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밀밭의 성배기사-111화 (111/199)

111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

비다르는 헛간 안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헛간 안에서는 오래된 공간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이곳이 여관의 방도 아니고 온갖 짐들을 보관해두는 헛간인데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 지붕 밑에서 자는 게 낫잖아.”

라우렌시오의 말에 비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바닥보다는 여기가 나았다. 엔디미온 일행은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헛간 안에는 온갖 자루들이 많았는데 안을 확인해보니 감자나 순무, 당근 따위의 것들이었다. 엔디미온은 감자 자루에 머리를 기대고 다리를 쭉 뻗었다. 발에 무언가 부딪혔는데 갑자기 비다르가 짜증을 냈다.

“누가 내 발 건드렸어? 어? 이제 막 잠들기 직전이었는데 누가 건드렸냐고!”

“나다. 조용히 자라.”

“······그래, 다들 일찍 자고 내일 보자고.”

베로니카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 엔디미온 일행은 헛간에서 잠을 청했다. 퀴퀴한 냄새도 한참 있으니 적응이 되서 느껴지지 않았다. 차디찬 바닥은 사실 길바닥과 다를 게 없었지만 그래도 지붕이 있다는 것 때문에 느낌이 달랐다. 모두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헛간의 작은 창 안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가장 먼저 기상한 것은 언제나와 같이 엔디미온이었다. 그는 몸에 묻은 먼지를 한 번 털어내고 헛간 바깥으로 나갔다. 성기사들이 벌써 일어나서 아침 체조를 하고 있었다.

엔디미온은 헛간 주변에 있는 돌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간단한 아침 체조가 끝나고 나서 성기사들은 식당으로 이동했다. 엔디미온은 그들의 부지런함이 마음에 들었다.

태양이 조금씩 움직였다. 헛간의 창문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이 많아졌다. 헛간 안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잠에서 깼다. 제일 마지막으로 일어난 것은 베로니카였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헛간 바깥으로 나왔다.

라이먼이 엔디미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헛간을 나온 베로니카를 보고서 웃었다.

“다들 일어난 것 같으니 아침 식사를 하러 가시오. 식당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으시오?”

“얼추.”

“식사가 끝나고 나면 헛간에 잠깐 있으시오. 내가 찾아가겠소.”

엔디미온은 고개를 끄덕였고 일행과 함께 식당으로 갔다. 성기사들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근무지로 이동한 후였다. 식당에 어제 보았던 할리가 있었다. 그는 엔디미온 일행을 보고서 손짓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할리가 엔디미온 일행의 식탁으로 음식을 날라주었다. 아침은 호밀빵에 곁들여 먹을 햄과 치즈, 그리고 우유 한 잔이었다. 조촐했지만 맛있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탈출하려던 마녀를 잡았다면서요? 이야, 대단하십니다. 전 악마숭배자들이 웃는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던데 겁은 안 나셨어요? 하긴 악마사냥꾼이니까 그런 건 무섭지도 않으시겠지요.”

할리는 요리사들 중에서 막내였다. 이십 대의 활달한 청년이었는데 말이 좀 많았다. 엔디미온은 식사를 하면서 그가 떠들어대는 것을 그냥 흘려들었다. 그래도 할리는 열심히 떠들었다.

“아, 그거 아세요? 오늘 새로운 수감자가 들어와요. 이걸로 수감자가 다시 백 명이 됐네요. 아휴, 악마숭배자들은 정말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니까요? 마치 바퀴벌레 같아요. 아무리 죽여도 어디선가 알을 까서 다시 나타나잖아요.”

엔디미온도 동감이었다. 할리가 처음으로 그럴듯한 말을 해서 엔디미온도 한 마디 대꾸해주었다.

“수감자가 새로 들어온다니 나중에 구경이라도 가야겠군.”

“아, 그럼 지금 식사 끝나고 나가시면 시간 딱 맞을 겁니다. 얼른 식사 끝내시고 가서 구경하세요!”

