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밀밭의 성배기사-61화 (6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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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참으로 현학적인 질문이었다. 고금을 통틀어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수많은 철학자들은 인생에 대한 수많은 정의를 내렸고 누군가에게는 정답이었으나 누군가에게는 오답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두와 밀접한 철학적 질문이었고 그러한 이유로 누구나 이 정답을 알 수 없는 지적탐구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

“인생이란 이 양파와 같은 거야. 까면 깔수록 새로운 문제가 나오지.”

“비다르 씨, 헛소리하지 말고 양파나 까세요.”

비다르, 강철 주먹의 비다르. 한때 수많은 악마들을 무찌르고 대악마에 대항했던 영웅이자 자엘라 지하투기장의 제왕이었던 자.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였으나 지금은 자기 몸의 절반도 안 될 것 같은 요정에게 구박을 받으며 양파를 까는 중이었다.

“아니, 이걸 내가 왜 까고 있는 거야! 난 비다르다! 강철 주먹의 비다르라고! 내 손이 양파나 까라고 있는 줄 알아? 어!”

“으악! 엔디미온 씨! 비다르 씨가 또 발작해요!”

“야! 고자질 그만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조용히 휴식을 하고 있던 엔디미온이 손으로 잡고 있던 반짝이는 끈을 흔들었다. 그러자 비다르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신성력으로 만든 끈은 본래 비다르의 두 손을 결박하고 있었으나 그러면 일을 시키기 어렵다는 베로니카의 지적에 지금은 양팔과 몸통을 한꺼번에 묶는 식으로 변경됐다. 덕분에 팔꿈치 아래로 움직일 수 있게 된 비다르는 베로니카의 요리 보조로 활약하고 있었다.

요리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가끔씩 발작한다는 것이 흠이었다. 물론 그래봤자 엔디미온이 줄을 한 번 당기면 금세 잠잠해졌지만.

“양파 때문에······. 눈물이 나는군······.”

비다르는 또르르 눈물을 흘리며 다시 얌전히 양파를 깠다. 베로니카도 안심하고 다시 칼로 당근 껍질을 벗겼다. 엔디미온은 다시 하품을 하면서 나무에 등을 기댔다. 비다르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라이오넬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저 자식은 왜 일 안 시켜? 같이 준비하고 같이 식사해야 하는 거 아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잖아. 어? 내 말이 틀려?”

“비다르 씨, 영감님은 장님이잖아요. 장님이 어떻게 요리를 해요?”

그 말에 비다르가 코웃음을 쳤다.

“장난하냐? 검도 없이 사람 베는 놈이 눈 안 보인다고 칼질을 못할 것 같아? 내가 장담하는데 저 자식은 칼 없이도 너보다 당근 껍질 잘 벗길 거다.”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영감님!”

베로니카가 크게 외치자 라이오넬은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거리더니 갑자기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고, 할멈. 어찌 먼저 가셨어······. 같이 가자고?”

“영감님, 결혼 안 했잖아요.”

“안 속네.”

저거 진짜 노망난 거 맞아? 연기 아냐? 베로니카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라이오넬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는 결국 베로니카에게 끌려와서 당근 껍질을 벗기게 되었다.

자엘라에서 뒤르겔로 떠난 지 열흘 째 되는 날, 엔디미온 일행의 식사 수준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베로니카는 자엘라에서 요리 서적과 식량을 구입했고 매일 틈틈이 요리책을 탐독한 결과 그 실력이 아주 빠르게 상승했다. 첫날에는 요리를 흉내 낸 무언가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제법 그럴 듯한 요리를 만들었다.

베로니카는 사실 자신의 적성은 마법사가 아니라 요리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요리사를 했으면 악마를 죽이러 다니는 위험한 여행길에 동참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근처에 개울이 있던데 물 좀 떠온다.”

엔디미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수통까지 다 챙겨서 물을 뜨러 떠났다. 그러면서 비다르에게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비다르, 나 없다고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비다르가 얼굴을 구겼다. 그와 엔디미온 사이에 연결된 줄은 거리 제한이 없어서 멀리 떨어져도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만약 베로니카가 소리를 지른다면 그걸 들은 엔디미온이 멀리서도 비다르를 벌할 수 있었다. 제기랄. 비다르는 혀를 차고서 다시 양파 까기에 집중했다.

자꾸만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양파 때문이었다. 정말로.

“당근 껍질 다 벗겼네. 그럼 난 잠깐 용변 좀 보고 오겠네.”

빠르게 당근 껍질을 다 벗긴 라이오넬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로니카는 조심히 갔다 오라고 말한 뒤에 모닥불 위에 솥을 올렸다. 거기에 물을 붓고 손질한 당근이나 양파, 고기 따위를 넣고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비다르는 멍하니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래, 인생이란 그런 거였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로 뒤덮인······.”

“비다르 씨, 청승 좀 떨지 말아주실래요?”

“꼬맹아, 넌 내 손이 자유로웠으면 진짜 호되게 맞았을 거다.”

