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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성배기사-31화 (3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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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검의 라이오넬? 그게 누군데?”

이든은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는 갑자기 끼어든 라이오넬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노인치고 먹을 게 많아 보이네. 노인답지 않은 덩치와 단단한 근육을 보고서 이든이 느낀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그는 라이오넬의 실력에 대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멍청한 놈. 엔디미온은 이든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가 보기에 이든은 악귀도 아니었고 악마도 아니었다. 라가르디오에게 제물을 바치고 새로운 힘을 얻은 악마숭배자였다. 악마가 와도 라이오넬의 상대가 안 되는데 악마숭배자 따위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엔디미온은 멍청한 악마숭배자는 라이오넬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악귀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내가 누구냐고?”

라이오넬은 검의 끝부분이 바닥을 향하게 하고 손잡이를 잡은 손을 왼쪽 허리 근처에 위치시켰다. 그 상태에서 오른발은 구부린 채로 내밀고 왼발은 곧게 뻗어서 바닥을 단단히 디디었다. 그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든은 몰랐다. 그는 날카롭게 빛나는 손톱을 내밀면서 라이오넬의 목을 노리고 뛰었다.

“나는 천둥검의 라이오넬이다!”

“그건 아까 말했잖아, 이 멍청한······.”

이든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일었다. 빛이 번쩍이는 듯하더니 갑자기 이든의 손이 공중에서 회전했다. 그는 자신의 손이 잘렸다는 것조차 얼른 깨닫지 못했다. 정말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라이오넬은 장님이었지만 모든 감각들이 시력을 대신했다. 발자국 소리, 미세하게 느껴지는 바람, 그리고 코끝에서 느껴지는 체취.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며 냄새를 추적했다. 장님이란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날렵하게 움직이는 라이오넬을 보고서 깜짝 놀란 이든은 얼른 뒤로 훌쩍 뛰었다. 동물적인 감각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는 피가 줄줄 흐르는 손목과 라이오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든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잠깐만, 라이오넬이라고······? 설마 진짜 그 라이오넬인 거냐?”

“라이오넬이 아니다! 천둥검의 라이오넬이다!”

“그게 그거잖아, 이 멍청한 노인네야!”

이든은 손이 잘린 팔을 거칠게 털었다. 피가 바닥에 뿌려졌다. 그 순간 손목의 단면에서 피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피가 순식간에 멎더니 갑자기 살점들이 울룩불룩 팽창했다. 처음에는 분홍색의 고깃덩어리였다가 나중에는 새로운 손으로 변했다. 라이오넬은 그걸 보지 못했지만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악마숭배자의 사악한 기운이 그의 민감한 감각을 자극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진짜 라이오넬이든 노망이 난 영감이든! 다 죽이면 그만이니까!”

이든이 새로 생긴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면서 라이오넬과의 거리를 쟀다. 그는 자신이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는 노인이고 거기에 장님이었다. 이건 지기 힘든 싸움이었다. 그는 이제 단단하게 굳은 새로운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며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엄청난 각력 때문에 바닥에 구멍이 생겼다. 그는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빠르게 달려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날카로운 손톱이 라이오넬의 얼굴을 노렸다. 하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라이오넬은 검을 비틀어서 공격을 흘렸다. 그리고 그대로 크게 휘둘렀다. 이든은 반대쪽 손으로 공격을 막고 그 사이에 뒤로 당겼던 처음의 손으로 다시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라이오넬은 그것보다 더 빨랐다. 공격을 막는 것과 동시에 반격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허공에서 불티가 여러 번 튀었다. 라이오넬은 자기보다 키가 큰 이든이 하는 공격을 머리 위에서 한 번 막았다. 그리고 힘으로 밀어낸 후에 손목의 방향을 바꾸어서 그대로 대각선으로 크게 베었다. 다시 한 번 손이 날아간 이든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든은 라이오넬이 만만치 않은 상대란 것을 깨달았다. 그는 본래 인간 시절부터 싸움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이 커다란 덩치와 단단한 근육은 악마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본래 그의 것이었다. 그가 악마숭배자로서 라가르디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받은 것은 날카롭고 단단한 손톱과 미리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그는 악마의 선물을 가지고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산의 입구에 자리를 잡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잡아먹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힘은 더 강력해졌고 이제는 악귀의 수준을 넘어서 어린 악마와 비견될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런데도 라이오넬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할 수 없었다.

“죽어라, 죽어!”

이든은 두 손을 들어 올린 후에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공격은 단순했지만 악마숭배자답게 묵직했고 아주 빨랐다. 아무리 라이오넬이 강해도 검 한 자루만 들고 막기는 힘들었다. 칼바람처럼 몰아치는 공격에 결국 첫 번째 상처가 라이오넬의 어깨에 생겼다. 얕은 상처였지만 이든은 만족했다.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방으로 불티가 튀었다. 이든은 지치지도 않고 연거푸 공격을 퍼부었다. 라이오넬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방어에 집중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이든은 숨이 찰 때까지 공격을 퍼붓다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고 했다. 어깨 뒤로 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단순히 팔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서부터 밀어내는 느낌으로 쏜살같이 손을 내질렀다.