구경하겠다는 말이 진심은 아니었는데. 엔디미온은 떨떠름한 얼굴로 빵을 씹었다. 어쨌거나 말을 꺼냈으니 한 번 나가보기로 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할 일도 없었고. 엔디미온 일행은 할리에게 식사 맛있었다고 말한 뒤에 식당을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수감자에 별 관심이 없어서 바로 헛간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엔디미온 혼자서 성문 쪽으로 가니 할리가 말한 대로 정말 새로운 수감자가 방금 막 들어오는 중이었다. 어제 마녀가 탈출하면서 성문을 박살낸 탓에 성문을 여닫는 일 없이 바로 아일락샤 안으로 들어왔다. 엔디미온은 고개를 숙인 채로 성기사에게 끌려오는 악마숭배자를 보았다.

남자였고 보통의 체격이었다. 머리는 지저분하게 기른 장발이었고 몸에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힘든 문양으로 가득 했다. 악마숭배자들이 자신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기이한 그림을 몸에 그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마 그런 것인 듯 했다. 저런 것을 그리고 있으면 악마가 더 강한 힘을 내려주었다.

엔디미온은 이 악마숭배자가 마법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악마숭배자가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사악한 힘을 받게 되면 신체가 뒤틀려 괴물이 되거나 사술을 부리게 됐다. 저 자는 몸이 멀쩡하니 사술을 부리는 자일 것이다.

악마숭배자가 걸을 때마다 절그럭절그럭 소리가 났다. 그의 발목에 달린 족쇄 때문이었다. 손에도 강철로 만든 형구를 차고 있었다. 조용히 끌려가던 그가 다리에 힘이 빠져서 제자리에 넘어지자 성기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남들이 보기에 형구를 찬 남자는 불쌍한 자였으나 이곳에서 그를 동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악마숭배자가 지금 느끼는 고통은 그가 남에게 주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어나! 빨리 걸어! 어디서 불쌍한 척이야!”

쓰러진 악마숭배자는 일어나라는 고함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일어날 힘이 없어보였다. 그는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기운이 다 빠져버린 것처럼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탈진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발작하듯 몸을 떨었고 눈을 까뒤집었다. 간질이라도 앓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끄윽······. 꺽······. 꺽······.”

하지만 갑작스러운 발작에도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죽기를 바라는 듯 했다. 악마숭배자는 바르르 몸을 떨면서 입을 벌렸다.

“꺽. 내가, 너에게, 꺽, 낙인, 끅, 꺽, 찍으니, 꺼으윽, 꺽.”

그래도 일단 절차란 것이 있으니 그냥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성기사는 한숨을 내뱉으며 악마숭배자의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괜찮으냐고 물어봤지만 그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끅끅, 낙인, 찍힌 자는, 끄윽, 자유가, 꺽꺽, 없으니.”

“뭐라는 거야? 야, 괜찮아? 이거 보여? 이거 몇 개야?”

성기사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자유롭지, 꺽, 않은, 끄으윽, 자는, 꺼어억.”

엔디미온은 악마숭배자를 지켜보면서 영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발작적으로 내뱉는 말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꺽, 결코, 도망, 끅, 칠 수 없으니, 꺼윽.”

성기사들 중 한 명이 이변을 눈치 챘다.

“도망쳐! 마법이다!”

“켁, 케윽, 꺽, 말하라! 거인의 손을 가진 자에 대하여!”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악마숭배자가 처절하게 내뱉었다. 갑자의 그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마치 몸 안에 바람이라도 들어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성기사는 바로 검을 뽑아서 악마숭배자의 목을 쳤다. 하지만 강철이라도 때린 것처럼 오히려 검이 튕겼다.

점차 커지던 악마숭배자의 몸은 누군가 사지를 잡고 잡아당기는 것처럼 쭉 늘어났다. 사람의 몸이 늘어날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를 넘은 몸은 당연히 엉망이 되었다. 악마숭배자의 뼈가 부러지고 살가죽이 찢어졌다. 그래도 늘어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거대한 성문의 크기가 됐었을 때야 멈췄다. 너덜거리는 살가죽은 정말 문이라도 된 것처럼 좌우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악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비상사태! 비상사태다! 악귀들이 나타났다!”

