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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8화 (8/175)

8화 미래골드 자산운용사 1

대표실에 김철호 이사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보고를 올렸다.

"오늘까지 총 750억 가량의 투자금액을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많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챗음인지 김철호가 조심스런 어조로 말했다.

"1호 펀드의 성과가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2호 펀드의 수탁고가 늘어날거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미래골드의 1호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확정수익률을 제공해야, 2호 펀드 상품이 본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현재 미래골드는 투자자들에게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들에게 약속한 확정수익률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이사를 내보낸 뒤, 대창제약과 한성 바이오 주가에 시선을 고정했다.

대창과 한성은 신고가 행진 중이었다.

그 덕분에 3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보고 있었다.

무려 1조8천억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내 목표는 1,000%에 달하는 수익률이었다.

아직 갈길이 멀었다.

박은영과 박종태를 대동한 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는 얼마전에 뽑은 마이바흐 리무진이 멋드러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은영과 함께 뒷좌석에 나란히 몸을 실었다.

운전석의 종태가 조심스런 태도로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한강 공원 주차장으로 갑시다."

"예. 대표님."

잠시 뒤, 우리를 태운 마이바흐가 강변 도로를 향해 부드럽게 출발했다.

한강공원 주차장에 도착한 뒤 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곳에서 기다리세요."

"네. 대표님."

은영과 강변의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강변을 산책한 뒤 주변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캔맥주와 안주거리를 산 뒤 파라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와 캔맥을 음미하는 한편,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은영씨는 남자친구가 있나?"

그녀가 조신하게 대답했다.

"아직 없어요."

"왜?"

"취업에 집중하느라, 남자친구를 사귈 틈이 없었어요."

은영은 여배우 뺨칠 정도로 외모가 뛰어났다.

그런 탓인지, 남친이 없다는 말이 거짓으로 느껴졌다.

"남친이 있는거 같은데?"

은근한 어조로 넘겨짚자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가타부타 말을 안했다.

내 예상대로 남친이 있는 눈치였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넌지시 말했다.

"오늘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 할까?"

순간 그녀가 정색한 얼굴로 고개를 완강히 저었다.

"선약도 있고, 할 일도 많아서 조금 힘들거 같아요."

"정말?"

"예. 사실이에요."

은영은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내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눈치였다.

물론 시간은 내 편이었다.

급하게 서둘 필요가 없었다.

캔맥 한모금을 입안에 털어넣은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이만 퇴근해."

"아직 4시 밖에 안됐는데 벌써 퇴근해도 될까요?"

"내가 허락한 거니까 괜찮아."

그리 말하며 주차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은영을 지하철역 근처에서 내려다 준 뒤 약속장소인 강남 인근의 룸살롱으로 향했다.

종태를 차 안에 남겨둔 채 룸살롱으로 들어서자 지배인이 내 앞을 막아섰다.

"선약이 있으십니까?"

"이태강 부장 검사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지배인은 그리 말하며 뒷편에 위치한 룸으로 나를 안내했다.

룸 안에 들어서자마자 불같은 복수심이 전신에 팽배해졌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성택을 목격한 탓이다.

녀석의 곁에는 이태강이 앉아 있었다.

태강이 그를 청한 모양이었다.

어금니를 피가 날 정도로 앙다문 채, 태강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사람이 왜, 이 곳에 있는 겁니까?"

그러자 태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성택 전무를 아는 눈치군."

"TV와 신문 등에서 여러차례 봤습니다."

그때, 이성택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한빈씨."

녀석의 손을 본체만체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놈이 성난 표정을 지으며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냉기류를 간파한 탓인지, 태강이 빈잔에 양주와 얼음을 채운 뒤 나와 성택에게 술잔을 돌렸다.

독한 양주를 연거푸 원샷한 뒤, 이성택에게 말했다.

"나를 만나려고 우리 형님을 이용한 겁니까?"

녀석이 냉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태강이 무안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두사람이 할 말이 있는거 같으니까,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태강이 사라지자마자 성택의 입에서 노골적인 언사가 흘러나왔다.

"대창제약과 한성바이오에 무려 6천억이나 투자하셨더군요. 어디에서 정보를 입수하신 겁니까?"

"그걸 당신한테 말 할 이유가 없는거 같은데."

"말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드는군. 나이도 어린 놈이."

"비지니스에 나이를 뭐하러 따져. 당신도 나처럼 말을 놓으면 되잖아."

나는 이성택에게 존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쌍욕을 미친 듯이 퍼붓고 싶었다.

허나, 지금은 냉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네놈 말대로 비지니스에 나이는 불필요하지. 하여튼 내가 당신을 찾은 이유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기 위해서야."

"새로운 프로젝트?"

"그래. 아주 큰 돈이 될 만한 프로젝트지."

이성택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야비함으로 똘똘뭉친 개자식이었다.

남 좋은 일을 해줄 위인이 결코 아니었다.

허나, 놈의 개소리에 조금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탓으로 녀석의 엿같은 개소리를 세이경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세히 말해봐."

