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나는 이제 절세미남이다 1
집주인에게 월세를 지불하는 대신 오피스텔을 나오기로 결정했다.
월세 보증금마저 우진바이오에 때려박기 위함이었다.
얼마 후, 2천만원에 달하는 월세 보증금을 손에 쥐자마자 우진바이오에 전액 투자했다.
그 뒤, 허름한 고시원에 터를 잡았다.
***
고시원 주방에서 사발면과 삼각 김밥으로 배를 채울 무렵,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디엔디 모델 에이전시의 유학수 팀장입니다. 동대문 패션워크에 참가할 남자 모델이 필요한데, 시간이 되십니까?
한빈의 직업은 모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태생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런 탓으로 정중히 사양했다.
"다른 모델을 알아보시죠. 제가 요즘 컨디션이 나빠서요."
-그럼 할수 없군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이만 끊습니다."
그날 오후.
고시원 방에서 할 일 없이 소일할 무렵, 중년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왜 나를 피하는거야? 내가 이제 싫어진거니?
한빈이란 녀석은 중년 여성과 그렇고 그런 사이 같았다.
-지금 당장 분당에 있는 로지니아 모텔로 와줘. 보답으로 용돈을 많이 줄게.
나는 지금 빈털털이 신세였다.
그렇지만 아줌마를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름의 자존심이었다.
"죄송하지만, 앞으로 절대 저에게 연락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이번에도 낯선 여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피스텔에 찾아갔더니 이사갔다고 하더라. 하여튼 지금 어디니?
뭐라고 대꾸해야 할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왜 이렇게 나를 피하는거야? 우리 오빠 때문이니?
결국 그녀에게 나름 솔직하게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요즘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바람에 네가 누군지 기억이 안나."
그러자 수화기에서 놀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말이 정말이야?
"사실이다. 그런데 너는 대체 누구냐?"
-정말 내가 기억 안나는거야?
"전혀 기억이 안나."
-거짓말 아니지?
"사실이라니까. 암튼 네가 누군지 밝히라고."
-좋아.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해보자. 지금 어디에 있어?
"성산동 근처의 고시원."
-문자로 주소를 찍어줘.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의 폰에 고시원 주소를 전송했다.
나름 그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
그날 저녁.
고시원 방에 20대 여성이 나타났다.
나름 이쁘장한 외모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 안스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 내가 전혀 기억이 안나?"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눈에서 그렁그렁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직후 내 품에 강렬하게 안겨들었다.
그녀는 내 품에 안긴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쉴 새 없이 토해냈다.
한빈을 미치도록 연모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내 영혼은 한빈이 아니었다.
그런 탓인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
다음날.
자신을 이소영이라고 밝힌, 그녀와 성산동 인근의 밥집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함께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한빈씨는 모델일을 하면서 연기학원에서 성실하게 연기를 배우는 남자였어."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했어."
소영은 그리 말하며 고혹적인 눈빛을 적나라하게 내비쳤다.
"그렇지만, 우리 오빠 때문에 한빈씨가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어. 미안해."
"네 오빠가 누구길래 그러는거냐?"
"우리 오빠도 생각이 안나는거야?"
"그래.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그제야 소영이 자신의 오빠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 오빠는 대검 특수부에서 일하는 현직 검사야."
대검 특수부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권력기관이었다.
정치인과 재벌 등을 전담해서 수사하는 곳이었다.
그녀의 오빠는 범상치 않은 남자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네 오빠의 이름이 뭐냐?"
소영이 즉답했다.
"이태강."
뇌리를 쇠망치로 후드려맞은 듯한 강렬한 충격파가 전해져왔다.
이태강은 검찰 총장을 역임한 뒤, 대한민국의 제 20대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대단한 인물의 여동생이 지금 내 앞에 있었다.
***
대검 특수부.
이태강 부장검사는 면전에 나타난 강유일 검찰 수사관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영이가 그놈을 다시 만난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부장님."
강유일이 은근한 어조로 재차 말했다.
"제가 손을 볼까요?"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당신은 신경쓰지마라."
이태강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부장님."
강유일은 그리 말한 뒤,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이태강은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허우대만 멀쩡한 한빈을 뇌리에 떠올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꿈꿔왔다.
그런 탓으로 검찰에 투신했다.
대권을 쟁취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태강은 검찰 총장직을 역임한 후, 정치권에 입성할 계획이었다.
당연히 돈과 재력을 모두 갖고 있는 유력자의 후원이 절실했다.
그는 자신의 나이 어린 여동생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할 계획이었다.
허나, 친여동생인 이소영은 그의 심모원려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소영은 오직 한빈의 사랑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강은 매우 언짢은 심경이었다.
부모도 없는 천애고아를 그녀가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다.
"저번에는 말로 했지만, 이번에는 말로 그치면 안되겠지?"
그는 스스로 자문자답한 뒤,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
고시원에서 낮잠을 즐길 무렵,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내 두 손목에 다짜고짜 수갑을 채운 뒤, 나를 검찰 봉고차에 짐짝처럼 밀어넣었다.
