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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성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악마와 악귀들은 야습으로 잠깐의 우위를 점했었지만 비다르와 라이오넬의 무력과 에스메렐다의 발 빠른 대처로 위기에 빠졌다.
성기사들과 두 영웅은 양떼를 습격하는 늑대처럼 잔혹하게 적들을 죽였다. 늦은 밤에 시작된 싸움은 새벽이 올 때 끝이 났다.
성기사들은 머리를 답답하게 짓누르는 투구를 벗어서 바닥에 내던지고는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겼다.
싸움은 성기사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제부터 진지를 정리하고 부상자들을 수습해야 했다. 에스메렐다는 아침이 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낼 것을 지시했다. 적의 숫자로 볼 때 이번 야습은 선봉대의 규모를 알아보기 위해 보낸 것에 불과했다.
악마들도 성 위에서 싸움을 봤을 테니 진지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곧장 본대를 내보낼 수도 있었다.
“에우레킬슨 경. 병사들을 시켜서 악마와 악귀들의 시체를 진지 바깥으로 내버리십쇼.”
에스메렐다의 명령에 에우레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병사들을 데리고 사악한 것들의 시체를 토막 내서 진지 바깥으로 버렸다. 사악한 존재들은 죽은 뒤에도 고약한 사기(邪氣)를 내뿜기 때문에 부상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본래라면 사제들의 기도와 성수로 시체를 완전히 정화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비다르님, 그리고 라이오넬님. 두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야습이었는데 두 분 덕분에 큰 타격 없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 인사는 됐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네.”
“라이오넬님, 그쪽 아닙니다.”
라이오넬은 허공에다 말을 하다가 몸을 돌렸다.
“아마 아침이 되면 또 공격이 있을 거야. 준비 단단히 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비다르의 말에 에스메렐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전투에 참가했던 성기사들에게 휴식을 주고서 아침에 있을 습격에 대비했다. 어스름하게 여명이 떠오를 때 척후병들을 보내서 테오도스의 동태를 확인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악귀들은 성 바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일부 악마들은 성벽 위에 있었다. 하늘을 날며 성 위를 배회하는 악마도 있었다.
에스메렐다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점심이 되자 악귀들이 한데 뭉쳐서 진격 준비를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병사들은 나무를 날카롭게 다듬어서 만든 목책을 언덕 위에 설치했고 궁병들은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전위를 맡는 것은 당연히 성기사들이었다. 그들은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하고 손에 창칼과 철퇴 따위를 들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직 두 사람만 빼고서.
“많네.”
“어제보다 많은가?”
“그런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시시한 잡담을 하며 적들의 진격을 기다렸다. 거대한 덩치의 악마가 할버드를 머리 위로 들었다가 휙 휘둘렀다. 그것을 신호로 수많은 악귀들이 언덕 위를 향해 내달렸다.
악귀들의 종류는 다양했다. 늑대처럼 생긴 것도 있었고 아이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벌레처럼 생긴 것도 있었고 새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은 전부 다 구역질이 날 만큼 사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전투 준비!”
에스메렐다가 검을 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발사!”
검을 휙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병들이 화살을 쏘았다. 악귀들에게 화살 따위는 가시로 찌르는 듯 따끔한 수준의 공격이었지만 진격을 약간이나마 늦추는 효과가 있었다.
화살비를 뚫고서 언덕 위까지 달려온 악귀들은 멍청하게도 목책에 부딪치거나 대기하고 있던 성기사들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또 한 번 화살비가 내리고 악귀들이 목책에 충돌했다. 그들은 자신의 강인한 육체를 믿고서 쉬지 않고 돌격했다. 연달아 발생한 충격 때문에 목책이 박살났지만 그 뒤에는 성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단단한 갑옷과 견고한 신앙심은 그 자체로 성벽이었다. 좌우로 길게 줄을 지어 늘어선 성기사들은 단 한 마리의 악귀도 언덕을 넘어가게 두지 않았다. 곳곳에서 함성과 비명, 그리고 욕설이 터져 나왔다.
“멍청한 놈들! 비켜라!”
쿵! 쿵! 쿵! 땅이 진동하면서 커다란 외침이 귓가를 때렸다. 악귀의 머리를 철퇴로 깨부수고 다리에 엉겨 붙는 악귀를 발로 차서 언덕 아래로 밀어낸 성기사는 갑작스럽게 머리 위로 생겨난 그림자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할버드를 발견했다.
“끄아아아악!”
신성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단단한 갑옷을 입었음에도 충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거대한 할버드에 맞고 성기사들의 무더기로 뒤로 날아갔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갑옷이 구겨졌고 순간적으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성기사들을 방어선을 일부 박살낸 악마는 또 한 번 할버드를 휘두르며 외쳤다.
“내 뒤를 따라와라! 저 역겨운 성기사 놈들을 모두 죽이는 거다!”
악마가 염소의 것을 닮은 두꺼운 다리로 성기사들을 걷어차자 다섯 명도 넘는 자들이 뒤로 넘어졌다. 그대로 발굽으로 깔아뭉개려는 것을 다른 성기사들이 다급히 달려와서 막아냈다.
하지만 악마가 대형을 무너트린 탓에 악귀들이 성기사들을 지나쳐 병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성기사들과 다르게 병사들은 악귀들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위험했다. 그들은 신성력을 다룰 줄 모르기에 자신을 보호할 수단도 없었다.
“어딜 감히!”
