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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에 나자빠진 토니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지 않았다. 엔디미온이 그에게 주먹을 날린 것은 맥주가 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정신을 조작하려는 미지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정신을 조작하는 사술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강력한 악마가 특별한 수고를 들여서 함정을 준비하는 게 아닌 이상 성배기사의 정신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주 잠깐이지만 정신을 조작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한가롭게 맥주나 마시는 것은 본래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여관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분명히 사악한 존재의 사술이 개입한 일이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성수를 마시지 않았다면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거란 사실이었다.
“어째서냐? 넌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게 행복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맥주를 마시게 해주었는데 행복하지 않다고?”
토니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퉁퉁 부은 뺨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이상하군. 너한테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설마 네가 소녀로 변장했을 리는 없는 것 같고.”
엔디미온은 넘어진 맥주잔을 잡고서 안에 남아있는 성수를 남김없이 마셨다. 갈증이 싹 가시고 신성한 힘이 몸 안에 충만했다. 토니는 입술을 깨물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맥주를 마시는 게 행복이란 건 거짓말이었던 거냐?”
“물론 맥주를 마시는 건 좋아한다. 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리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아주 각별하지. 하지만 아무리 맥주를 좋아해도 하루 종일 마실 수는 없어. 그런 짓을 했다가는 소변 대신에 맥주가 나올 거다. 난 그런 일은 사양이야.”
토니가 물러난 만큼 엔디미온이 다가갔다. 그는 다시 한 번 물러나려고 했지만 식탁에 등이 부딪혔다. 어쩔 수 없이 제자리에 멈춘 토니를 보며 엔디미온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농부에게는 농사가 잘 되는 것이 행복이고, 양치기에는 양들이 잘 크는 것이 행복이고, 제빵사에게는 빵이 잘 구워지는 게 행복이겠지. 그런데 세상에는 적당량이라는 게 있거든. 넘치면 결국 모자란 것과 다름없어. 하루 종일 맥주를 마신다고 하루 종일 행복할까? 매일 맥주를 마신다고 매일 행복할까? 그럴 리가. 행복이란 건 그런 것이 아니야. 사람은 아주 간악해서 그런 식의 행복은 결국 질리고 말아.”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행복이 있는 거야. 모든 것은 그들이 바란 행복의 결과라고. 농사가 한 번이라도 망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 먹여야 할 자식들은 있는데 먹일 것이 없을 때의 고통을 알아? 양이 죽으면? 전염병 때문에 자식 같은 양들이 다 죽어버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빵을 구워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을 때는?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의 그 상실감을 네가 알아? 건방진 이방인아, 넌 행복에 대해서 몰라. 이 마을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래, 그건 맞는 소리야.”
토니와 엔디미온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엔디미온은 기지개를 켜듯 두 손을 들었고 다시 내렸다. 아주 빠르게 홱 소리를 내면서 움직인 손에는 맥주잔이 들려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것의 모서리는 단단했고 토니의 머리를 깨부술 듯한 기세로 충돌했다.
“아악!”
토니의 머리가 깨져서 빨간색의 진득한 액체가 주르륵 쏟아졌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는 토니를 보며 엔디미온은 덤덤히 말했다.
“그리고 맞는 소리를 했으면 맞아야지.”
여관 안에는 술을 마시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웃고 떠들면서 술을 마셨다. 토니가 머리가 깨져서 죽었는데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그런 일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엔디미온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게 행복이냐? 이게 너희들이 바란 행복이냐? 인형처럼 같은 일만 반복하는 게 너희들의 행복이냐고.”
맥주 마시는 소리,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 음식 먹는 소리, 노래 부르는 소리,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들기는 소리. 온갖 소음들이 엔디미온의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그 누구도 엔디미온을 쳐다보지 않았다. 여관 안의 술꾼들은 자신들이 있는 식탁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건 행복이 아니야. 너희들은 행복하지 않아.”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기분 나쁜 적막과 숨 막히는 공기가 기이한 압박감이 되어 몸을 짓눌렀다. 모두가 소리도 없이 엔디미온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십 개의 눈이 오직 한 사람만을 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지금 저들의 눈구멍 안에 박힌 것이 새까만 유리구슬이 아님을 알기에. 엔디미온은 한숨을 내뱉은 후에 힘주어서 다시 말했다.
“너희들은 행복하지 않다.”
세상에 소리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갑작스럽게 커다란 소리가 났다. 의자가 뒤로 나자빠지고 남자 한 명이 엔디미온에게 달려들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주먹을 피하고 들고 있던 맥주잔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그것이 신호였다. 인형처럼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엔디미온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달려든 남자의 턱을 맥주잔으로 박살내고 왼손으로 그의 멱살을 붙잡아 다른 사람에게 던졌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세 명이 한꺼번에 넘어졌다.
붕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의자가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손을 휘두르자 들고 있던 맥주잔과 의자가 부딪혔다. 의자 다리가 박살나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왼손으로 붙잡고 정면에 있는 남자의 정수리를 갈겼다.
