, 곧 로그아웃 할 때와 같은 어둠이 내 몸을 휘감았다.

* * *

화려하게 치장된 사무실이었다.

그 넓이만 해도 엄청나서 웬만한 교실 몇 개를 붙여놓은 듯했다. 더군다나 사무실 곳곳에 있는 그림이며 조각들 또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미술품들로 보였다.

이 넓은 사무실의 중앙에는 척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가 있었는데 그 소파에는 총 3명의 인영이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그래, 새로운 프로젝트는 어떠냐?”

“좋습니다.”

중년인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반대편에 앉아 있는 검은 장발의 사내였다. 중년인과 닮은 얼굴을 가진 검은 장발의 사내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미 대륙 곳곳에 퍼트린 상태이고 또 유저들 사이에도 투입한 결과, 충분히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결과는 대 만족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사내의 말에 중년인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한참을 사내와 말하던 중년인이 사내의 뒤에 서 있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유 비서.”

“예, 회장님.”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그럭저럭 수위를 지키고 있습니다만, 도련님과 주만 도련님이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유 비서라 불린 남자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검은 장발의 얼굴이 작게 일그러졌다.

“자세히 말해보게.”

“예.

중년인의 말에 남자, 유 비서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과거 랭킹 1위였던 남자를 대상으로 놀이를 즐기고 계시는데 그 남자가 S-44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채택되었습니다.”

“호오? S-44 이벤트의?”

중년인의 눈이 번뜩였다.

“예. 현재 S-44 이벤트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상태입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남자의 목표는 드래곤 클럽에 속한 도련님들의 괴멸인 듯합니다.”

“그래? 사실이냐?”

“글쎄요.”

중년인의 물음에 검은 장발의 사내가 모호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그런 놈이 있었나?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중년인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제 슬슬 회사를 물려받아야 하니 쓰레기들과는 어울리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스윽.

말을 마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무투대회 준비로 바빠서요.”

“그래. 수고하거라.”

“예.”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인 사내가 유 비서라 불린 남자를 째려보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꾸욱. 위잉.

사내가 버튼을 누르자 사무실 안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철중아…….”

“예, 아버지.”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틈으로 중년인이 조용히 말했다.

“장난은 장난으로 끝내거라.”

“…알겠습니다.”

탁. 위이잉.

조용히 닫힌 엘리베이터의 문이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저 아이는 여전하군.”

중년인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중얼거리자 유 비서가 다가와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마음이 약하신 분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연기를 내뿜는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한 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는 창은 밖의 모습이 훤히 다 보이고 있었다. 꽤 높은 건물인 듯, 아래로는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보이는 듯했다.

“으음.”

한차례 낮은 신음을 흘린 중년인이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며 입을 열었다.

“철중이 놈 옆에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네.”

“아닙니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계속 철중이 곁에 붙어 있다 사건이 크게 될 것 같으면 철중이를 부탁하네. 나머지 쓰레기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네. 쓰레기들이 사고를 치면 칠수록 간부들의 힘이 줄어드는 셈이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유 비서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유 비서를 향해 작게 웃음을 흘린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S-44 이벤트 이야기를 하지. 그래, 현재 준비는 어느 정도로 진행이 되었는가?”

“예, 일단 95% 가까이 준비가 되었으며…….”

판타즈마 월드에 관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곳.

바로 (주)한신의 회장실이었다.

* * *

“으윽.”

게임을 오래 해서 그런지 자고 일어남과 동시에 가벼운 두통이 내 머리를 울렸다.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천천히 몸을 풀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고 차가운 물을 마시자 흐릿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읏차.”

짝짝.

손바닥으로 뺨을 쳐 남아 있는 졸음기를 모두 날려 보낸 뒤 영양제와 함께 우유를 들이켜고 캡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우,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이제 오늘을 포함해 게임 시간으로 3일만 더 참으면 내 복수가 실현되는 것이다. 100% 성공이라고 자신하지는 못하지만 성공할 확률이 적어도 70% 이상이었다.

이내 기쁨으로 번졌던 내 얼굴 위로 한 가지 근심이 떠올랐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유저들의 단합이었다.

암흑투마군단의 습격은 이벤트로 지정되어 있는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주)한신 측에서 몬스터를 사냥 시 경험치 2배나 아이템 드롭 확률 2배 등, 보상을 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보상을 준다면 유저들이 거대 길드를 중심으로 뭉쳐 상당히 짜증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유저들이 뭉치기 전에 유저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일단 무투대회의 주최국인 크라센 제국을 점령한 뒤 그곳을 거처로 삼고 나머지 제국들을 점령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최종 작전이다.

언뜻 보면 간단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티나와 게리롱을 시켜 NPC로 이루어진 몬스터 용병단을 구입했다.

