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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나 한 번 보자고.”
엔디미온은 창을 들고서 달렸다. 요정다운 가벼운 발놀림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난 신디아는 미리 시위에 걸고 있던 화살을 발사했다. 위협적인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는 화살은 그 뒤로 길게 보라색 연기를 남겼다. 엔디미온은 몸을 약간 틀었다.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어깨를 스쳐지나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그대로 등 뒤에 꽂혔다.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지만 따끔하기는 했다. 그 사이에 신디아가 날린 화살 두 발이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 엔디미온은 가슴에 박힌 화살을 거칠게 뽑은 후에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그가 거리를 좁히려고 하면 신디아는 멀리 달아났다.
그녀는 한 번에 세 발의 화살을 발사했고 엔디미온은 시험 삼아서 몸을 틀었다. 그러자 화살들은 그가 움직이는 대로 방향을 수정했다. 아무래도 저 화살에는 추적 기능이 있는 듯했다. 그게 악마의 힘인지 아니면 마법인지는 몰랐다. 다만 엔디미온은 후자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요정 마법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견지할 수 있으니까.
피해도 끝까지 따라오는 화살이라면 창으로 쳐내야 했다. 엔디미온은 제자리에 서서 정면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고서 창을 두 손으로 빠르게 한 바퀴 회전시켰다. 그러자 회전하는 창에 부딪힌 화살들이 부러져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신디아는 다시 화살을 쏘았다. 이번에는 한 발이었다. 아까처럼 창으로 쳐내려는 순간 화살촉이 갈라지면서 갑자기 수십 발의 작은 바늘로 변했다. 엔디미온은 눈을 크게 떴고 그 사이에 날아온 바늘들이 그의 몸을 콕콕 찔렀다. 대단치 않은 공격이지만 성가셨다.
하늘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이번에는 세 발의 화살이 공중에서 갈라져서 무수히 많은 작은 화살들로 변한 것이었다. 엔디미온은 머리 위로 창을 들어올리고 두 손으로 창을 회전시켰다. 빠르게 회전하는 창은 마치 우산처럼 떨어지는 화살들을 막아주었다.
“오호, 잘 막는구나. 그럼 이것도 막아보거라!”
신디아는 궁술의 달인이었다. 굳이 한 번에 세 발씩 쏘지 않더라도 빠르게 연사하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엔디미온은 몸을 약간 틀면서 창날로 화살 하나를 쳐내고, 창대를 움직여서 또 하나를 쳐내고, 창을 빙그르르 돌려서 여러 발을 한꺼번에 쳐냈다. 그리고 마지막 화살은 그냥 맨손으로 붙잡아서 부러트렸다.
싸우다 보니 이러다 공격은 한 번도 못하고 신디아의 화살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마치 자꾸만 도망치는 공을 쫓아다니는 개와 같은 꼴처럼 말이다. 내가 왜 굳이 쫓아다녀야 하지? 엔디미온은 날아오는 세 발의 화살을 빠르게 쳐낸 후에 투창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신디아가 등 뒤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는 그 짧은 순간을 노리고 냅다 창을 던졌다.
성배기사의 힘이 담긴 창은 섬광처럼 날아가서 신디아의 목숨을 노렸다. 그것을 본 그녀의 눈이 커졌다. 당장 화살을 버리고 활 대신 쓰고 있던 검으로 날아오는 창을 막으려고 했다. 창과 검이 부딪혀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신디아는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엄청난 충격에 입술을 깨물었고 비척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라가르디오의 창은 빙그르르 돌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신디아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정면을 보았을 때, 엔디미온은 벌써 거리를 좁히고 주먹을 날리려 하고 있었다. 이 정도 빠르기라면 창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달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주먹이 거침없이 날아왔고 신디아는 검을 들어서 공격을 막았다.
주먹은 검과 부딪치고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경이로운 단단함이었다. 주먹과 검이 서로에게서 멀어지면서 엔디미온은 왼손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창을 붙잡았다. 그리고 창을 등 뒤로 돌려서 오른손으로 받았다.
무거운 창은 한 손으로 휘두르기에 부적합했지만 성배기사의 우월한 근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마치 송곳을 들고 휘두르는 것처럼 한 손으로 창을 잡고 신디아의 어깨를 찍으려고 하자 그녀는 자신의 검을 빠르게 움직였다.
두 자루의 검을 붙인 무기는 마치 창처럼 사용할 수 있었는데 기다란 길이를 이용해서 살짝 뻗기만 해도 어깨 위까지 방어가 가능했다. 신디아는 불꽃처럼 생긴 창날의 구불구불한 부분에 자신의 칼날을 걸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킨 후에 아래쪽에 있는 검을 분리시켜서 오른손으로 잡았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신디아의 검이 먹잇감을 향해 움직였다. 엔디미온은 창을 회수하는 대신에 손등으로 공격을 막았다. 살짝 상처가 생겼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손을 뒤집어서 그대로 검을 잡으려고 했으나 신디아가 재빠르게 뒤로 회수했다. 그리고 창날에 걸어두었던 검을 잡아당겨서 엔디미온을 자신 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있는 엔디미온의 허벅지를 발로 밟으며 뛰어올라서 한 바퀴 회전, 반대쪽 발로는 턱을 노렸다. 과연 요정다운 몸놀림이었다.
엔디미온은 왼손으로 공격을 막았으나 제법 강력한 충격에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 사이에 깔끔하게 착지한 신디아가 다시 두 자루의 검을 붙여서 활을 만들었다. 다시 시위에 화살을 걸고 연사하기 시작하자 엔디미온은 아까처럼 창을 회전시키는 대신에 한 손을 쭉 뻗었다.
