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자산운용사를 설립하다 1
연이율 10%에 달하는 확정수익률 펀드상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했다.
당연히 내가 제일 먼저 펀드에 가입했다.
1,400억원에 달하는 전재산을 투입한 것이다.
그런 탓일까, 내 소문을 들은 투자자들이 하나 둘씩 미래골드의 사무실로 불나방처럼 찾아들었다.
사무실의 소파에 좌정한 채 면전에 앉아 있는 노신사에게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우리 미래골드는, 전 세계 최초로 연이율 10%에 달하는 확정수익률 펀드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내 말은 계속이어졌다.
"그 말인즉슨, 투자자님들은 그냥 우리 미래골드에 돈을 맡기기만 하면, 매년 10%에 달하는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허나, 노신사는 의심이 많았다.
"미래골드가 투자한 종목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이 발생해도, 투자자에게 고정수익률을 준다는 말인가요?"
"예. 어르신."
그리 확답한 뒤, 나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설명했다.
"저는 주식투자에 나선지 단 2년 만에 1,400억을 벌어들였습니다. 단돈 1천만으로."
내 기사가 쓰여진 신문들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제야 노신사는 나를 믿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여윳돈이 200억 정도 있는데, 그 돈을 투자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 돈을 우리 회사에 투자하시면 일년 만에 40억에 달하는 수익률을 보시게 될 겁니다."
그리 호언장담하자 노신사가 흡족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투자자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그런 탓으로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김호철 이사를 내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김이사님이 저대신 투자자를 상대해 주십시오."
그리 말하자 호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비서가 필요하니까, 회사 홈페이지에 여비서 모집 공고를 올리세요."
"몇명이나 모집하실 생각입니까?"
"2명 정도를 선발할 계획입니다."
"연봉은 어느 수준으로 맞출까요?"
"7천만원 정도를 보장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날 밤.
서초동 인근의 일식집 룸에서 태강과 만남을 가졌다.
그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다.
태강의 잔에 정종을 따르며 넌지시 말했다.
"믿을만한 경호원이 필요합니다."
"경호원?"
"예."
"매제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나?"
"그건 아니고, 매사에 조심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한번 쓸만한 사람을 찾아보지."
"감사합니다. 형님."
"그건 그렇고, 회사는 어때?"
"투자자들을 모집하느라고 눈코뜰새 없이 바쁘죠."
"투자자들은 많이 모았나?"
"얼추 5천억 정도의 투자금을 모았습니다."
태강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그 말이 정말인가?"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이 바닥에서 5천억은 별로 큰 돈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우리같은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엄청 큰 돈이 아닌가?"
그의 말이 재차 이어졌다.
"투자자들에게 연간 10%에 달하는 확정수익률을 약속했다면서?"
"네."
"너무 위험한 일 아닌가? 만약 투자수익률이 10% 미만일 경우, 큰 손해를 보는 거잖아?"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주식 천재니까. 하하..."
***
3달 가까이 이어진 미래골드의 1호 펀드 판매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거의 6천억에 육박하는 수탁고를 올린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설 차례였다.
내 시선은 바이오주에 집중됐다.
그 중에서도 대창제약과 한성바이오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한성바이오와 대창제약은 이성택이 조종하는 작전주였다.
그는 대창과 한성바이오를 이용해 수조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나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근거리에서 생생히 목격한 탓이다.
대창제약과 한성바이오의 현 주가는 각각 7천원과 8천원 내외였다.
두 업체 모두 1조5천억 안팎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었다.
허나, 조만간 증권가에는 대창과 한성바이오가 암에 특효를 보이는 신약을 개발했다는 출처불명의 소문이 흘러나올 예정이었다.
그 덕분에 대창과 한성은 일년 만에 무려 10배 가까이 폭등한다.
나는 대창과 한성바이오에 각각 3천억씩을 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성택의 작전주에 올라타기 위함이었다.
물론 한번에 그 많은 돈을 투입할 수는 없었다.
시차를 두고 야금야금 매집하는 게 상책이었다.
***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 후, 대창제약과 한성바이오주를 각각 50억씩 매집했다.
앞으로 나는 매일 50억씩 대창과 한성의 주식을 매집할 계획이었다.
이성택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이었다.
대창과 한성바이오를 매집한 뒤 김호철 이사를 호출했다.
잠시 후, 김호철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철이 들려있었다.
"여비서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갖고 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서류철을 나에게 내밀었다.
서류철을 들추자 수십장의 이력서가 보였다.
여비서 지원자들은 거의 대다수 서울 중상위권 대학 졸업자였다.
당연히 명문대 출신의 여성들도 많이 보였다.
허나, 내가 원하는 여비서는 학벌보다 외모였다.
그런 탓으로 지원자 중에서 가장 미모가 괜찮아 보이는 일곱명의 이력서를 김호철에게 건넸다.
"그녀들에게 면접에 나오라고 전하세요."
"예. 대표님."
"그리고 2호 펀드를 발매할 생각이니까, 방송과 신문, 인터넷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십시오."