본능적으로 배후에 소영의 친오빠인 이태강이 있음을 직감했다.
나에게 겁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런 탓으로 입과 두눈을 굳게 봉했다.
입씨름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시간 뒤.
대검 취조실로 들어서자 40대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태강이었다.
그는 취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내 여동생과 헤어지면 아무일 없다는 듯이 풀어주마."
"내가 왜 그래야하죠? 지은 죄도 없는데?"
"정말 그럴까?"
이태강은 그리 말하며 두툼한 서류철을 테이블 위에 툭 내던졌다.
"한번 읽어봐라. 후후..."
그가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곧바로 서류를 펼쳤다.
서류 안에는 각종 경범죄 혐의와 증거 사진 등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간통죄가 있는 국가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네놈을 교도소에 집어넣는 건, 일도 아니야."
"마음대로 하십쇼. 교도소에 갖다온 후에 소영이랑 결혼하면 그만이니까."
그리 말하자, 이태강이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내 몸통에 묵직한 주먹을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솔직히 별로 아프지 않았다.
일평생 펜대만 굴리던 범생이의 주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제풀에 지친 표정으로 가쁜 숨을 들이켰다.
"헉헉..."
"범생이 양반이 너무 무리하는거 아닙니까? 암튼 간통죄는 피해자 측이 고소해야 성립되는 거니까,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경범죄는 벌금을 내면 그만이니까, 당신은 나를 잡아둘 명분이 없습니다."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이태강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청와대 신문고에 당신이 나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신고할 생각이니까, 앞으로 함부로 설치지 마십시오. 부장 검사님."
그 말을 끝으로 취조실을 박차고 나왔다.
***
이태강은 골이 지끈지끈 아파왔다.
별 볼 일 없는 고아라고 생각했던 한빈이, 보기보다 법지식에 해박한 탓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뒷말이 나오는 걸,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다.
대통령을 목표로 삼은 탓이다.
그런 이유로, 한빈을 회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청와대 신문고에 자신의 허물을 폭로하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함과 동시에, 소영의 곁에서 한빈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함이었다.
***
고시원 앞에 있는 편의점 파라솔에서 나 홀로 캔맥주를 음미할 무렵, 이태강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맞은편 의자에 자리 잡은 뒤,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너에게 주먹을 쓴거 같다. 미안하다."
나에게 사과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타난 모양이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검사님 주먹은 솜방망이처럼 하나도 아프지 않았으니까."
그리 말하며 캔맥주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이태강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가 4년 안에 100억대의 재산을 모으는데 성공한다면, 소영과 너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태강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내가 4년 안에 100억을 모을 능력이 없다고 확신하는 모양새였다.
허나, 그는 커다란 자충수를 두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20년 동안의 주가 동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4년 안에 100억을 버는 건, 누워서 식은죽 먹기였다.
"각서를 써 주십시오."
그러자 이태강의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이성택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그의 조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태강이 각서 한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각서 안에는 그의 자필과 열손가락의 지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건네준 각서를 점퍼 안주머니에 수납한 뒤 장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소영과 함께 제주도의 리조트 호텔을 방문했다.
모든 여행경비는 당연히 그녀가 부담했다.
리조트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제주도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향했다.
그 후, 일광욕을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리조트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소영과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가 걱정하는 얼굴로 말했다.
"집에서 선을 보라고 날마다 독촉하는 중이야."
"그래서, 너는 어쩔 생각인데?"
"선자리에 나가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할 생각이야."
"누구랑 선을 보는 건데?"
그녀의 입에서 씁쓸한 언사가 흘러나왔다.
"재벌 3세."
소영은 재벌가 아들내미와 선을 볼 예정이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녀는 미모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고운 여자였다.
더구나 소영의 오빠는 20년 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등극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내 여자가 될 만한 충분한 자격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심중에 떠오를 찰나, 소영의 입에서 그럴 듯한 제안이 흘러나왔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임신이 최고의 선택같아."
내 생각도 같았다.
그날, 우리는 밤새도록 오붓한 시간을 함께 했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
나는 지난 육개월 동안 소영과 거의 날마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다.
허나, 그녀는 여전히 내 아기를 임신하지 못했다.
우리 둘 중의 누군가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 먼저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평일 오후.
산부인과를 방문한 뒤, 정밀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산부인과에 들어서자 간호사가 상담실로 나를 안내했다.
상담실에서 대기한지 1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의사 선생님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정밀 검사를 한 결과, 한빈씨는 무정자 증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이유가 뭐죠?"
"한빈씨의 몸에는 정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듭 미안합니다."
의사 선생은 그리 말하며 내 시선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그날 밤.
고시원 앞에 있는 편의점 파라솔에서 캔맥을 음미하며 차후 계획을 머리 속에 그려갔다.
나는 임신이 불가능한 몸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하루빨리 1백억을 모은 뒤, 소영과 정정당당하게 결혼하는 게 상책이었다.
물론 그 전에, 그녀가 다른 놈과 결혼하는 걸 무조건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내 복수를 완성하려면 이태강이 필요했다.
그의 도움 없이는, 이성택을 잡는 게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