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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성배기사-157화 (15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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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신 나간 놈들······.”

이것은 온갖 일들을 다 경험했던 엔디미온도 혀를 내두를 만큼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악마숭배자들, 그리고 방 안에 갇혀있는 악마. 이 두 가지 사실이 가리키는 진실은 명확했다.

비로크의 주먹은 악마를 사육하고 있다.

“참으로 역겨운 일이오.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소.”

성검 에투알 역시 질렸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찼다. 악마는 자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힘을 선물한다. 그리고 악마숭배자는 악마에게 제물을 바친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비로크의 주먹은 상식을 뒤집었다. 악마를 섬기고 그 대가로 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악마를 사육하고 힘을 뱉어내게 만든다.

그들에게 있어서 악마는 양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 안에 가두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고 젖을 짜내듯 악마의 힘을 짜낸다. 그리하여 수백 명의 악마숭배자로 구성된 강도단을 만들었다. 그냥 강도단이라고 해도 충분히 위협적인데 거의 대부분이 악마숭배자로 구성됐다면 사실상 악마 이상의 위협이었다.

“이 미치광이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군.”

엔디미온은 저항하지 않는 자까지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 방 안의 악마를 보고서 생각을 고쳤다. 이 녀석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는 놈들이었다. 미치광이들. 보통이라면 감히 하지 않을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냈다. 이런 놈들이 협곡에서 나와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분명 악마가 나타난 것 이상의 해악이 발생할 것이다.

“일단 악마부터 죽여야겠소. 악마숭배자들의 힘은 악마로부터 나온 것. 악마가 죽으면 자연히 소멸될 것이오.”

“그래.”

엔디미온은 성검을 들고 악마의 목을 베려고 했다. 사지가 모두 잘려나갔고 사슬로 몸이 결박당한 악마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몸을 한 번 크게 들썩였다. 입은 있지만 혀를 잘라버린 것인지 짐승 같은 울음소리만 내던 악마는 어쩐지 죽음을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기는 악마로 태어나 사람들에게 짐승 취급 받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굴욕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악마도 참 우습군. 엔디미온은 악마에게 검을 겨누면서 생각했다. 악마가 강도단 따위에게 붙잡히다니 말이야.

“으으으. 으어어어······.”

악마는 얼른 죽여달라는 듯 더욱 크게 몸을 흔들었다. 엔디미온이 악마의 목을 베려고 검을 크게 들었을 때였다.

“이런. 설마 벌써 여기를 찾아냈을 줄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군.”

챙! 갑자기 날아온 단검이 성검과 부딪치면서 난 소리였다. 엔디미온은 날아온 단검을 쳐냈고 잽싸게 날아오던 그것은 벽 쪽으로 튕겼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실력이 대단하더군. 혹시 특등기사냐? 일신의 무력이 대단한 것을 보니 지방 교구가 아니라 본청의 기사인 것 같은데.”

남자는 남부 사람 특유의 가무잡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검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멋들어진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미소에 엔디미온도 마주 웃었다.

“성기사들을 만나본 적이 있나? 지방 교구니 본청이니 하는 것을 보니 성기사에 대해서 좀 아는 모양인데.”

남부 사람들은 성기사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왜냐하면 악마사냥꾼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니까. 지방 교구와 본청에 대해서 떠드는 것은 성기사들의 생태에 대해서 잘 안다는 뜻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의 규율이 내 목을 졸랐다고 해두지.”

새끼, 결국 성기사의 규율을 여겨서 쫓겨났다는 소리면서 말은. 엔디미온은 혀를 차며 말했다.

“악마가 강도단 따위에게 잡혔다는 것이 이상했는데 이제 알겠군. 전직 성기사가 있으면 가능한 일이지.”

“하하. 그 녀석을 죽이지 않고 잡느라 참 힘들었지. 내 부하들도 많이 죽었고. 그래도 그 녀석 덕분에 세를 배 이상으로 불릴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지만.”

“네가 알데리히냐?”

“그래. 비로크의 주먹을 이끌고 있는 알데리히다. 너는 누구지?”

“엔디미온.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엔디미온.”

이제 엔디미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이름을 사칭했다. 알데리히는 으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여명교단 본청의 기사수도회로군. 그곳의 기사가 왜 이런 곳까지 혼자서 온 거지?”

“알 거 없다. 곧 뒈질 놈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기사라기보다는 왈짜로군.”

알데리히가 어깨를 으쓱한 뒤에 검으로 엔디미온을 겨누었다.

“어쨌거나 그 악마를 죽이게 둘 수는 없다. 그건 아주 곤란한 일이야.”

“실력에 자신 있으면 해봐.”

“자신감이 넘치는군!”

알데리히가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엔디미온의 위치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악마로부터 받은 힘 덕분이었다. 엔디미온은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검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었다. 챙!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티가 튀었다. 악마숭배자가 된 전직 성기사의 검은 부딪쳤을 때의 충격만으로 사람의 손목을 부러트릴 수 있는 위력이 있었지만 엔디미온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받아냈다.