딱 소리가 나면서 의자 다리가 반으로 부러졌다. 남자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엔디미온은 뒤로 물러난 후에 식탁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발로 세게 차자 달려들던 남자 세 명이 한꺼번에 식탁 아래에 깔렸다.
엔디미온은 들고 있던 맥주잔을 무기처럼 활용해서 달려드는 사람들의 머리를 하나씩 박살냈다. 그들은 악마의 사술에 걸린 것을 제외하면 어디까지나 보통의 사람들에 불과했다. 당연히 성배기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것처럼 덤벼들었다.
그럼 엔디미온은 주먹을 안면에 꽂아버리거나, 멱살을 붙잡고 바닥에 던져버리거나, 손아귀 힘으로 목을 부러트렸다. 완전히 엉망이 된 여관 안은 열기와 광기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의자를 들고 덤비거나 숟가락으로 엔디미온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누가 덤벼도 결과는 같았다. 엔디미온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맥주잔으로 머리를 박살냈다. 사람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여관 주인이 식칼을 들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식칼을 몸을 약간 비트는 것으로 피한 뒤에 손목을 붙잡고 비틀었다. 부러진 손목이 덜렁거렸다. 왼쪽 주먹으로 턱을 올려친 후에 반사적으로 쳐들린 머리를 맥주잔으로 후려갈겨서 다시 내려주었다. 뿌드득 하는 소리는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이제 세 명.”
남은 것은 이제 셋이었다. 의자를 든 사람, 술병을 든 사람, 국자를 든 사람. 세 명은 동시에 뛰었다. 엔디미온은 차분하게 자세를 잡았다.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고 해도 각자의 신장 차이 때문에 움직임에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것은 의자를 든 사람이었다. 그가 의자를 크게 휘두르자 손을 뻗어서 의자를 붙잡았다. 그리고 힘으로 잡아당긴 후에 발로 배를 밀어서 차는 동시에 의자를 빼앗았다. 빼앗은 의자는 그대로 가로 방향으로 휘둘렀다. 술병을 든 사람이 휘두르던 술병이 의자에 맞고 산산조각이 났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번쩍거리는 조각이 날아다녔다. 수많은 조각들 위로 엔디미온의 모습이 수없이 많이 반사됐다. 의자는 다시 경로를 바꾸어 남자의 어깨를 후려쳤다. 단 일격이었지만 어깨가 박살났다. 마지막 남자는 다른 두 명의 희생 덕분에 엔디미온을 공격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힘껏 휘두른 국자는 단단한 근육에게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만약 그가 식칼이라도 들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국자는 무기가 아니었다. 엔디미온은 고개를 한 번 기울였다가 맥주잔으로 그의 턱을 크게 후려쳤다.
남자는 사방에 박살난 이를 뿌리면서 뒤로 넘어졌다. 엔디미온은 자신이 쓰러트린 십 몇 명의 사람들을 한 번 보고 손에 들고 있던 맥주잔을 한 번 보았다.
“이거 튼튼하네.”
자기 역할을 끝낸 맥주잔은 조용히 다시 식탁 위로 돌아갔다. 엔디미온은 다른 식탁 위에 있는 맥주잔을 보았다. 그 안에는 아직 먹다 남은 맥주가 남아있었고 신기하게도 시원했다. 그는 그것을 들고 얼른 잔을 비웠다. 목덜미가 찌르르한 느낌이었다. 맥주는 아주 시원하고 맛있었다.
빌어먹을 성배의 힘만 아니었다면 여기서 좀 먹고 노는 건데. 엔디미온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한 번 다시고서 여관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열었다. 그러자 그를 반긴 것은 각자 손에 무기 하나씩을 들고서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기이한 광기가 감돌았고 하나도 빠짐없이 엔디미온을 보고 있었다.
“······.”
엔디미온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엔디미온을 보고 있었다.
“이왕이면 대화로 좀 해결했으면 하는데······.”
방금 막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을 맥주잔 하나 들고 쓰러트린 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해치워야 했다. 물론 엔디미온은 싸움이 겁나지 않았다. 다만 숫자가 생각한 것보다 좀 많았다.
“우리는 행복해! 우리는 행복하다고!”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고 있던 낫을 던졌다. 엔디미온은 재빨리 문을 닫았고 날아온 낫은 문에 박혔다.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낫의 끝부분이 문을 관통해서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기세가 남아 낫의 끝부분이 부르르 떨렸다. 엔디미온은 조용히 문에 박힌 낫을 보고 있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침대 곁에 두었던 창을 등 뒤에 메고 두 자루의 검을 손으로 잡았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문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그래, 대화를 하려면 이게 있어야지.”
성큼성큼 걸어서 여관의 문고리를 잡은 엔디미온이 벌컥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 사이에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화가 난 상태였고 엔디미온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엔디미온은 덤덤히 말했다.
“아까 낫 던진 놈부터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