“하지만 그 전에 비다르 씨가 엔디미온 씨에게 얻어맞지 않았을까요?”

쪼그만 게 한 마디도 안 지네. 비다르는 혀를 한 번 차고서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는 다시 한 번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잠시 뒤에는 코를 골았다. 베로니카는 그 모습을 보고 쯧쯧 소리를 냈다.

비다르는 심하게 코를 골면서 잠을 잤다. 베로니카는 코를 막아버리려다가 참았다. 그녀는 조용히 요리에만 집중했다. 주걱으로 솥을 휘젓다가 모닥불 안의 땔감을 몇 개 빼서 불의 세기를 낮췄다. 요리가 다 끝났으니 이제 엔디미온과 라이오넬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됐다.

베로니카가 손으로 턱을 괴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다르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가라. 다 보인다.”

“아이, 깜짝이야. 비다르 씨, 잠꼬대는 좀 자제해주세요.”

“어쭈, 안 가?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왜 저래? 베로니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다르는 허공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거 또 발작하는 거 아냐? 베로니카가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 뒤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다섯 명이었고 그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강도였다.

“빠르게 털고 가자. 다른 놈들이 돌아오면 귀찮아지니까.”

강도들은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엔디미온과 라이오넬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을 보고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베로니카와 팔이 묶인 비다르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었다. 분명 아무 저항도 못하고 짐을 빼앗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은 비다르가 누구인지 몰랐다. 알았다면 팔이 묶였다고 해서 감히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 이것들이 겁도 없이 누구 짐을 털려고 들어?”

비다르는 강도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비다르의 커다란 덩치를 보고서 잠깐 움찔했지만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저쪽은 한 명에 맨손이었고 이쪽은 다섯 명이었고 모두 무기를 들었다.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실실 웃던 비다르는 주먹을 꽉 쥐고서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빠르게 거리를 좁힌 후에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뭐야, 이거 왜 주먹이 안 나가?”

“비다르 씨! 팔이 묶였잖아요!”

저거 바보야? 그걸 어떻게 까먹어? 베로니카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야! 이거 어떻게 풀어? 빨리 풀어 봐! 주먹을 쓸 수가 없잖아!”

비다르는 강도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짜증을 냈다. 베로니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아니, 왜 피하기만 해요? 싸워요!”

“주먹을 못 쓰는데 어떻게 싸워!”

“발 쓰면 되잖아요! 발은 안 묶였잖아, 이 바보야!”

“발은 안 돼!”

“왜!”

비다르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난 강철 주먹의 비다르니까! 난 주먹만 쓴다!”

저거 진짜 바보 맞지? 베로니카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마법을 준비했다.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니 약간 위력을 낮춰서 제압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비다르의 큰 덩치 때문에 제대로 조준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맞아도 안 죽을 텐데 같이 날려버려? 베로니카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영웅인데 그런 건 좀.

“이 덩치 큰 놈을 죽여! 얼른 죽이라고!”

강도들의 대장이 크게 소리쳤다. 그는 빠르게 물건만 털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비다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강도들은 비다르를 죽이기 위해서 무기를 휘둘렀지만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다섯 명이란 숫자는 확실히 이점이 있었다. 그들이 한 번씩만 무기를 휘둘러도 다섯 번이었고 여러 번 휘두르면 수십 번의 공격이었다.

딱 한 번, 아주 우연하게 딱 한 번의 공격이 비다르의 몸에 꽂혔다. 검은 단단한 근육을 뚫지 못하고 겉에만 얕은 상처를 냈을 뿐이었지만 공격이 성공한 것은 분명했다. 가슴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는 것을 보던 비다르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아, 열 받네. 이 줄만 아니었으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인데.”

낮은 목소리는 서늘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강도들은 저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일이었다. 비다르는 자세를 낮추고 숨을 크게 삼켰다. 순간적으로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는 듯 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베로니카는 비다르가 뿜어내는 강렬한 투기에 숨이 막혔다. 그리고 그것은 강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다르는 주먹을 꽉 쥐었다.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은 여전했다. 하지만 꼭 크게 팔을 휘둘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주먹이었다. 팔꿈치 아래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팔을 휘둘러서 주먹을 날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날리면 될 뿐이었다.

쿵 소리가 나고 바닥이 비다르의 엄청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났다. 감히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속도로 거리를 좁힌 비다르는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강도와 몸을 가까이 붙인 후에 몸 전체를 휘두르듯 움직였다. 정작 주먹이 움직인 것은 아주 약간이었다. 겨우 한 뼘 정도의 거리. 단지 그만큼 움직였을 뿐이고 옆에서 봤을 때 주먹은 그저 강도의 배를 툭 건드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툭 건드리듯 주먹에 맞은 강도의 몸이 반으로 접혔다. 그는 입에서 왈칵 피를 뱉어내며 엄청난 거리를 뒤로 날아갔다. 강도들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껌뻑였다. 그것이 그들의 실수였다. 당황하지 않고 다시 덤비거나 아니면 도망쳤어야 했다. 어느 것도 하지 않은 그들이 맞이할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비다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강철 주먹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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