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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디미온은 쓰러진 마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마치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이 그 결과물을 자랑하는 것처럼 한 손으로 마녀를 붙잡아서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다. 마녀를 쫓아서 허겁지겁 성 바깥으로 나온 성기사들은 엔디미온의 모습을 보고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들 중에는 아까 성벽 위에서 엔디미온과 대화했던 성기사도 있었다. 그는 굳은 얼굴 그대로 말했다.
“······당신이 붙잡은 거요?”
“맞소. 아까 말했잖소. 악마사냥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성기사는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일락샤의 집행관으로서 협력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바요. 나는 아일락샤 독립 기사수도회의 대장이자 특등기사인 라이먼이요.”
엔디미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갑소, 라이먼 경. 나는 엔디미온이오. 이 뒤에 있는 자들은 내 일행이고 나와 함께 악마사냥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마녀의 신병을 넘겨주겠소.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마녀의 몸은 미동조차 없었다. 오랜 수감 생활로 몸이 약해졌을 것이고 본래 마녀란 족속들의 체력이 약한 만큼 방금 전의 따귀로 숨이 끊어졌을지도 몰랐다. 엔디미온이 아직까지 마녀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있던 손을 라이먼에게 내밀었다. 라이먼은 성큼 걸어와서 그것을 받았다.
“괜찮소. 이곳에 들어온 악마숭배자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죽음뿐이니까.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다를 게 없다는 뜻이오.”
엔디미온이 웃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악마숭배자 따위는 살려둘 가치가 없었다.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잠잘 곳을 내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비록 그들에게 내주는 것이 오래 되고 딱딱한 빵과 차디찬 감옥 바닥이라고 해도 그것조차 아까웠다.
“들어오시오. 도움을 받았으면 친절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오.”
“아까는 우리를 안 믿었잖소. 우리가 이곳을 습격하려는 악마숭배자 무리면 어쩌려고?”
라이먼은 씩 웃었다. 그는 끝이 하늘로 올라간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중년 남성이었는데 웃으니 콧수염 끝이 익살스럽게 흔들렸다.
“이름이 엔디미온이잖소. 악마숭배자가 가명으로라도 그런 이름을 쓸 리가 없지.”
재밌네. 엔디미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먼이 마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른 들어오라는 듯 고갯짓을 하자 엔디미온 일행도 말에서 내려 성 안으로 따라갔다.
“오, 분위기 한 번 살벌한데요.”
성을 개조해서 만든 감옥은 밤이 되자 대단히 음산했다. 성벽 위에서는 성기사들이 성 아래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성벽 곳곳에 달린 횃불이 바람이 불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렸다. 주황색 불빛 때문에 성기사들의 얼굴에는 음영이 졌다. 단단하게 각진 턱을 가진 성기사들의 얼굴은 전사였으며 동시에 처형자의 것이었다.
죄를 짓지 않은 자도 이곳에서는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것을 멈추고 정면만 보았다. 라이먼은 마녀를 질질 끌고 다니며 말했다.
“말들은 내 부하들에게 넘겨주시오. 마구간에 보관해두겠소.”
엔디미온 일행은 시키는 대로 성기사들에게 말의 고삐를 넘겨주었다. 성기사 셋이 고삐를 잡고서 마구간으로 갔다.
“잠깐 쓰레기 좀 버리고 오지.”
그가 말하는 쓰레기가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마녀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인지 간헐적으로 꺽꺽 소리를 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엔디미온의 따귀를 맞고 이가 거의 다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힘겹게 숨만 내쉬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불쌍했으나 아무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마녀에게 보낼 동정은 없었다.
라이먼이 미로 같이 복잡한 길을 성큼성큼 걸었다. 불빛도 없는데 어디 부딪치지도 않고 잘 걸었다. 아일락샤의 집행관이라고 했으니 이곳의 지리에 익숙할 것이다. 그는 어둠을 헤치며 걷다가 천천히 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벽을 더듬어 무언가를 꾹 눌렀다. 그러자 천장에서 미약한 빛이 흘러나왔다. 마법으로 작동하는 등이었다.
꺼질 듯 가물거리는 등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내부가 보였다. 복도가 길었고 끝부분이 휘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저 뒤쪽으로도 길이 이어진 모양이었다. 복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창살이 있었다. 악마숭배자들을 수감하는 감방이었다.
“어디 보자. 어디에 버릴까.”
라이먼은 허리춤에 있는 열쇠 뭉치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넘기다가 열쇠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마녀를 질질 끌고 가서 감방 하나의 문을 열었다. 마녀는 정말 쓰레기 버리듯 방 안에 버려졌다. 그녀가 방 안에 들어가자 안쪽에서 누군가 킥킥킥 소리를 냈다.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였다.
웃음소리는 복도 전체로 흘러나갔다. 지금까지 죽은 듯이 조용히 있던 다른 방에서도 웃음소리가 났다. 마치 사람의 정신을 망치고 오염시키려는 것 같은 끔찍한 웃음이었다. 베로니카는 숨이 답답해졌다. 그녀가 가쁘게 숨을 내뱉자 엔디미온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뿐이었는데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조용! 조용히 해! 거꾸로 매달아서 매질하기 전에 입 다물고 잠이나 자!”
라이먼이 검으로 창살을 몇 번 세게 치자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복도는 다시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는 한숨을 내뱉은 뒤에 말했다.
“미안하오. 저 개 같은 놈들은 틈만 나면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오. 다들 알겠지만 악마숭배자란 놈들의 성격이 좀 고약해서.”
엔디미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웃었다.
“괜찮소.”
“다들 저녁 식사는 하셨소? 아직 안 했다면 나랑 같이 밤참이나 좀 먹지.”
