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이상하군. 마을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모두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악마의 짓을 의심했다. 이게 정말 악마의 짓이라면 주변에 악귀들이 숨어있을지도 몰랐다. 이 상황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있는 것은 비다르뿐이었다.
“다행이네. 아무도 없으니까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자면 되잖아.”
정말 한심스러운 소리였기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비다르는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다들 흩어져서 혹시나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자고.”
엔디미온 일행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엔디미온과 비다르는 각자 따로 다니고 베로니카와 라이오넬은 함께 다녔다. 혹시라도 이 마을이 악마의 습격을 받았다면 베로니카 혼자 다니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마을 북쪽을 찾아보기로 한 엔디미온은 혼자서 마을 안을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확인했다. 지도에 나온 것처럼 마을의 규모는 제법 컸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은 분명 악마뿐인데 사실 악마의 짓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악마에게 사람은 먹잇감이거나 장난감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먹어치웠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깔끔했고 사술을 부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고 하기에는 그런 흔적이 없었다.
아무도 마을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혹시 악마가 마법으로 사람들을 어디론가 이동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야 해서? 무엇을 위한 제물?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정답은 없었다. 엔디미온은 머리를 한 번 흔들어서 수많은 생각들을 털어냈다. 마을의 북쪽 끝까지 가보았지만 결국 사람은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일행들과 헤어졌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곳에는 벌써 비다르가 돌아와 있었다.
“너, 다 돌아보고 온 거냐? 대충 돌아보는 척만 하고 온 거 아냐?”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건 알겠어.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의심은 하지 말아야지. 마을 동쪽 끝까지 갔다 왔어. 아무도 없더군. 그런데 꼭 사람 찾아야 해? 없으면 어때? 그냥 아무 집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뒤르겔로 가면 되잖아.”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의 의무는 사악한 것들을 죽이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만약 이 마을이 악마에게 해를 입었다면 그들을 구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지. 내가 이 말을 백 년 전에도 수없이 많이 했었는데 지금도 해야 하나?”
“거 되게 빡빡하게 구네. 이 마을이 지금 악마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냐? 악마가 습격했으면 이런 모습이겠어? 아닌 거 알잖아.”
엔디미온은 입을 다물었다. 비다르의 말이 맞았다. 침묵하는 엔디미온을 보고서 실실 웃던 비다르는 돌아오는 베로니카와 라이오넬을 보고서 말했다.
“야, 꼬맹아. 사람은 찾았냐?”
“꼬맹이가 아니고 베로······. 아니, 됐다······. 사람은 없어요. 한 명도요.”
마을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 수상쩍은 일에 엔디미온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럴싸한 정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일단 밤이 늦었으니 잠자리를 정하기로 했다. 비다르가 말한 것처럼 마을이 텅 비었으니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자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건 좀 마음에 걸려서 여관에 가서 자기로 했다. 말들은 마구간에서 자게 두고 삐걱거리는 여관의 문을 열었다. 본래라면 여관 주인이 나와서 반겨야 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는 탓인지 싸늘한 냉기가 가득했다. 엔디미온은 객실의 문을 열려고 했으나 덜컥 소리만 날 뿐 열리지 않았다. 잠겨 있었다.
“잠겨 있는데.”
“열쇠를 찾아볼게요.”
베로니카가 열쇠를 찾기 위해 여관 안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비다르가 웃으며 말했다.
“야야, 열쇠를 왜 찾아? 그냥 열면 되는데.”
그는 문고리를 잡고 그냥 힘껏 당겼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대신에 문고리가 뽑혀 나왔다. 엔디미온은 문고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뻥 뚫린 것을 보고서 미간을 좁혔다.
“비켜.”
쾅 소리가 나면서 문이 방 안쪽으로 쓰러졌다. 엔디미온은 발목을 빙글 돌리면서 바로 다음 방의 문을 또 한 번 걷어찼다. 쾅 소리가 날 때마다 문 하나씩이 박살났다. 그 무식한 모습을 보고서 베로니카는 손에 찾아낸 열쇠를 들고 멍하니 있었다.
“각자 아무 방에나 들어가서 자. 내일 일찍 출발할 거니까 늦게 자지 말고.”
엔디미온은 제일 첫 번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방 하나씩을 골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깨끗했다. 짐을 정리하고 침대 위에 누운 엔디미온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샌 자국이 있는 천장은 얼룩덜룩했다. 베개는 딱딱해서 자꾸만 머리를 뒤척여야 했고 그럴 때마다 잠이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엔디미온은 갈증을 느꼈고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려고 했다. 수통은 가방 곁에 두었다. 침대 아래로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었다.
몸을 비스듬히 일으켜서 손을 뻗으려는데 시야의 한 구석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방의 구석, 가장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였다. 처음에는 작은 옷 따위가 뭉쳐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고 조금씩이지만 움직였다.
엔디미온의 눈은 어둠으로 가릴 수 없었기에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마을, 여관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 아이가 악마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라면 아까 방문을 부쉈을 때 왜 뛰쳐나오지 않았을까. 그것조차 악마의 공격이라고 생각해서? 아니면 이 아이가 사실은 악마라서?
엔디미온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안녕, 꼬마야.”
더 괜찮은 인사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이의 상황은 별로 안녕하지 않았다. 엔디미온은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이름이 무엇이니?”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아직 빠지지 않은 젖살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변성기가 오지 않아 얇은 목소리 역시 중성적이었다.
