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1화 (1/175)

1화 회빙환(回憑還)

인천 항만의 컨테이너 창고.

나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일평생 재벌가의 종노릇을 한 대가로 비명횡사할 처지에 놓였다.

노예처럼 재벌에게 봉사한 결과는 너무 비참했다.

그런 탓일까, 내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놈에게 발악하듯 외쳤다.

"어서 죽여라! 개자식아!"

그러자 놈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올리며 권총의 방아쇠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탕!

한발의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나는 죽었다.

***

눈을 뜨자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저승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여자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정신이 드시나요?"

초점이 안맞는 눈에 억지로 힘을 주자, 간호복 차림의 여자가 시야에 포착됐다.

동시에 두눈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대낮처럼 환한 조명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청부살인 업자가 쏜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허나, 이곳은 저승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반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참으로 다행이세요. 선생님을 모시고 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눈에 초점이 완전히 돌아왔다.

그 덕분에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어렴풋이 파악이 됐다.

이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나는 죽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하늘에 오를듯 기분이 좋아졌다.

재생(再生)의 기쁨이었다.

곧바로 내 몸상태를 점검했다.

생각 외로 내 몸은 멀쩡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분명 관자놀이에 총알을 맞고 죽었는데, 병원에서 멀쩡한 몸으로 되살아났다.

이 말을 누가 믿겠는가?

일단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간호사를 호출했다.

"화장실이 어디에 있죠?"

긴호사가 친절한 얼굴로 화답했다.

"옆 복도에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 말한 뒤 복도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벽면에 부탁된 거울에 시선을 모으자 20대 초반의 남자가 보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내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키도 170cm 전후였고, 얼굴도 보통이었다.

허나, 거울에 비친 청년은 키도 190cm에 육박할 정도였으며, 얼굴도 남자답게 잘생긴 친구였다.

나는 이 상황이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인천 항만의 컨테이너 창고에서 죽자마자 젊은 청년의 몸으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문득, 빙의환생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청년의 몸으로 빙의 환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외에는 지금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

응급실로 들어가자 의사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바로 정밀 진찰에 들어갔다.

그 결과 내 몸은 정상이라는 판정이 떨어졌다.

담당의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승용차에 정면으로 충돌했는데도, 아무런 이상이 없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 선생이 친절한 얼굴로 말했다.

"병원비는 차주가 계산했으니까 이만 집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물론 몸에 이상이 느껴진다면 지체말고, 저희 병원으로 오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응급실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잠시 후, 보험회사 관계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명함을 건넨 뒤,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병원에서 입원하실 경우 입원비와 생활비를 비롯한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유장애가 있을 경우에도 저희 보험사에 치료비와 보상비용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의 말은 길게 이어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응급실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병원에 입원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바깥 바람을 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곧바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문을 나선 뒤, 밤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내가 걸친 점퍼의 안주머니에 본능적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안주머니에는 가죽 지갑이 있었다.

지갑을 열자 주민증과 만원 짜리 지폐 3장이 보였다.

그리고 은행의 체크카드도 눈에 띄였다.

주민증에 시선을 모았다.

민증에는 '김한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출생년도는 1980년 생이었다.

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내 외모는 20대 초반이었다.

그렇지만 출생년도는1980년 이었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지금은 2020년 7월이었다.

그렇다면 한빈의 외모는 40대의 모습이어야 한다.

허나, 내 외모는 누가봐도 20대 초반이었다.

문득 오늘 날짜를 확인하고픈 욕망이 불쑥 치밀었다.

뭔가 이질적인 분위기를 느낀 탓이다.

이 곳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었다.

그렇지만 웬지 모든 게, 촌스럽게 느껴졌다.

수십년 전으로 퇴행한 듯한 분위기였다.

길거리 패션과 건물 외관, 상점가의 조명 등이 클래식한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연출한 탓이다.

곧바로 병원으로 되돌아갔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벽면에 걸린 달력에 시선을 집중했다.

놀랍게도 오늘은 2000년 1월이었다.

나는 죽음과 동시에 무려 20년 전으로 빙의환생했다.

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가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

병원 근처의 벤치에 자리한 채, 밤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혼란의 연속이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한 탓이다.

젊은 청년의 몸에서 되살아 났을 뿐만 아니라, 20년 전으로 회귀했다.

나는 원래 일가친척이 전무한 고아출신이었다.

그런 탓에, 어렸을 때부터 자력갱생을 좌우명으로 삼으며 성장했다.

20살에 고아원을 퇴소한 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대영그룹의 수행기사 모집공고를 우연히 접했다.

당연히 조건이 너무 좋았다.

5천만원에 달하는 연봉을 약속한 것이다.

얼마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운좋게 대영그룹의 수행기사로 취직했다.

그 뒤, 대영그룹의 후계자인 이성택을 모시게 되었다.

이성택은 전형적인 재벌가 개망나니였다.

놈이 나를 수행기사로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종처럼 부려먹기 위함이었다.

그런 이유로 중년 아저씨들 대신, 나를 수행기사로 낙점했다.

수행기사로 일하는 내내, 이성택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허나, 고아원 시절을 생각하며 놈의 개짓거리를 묵묵히 감내했다.

나는 고아원에서 어린시절부터, 나이 많은 원생들에게 혹독한 얼차려를 받았다.

그에 비하면, 놈의 폭행과 폭언은 충분히 참을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름 수행기사로서 맡은바 본분에 최선을 다했다.

***

이성택의 수행기사로 일한지 20년이 지나자, 놈은 나를 충직한 종놈으로 취급했다.

그런 탓으로,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스런 심부름을 나에게 자주 시켰다.

나는 그럴 때마다, 성실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성택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가 불법적인 방식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첩보가 대검 특수부에 포착된 탓이다.

