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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찾는데?”
눈치도 없이 지껄이는 나엘라티나 때문에 엔디미온은 눈을 부라렸다. 닥치고 있으라는 신호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거침없이 여관 안을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살결은 남부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가무잡잡했는데 그것이 잘 발달된 근육과 합쳐져서 억센 전사처럼 보이게 했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여기까지 오면서 제법 더웠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는 아무도 대꾸하지 않자 더욱 목소리를 키우며 외쳤다. 하지만 엔디미온은 입을 꾹 다물고서 모르는 척을 했다.
저 남자가 어째서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를 찾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엔디미온은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가 아니었고 단순히 상황을 넘기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뿐인데 저런 식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성가시게 구는 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남자는 지치지도 않고 성기사를 찾아다녔고 그의 커다란 목소리에 진절머리가 난 여관 주인이 그를 부르며 말했다.
“이봐, 토비아스. 제발 목소리 좀 낮출 수 없겠나? 여기는 여관이야! 지친 자들을 위한 쉼터라고! 밤새 사냥을 하고 지쳐서 자는 악마사냥꾼들도 있다고! 그리고 그 빌어먹을 성기사는 저기 있으니까 입 좀 닥쳐!”
여관 주인이 손가락으로 엔디미온 일행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토비아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알고 있으면 빨리 좀 가르쳐주지. 괜히 소리만 질렀잖아.”
토비아스가 성큼성큼 엔디미온 일행을 향해 걸어왔다. 베로니카가 엔디미온을 툭 건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시려고요.”
“그냥 눈 깔고 모르는 척 해.”
베로니카는 시키는 대로 눈을 깔았지만 토비아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입을 벌리며 역시나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 당신이 바로 그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로군? 반갑소, 나는 토비아스요.”
정말 반갑다는 듯한 인사에 엔디미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사를 무시한 게 아니라 애초에 토비아스가 인사를 건넨 것은 그가 아니었다.
“오, 토비아스인가. 반갑네. 나는 천둥검의 라이오넬이라고 하네!”
“천둥검의 라이오넬!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 멋있는 이름이군! 반갑소, 영감님! 나이도 많으신 분이 아직 성기사로 일하다니 참 정정하시네!”
토비아스는 라이오넬을 성기사라고 착가한 모양이었다. 엔디미온이 그냥 이대로 착각하게 둘까 고민하는 사이에 라이오넬이 말했다.
“나는 성기사가 아닐세! 천둥검의 라이오넬일세!”
“뭐야, 영감님이 아니오? 그럼 누구야? 이쪽 여자인가?”
토비아스는 나엘라티나를 쳐다보았다.
“기사라고 하기에는······. 생김새가 영 아닌데.”
기사다운 생김새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토비스가 보기에 나엘라티나는 아름다운 여행자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이제 베로니카에게로 향했다.
“영 비실비실해 보이는 게 기사는 아닌 것 같고.”
토비아스의 시선이 이제야 엔디미온에게 향했다.
“너였군! 그래, 생김새가 딱 기사야! 타고 났어, 아주!”
시끄러운 놈이군. 엔디미온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래, 내가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요. 무슨 용건으로 날 찾아오셨소?”
“용건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지. 일단 일어나 봐.”
엔디미온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토비아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더니 다시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주먹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지만 엔디미온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재빠르게 고개를 움직였다.
허공을 가르는 주먹을 다시 빠르게 회수한 토비아스가 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상인들이 매번 그러더라고. 뒤르겔의 성기사들이 남부의 악마사냥꾼들보다 더 강하다고. 이번에는 어느 악마를 죽였네, 어느 마을을 구했네, 그런 소리를 지겹도록 하는데 나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가서 말이야.”
토비아스가 제자리에서 가볍게 통통 뛰기 시작했다. 진짜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는 것처럼 허공에 주먹을 몇 번 날렸다.
“성기사가 악마사냥꾼보다 더 강하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악마사냥꾼이 성기사보다 더 강한 게 당연하잖아? 그런데 사람들이 안 믿더라고. 그래서 내가 증명할 생각이야. 뒤르겔의 그 이름난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를 쓰러트리고 말이지!”
거침없이 질주하는 주먹. 엔디미온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악마사냥꾼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다짜고짜 싸움을 걸다니. 본래 악마사냥꾼들이 비다르처럼 다혈질이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무식한 짓거리였다.
첫 번째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토비아스는 곧장 거리를 좁히며 재빠르게 다음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날아갈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는데 그의 주먹이 상당히 묵직하다는 증거였다. 제법 실력이 있는 자인 듯 했다.
“하핫! 그 잘나신 성기사께서 도망만 치시는군! 반격이라도 좀 해보라고! 일방적인 싸움은 재미가 없잖아!”
토비아스는 현란하게 주먹과 발을 이용해서 엔디미온을 압박했다. 주먹이 얼굴에 부딪힐 듯 가까이 날아왔고 발차기가 간발의 차로 허벅지를 스쳐지나갔다. 공격은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엔디미온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가 반격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지금 생각 중이었다.
내가 왜 이 싸움을 하고 있지? 나엘라티나와 싸움을 했던 것이 아까 전이다. 바이올렛이 용들을 사냥하고 다닌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 것이 방금 전이고.
몸도 뻐근하고 머리도 복잡한데 내가 왜 이 빌어먹을 놈과 이딴 장난이나 하고 있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핫! 성기사도 별 거 없군! 이제 끝이다!”
