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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숭배자들은 얼른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엔디미온의 등 뒤에 성배가 숨겨져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 무슨 수로 성배를 가져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엔디미온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죽이고 나서 등가죽을 칼로 떠내야 하는 걸까? 그들의 망설임은 성배를 가져가는 방법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고 결코 엔디미온을 겁내서가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들은 엔디미온을 겁내야 했다. 성배를 지키고 그 힘을 휘두르는 자를 두려워해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목숨을 건져서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숭배자들은 두려움을 몰랐다. 그들은 숭배하는 악마로부터 강력한 힘을 받았고 그것에 도취됐다. 다리 달린 뱀이자 여섯 날개의 악마는 대악마 다르디낭만큼은 아니어도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존재였고 그 힘을 추종자들에게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엔디미온은 잠깐 자신의 주먹을 보았다. 저들이 겁도 없이 설치는 것은 바로 악마 때문이다. 악마로부터 받은 힘은 강력하다 못해 사악하다. 일개 추종자도 그만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데 과연 힘의 주인인 악마는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바로 그 생각이 악마숭배자들을 멍청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악마의 강력함은 알아도 성배기사의 힘은 몰랐다.
바보 같은 놈들. 그냥 어디 숨어서 소소하게 악행이나 저질렀으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았을 건데. 엔디미온은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본래 집 안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그는 아주 빠르게 악마숭배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의 망치 같은 주먹이 악마숭배자 하나의 머리를 박살냈다. 부러진 이가 사방으로 날아가고 뭉개진 눈알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일격에 숨이 끊어진 악마숭배자는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 있었다. 엔디미온은 그의 단검을 빼앗은 후에 쓰러지는 몸을 붙잡아서 다른 악마숭배자를 향해서 던졌다. 시체에 부딪힌 악마숭배자가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엔디미온은 얼른 단검을 뽑아서 가까이 있던 악마숭배자의 목덜미를 찔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이었다. 수십 번 넘게 사람을 죽여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올리비아와 악마숭배자 두 명뿐이었다. 올리비아는 일찌감치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두 명의 악마숭배자들은 손을 뻗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그들의 손에서 검은색 연기를 두른 화살들이 발사됐다. 한두 발이 아니었다. 수십 발이 빠르게 엔디미온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냥 몸으로 맞으면서 그대로 돌진했다. 검은색 화살들은 엔디미온의 몸에 꽂혔다가 연기로 변해서 사라졌다. 스쳐지나간 화살들은 그의 몸에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악귀들의 공격에도 멀쩡한 몸이었다. 얼치기 악마숭배자들 따위가 쓰는 마법은 개미가 발가락을 무는 것 이상의 고통이 아니었다.
“끄아아악!”
엔디미온의 손이 악마숭배자의 얼굴을 붙잡았다. 얼굴을 붙잡힌 남자는 몸을 버둥거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마치 악마가 영혼을 빼앗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엄살은. 엔디미온은 이제 악마숭배자의 멱살을 붙잡고 힘껏 휘둘렀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악마숭배자가 부딪혀서 뒤로 넘어졌다. 엔디미온은 바닥에 넘어진 악마숭배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짓뭉갰다. 두 번의 주먹질만으로 악마숭배자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고 성배기사의 주먹에서 살점과 함께 걸쭉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마지막 악마숭배자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컥컥 소리를 내며 구토를 하는 악마숭배자 때문에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왜 남의 집에서 토하고 난리야. 엔디미온은 그의 뒤통수를 단검으로 찔렀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숨이 끊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올리비아 하나뿐이었다. 엔디미온은 바다의 색을 가진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녀는 싸움에 참가하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집 안은 고요했다. 소리라고는 오직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유일했다. 엔디미온은 단검을 탁자 위에 꽂았다. 그리고 죽은 악마숭배자의 옷을 찢어서 손에 묻은 오물을 처리했다.
그는 떠버리를 싫어하지만 무의미하게 침묵하는 사람도 싫어했다. 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
“싸울 거면 싸우고 도망칠 거면 얼른 도망가라.”
“······호오. 지금 도망가면 살려주는 모양이지?”
“아니, 쫓아가서 죽일 거다.”
“······.”
올리비아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강하구나, 성배의 기사야. 너의 강함은 분명 성배의 힘 덕분이겠지. 성배의 힘을 직접 보고 나니 더 탐이 나는구나. 나는 그걸 가져가야겠다.”
“아까도 말했지.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보라고.”
“너는 강하다. 하지만 죽이지 못할 상대는 아니지. 나는 네가 성배의 힘을 일부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배의 힘을 완전히 다룬다면 나는 결코 네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일부만 쓸 수 있다면 여섯 날개 악마의 추종자인 내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올리비아가 망토 사이로 손을 꺼냈다. 그녀의 손에는 짤막한 막대기가 있었다. 그 끝에는 자수정이 박혀 있었고 거기서 음습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휘두르자 자수정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자주색 빛이 집 안을 물들였다. 엔디미온은 집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도 자주색 빛은 집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것은 안개가 퍼지듯 스멀스멀 움직여서 시체들을 휘감았다.