물론 몬스터들인 만큼 수준이 그리 높지 않지만 상관없다.

몬스터 용병들은 단순히 처음에 시간 끌기 용에 불과하니까.

이미 무투대회장 근처 건물 지하에 수백 개의 이동 워프 마법진을 만들어놓은 지 오래다. 이 워프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염환은 역천마불술법의 숙련도를 올리지도 못하고 거의 20일 가까이 워프 마법진을 만드는 노가다를 해야 했다.

건물들의 구매는 게리롱이 이끄는 발정 난 낙타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그들은 엄청난 행동력으로 무투대회장 근처의 낡은 건물들을 매입한 뒤 그들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발정 난 낙타들 길드원들의 수는 도둑 길드치고는 그리 많지 않은 100명 정도였지만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른 길드들의 간부 수준의 능력을 가져 대단했다.

그 적은 수로 대체 어떻게 그 엄청난 양의 정보를 구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거기다 그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게리롱과는 같은 사관학교의 동기, 혹은 후배들이라 게리롱의 말 한마디면 불 속에라도 뛰어 들 정도여서 배신의 걱정도 필요 없다.

“흐음.”

낮은 한숨을 내쉬며 시계를 보니 이미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암흑투마군단의 대장들과의 약속 시간이었다. 조력자들과의 약속 시간은 2시니까 빨리 움직여야 했다.

꾹. 피슉.

캡슐 표면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캡슐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분위기의 캡슐 내부가 나를 반겼다. 이내 게임 장비들을 착용한 뒤 게임 접속을 하자 익숙한 풍경 또한 나를 반겼다.

내가 게임에 접속을 하자 소란스럽던 마을이 조용해졌다.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는 주민 NPC들의 모습에 내 얼굴이 작게 구겨졌다. 그것도 잠시, 곧 품속에서 귀한 스크롤을 꺼내 약속 장소로 지정되어 있는 절망의 숲으로 가는 스크롤을 찢었다.

부욱. 화아악.

스크롤을 찢음과 동시에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내 몸을 덮쳤다.

꾸르르륵. 꾸르륵.

눈을 뜨기도 전에 들리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새의 괴이한 울음 소리였다. 귀를 때리는 울음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자 사방이 녹색으로 뒤덮인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싱그러운 느낌의 숲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금방이라도 몬스터가 튀어나올 듯한 숲이었지만 불쾌감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족으로 종족이 바뀐 나에게는 편안한 환경이었다.

스스슥.

“어서 오십시오!”

내가 나타나자 숲에 숨어 있던 다크엘프들이 나와 나를 맞이했다. 내가 천살멸혼도를 얻은 회의 때 본 그 다크엘프들이었다. 키블릭으로부터 미리 말을 들은 것인지 나에게 다가온 다크엘프들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라.”

“예!”

내 명령에 4명의 다크엘프들 중, 유난히 키가 커다란 다크엘프가 나를 안내했다. 약속 장소는 예전의 지하 동굴이었다.

“제 임무는 여기까지입니다.”

동굴의 입구까지 날 안내한 다크엘프가 고개를 꾸벅인 뒤 몸을 날려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저번에 한 번 와봤던 길이기에 무리 없이 동굴 속으로 몸을 날렸다.

“흐음.”

동굴에 감도는 음습한 사기에 내 입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확실히 마족으로 바뀌며 과거에는 불쾌했던 기운이 이제는 내 체력과 마력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연료로 변했다. 어째서 마족 유저들의 대부분이 마법사나 네크로맨서인지 알 것 같았다.

동굴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땅속 동굴의 모습이 바뀔 리야 없지만 내가 말하는 모습이란 모양이 아니라 여섯 갈래로 나눠진 길이다. 과거와 같이 각자 암흑투마군단 대장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동굴 입구 중, ‘야수왕’이라 쓰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한참을 걸어 마침내 방에 도착하자 전과 같이 검은 불꽃이 ‘푸확’ 하고 타올랐다. 서로 정체를 알았기 때문인지 전처럼 각자의 방을 가리는 천은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크르릇. 어서 오십시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각자의 방에 앉아 있던 5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게르맨더 일족의 족장인 용마인과 다크엘프 로드인 키블릭, 다크 자이언트 로드인 스톤 그리고 다크 워리어의 로드인 발록,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수인족을 지배하고 있는 수인왕 카나리아!

나까지 포함해 총 6명이었다.

내 정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겉으로는 난 암흑투마군단장의 대리인의 행세를 하고 있기에 저들보다 지위가 높은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만들어짐과 동시에 그렇게 행동하도록 입력된 NPC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유저인 발록이나 카나리아 등은 분위기상 NPC들의 행동에 죽을 맞춰준 것뿐이겠지만.