이성택의 자택과 회사 사무실, 비밀 안가 등에 특수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벌떼처럼 들이닥쳤다.

그들은 비자금 장부를 찾는데 혈안이었다.

허나, 검찰은 끝내 비자금 장부를 찾는데 실패했다.

그 무렵, 이성택이 숨겨놓은 USB 메모리를 우연한 기회에 습득했다.

그의 옷을 세탁하기 위해 양복 주머니를 뒤지는 중에 USB 메모리를 발견한 것이다.

컴퓨터에 연결해보니, USB 안에는 그의 비자금 계좌들이 저장된 상태였다.

나는 그날, 비자금 계좌가 저장된 USB 메모리를 검찰에 넘기기로 결심했다.

지난 20년 동안, 이성택에게 당한 온갖 수모를 한방에 되갚기 위함이었다.

***

특수부 소속인 유창섭 검사를 만나기 위해 한강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때, 내 뒤통수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그 것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자마자 관자놀이에서 차가운 촉감이 전해졌다.

잠시 후, 한발의 총성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나는 죽었다.

***

과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런 탓일까, 이성택을 향한 불같은 살심에 휩싸였다.

특히 대영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영전자와 대영자동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2020년 당시, 대영전자의 시가총액은 40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전 세계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절대강자였기 때문이다.

대영자동차 역시 13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시총을 기록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을 독과점한 탓이다.

그리고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수장은 나를 청부살인한 이성택이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 탓일까, 대영전자의 시총이 궁금해졌다.

곧바로 인근의 피시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넷 창에 대영전자를 입력하자 주가시황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2000년 현재 대영전자의 시가총액은 한화로 150조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영전자의 시총은 앞으로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을 예정이었다.

전 세계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는 탓이었다.

그 덕분에 대영전자의 주가는 앞으로 20년 동안 꾸준히 우상향 행진을 거듭한다.

나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 두눈으로 생생히 목격한 탓이다.

빌어먹을 이성택은 부모 잘만난 덕분에 전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었다.

이철성 회장이 죽자마자 대영전자와 자동차, 그리고 수십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모두 승계한 까닭이다.

이성택이 뇌리에 떠오르자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그득해졌다.

그런 탓일까, 놈의 모든걸 철저하게 파괴하고픈 욕구에 절로 빠져들었다.

***

파출소로 들어갔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에게 말했다.

"교통사고 휴유증 탓인지 내가 사는 집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지갑에서 주민증을 꺼냈다.

경찰은 내가 건넨 주민증을 확인한 뒤 컴퓨터에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했다.

잠시 뒤.

경찰이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김한빈씨를 조회한 결과, 주소지가 서교동으로 나오는데요."

그리 말하며 메모지에 내 주소를 적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메모지를 챙긴 뒤 파출소를 유유히 벗어났다.

길가를 배회하는 택시에 올라탄 뒤 기사 아저씨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그 주소지로 가주십시오."

"예. 손님."

30분 뒤.

나를 태운 택시가 오피스텔 앞에 정차했다.

택시비를 지불한 뒤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옆에 경비실이 보였다.

경비실로 다가가자 나이 지긋한 경비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하며 택배 물품을 전달했다.

물품의 겉표지에는 '유성 오피스텔 1401호 김한빈'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아저씨에게 목례를 취한 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14층에 내린 뒤, 1401호 앞으로 다가갔다.

문가에는 디지털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었다.

순간 '0407'이라는 숫자가 뇌리를 스쳤다.

곧바로 0407를 입력하자 '딩동댕'이라는 디지털 음향이 들려왔다.

문을 슬며시 열자 오피스텔의 내부 정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10평 남짓한 방이었다.

주방과 소파, 침대, 욕실 등이 완비되어 있었다.

고시원이나 원룸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었다.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거실 책상에 시선을 모았다.

제일 급선무는 한빈에 대한 모든 걸, 하루 빨리 숙지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곧바로 일기장을 펼쳤다.

그 후, 밤이 새도록 일기에 시선을 집중했다.

***

김한빈은 나와 마찬가지로 고아 출신이었다.

공교로운 일이었다.

허나, 녀석은 빼어난 외모를 타고났다.

190cm에 달하는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 짙은 눈썹 등등...

누가 봐도 군계일학의 비쥬얼을 일신에 구비한 청년이었다.

그런 탓일까, 녀석은 고아원을 퇴소한 이후 모델로 활동하며 돈을 모으는 한편, 연기 학원에서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다.

배우로 출세하기 위함이었다.

녀석에 대한 파악을 대충 끝낸 뒤 책상 서랍장에서 발견한 통장과 오피스텔 월세 계약서류에 시선을 모았다.

통장의 잔고는 겨우 400만원 남짓이었다.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녀석은 매달 초순에, 오피스텔 월세로 60만원을 집주인의 계좌로 이체해야 하는 처지였다.

재수없게도 오늘은 1월 초순이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즈음,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투박하게 생긴 피쳐폰의 폴더를 열자 낯선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통장을 확인해보니까 월세를 아직 안내셨더라구요.

"죄송합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사모님 계좌로 이체해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내일 월세를 내 계좌로 이체해 주세요.

"예. 사모님."

전화통화를 끝마친 뒤, 침대에 드러누웠다.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돈벌이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이성택의 수행기사로 일하며, 그가 작전주에 투자하는 광경을 숱하게 목격했다.

그 중의 하나가 우진바이오였다.

이 당시 한국의 증시는 바이오주가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우진 바이오는 단 1년 만에 20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투자자에게 안겨다 주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통장에 있는 400만원을 우진바이오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 후, 시중은행에서 증권계좌를 개설한 뒤 주식거래 프로그램을 이용해 우진바이오에 전재산 400만원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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