“일어나라!”
주문은 간결했다. 올리비아가 막대기를 휘두르며 소리치자 시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머리가 박살나고 목덜미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창백한 그들의 얼굴을 보고서 엔디미온이 말했다.
“뭐야, 친구들 아니었나?”
“친구들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이들은 나를 모시는 하인들일 뿐이고 언제든지 소모해도 되는 물건일 뿐이다. 친구라니. 가당치도 않지.”
“비장의 수랍시고 꺼낸 게 겨우 이거냐? 죽은 자를 부리는 사술 따위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우습게보다가 후회할 거다, 성배의 기사야.”
“글쎄.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엔디미온이 성큼성큼 걸어가며 탁자에 꽂힌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시체의 머리에 꽂았다. 방금 죽은 자라서 그런지 아직도 피가 튀었다. 엔디미온은 아까 했던 것처럼 달려드는 시체들을 손발로 차고 때리고 단검으로 찔렀다. 그들을 다시 죽이는데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엔디미온은 주먹을 맞고 떨어진 시체의 머리를 발로 툭 찼다.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간 머리는 올리비아의 발에 부딪혀서 멈추었다.
“이게 다냐?”
엔디미온이 찬장에서 술병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신 후에 올리비아를 보며 말했다.
“이게 다냐고. 여섯 날개의 악마가 누군지는 몰라도 추종자의 꼴을 보니 대단치 않은 놈인 건 알겠군. 싸구려 마녀 놈아,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머리가 박살나서 죽거나 혹은 목이 잘려서 죽거나.”
엔디미온이 얼른 선택하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올리비아는 입꼬리를 당기며 웃었다. 요정답게 매혹적인 미소였다.
“잘난 척 하는 것은 할 일을 다 끝내고 나서 하는 것이 어떠냐?”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시체들이 다시 움직였다. 그들의 몸은 한층 더 기괴하게 뒤틀리고 크기가 커졌다. 아까 전에 발로 차서 올리비아 쪽으로 굴렸던 머리가 혼자서 데굴데굴 움직였다. 그리고 떨어진 목에 착 달라붙었다. 엔디미온은 올리비아가 부린 것이 단순히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사술이 아니란 것을 눈치 챘다. 단지 그런 종류의 사술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엔디미온은 일단 다시 한 번 시체들을 부수고 박살냈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시체들은 다시 일어났다. 더 기괴하고 더 커다란 모습으로 말이다. 그는 시체들을 죽일 때마다 더 강력한 형태로 되살아난다는 것을 알아챘다. 보통 사술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올리비아를 보았다. 그녀는 엔디미온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던 기사가 궁지에 몰리면 어떤 얼굴을 할까. 마녀는 깔깔 웃으며 시체들을 향해 명령했다.
“자, 내 인형들아. 저 건방진 기사를 죽이고 성배를 내게 가져오너라!”
시체들은 마녀의 명령을 착실히 수행했다. 그들은 엔디미온을 향해 달려들었고 처음과 달리 충분히 강해졌기에 강철 같은 몸에 처음으로 상처를 남겼다. 엔디미온은 다시 한 번 그들을 박살냈다. 그래도 시체들은 지치지도 않고 다시 일어났다. 아무리 보아도 그가 이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올리비아가 새빨간 입술을 움직이며 웃었다.
“이제 끝장내라!”
시체들은 많이 강해졌지만 그래도 성배의 힘을 가진 엔디미온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시체들을 모두 박살낸 엔디미온은 잠깐 뒤로 물러나서 숨을 골랐다. 그는 탁자 위에 있는 사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장에서 새는 물을 받아두는 나무통으로 손을 뻗었다.
올리비아는 그가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죽기 전에 마지막 물 한 모금이라도 하려는 생각인가. 엔디미온이 사발로 나무통 안의 물을 떴다.
“목마른 자가 있으면 물을 대접하라. 내가 성배를 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성수니라.”
“뭐······라고?”
올리비아는 깜짝 놀랐다. 설마?
“모두 재로 돌아가라, 이 사악한 것들아!”
엔디미온이 사발에 담긴 물을 시체들을 향해 뿌렸다. 시체들은 단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거대해진 그들의 몸은 성수를 맞고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엔디미온은 주먹으로 그들을 끝장냈다. 재가 바스러지듯 간단히 박살났다. 올리비아는 시체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다.
“말도 안 돼······.”
엔디미온은 올리비아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그녀의 얼굴을 붙잡았다. 커다란 손은 입과 코를 막아서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는데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몸이 부양하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벽에 뒤통수가 부딪혀서 깨졌다.
마녀는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커다란 손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리를 버둥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다가 숨이 막혀서 꺽꺽 소리를 냈다. 엔디미온은 그녀의 목을 보았다. 살결이 희고 가느다란 목덜미. 엔디미온은 손을 뻗어서 목을 움켜쥐었다. 꽃을 따듯이 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