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내가 제일 잘났다 2
타이트한 정장룩 차림의 은영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늘씬하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자랑했다.
게다가 얼굴마저 이뻤다.
그런 탓일까, 은영이 무척 섹시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바퀴 돌아봐."
은영이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내 앞에서 한바퀴 원을 돌았다.
마음에 드는 자태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는 미니 드레스를 입어봐라."
그러자 은영이 볼멘 목소리를 토해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이 것도 업무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그녀는 못 이기는 척 피팅룸으로 발길을 돌렸다.
잠시 후, 흰색의 미니 드레스를 걸친 은영이 내 앞에 나타났다.
확실히 그녀는 건강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이 철철 넘쳐 흘렀다.
완전히 내 스타일이었다.
"다른 미니 드레스를 입어봐."
그녀는 감히 반항하지 못한 채, 다시 한번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몇분 뒤, 푸른색 미니 드레스 차림의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은영은 너무 아름다웠다.
반드시 내 여자로 만들어야 할거 같았다.
장내에 공손히 시립한 여점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두 구입할 거니까 내 차에 드레스와 정장룩을 실어."
그녀들이 정중히 화답했다.
"예. 대표님."
***
은영과 함께 마이바흐 뒷자리에 올라탄 뒤 운전석의 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아."
"네. 대표님."
30분 후.
종태를 차에 내버려둔 채, 은영을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파스타와 피자로 배를 채운 뒤, 고급 포도주를 음미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은영의 입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대표님이 이러시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녀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남자 친구가 있어요."
"그게 뭐?"
그리 반문하자, 은영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그녀에게 솔직히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오피스 와이프야. 회사에서 나를 와이프처럼 내조해줄 여자가 필요해."
그녀는 내 말을 차분히 경청했다.
"그러니까, 은영씨는 나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은영이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여자들 입장에서 나같은 남자는 백마탄 왕자님이나 마찬가지잖아. 내 말이 틀렸어?"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태풍에 휘말린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러니까 내 호의를 거부하지마라. 그리고 남친이랑 깨지면 내 품에 들어오라고.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집까지 바래다 줄테니까 따라나와."
그리 말하며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
은영을 마이바흐 뒷자리에 태운 뒤 상수동으로 향했다.
"집이 상수역 근처라고 했지?"
"네. 대표님."
그녀가 조신하게 화답했다.
은영의 고운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녀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나에게 마음을 여는 눈치였다.
그녀의 집에 도착할 무렵, 앵두같은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선사했다.
은영의 볼이 밝그레해졌다.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드레스와 정장룩을 갖고가. 너를 주려고 산거니까."
"정말요?"
은영이 사랑스러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 부담갖지 말고 그냥 받아."
그리 말한 뒤 차문을 열었다.
직후 운전석의 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쇼핑백을 들어줘."
"예. 대표님."
그녀를 집까지 무사히 바래다준 후 강남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집에 들어가자 소영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여자 아기를 입양하는 게 좋을거 같아."
"결심한거야?"
"응. 그렇지만 엄마가 걱정이야. 내가 입양아를 키운다고 하면, 난리를 칠게 뻔하다구."
나도 그 점이 걱정됐다.
소영의 집안은 뼈대 있는 법조인 가문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항상 의식해야 하는 집안이었다.
그때, 쓸만한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곧바로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임신한 것처럼 위장하면 어떨까?"
"위장 임신을 하자고?"
"그래. 주위에 그런 식으로 입양아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데."
"정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두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위장 임신 정도로는 부족해.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출산했다는 의료기록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엄마를 완벽히 속일 수 있어."
"그 문제는 형님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거 같은데."
"자기가 오빠를 만나서 우리 사정을 솔직히 말해봐."
"알았다. 내가 형님한테 말해볼게."
***
짬을 내서, 대검찰청을 방문했다.
이태강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특수부 총괄 부장실에 들어서자 태강이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일이 바쁠텐데, 뭐하러 여기까지 찾아왔어?"
"형님한테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뵙습니다."
"그게 뭔데?"
태강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제가 무정자증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말이 정말인가?"
"사실입니다. 면목없습니다. 형님."
"그럼 앞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흐으음..."
태강은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안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매제랑 소영이가 걱정되는 게 사실이야."
"그래서 여자 아기를 입양할 생각입니다."
"소영이도 합의한 건가?"
"네. 형님."