연달아 울리는 금속음과 함께 알데리히는 재빠른 공격을 이어나갔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씨들은 알데리히가 얼마나 빠르게 검을 휘두르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는 비록 특등기사는 되지 못했지만 일등기사 중에서 상대할 자가 없는 강자였다. 그리고 악마의 힘을 받아서 악마숭배자가 된 지금은 그때보다 배는 더 강해졌다.

“대장이라고 해서 조금은 기대했는데.”

그럼에도 엔디미온을 이길 수는 없었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틈을 노리고, 반격의 기회를 노려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엔디미온은 마치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다. 어느 방향에서 어떤 공격을 해도 상처 하나 낼 수가 없었다.

알데리히는 몰랐지만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엔디미온은 성배기사였고 일등기사가 아니라 특등기사가 와도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이 한 부대로 몰려와도 마찬가지였다.

“별로 다를 건 없군.”

지금까지 줄곧 제자리에서 공격을 받아내기만 하던 엔디미온이 한 발자국 움직이자 알데리히는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는 이제 살기 위해서 검을 휘둘러야 했다. 미친 듯이 휘두르고 또 휘둘러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힘을 상대로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 이게 정말 성기사라고?

“······너 정말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의 성기사가 맞는 거냐? 에스메렐다 추기경도 너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알데리히는 지금 교황의 여섯 기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엔디미온이 그들과 비견될 만한 강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남자라면 혼자서 비로크의 주먹 전부를 해치울 수 있었다.

“글쎄. 아까도 말했지만 곧 뒈질 놈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진짜 왈짜로군.”

“네가 지금까지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나무 말뚝으로 몸을 꿰뚫고 신성력으로 조금씩 말려죽여야겠으나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건 생략하겠다. 단칼에 죽여주마.”

알데리히는 이제 더는 물러날 곳 없이 구석에 몰려 있었다. 엔디미온의 검을 몇 번이나 받아낸 손목이 저리다 못해 덜덜 떨렸다. 이제 엔디미온을 이길 방법은 없다. 어디까지나 인간으로는.

“미안하지만 난 여기서 죽어줄 생각이 없다.”

“죽느냐 사느냐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내가 결정하는 거지.”

실로 오만한 자신감이다. 하지만 엔디미온은 그런 자신감을 부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알데리히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들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려고?”

“그래.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무슨 짓을 해도 너는 날 이길 수 없어.”

“그것도 맞아. 악마숭배자인 나는 널 이길 수 없어.”

알데리히는 씩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엔디미온은 그 모습을 보고서 미간을 좁혔다. 알데리히가 휘두른 검은 엔디미온을 향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뒤에 있던 악마의 심장을 찔렀다.

“으어어어어어어!”

악마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알데리히는 악마의 가슴을 손으로 헤집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심장을 꺼냈다. 저 새끼 뭐하는 거야? 엔디미온이 가만히 쳐다보자 알데리히가 심장을 들고서 말했다.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괴물뿐이지.”

무슨 헛소리야. 엔디미온이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알데리히는 손에 들고 있던 심장을 크게 깨물어 한 입 삼키고서 말했다.

“그러니 내가 악마가 된다! 널 죽이기 위해서!”

악마의 심장을 삼킨 알데리히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의 몸에서 음산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알데리히의 뼈가 살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가 급속도로 재생한 살가죽에 의해 다시 묻혔다. 그의 몸은 그러한 활동을 반복하면서 그 크기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사지는 인간일 때보다 두 배는 더 길어졌고 두께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리에는 진짜 악마처럼 두 개의 뿔이 났으며 눈은 네 개로 갈라져서 새빨간 안광을 발사했다.

뿌드득 하는 소리는 등이 갈라지며 날개가 튀어나오는 소리였다. 이제 알데리히는 인간의 모습을 모두 집어던지고 방 안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해졌다. 그는 말 그대로 악마가 된 것이었다.

“으흐흐흐······. 으하하하하하! 나는 완전해졌다! 인간의 몸을 벗어던지고 악마로서 다시 태어났다! 너, 이 건방진 성기사야! 악마 알데리히의 무서움을 맛봐라!”

악마 알데리히는 입을 크게 벌렸다. 목구멍 너머로 사악한 기운이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곧 구체를 형성했고 엔디미온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심상치 않은 공격이었다.

“죽어라!”

검은색 구체가 엔디미온을 향해 발사됐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며 분쇄하고 있었다. 알데리히는 자신의 힘의 도취됐다. 인간 알데리히 때는 엔디미온을 이길 수 없었지만 악마 알데리히라면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압도적인 힘에 만족하던 그는 흐흐흐 하고 낮게 웃었다.

이제 검은색 구체가 엔디미온의 몸에 부딪쳐 가루도 남기지 않고 분쇄해버릴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바람 가르는 소리.

“음?”

알데리히는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바닥이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바닥이 내게 다가오는 거지? 아니, 내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목에서 느껴지는 이 따끔함은 대체.

쿵.

“내 말이 어려웠나?”

알데리히의 시야는 이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어지러움은 엔디미온의 발에 머리를 밟혔을 때 사라졌다.

“무슨 짓을 해도 날 이길 수 없다고 했잖아. 악마로 변하고 나발이고 무슨 개짓거리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머리가 사라진 알데리히의 몸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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