“모두 겁 먹지 말고 활을 쏴라! 고결한 에우레킬슨이 너희를 지켜주겠다!”
그림발드와 에우레킬슨이 검을 휘두르며 악귀들을 죽였다. 그 사이에 다른 성기사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악마를 협공해서 바닥에 넘어트렸다. 그 다음은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악마 하나가 목숨을 잃었으나 그 말고도 다른 악마들이 많았다. 언덕 위로 돌격했던 악귀들이 대부분 죽음을 맞자 드디어 악마들이 전면에 나섰다. 그들은 아까 전에 쓰러트린 악마처럼 거대한 덩치와 함께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동시에 언덕을 향해 달리자 바닥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두 번째 충돌이 발생했다. 성기사들은 신성력으로 보호막을 만들고 악마들에 대항했으나 그것은 단지 적들의 진격 속도를 잠깐 늦출 뿐이었다. 무기를 휘두르고 사술을 부려 기어코 보호막을 박살낸 악마들이 성기사들과 대면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다. 성기사들과 악마들이 충돌했다.
황금장미 기사수도회와 가시왕관 기사수도회, 그리고 망치와 정 기사수도회는 대부분 상등기사와 특등기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등기사는 혼자서 저급한 악마를 상대할 수 있었고 상등기사도 두세 명이 모이면 악마를 상대할 수 있었다.
수많은 성기사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자그마한 키를 가지고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전장을 뛰어다니는 난쟁이 성기사였다.
여자였고 손에는 메이스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메이스를 한 번 휘두르자 정강이를 맞은 악마가 악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고 맞은 곳에 또 한 번 날아오는 공격에 이번에는 몸을 휘청거렸다.
악마 하나만 집요하게 노리던 그녀는 기어코 악마를 넘어트려서 그 머리통을 깨부쉈다. 그리고 또 다른 악마를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이 더러운 악마 새끼들아! 이 메이스로 머리통을 다 박살내주마! 거기서 딱 기다려!”
고운 입으로 걸걸한 욕설을 내뱉는 난쟁이 성기사의 이름은 멜리사였다.
“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가?”
라이오넬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지만 주변의 소음 때문에 아까 들은 소리가 묻혔다. 그는 다시 고개를 바로 했다.
비록 장님이지만 민감한 감각을 통해서 적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았다. 그의 시야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있지만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순식간에 악마 둘을 베었으며 찰나의 순간에 또 하나를 베었다.
라이오넬이 가는 곳에는 악마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그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악마들을 상대했다.
악마 한 마리를 죽일 때마다 성기사들이 부담해야 할 위험이 줄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체력을 희생해서 성기사들을 지키려고 했다. 라이오넬은 요즘 들어 자신의 몸이 부쩍 약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영웅들과 다르게 혼자만 노인의 육체를 가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래 살았지만 불멸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토록 바라던 검술의 끝을 봤으며 마음의 부채로 남았던 마지막 의무를 이것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검술이라는 것은 결국 적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단련한 검술이라도 써먹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이오넬은 이 거대한 전쟁이 자신의 마지막 투쟁이 될 것을 알았다. 다행이었다. 마지막까지 검사로 살다 갈 수 있으니까.
“적들을 몰아내라! 이길 수 있다! 힘을 내라!”
그림발드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성기사들을 격려했다. 비다르는 그 외침을 들으며 악마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관절을 부수고, 가죽을 찢고, 뼈를 박살냈다. 그의 주먹에 부딪치거나 잡히는 것은 전부 끔찍한 결과를 맞았다.
일당백이라는 말처럼 혼자서 수많은 악마를 상대한 비다르는 더운 숨을 뱉어내며 언덕 아래를 쳐다보았다.
적들이 많았다. 본래 많았지만 지금은 더 많았다. 처음에 출격했던 악마와 악귀들을 거의 다 죽였는데 새로 충원된 게 분명했다. 숫자로 밀어붙여서 선봉대를 끝장내려는 게 분명했다.
“눈치 챈 모양이군.”
비다르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곳에 성배기사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챘어.
적들은 어제의 야습과 오늘의 공격으로 이 자리에 성배기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언덕 위의 선봉대를 쓸어버리려는 것이다.
“안 될 일이지. 성배기사는 없어도 이 강철 주먹의 비다르님이 있는데 말이야.”
비다르는 주먹을 꽉 쥐고서 숨을 한껏 삼켰다. 그리고 엄청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그는 주먹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악마의 다리뼈를 박살낸 후에 생각했다.
성기사들이 버틸 수 있을까? 라이오넬과 자신은 적이 얼마나 많든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백 년 전의 그 성기사들이 아니니까. 비다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더 열심히 싸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제기랄.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도착했도다! 영광스럽게 싸우고 자랑스럽게 죽을 자리를 찾았다! 이 더러운 악마 놈들아! 눈이 있으면 보아라! 귀가 있으면 들어라! 지금 이곳에 누가 왔는지! 이얏호! 달려라, 애마야! 저 더러운 것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마치 뿔나팔을 이용해 말하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였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고 갑작스럽게 언덕 위에 나타난 남자는 말의 배를 차며 언덕 아래로 달려갔다.
마치 미치광이 같은 행태라서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남자가 또 한 번 외쳤다.
“모두 들어라! 성배기사의 친구이자 그의 인정을 받은 기사 중의 기사! 앤드루가 왔다아아아아아아!”
저 정신 나간 놈은 또 뭐야? 비다르는 악마의 머리를 부수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