“고맙소.”
라이먼이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엔디미온은 길이 휘어지는 모퉁이 방향을 잠깐 보았다. 제법 강력한 악마숭배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모퉁이 너머의 저 안쪽에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엔디미온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라이먼의 뒤를 따랐다. 식당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할리, 미안하지만 간단한 밤참 좀 해줄 수 있겠나?”
식당 안에는 남자 한 명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컸는데 성기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악마숭배자들과 싸우기에는 너무 마른 것이다. 할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빗자루를 정리하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집행관님, 먹다 남은 스튜가 있는데 그걸 데워드릴까요? 빵도 몇 개 있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여기 있는 손님들께도 음식을 내주게.”
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먼과 엔디미온 일행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라이먼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할리는 우리 아일락샤의 요리사요.”
요리사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요리사를 겸하는 성기사가 아니라 정말 요리만 하는 요리사인 듯 했다.
“혼자서 아일락샤의 식사를 책임지는 거요?”
“아니오. 본래 요리사는 총 여섯 명인데 나머지 다섯은 방에 있고 할리만 오늘 당번이라 남아있는 거요.”
“요리사가 있는 기사수도회는 처음 보는군.”
라이먼이 웃었다.
“다른 기사수도회는 마을이나 도시에서 활동하지만 우리는 이 감옥이 본거지니 어쩔 수 없소. 식사를 사먹을 곳이 없으니 우리가 요리를 해먹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게 낫지 않겠소? 그래서 요리사를 고용한 거요. 물론 장소가 장소다보니 요리사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참 특이한 기사수도회인 것 같소. 일단 이름도 좀 특이하고.”
“아일락샤 독립 기사수도회란 이름 말이오? 다른 기사수도회에 비하면 특이하긴 하지. 하지만 이건 우리의 특수성 때문이오. 보통의 기사수도회는 각 교구의 산하에 있고 교구장의 명령을 받지만 우리는 오직 교황 성하의 명령만을 받을 뿐이오. 그래서 아일락샤 독립 기사수도회인 거요. 이름 그대로 독립된 기구거든.”
엔디미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 할리가 쟁반에 스튜 그릇을 담아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튜와 약간 딱딱해 보이는 빵을 담은 바구니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모두가 각자의 그릇에 담긴 스튜를 맛있게 먹었다. 과연 진짜 요리사가 만든 스튜는 맛이 달랐다. 베로니카는 스튜를 먹으면서도 무엇이 들어갔는지 혼자 생각해보고 있었다. 다음에 한 번 따라해 볼 요량이었다.
라이먼과 엔디미온 일행은 밤참을 먹으면서 간단하게 잡담을 했다. 라이먼이 엔디미온에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물어보기에 대충 적당한 이야기를 짜내서 대답해주었다. 전부 진실은 아니었으나 전부 거짓도 아니었기에 라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엔디미온 일행이 뷔브르 토벌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자 감탄을 했다.
“호오, 뷔브르 토벌에 참가했다니! 이거 대단한 분들이었군. 어쩐지 마녀를 한 방에 잡는 걸 보고서 비범하다고 생각했소. 엔디미온이라고 했나? 이름처럼 참으로 훌륭한 활약이오.”
라이먼이 엔디미온의 이야기를 바로 믿은 것은 정말 토벌대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이야기를 세세하게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일락샤 독립 기사수도회의 대장이자 아일락샤의 집행관인 그는 당연히 뒤르겔과의 연락망이 있었다. 그가 아는 이야기와 엔디미온이 말한 이야기가 정확히 일치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토벌대에 참가했던 성기사들 중 일부가 성배기사가 돌아왔다고 말하던데 그게 정말이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성기사에게 물어보아도 통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궁금하던 참이었소.”
난감한 질문이었지만 엔디미온은 웃으며 대답했다.
“성배기사는 없소. 오직 전능자에 대한 신실한 믿음과 강철 같은 신앙으로 승리한 것이지.”
“음······. 하긴 백 년 전의 영웅이 돌아온다니.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라이먼이 혼자서 고개를 주억였다. 이제 사람들이 하나둘씩 스튜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엔디미온도 마지막 한 숟가락을 떴다. 라이먼은 할리를 불러서 뒷정리를 부탁했다. 이제 잘 곳을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방이라고 해도 헛간뿐이라 미안하게 됐소. 그 외에 남는 방은 감방뿐이라서 말이오.”
베로니카가 혼자서 헛간을 중얼거렸다. 엔디미온이 말했다.
“감방이 남는 걸 보면 악마숭배자들이 그리 많이 잡히지 않은 모양이오?”
“현재 아일락샤에는 총 아흔아홉 명의 악마숭배자들이 있소. 본래 백 명까지 수감할 수 있는데 어제 한 명이 처형됐소. 아마 내일이면 또 새로운 악마숭배자가 들어올 거요.”
백 명이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엔디미온이 다시 말했다.
“아까 보니 복도 안쪽에서 강력한 악마숭배자의 기운이 느껴지던데 그 자는 누구요?”
“마녀의 기운을 느낀 모양이군. 그 자의 이름은 힐레요. 마녀인데 혼자서 마을 다섯 개를 불태우고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았지.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이용해 도시 두 개를 무너트렸소. 아주 개 같은 년이오. 때문에 특별히 지하 감옥에 수감시켰소. 아주 위험한 놈이라서 말이오. 하지만 이 아일락샤에 수감됐으니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산송장일 뿐이오. 탈출하려고 해도 절대로 불가능하거든. 자, 여기가 헛간이오. 헛간이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써서 하룻밤 보내기에는 충분할 거요.”
그런 말 하면 대개 탈출하던데. 엔디미온은 혼자 중얼거리며 헛간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