라이오넬은 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느꼈다.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방어 자세를 잡았다. 얼굴을 노리고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서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곧장 한 발자국 앞으로 움직이면서 검을 내질렀다. 일직선으로 곧게 날아간 검은 그대로 이든의 배를 꿰뚫었다. 라이오넬은 얼른 검을 비틀어서 뽑은 다음에 가로로 크게 베었다. 천둥소리가 났다.

“끄아아악!”

허리가 끊어진 이든은 상체가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 하체가 넘어졌다. 그는 반으로 잘렸음에도 아직 살아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너 뭐야? 진짜 영웅 라이오넬이라도 되는 거냐? 뭐냐고, 대체!”

“나는 천둥검의 라이오넬이다!”

“으아아악! 그 말 말고 다른 말을 좀 하라고!”

라이오넬은 이든의 배를 발로 누른 뒤에 정확히 심장을 검으로 찔렀다. 그는 미약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악한 힘을 전신에 공급하던 심장이 파괴되자 늑대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울컥 튀어나왔다. 이든은 꺽꺽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숨이 끊어졌다.

“천둥검은 무적이다!”

헛소리를 하고 있는 라이오넬의 등을 노리고 악귀가 달려들었지만 기습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러서 악귀의 머리를 때렸다. 바닥에 떨어진 악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검으로 얼굴을 찍었다.

라이오넬은 제자리에 서서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고함과 함께 묵직한 것을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그 다음에는 불꽃이 타는 소리가 났고 마지막에는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발자국 소리만 났다.

라이오넬은 냄새로 엔디미온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실력이 옛날 같지 않군.”

라이오넬은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점잖은 태도로 말했다.

“애석한 일이지. 검술은 절정에 달했으나 몸은 나이를 먹었으니 말이야.”

라이오넬은 백 년 동안 검만 휘두르면서 살았다. 노망이 들었을 때도 검을 휘둘렀다. 그 결과 그의 검술은 백 년 전보다 더 상위의 경지에 도달했으나 육체는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엔디미온은 이제 노인이 된 자신의 친구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악귀들 때문에 말들이 모두 도망갔을 줄 알았는데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말들도 어차피 도망쳐봤자 악귀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일지도 몰랐다.

“라가르디오 이 자식은 대체 얼마나 많은 악귀들을 모은 거야. 우리가 지금까지 죽인 놈들만 벌써 백 마리는 되겠군.”

베로니카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전 지금 걱정이에요. 이만큼이나 되는 악귀들을 그냥 소모품처럼 사용할 정도면 동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악귀들이 있는 걸까요?”

“글쎄. 나도 좀 걱정이군.”

“왜요? 설마 천하의 엔디미온 씨가 겁이 난다는 건 아닐 거고.”

“벌레 수백 마리를 손으로 일일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봐. 번거롭잖아.”

듣고 있던 멜리사가 웃었다. 그들은 다시 라가르디오의 동굴을 향해서 움직였다. 그 뒤로 몇 번의 습격이 있었지만 전부 다 격파했다. 습격을 오는 악귀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횟수가 늘어나니 멜리사와 베로니카에게는 심적이나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다. 그들은 보통의 난쟁이 성기사였고 요정 마법사였다. 이런 식의 싸움을 하면 지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엔디미온은 잠깐 휴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라가르디오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역겨운 냄새가 근처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서 그 머리통을 깨부수고 난 뒤에 휴식할까 했지만 그 전에 멜리사와 베로니카가 쓰러질 것 같았다.

멜리사는 성기사답게 지친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사실 베로니카보다 그녀가 더 많이 지쳐 있었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 악귀들과 직접 몸을 부딪치며 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엔디미온은 수통을 꺼내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 멜리사를 불렀다.

“왜 그러십니까?”

“잠깐 수통 좀 줘보시오.”

멜리사는 자기도 모르게 수통을 자기 가슴 쪽으로 당겼다. 너무 목이 말랐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녀는 순간 아차 하고서 다시 엔디미온에게 수통을 내밀었다. 설마 물을 빼앗겠어? 멜리사는 혼자 큼큼 소리를 내면서 엔디미온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엔디미온은 수통을 받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뚜껑을 열지도 않았고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냥 잠깐 들고 있다가 다시 수통을 돌려줄 뿐이었다. 멜리사는 그 이상한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얼른 수통의 뚜껑을 열어서 물을 마셨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물맛이 달랐다. 그냥 미적지근한 물이었는데 이상하게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충분히 수분을 섭취한 뒤에 푸하 하고 소리를 내며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멜리사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물맛이 좋네요. 하하, 열심히 싸워서 그런가.”

“많이 마셔두시오. 잠시 뒤면 라가르디오를 죽이러 가야 하니까.”

멜리사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면서 엔디미온의 강함은 물론이고 라이오넬 역시 만만치 않은 강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필이면 영웅들의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을 보고서 단순한 우연일까 생각했다. 멜리사는 이성적인 난쟁이였다. 죽은 영웅이 환생한다거나 백 년 전의 영웅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엔디미온 일행은 충분한 휴식을 마치고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그들은 거대한 동굴을 발견했다. 빛조차 들어가길 꺼려하듯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멜리사는 침을 꿀꺽 삼켰고 엔디미온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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