“모두 앉아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5명이 각자 자리에 앉았다.

내 시선이 카나리아에게 향했다. 여전히 멍하게 풀린 바보 같은 얼굴이었지만 카나리아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연기력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내 카나리아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멍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눈만은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돌려 천천히 5명의 대장들을 둘러본 내 눈이 만족스러운 빛을 발했다.

이 정도 병력이라면 검은 사자 길드나 다른 거대 길드들의 간부들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거기다 암흑투마군단과 나이트메어가 들고 일어난다면 나머지 몬스터들도 흉성(凶性)을 나타내며 대륙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스톤, 전사들은 모두 모았나?”

“예! 총 2800명의 전사들이 현재 절망의 숲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우렁찬 스톤의 대답에 내 입가에 절로 웃음이 그려졌다. 내 시선이 스톤의 바로 옆방에 있는 다크엘프, 키블릭에게 향했다.

“키블릭?”

“예! 총 1000명의 전사들이 준비 중입니다! 크큭.”

당장이라도 단검으로 인간들의 목을 딸 듯, 진득한 미소를 흘리는 키블릭을 따라 내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용마인, 발록, 카나리아!”

내 외침에 나머지 3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입을 열었다.

-크르릇! 현재 1700명의 전사들과 200명의 주술사와 250명의 어쌔신들이 절망의 숲의 늪에서 대기 중입니다! 크르릇!

“총 1500명의 다크 워리어들이 절망의 숲 후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1400의 야수 전사들이 절망의 숲 후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카나리아의 말을 끝으로 내 입에서 낮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크큭.”

거의 8000이 넘는 전사들이었다. 그것도 모두 정예 중의 정예로만 이루어진.

여기다 내 휘하에 있는 야수연합의 전사들과 해파토스에게 받은 1000명의 드워프 전사들. 그리고 500의 몬스터 용병과 게리롱 휘하의 100인의 도적까지 합하면 엄청난 병력이다. 가히 대륙의 전 길드와 싸움을 해도 되는 병력이다. 더군다나 내가 원하는 방식은 정면 대결이 아니다.

내 정체가 밝혀짐과 동시에 마법사의 탑과 데스 스타 그리고 다엘검은 무투대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검은 사자 길드의 아지트를 칠 것이다. 다행히 얼마 전, 검은 사자 길드가 ‘용의 쉼터’에서 크라센 제국의 수도로 아지트를 옮겼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크크큭.”

각 종족들의 대장들을 바라보는 내 입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복수 전날이라 그런지 긴장이 고조되었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내 몸을 잠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흥분이었다. 게임 시간으로 이틀만 참으면 복수의 시간이 오는 것이다. 각 대장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는 내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모든 전사들을 나눠 절망의 숲 각지에 있는 마법진 근처에 대기케 해라! 그리고 무리에는 통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나 주술사를 붙여놓도록!”

“예!”

-크릇! 예!

무투대회장 근처뿐만이 아니라 절망의 숲에까지 엄청난 수의 워프 마법진을 만든 염환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럼 자세한 회의를 시작하지.”

내 말과 동시에 동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그런 고요와는 달리 각자의 얼굴에는 모두 살기가 들끓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내 입에서 광기 어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들이 있다면 내 계획은 실패하지 않는다!’

“크크크큭!”

회의는 계획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계획을 미리 정해두고 그것을 확인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회의여서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1시간 정도가 걸려 시간은 거의 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늦겠군.’

암흑투마군단 대장들과의 약속 다음은 염환, 게리롱, 해파토스를 비롯해 내 조력자와 만나는 약속이었다. 다른 조력자라고 해봤자 한 명 더 있을 뿐이다.

“그럼 회의를 끝낸다. 내일 모레 전투를 위해 전사들을 관리해라.”

“예!”

-크릇! 예!

내가 회의를 끝내자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블러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카나리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지?”

내 물음에 카나리아가 입을 열었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이다.”

“크크큭, 고맙군.”

광기 어린 카나리아의 말에 내 얼굴이 구겨지는 것도 잠시, 곧 커다란 의문이 떠올랐다.

“카나리아.”

“……?”

“넌 마법사가짱이얌, 아니 크레이언을 쇼크사로 죽인다고 했지?”

게임 속의 로그아웃이 아니라 사람의 실제 죽음을 논한다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그런 기색을 애써 감추며 묻자 카나리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크레이언이 중간에 로그아웃을 하면 어쩔 거냐?”

판타즈마 월드의 시스템 상, 데미지를 입는 도중에 로그아웃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데미지를 입는 도중에 로그아웃을 하면 데미지의 파괴력에 상관없이 무조건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페널티를 받게 되어 있다.