성기사들이 무기를 들고 악귀들을 상대했다. 악마숭배자의 몸으로 만든 문은 무너진 둑이 강물을 쏟아내듯 악귀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이런, 성가신 일이 벌어졌군. 도와줘야 하지 않겠소?”

“안 그래도 그럴 셈이었어.”

에투알의 말에 엔디미온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쏟아져 나오는 악귀들을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악귀들은 일곱 살 아이와 비슷한 키였지만 근육이 단단했다. 숫자로 밀어붙이니 성기사들 역시 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벽 위에 있던 성기사들이 아래로 내려오는 중이라 싸움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몰랐다.

엔디미온이 한참 악귀들을 때려눕히고 있을 때였다. 자꾸만 악귀들을 뱉어내고 있던 문에서 큰 키의 남자가 나왔다. 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기사 다섯 명을 한 번에 뒤로 날려보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길을 막는 거냐.”

남자는 다시 마법으로 성기사들을 공격했다. 성기사들이 마법을 부리는 그를 공격하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악귀들이 길을 막아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엔디미온이 에투알에게 말했다.

“에투알.”

“응? 왜 그러는가?”

“좀 어지러울 수도 있어.”

“아니, 뭐가 말인가? 설마? 나는 싫소! 절대 싫소! 아니, 엔디미온! 제발!”

엔디미온은 성검을 뽑았다. 그리고 에투알의 절규를 무시한 채로 마법사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작살처럼 날아간 성검은 마법사의 머리를 노렸으나 갑자기 뛰어든 악귀 때문에 방향이 약간 틀어졌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성검을 눈치 챈 마법사가 보호막으로 성검을 막아냈다. 그는 잠깐 엔디미온을 노려보다가 혀를 찼다.

“너희 같은 버러지들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군.”

마법사는 곧장 성 내부를 향해서 걸었다.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감옥이다. 그곳에 갇혀있는 악마숭배자들을 해방시켜 줄 셈인 것이다.

“막아라! 감옥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

라이먼이 소리쳤지만 성기사들은 모두 악귀들과 싸우느라 바빴다. 엔디미온은 악귀들의 머리를 빠르게 부수며 성검이 떨어진 곳으로 뛰었다. 그가 성검을 집어 들자 에투알이 으으 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 어지럽소.”

“금방 괜찮아질 거야.”

엔디미온은 라이먼을 향해 소리쳤다.

“저 마법사는 내가 잡겠소! 악귀들을 처리하고 문을 닫으시오!”

“엔디미온! 그럼 맡기겠네!”

엔디미온은 곧장 감옥을 향해 뛰었다. 낮에 보는 감옥의 모습은 어제와 달랐다. 일단 감방의 문이 모두 열려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복도에는 벌써 악마숭배자들로 가득 했다. 본래라면 형구가 그들의 힘을 억제해야 했지만 그것 역시 전부 망가져 있었다. 악마숭배자들 중 일부는 괴물로 변해서 벽을 뚫고 탈출했고 나머지 악마숭배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따라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저 벌레 같은 놈들은 소란을 눈치 챈 옛 영웅들이 정리할 것이다. 엔디미온은 빠른 걸음으로 마법사를 뒤쫓았다. 그가 겨우 악마숭배자들을 구하자고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힐레, 마을 다섯을 불태우고 시체들을 이용해 도시 두 개를 함락시킨 마녀. 그녀를 찾고 있을 게 분명했다. 엔디미온은 민감한 감각을 이용해서 마법사의 뒤를 쫓았다. 복도의 모퉁이를 돌자 지하로 가는 길이 나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에서 쾅 소리가 났다. 쇠창살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엔디미온이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움직이자 곧 마법사의 모습이 보였다.

“힐레, 구하러 왔다. 주인님께서 네 걱정을 많이 하고 있으시다. 돌아가서 심려를 끼쳐드린 것을 사죄드려라.”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제이스.”

“감사는 내가 아니라 주인님께 해야지. 그리고 요르스에게도. 널 구하기 위해 스스로 문이 되었으니까.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얼른 나가야 해.”

얼씨구. 나가기는 누구 마음대로 나가? 엔디미온이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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