그러자 김호철이 고심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자금이 부족합니다. 대표님."
"회사에 돈이 없나요?"
"예비비가 40억원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그의 읍소는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못해도 백억대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대표님."
"흐으음..."
내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회사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온 탓이다.
결국 맨투맨 방식으로 투자자를 유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사님이 직접 맨투맨 방식으로 투자자를 유치하세요."
호철의 얼굴이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밥값을 해야하는 처지였다.
연봉으로 10억이나 지급받은 탓이다.
그가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그래야 복이 찾아옵니다."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호철이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탕비실로 들어갔다.
탕비실에서 달달한 커피를 제조한 뒤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의도를 분주하게 오가는 오피스 레이디와 증권맨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누군가의 돈을 대신 벌어주기 위해, 자기일처럼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돈버는 사람 따로, 일하는 사람 따로였다.
그런 탓일까, 그들이 일개미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발견했다.
고용주에게 노예처럼 헌신하는 바보같은 삶!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서 긴급 속보가 흘러나왔다.
-서울 중앙지검 조세금융 범죄부는 벤처 업체를 대상으로 주가 조작을 일삼은 회사 관계자와 대주주, 증권업체 직원, 펀드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수사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략...
증권가에는 주가조작 세력이 너무 많았다.
드디어 검찰이 칼을 빼든 모양이었다.
TV를 끈 뒤, 중화요리집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쟁반짜장과 짬뽕, 탕수욕 등이 배달됐다.
곧바로 중화요리로 배를 채웠다.
***
한달 후.
오늘도 나는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대창제약과 한성바이오 주식을 50억 가량 매집했다.
내가 매집한 대창과 한성의 주식은 각각 1500억원에 이르고 있었다.
총합 3천억이었다.
허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나머지 3천억도 순차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탓이다.
***
이성택은 회사를 퇴근하자마자 강남 모처의 고급 룸살동을 찾았다.
그 곳은 성택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업소였다.
그는 룸살롱에 설치한 도감청 장비를 이용해 유력인사들의 고급 정보를 취득했다.
성택은 룸살롱에 들어서자마자 비밀룸으로 들어갔다.
그는 비밀룸에 들어선 뒤 심복인 조경철을 면전에 호출했다.
"대창제약과 한성바이오 주식을 매집하는 세력이 누구지?"
"미래골드라는 증권투자회사로 밝혀졌습니다."
"놈들이 정보를 입수한 건가?"
"그건 아직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성택은 자신이 수년 동안 공을 들인 대창과 한성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세력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미래골드의 윗대가리가 누군지 파악해?"
"예. 전무님."
다음날.
대영자동차 광장동 사옥에 조경철이 나타났다.
성택은 전무실에 나타난 조경철에게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미래골드의 오너가 누구지?"
"김한빈이라는 놈입니다."
"그놈에 대해서 말해봐."
"얼마전에 발생한 9.11테러 때문에 풋옵션에 투자한 놈들이 대박을 쳤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놈이 바로 그런 부류라고 하더군요. 풋옵션에 몰빵한 덕분에 1,4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성택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보기보다 대단한 놈인데?"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라...?"
"선물 옵션은 운이 없으면 대박을 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경철의 말에 동의했다.
선물 옵션은 실력 따위가 통하지 않는 분야였다.
"그렇지만 운빨 하나는 기가 막힌 놈이구만. 대단해."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전무님."
성택이 미간을 모았다.
그 바람에 깊은 내천자가 그려졌다.
그가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김한빈이 냄새를 맡은 걸까?"
성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놈이 투자한 자금이 얼마지?"
"대창 1500억원, 한성 1500억. 합해서 3천억입니다."
"거액을 투입했구만."
조경철이 즉답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쪽의 누군가가 그놈에게 정보를 누설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애들 중에서 입이 싼 놈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해봐."
"예. 전무님."
***
드디어 6천억에 달하는 돈을 대창과 한성에 모두 투입완료했다.
그런 탓인지 시원섭섭한 심경이었다.
그 무렵, 대창과 한성이 본격적인 상한가 행진을 시작했다.
시장에 암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신약의 임상실험에 돌입했다는 출처불명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탓이다.
그렇지만 나는 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원대한 목표를 속에 품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
서초동 인근의 일식당을 찾았다.
이태강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뒷편에 있는 룸에 들어서자 태강과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나를 맞이했다.
자리에 앉자 그가 옆에 있는 남자를 소개했다.
"강력계 수사관으로 일하다 얼마전에 퇴직한 친군데, 사람이 의리도 있고 매너도 좋아."
직후, 강력계 출신 남자가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리겟습니다. 대표님."
고개를 끄덕이며 넌지시 말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박종태라고 합니다."
그리 말하며 나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일단 앉아서 술이나 같이 합시다."
"예. 대표님."
박종태가 자리에 앉자마자 본격적인 술자리가 이어졌다.
다음날부터, 종태는 내 수행기사이자 경호원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