카나리아가 하려는 작전은 바로 크레이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데미지와 회복을 반복하며 쇼크사로 죽이는 것. 하지만 만약 데미지를 받는 도중에 크레이언이 로그아웃을 한다면 큰 문제였다.

“크큭.”

내 물음에 입을 다물고 있던 카나리아가 나직이 웃으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검정색 상자였다.

휙.

이내 정체불명의 작은 박스를 나에게 던진 카나리아가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쳐봐라.”

갑작스런 카나리아의 말에 당황한 것도 잠시, 상자를 잡지 않은 손으로 손에 들린 상자를 힘껏 내려쳤다.

퍽.

“큭?”

주먹이 상자를 통과해 내 손바닥을 때리자 내 입에서 당황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내 모습에 카나리아가 다시 한 번 웃고는 말을 이었다.

“이름은 ‘카오스 큐브’. 일종의 바이러스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크큭. 카오스 큐브가 발동되면 사용자와 그 외의 1명이 그 큐브 안으로 빨려들어 간다. 카오스 큐브 자체가 바이러스임과 동시에 별도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밖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침입할 수 없다. 현실 시간으로 3일 동안 말이야. 크큭.”

카나리아의 말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믿을 수 없군.”

한 나라 국방성보다 더 치밀하게 시스템되어 있는 곳이 바로 판타즈마 월드, 그 자체다. 판타즈마 월드에 저런 바이러스가 들어올 리가 없다.

“외부의 바이러스는 절대 판타즈마 월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카오스 큐브라 불린 상자를 카나리에에게 건네주는 내 입에서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발표된 바였다. 세계에서도 뛰어난 해커들을 초빙해 판타즈마 월드의 시스템을 뚫으려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내 말에 카나리아의 입에서 웃음이 이어졌다.

“그래, 외부 바이러스는 절대 판타즈마 월드 안으로 들어올 수 없지.”

“그런데 어떻게…….”

“외부라면 말이지.”

“뭐?”

의문 섞인 내 물음에 카나리아가 손에 들린 카오스 큐브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다. 이 카오스 큐브는 판타즈마 월드 내부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다. 크큭, 한 운영자가 판타즈마 월드에 있는 어떤 버그를 이용해 만든 바이러스지. 물론 코드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 검사는 물론 백신도 통하지 않지. 거기다 서버를 다운시키거나 모든 계정을 강제 로그아웃시킨다고 해도 소용없다! 이 카오스 큐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판타즈마 월드라는 시스템과 별개의 시스템이 되는 것이니까. 단점이라면 카오스 큐브를 해방한 뒤, 두 사람 다 움직이지 않고 1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어쨌든 이걸 만든 운영자가 말하길, 현실에서의 통증과 이 카오스 큐브 안에서 느끼는 통증을 그대로 동일하게 만들었다더군! 크크큭, 이 얼마나 멋진 물건이냐! 크크, 크하하핫!”

카오스 큐브를 만지작거리는 카나리아의 입에서 커다란 광소가 터져 나왔다.

‘대체 어떤 미친 자식이…….’

카나리아는 둘째 치고 대체 어떤 미친 운영자가 저런 바이러스를 만들었는지가 의문이었다. 카나리아에게 저 물건을 만들어줬다면 카나리아의 목적 또한 알고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카나리아의 복수 상대인 크레이언은 드래곤 클럽이라는 빌어먹을 단체에 속한 놈이다. 드래곤 클럽은 모두 판타즈마 월드를 만든 사람들의 2세다.

그 사실을 알고도 저런 물건을 만들어줬다면 뭔가 카나리아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음모가 있다는 소리였다.

“카나리아…….”

“그만.”

내 말을 끊은 카나리아가 카오스 큐브를 품속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그 뒤의 일은 상관없다. 또 내가 누군가의 장기말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난 동생의 복수만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카나리아…….”

처연함이 담긴 내 목소리에 카나리아가 씨익 웃으며 등을 돌렸다.

“약속은 지키리라 믿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카나리아의 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길!”

내 입에서 분노 섞인 욕이 튀어나왔다.

‘너무 불쌍하잖아……!’

동생을 잃고 복수를 위해 시작한 게임 속에서는 그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의 장기말이 되었다. ‘복수’라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말리고 싶었지만 그 ‘복수’라는 목적을 위해 말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후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크레이언을 카나리아의 앞으로 끌고 가는 것과 한숨을 쉬는 것뿐이었다.

‘가야겠군.’

작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동굴 속은 스크롤 불가능 지역이기에 귀찮아도 할 수 없었다. 이내 동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약속 장소로 지정된 스크롤을 찢었다.

화아악.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동시에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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