“호안이요.”
“그래, 호안. 이 마을 사람이니? 혹시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호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으려고 하기에 엔디미온이 다급히 말했다.
“기억하기 싫은 일인가 보구나. 내가 미안하다. 그럼 우리 차근차근 이야기해보자. 일단 너에 대해 좀 알려주겠니?”
엔디미온은 아이를 길러본 적도 없고 남의 아이를 돌본 적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어르고 달래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인내심을 짜내며 웃었다.
“저는 호안이에요. 할머니랑 같이 살아요. 부모님은 돌아가셨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할머니가 돈이 많으셨거든요.”
“그거······.”
다행이구나 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섬세한 존재다. 그런 말도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엔디미온은 얌전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할머니랑 사는 건 재밌었어요. 언제나 맛있는 걸 사주셨고 생일이 되면 멋있는 옷을 선물하셨어요.”
엔디미온은 슬쩍 호안의 옷을 보고서 말했다.
“정말 멋진 옷이구나.”
“이건 그냥 잠옷이에요.”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참았다. 호안이 말했다.
“저는 아침을 먹고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가 되면 공부를 했어요. 할머니는 공부를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전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잘 때가 되면 할머니가 언제나 옛날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재밌었겠구나.”
“네, 그런데 할머니는 이야기를 언제나 끝까지 해주시지 않았어요.”
“왜 그러셨을까?”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 그 안으로 끌려간대요.”
엔디미온은 입꼬리를 당겼다. 그건 미신이었다. 자기가 어렸을 때도 들었던 미신이었다. 호안의 할머니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그런 미신을 믿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엔디미온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말했다.
“저는 친구가 참 많아요.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어요. 그래서 몇 명인지는 잘 몰라요. 그런데 저는 토미가 싫어요. 토미는 덩치가 큰 친구인데 무슨 일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거든요. 저번에는 제가 만든 모래성을 부수려고 했어요. 제가 막았지만요.”
호안은 줄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가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 놀았고 저녁으로 어떤 것을 먹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런 식으로 하면 내일이 올 때까지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을 게 뻔했다.
엔디미온은 손을 뻗어서 호안의 이야기를 끊었다.
“그래, 호안. 참 재밌었겠구나. 네 이야기 덕분에 너에 대해서 잘 알게 됐단다. 우리 이만하면 서로 친구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떠니?”
“친구요?”
“맞아, 친구. 친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노는 사이잖아. 우리가 바로 그런 사이지. 그런데 호안,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단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마을에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을까?”
호안은 잠깐 고민하다가 작은 입을 열었다.
“이웃집 로니 아저씨는 농부세요. 밭에서 호밀을 기르시는데 이번에는 흉작이래요. 비가 잘 안와서 땅이 메말라서 호밀이 다 죽었대요. 호시 아저씨는 양을 기르시는데 전염병이 돌아서 양들이 다 죽었대요. 리나 아주머니는 빵집을 하시는데 호밀이 흉작이라서 호밀빵을 만들 수가 없대요. 그래서 문을 닫았대요.”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전부 마을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엔디미온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켰다.
“그래서 토니 아저씨가 말했어요. 이건 신께서 분노하신 일이니 기도를 드려야한다고. 그래서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그래서 늦은 밤에 기도를 드리기로 했어요. 할머니가 저는 어린이니까 자야 한다고 말했지만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몰래 구경했지요. 저는 신께 기도를 드려본 적 없지만 그게 어떤 건지는 잘 알아요.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비는 거잖아요.”
엔디미온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밤은 추웠어요. 그리고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세상이 불타는 것 같았고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났어요. 저는 저처럼 몰래 나온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 거라고 생각했어요. 겁쟁이 같으니라고. 난 안 울어.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저도 울고 있었어요. 왜일까요? 무언가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요. 할머니는 제 울음소리를 듣고 절 찾아내서 얼른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그리고 크게 혼을 냈지요. 어른들은 매일 밤만 되면 기도를 드렸어요. 저는 집에서 할머니를 기다렸어요.”
엔디미온은 직감적으로 그들이 기도를 드린 것이 신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전능자에게 기도를 드렸다면 굳이 깜깜한 밤에 했을 리가 없다. 그것도 아이들은 보지도 못하게 하면서. 그럼 악마인데 대체 무슨 수로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렸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에 호안이 말했다.
“저는 할머니께 신께서 저희 기도를 들어주실까 물어봤어요. 할머니는 무서운 얼굴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셨어요.”
악마는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 그들은 신이 아니니까. 엔디미온은 차분히 호안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이의 두 눈에는 기이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성배기사조차 아주 잠깐 놀라게 만들 정도의 기이한 빛이었다.
“이게 끝이에요.”
“응?”
“이야기는 이게 끝이에요.”
“아, 그래······.”
엔디미온은 완전히 일어섰다. 호안 덕분에 악마가 이 일에 연관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무슨 악마인지,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수확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깨워서 방금 들은 이야기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그는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그것을 돌리려다가 섬칫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이거.”
삐걱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문고리. 본래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문은 그가 이 방에 들어오면서 박살냈으니까. 그런데 왜 멀쩡한 문이 달려있지?
“아저씨,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엔디미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호안을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 그 안으로 끌려간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