성택이 곧바로 답했다.

"세진약품을 아나?"

"조금."

"내가 세진약품의 진짜 오너거든."

"차명으로 설립한 사모펀드 명의로 경영권을 인수한거냐?"

"맞아. 그리고 여러차례 작전에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거의 조단위 수준의 시총을 기록하고 있지."

"그래서 할 말이 뭐야?"

그가 인심 쓴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5천억만 주면 경영권을 고스란히 넘겨줄게. 지금 현재 당뇨병 신약이 개발 완료단계라, 최소 3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을거다."

"그런 좋은 주식을 왜 나에게 팔려고 하지?"

"급전이 조금 필요해. 대영전자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거든."

"왜?"

"동생놈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지."

세진약품은 2003년 경, 당뇨병 신약을 개발한 뒤 주가가 10배 이상으로 급등하는 주식이었다.

그런 좋은 주식을 이성택은 나에게 넘길 계획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당연히 진심이지. 내가 네놈에게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냐?"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필요해."

"그럼 잘 생각해봐."

이성택은 그리 말하며 명함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그날밤.

소영과 오붓한 시간을 보낸 뒤, 거실로 나왔다.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성택의 제안을 심사숙고했다.

놈은 세진약품의 미래를 비관하는거 같았다.

당뇨병 신약 개발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세진약품을 팔아넘길 계획이었다.

그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성택은 한치 앞을 분간 못하는 범인(凡人)에 불과했다.

반면, 나는 앞으로 30년 동안 일어날 미래사를 훤히 알고 있었다.

***

미래 골드가 판매를 개시한 2호 펀드의 수탁잔고는 1천억 수준이었다.

세진약품의 경영권을 인수하기에는 턱 없이 작은 액수였다.

최소 4천억 이상의 추가자금이 절실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지배할 무렵, 그럴 듯한 아이디어가 심중에 떠올랐다.

곧바로 이성택에게 전화를 걸었다.

***

강남 모처에서 성택과 만남을 가졌다.

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미래골드가 출시한 2호 펀드에 4천억을 투자해 주시면, 연간 10%에 달하는 확정 수익률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원하시는대로 세진약품의 경영권을 5천억에 인수할 의향이 있습니다."

녀석이 두눈을 번뜩이며 내 제안을 심사숙고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녀석의 입에서 긍정적인 어조가 흘러나왔다.

"괜찮은 제안 같은데?"

놈은 그리 말하며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직후 냉랭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존댓말을 하는 거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놀리듯 말하자, 녀석의 눈썹이 꿈틀했다.

"너는 말이지. 다 좋은데 너무 싸가지가 없어. 나이도 어린 놈이."

"마음대로 생각하십쇼."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24시간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확답을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장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검찰의 정기 인사 시즌이 다가왔다.

이태강은 대검 특수부 총괄 부장 타이틀을 노리고 있었다.

특수부 전체를 아우르는 막중한 보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직급은 차장 검사급 이었지만, 실제 영향력은 검찰총장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했다.

거의 검찰의 2인자 수준이었다.

당연히 수많은 경쟁자들이 대검 특수부 총괄 부장 타이틀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유력 후보자들은 정치권과 검찰 고위층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로비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태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는 실탄이 부족했다.

결국 태강은 돈 잘버는 한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

성택은 자택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연신 히죽히죽 웃었다.

그 정도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한빈에게 세진약품의 경영권을 높은 가격에 매각할 방도가 생긴 탓이다.

'등신 같은 놈아. 세진약품은 당뇨병 신약 개발 실패로 인해, 주가가 밑바닥으로 추락할 운명이라고!'

그는 내심 한빈을 격렬하게 비웃었다.

다음날.

성택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비자금 계좌에 은닉된 자금 중에서 4천억 정도를 미래골드의 2차 펀드 계좌에 이체완료했다.

***

드디어 미래골드의 2차 펀드 수탁고가 5천억을 돌파했다.

그 중의 4천억은 당연히 이성택의 자금이었다.

나는 약속대로 2차 펀드에 이체된 5천억 전액을 세진약품의 경영권을 인수하는데 투입했다.

그런 탓일까, 성택은 경영권 양도 계약서를 체결하는 내내, 나를 향해 노골적인 비웃음을 내비쳤다.

한심한 작자였다.

한치 앞을 모르는 범인의 한계였다.

***

회사업무가 끝나자마자 박종태와 격투기 도장을 찾았다.

그 후, 우리는 서로를 상대로 격렬한 스파링에 돌입했다.

복싱과 킥복싱, 그래플링, 주짓수 등의 온갖 기교를 현란하게 구사하며 상대를 때려눕히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서로 실력이 비슷한 탓에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다.

나름 합이 잘맞는 스파링 파트너였다.

격투기 도장에서 2시간 동안 스파링을 즐긴 뒤 소영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차려낸 정성스런 저녁식사로 배를 채운 뒤, 곧바로 의무방어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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