엔디미온은 이제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토비아스가 주먹을 날리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이 맹랑한 도전자가 귀찮아졌다. 내가 왜 이 자식을 상대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엔디미온은 한숨과 함께 주먹을 들었다. 그 전에 토비아스의 주먹이 얼굴에 꽂혔다.
“하하하! 주먹맛이 어떠······.”
토비아스는 말문이 막혔다. 분명 제대로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그런데 엔디미온의 고개는 조금도 돌아가지 않았다. 정말 힘껏 때렸는데도.
“끝이냐.”
키가 큰 엔디미온이 토비아스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시선이 서늘했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때린다.”
엔디미온이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휘둘렀다. 그것에 맞은 토비아스는 머리가 흔들리면서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냥 가볍게 휘두른 것 같은 공격인데 어이가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 자식이!”
정신을 다잡은 토비아스가 다시 달려들었다. 주먹이 몸을 때렸다. 엔디미온은 꿈쩍도 하지 않고 토비아스의 뺨을 후려쳤다.
“후후, 이제 좀 재밌어지는 것 같구나!”
짝! 다시 달려드는 토비아스의 얼굴을 또 한 번 후려갈겼다.
“아직, 아직이다!”
짝!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지 않고 그냥 맞아주면서 또 때렸다.
“자, 잠깐만······.”
짝! 또 때렸다.
“그, 그만 때려······.”
짝! 짝! 짝! 엔디미온은 그냥 때렸다. 토비아스가 뭘 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달려들 때마다 그냥 얼굴을 후려갈기고 때렸다. 연달아 짝 소리가 났고 그럴 때마다 토비아스의 얼굴이 크게 부풀었다.
분명 똑같이 한 대씩 주고받고 있는데 어째 토비아스만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피가 줄줄 흐르는 코를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
“······너, 씨발, 대체 뭐냐? 내 주먹에 맞고도 왜 멀쩡한 거야?”
“성기사.”
“씨발, 성기사는 사람 아니야? 어? 성기사는 고통도 모르냐고! 똑같이 한 대씩 때렸는데 왜 나만 이래!”
“네가 약하니까.”
“닥쳐! 악마사냥꾼은 강하다! 성기사보다 더 강하다고!”
토비아스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엔디미온에게 달려들었다. 짝! 또 한 번의 따귀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엔디미온은 바닥에 쓰러진 토비아스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무정한 사형집행인 같아서 토비아스가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자, 잠깐! 잠깐만 기다려 봐!”
왜 까불거리던 놈들은 자기가 불리해지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할까. 엔디미온이 그 말을 무시하고 가까이 다가오자 토비아스가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기다려! 난 신전의 말을 전하려고 온 것뿐이야! 너 성기사라며! 그럼 신전의 말은 들어야지!”
“맞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군. 괘씸해서 한 대 더 때려야겠다.”
“아니야, 진짜라고! 씨발, 사람 말 좀 믿어! 라티에티에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서 신전의 사제님이 날 여기로 보낸 거란 말이야! 나랑 같이 신전으로 가서 거짓말인지 아닌지 확인하면 되잖아!”
엔디미온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었다. 토비아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자 그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야.”
“왜?”
“가까이 와.”
“때, 때리려는 거 아니지?”
엔디미온이 말없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오랄 때 안 가면 진짜로 얻어맞을 것 같아서 토비아스가 얼른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또 한 번 짝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그냥 가볍게 툭 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아팠다.
“씹, 또 왜 때리······!”
“혀 잘라 먹었냐?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세요.”
엔디미온은 또 한 번 가볍게 토비아스의 머리를 쳤다.
“아니, 이번에는 또 왜 때리······세요?”
“신전의 심부름을 왔으면 말만 전하고 갈 것이지, 건방지게 싸움 건 게 괘씸해서.”
씨발, 환장하겠네. 토비아스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화를 삭였다. 그는 이 근방에서 제법 알아주는 악마사냥꾼이지만 방금 전의 싸움을 통해서 절대로 엔디미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성기사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다. 부하나 종자도 없이 이런 곳에 홀로 임무를 수행하러 온 것을 보면 엔디미온은 직책이 없는 황금장미 기사수도회 중에서도 말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사수도회의 말단이 이만큼 강한데 그럼 그 위에 있는 자들은 또 얼마나 강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토비아스의 착각이었다. 엔디미온은 성기사가 아니라 성배기사였고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들 전부가 덤벼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성기사들이 강한 게 아니라 성배기사가 강한 것인데 작은 거짓말 때문에 커다란 오해가 생긴 것이다.
“토비아스라고 했지.”
토비아스는 대충 고개만 끄덕이려다가 엔디미온의 주먹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
“맞습니다, 토비아스입니다! 하실 말씀이라도?”
“신전에서 날 찾는다고 하니 지금 가겠다.”
“아, 알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서 토비아스는 제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엔디미온은 그의 정강이를 발로 툭 치면서 말했다.
“뭐하냐?”
“아니, 또 왜요?”
“너 신전에서 보낸 심부름꾼이라며. 길안내 해야 할 거 아냐.”
“저기 죄송한데, 자꾸 때리지 좀 마세요. 전능자의 말씀 중에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것도 있잖아요. 말로 해도 다 알아듣는데 왜 자꾸 때리십니까?”
엔디미온은 식탁 위에 있는 잔을 손으로 잡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잔을 손으로 꽉 잡고 힘을 주자 그대로 가루가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잘하면 나도 때릴 일 없어.”
토비아스는 이제 말대꾸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