“빛이여!”
강렬한 신성력은 마치 마법처럼 작동했다. 손끝에서 뻗어져 나간 빛이 사악한 기운을 머금은 화살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신디아는 깜짝 놀라며 다시 한 번 활을 쏘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그녀는 이제 활을 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시위가 팅 소리를 내면서 화살을 쏘았다. 마지막 화살까지 쓴 후에 다시 활을 두 자루의 검을 바꾼 그녀는 아까와는 반대로 엔디미온과 거리를 좁혔다. 두 자루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머리 위에서 바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칼날은 상대를 현혹시키려는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빛을 반사했다. 엔디미온은 침착하게 창을 들어서 방해했다. 지금 왼쪽 검이 그의 목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노림수는 허벅지를 향해 낮게 휘두르는 오른쪽 검이었다.
그는 창을 비스듬히 들고서 창날로 신디아의 왼쪽 검을 쳐낸 후에 창대 부분으로 오른쪽 검까지 방어했다. 귀를 찢을 듯한 쨍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각자의 무기를 바쁘게 휘두르면서 서로 가까이 붙었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서로 호각이었다. 하지만 직접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지금 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엔디미온이란 것을 알았다. 그의 용력은 신디아를 한참 상회했고 이런 식으로 무기를 맞대며 싸우는 것은 그녀에게 불리한 일이었다.
엔디미온은 침착하게 신디아의 공격을 받아내며 생각했다. 무슨 무슨 악마의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 칼날이라고 거창하게 소개했으니 가지고 있는 실력이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 증거로 신디아의 얼굴은 초조하기는 했어도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숨기고 있는 비장의 수가 없다면 진작 도망쳤을 것이다.
그럼 어떤 걸 보여줄까. 라가르디오만큼 강하다고 했으니 그래도 좀 대단한 걸 보여주겠지. 엔디미온은 슬쩍 웃었다. 동굴에서 라가르디오는 대단한 변신술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용으로 변했을 때는 솔직히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 건방진 성기사 놈아! 지금까지 널 봐주었지만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하겠다!”
신디아가 이를 갈면서 뒤로 물러났다. 설마 또 활이나 쏘지는 않겠지. 엔디미온은 창을 들고서 일부러 공격을 기다렸다. 신디아는 오른쪽 검을 머리 위로 들고 왼쪽 검을 배 아래로 들었다. 그리고 두 검을 반 바퀴씩 회전시켜 마치 허공에다 원을 그리는 듯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뜨자 검은색 눈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방금 전 검이 움직였던 경로를 따라서 허공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 좀 멋있는데. 엔디미온은 감탄하면서 창을 들고서 날아올 공격에 대비했다. 신디아가 고함을 치듯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용의 숨결이여!”
불꽃의 고리 안에서 하얀색 불꽃이 쏘아져 나갔다. 사람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재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불꽃이었다. 라가르디오가 용으로 변신해서 뿜었던 바로 그 불꽃이었다. 엔디미온은 미간을 찡그렸다. 저런 불꽃은 성수가 있어야만 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통이 없기 때문에 물을 뿌릴 수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바닥을 굴렀다. 방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를 하얀색 불꽃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죽어라, 죽어! 용의 숨결이여!”
쉬지 않고 불꽃이 날아왔다. 엔디미온은 바닥을 구르고 일어나면서 달리기를 반복했다. 신디아가 그 모습을 보며 깔깔 웃었다.
“용의 숨결이여!”
엔디미온이 바닥을 구르고 다시 일어나려는 시점에서 불꽃이 날아왔다. 다시 구르기에는 애매하고 일어서서 막기에는 자세가 나쁘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왼쪽 허벅지에 힘을 주고서 바닥을 박차며 튕기듯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는 오른쪽 발로 바닥을 힘껏 때리고, 불꽃을 향해 돌진하며 창을 내질렀다.
누가 봐도 무모한 돌격. 하지만 그 무모함이 상대를 겁먹게 만들었다. 신디아는 눈을 크게 뜨면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용의 숨결······. 아악!”
그녀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창이 심장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뛰던 심장은 금세 활기를 잃었고 신디아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엔디미온이 창을 뽑자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몸에 불꽃이 붙은 상태인 엔디미온은 신디아의 허리춤의 수통을 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머리부터 물을 부었다. 용의 불꽃은 힘없이 꺼져서 불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요정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엔디미온은 신성력 덕분에 약간 타는 데 그친 서코트를 손으로 툭툭 털면서 말했다.
“라가르디오만큼 강하다며? 아니잖아, 귀쟁이 놈아.”
죽은 신디아의 머리를 발로 툭툭 차던 엔디미온은 다시 성벽 쪽을 보았다. 신디아와 겔라오드 영주가 죽었는데도 병사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사술 역시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엔디미온은 그냥 라이오넬에게 맡겨두고 쉬려다가 다시 성벽 쪽으로 걸어갔다. 저들을 죽이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엔디미온은 몇 발자국 걷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언덕 위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
그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숫자는 어림잡아 수십 명은 되는 듯 했다. 일부는 언덕 아래에서 날뛰고 있는 겔라오드 병사들을 보았고 또 다른 일부는 엔디미온을 보았다. 그들 중 선두에 선 몇 명은 깃발을 들고 있었으나 바로 위에 뜬 태양 때문에 무슨 문장이 그려져 있는지 얼른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빠르게 언덕을 내려오기 시작했고 엔디미온은 다시 창을 세게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