그가 우려하는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이 이런 사실을 알면 기를 쓰고 반대할거야."
"그래서 형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원하는 게 있나?"
"예. 소영이는 앞으로 위장 임신을 할 겁니다. 10개월 동안."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후에 병원에서 여아를 출산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형님에게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병원의 출생증명서가 필요하겠군."
"그렇습니다."
태강이 두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 문제는 내가 책임지고 처리해 줄테니까, 어머니에게 들키지않게 조심하게."
"고맙습니다. 형님."
***
회사 업무를 끝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장모님과 소영이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장모님은 소영의 가짜 임신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을 곁에서 목도하자, 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허나, 고지식한 장모님을 속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뒤 장동현 법무팀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장동현은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마포의 월드빌딩을 1520억에 매입하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그 이하로는 불가능한 건가요?"
"건물주의 입장이 워낙 완강한 탓에, 더 이상의 가격 다운은 힘들거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월드빌딩의 매입 계약을 신속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예. 대표님."
그를 내보낸 뒤 김철호 이사를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4년 만기 펀드의 수탁고를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 날짜로 총 7조8천억에 달하는 수탁잔액을 기록했습니다."
"10조원까지 꽉 채운 뒤에 펀드 판매를 종료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공중파와 신문, 인터넷에 미래골드의 브랜드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십시오. 광고비용은 신경쓰지 말고."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김철호가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박은영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내가 사준 타이트한 정장룩 차림이었다.
은영의 화려한 미모를 오롯이 감상할 무렵, 그녀의 입에서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성투자신탁의 차명호 회장이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대성투자신탁은 기관투자가 그룹이었다.
미래골드의 준비된 고객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명호 회장에게 전화를 돌려."
"네. 대표님."
***
여의도 모처의 고급 한정식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 지배인이 내 앞을 막아섰다.
"예약을 하셨나요?"
그에게 말했다.
"차명호 회장님과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지배인은 그리 말하며 뒷편에 위치한 룸으로 나를 안내했다.
룸 안에 들어서자 장년의 남자가 나를 반겼다.
"와! 소문대로 나이가 정말 젊으시군요."
그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미래골드의 김한빈입니다."
그리 말하며 명함을 그에게 건넸다.
"일단 앉으시죠."
"네."
곧바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일단 저녁식사부터 먼저 합시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정갈한 한식을 차분히 음미했다.
식사가 끝난 후 본격적인 대화에 돌입했다.
차명호가 넌지시 물었다.
"어디 대학을 나오셨습니까?"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형편이 안되서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숨길수 없는 비웃음이 희미하게 그려졌다.
한국 사회의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차명호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그냥 저녁식사나 하고 헤어집시다."
내 학벌이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자, 미래골드의 펀드상품에도 관심이 멀어진 모습이었다.
그는 학벌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사람같았다.
한심한 작자였다.
주식투자와 학벌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
이태강이 연락도 없이 내 회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대표실에 나타나자마자 서류 한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서류 속에는 생소한 남자의 신상명세가 적혀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구죠?"
그가 즉답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주상 민정수석."
"중요한 사람인가요?"
"검찰과 경찰의 인사권을 한손에 틀어쥔 거물이라고 할 수 있지."
태강은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흡연에 열중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주상의 친인척 명의로 펀드 계좌를 만들어주게."
"액수를 말씀해 주십시오."
"백억 정도를 매제 돈으로 채워주면 고맙겠군."
"형님에게 중요한 인물입니까?"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태강이 반색하는 얼굴로 화답했다.
"조만간 정주상과 자리를 마련할테니까 사양 말고, 술자리에 나와."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
***
늦은 밤.
이태원 유엔빌리지의 고급 저택에 들어서자 고운 외모의 중년 여성이 내 앞을 막아섰다.
"어디서 오신 분인가요?"
"정주상 민정수석님과 이태강 차장 검사님을 뵈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여자는 그리 말하며 저택의 내실로 나를 안내했다.
내실에 들어가자 아가씨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이태강과 정주상 민정 수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태강은 나를 발견하자 정주상에게 곧바로 소개했다.
"제 매제인 미래골드의 김한빈 대푭니다. 선배님."
나 역시 정주상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석님."
정주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문대로 나이가 정말 젊구만.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그리 화답하며 정주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정주상이 은근히 물었다.
"김대표는 어디 대학을 나왔지?"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형편이 안되서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순간 정주상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비웃음이 그려졌다.
그 역시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