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내가 제일 잘났다 3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은영에게 넌지시 물었다.
"학벌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녀가 어색한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그런 말씀은 왜 하시는 거죠?"
"그냥 물어본거니까 마음에 두지마라."
대충 얼버무리자, 그녀가 눈빛을 별처럼 반짝이며 말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안 그런척 하면서도, 학벌을 매우 중요시해요. 그게 현실이죠."
그녀 말이 정답이었다.
정주상 민정수석과 대성투자신탁의 차명호 회장이 산증인이었다.
그날 새벽.
거실을 서성이며 학벌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고졸 학력으로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상대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그들의 노골적인 비웃음에 불같은 분노를 느꼈다.
내가 왜, 그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명문대 학벌을 최단 시일 안에 획득하는 게 최선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었다.
학벌 역시 마찬가지였다.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김철호 이사를 면전에 호출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강남에서 활동 중인 수능 컨설턴트를 섭외하세요."
"네에...?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수능을 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실력파 컨설턴트를 오늘 안으로 내 앞으로 데리고 오세요."
그제야 김철호가 납득한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40대 남자가 대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향해 공손히 인사한 뒤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대입 컨설턴트 이재성'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박혀있었다.
면전에 서 있는 이재성에게 말했다.
"명문대 영문학과에 입학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재성씨가 힘을 좀 써주십시오."
그가 조심스런 태도로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대표님의 나이를 알 수 있을까요?"
그에게 즉답했다.
"금년에 24살입니다."
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가방에서 두장의 시험지를 꺼냈다.
그 후, 나에게 내밀었다.
"영어와 수학의 기초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30분 안에 시험지의 공란을 채워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 화답한 뒤 영어 시험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다.
이성택을 30년 동안 수행하면서, 나름 영어 공부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한 탓이다.
그런 이유로 시험지의 공란을 정답으로 채워넣을 수 있었다.
반면 수학은 너무 어려웠다.
그런 탓에 거의 공란으로 남겨둔 채, 재성에게 시험지를 돌려주었다.
10분 뒤.
재성이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영어를 정말 잘하시는군요. 거의 100점입니다. 그렇지만 수학은 중학교 1학년 수준으로 보이는군요."
"말씀대로 저는 수학을 못합니다. 수포자라고 할 수 있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문과를 지망하시니까 수학은 별로 큰 비중이 아닙니다. 중간 정도만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군요."
"영어와 국어, 기타 암기과목으로 점수를 대폭 끌어올리시면 될 겁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대표님은 면접에 강점을 갖고 계십니다. 자산운용사의 오너라는 점이 면접에서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저는 대표님의 명문대 영문학과 입학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재성은 그리 확언한 뒤, 돈독이 잔뜩 오른 얼굴로 은근히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팀원들은 각 과목의 일타강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몸값이 높습니다."
"원하시는 가격을 말씀해 주십시오."
"앞으로 7개월 동안 국영수와 기타 암기과목을 집중 트레이닝하는 대가로 12억원을 선금으로 주십시오. 성공사례금이 모두 포함된 액숩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교습이 이루어지는 거죠?"
"대표님이 원하시는 시간대를 중심으로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해드리겠습니다."
그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심했다.
"좋습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회사로 강사분들을 보내 주십시오."
"그럼 하루 4시간씩 집중 트레이닝을 하는 것으로 일정표를 짜드리겠습니다."
"계약서는 제가 지금 만들어 드릴테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예. 대표님."
30분 후.
장동현 법무팀장이 계약서 2장을 들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재성은 장동현이 작성한 계약서에 자필 서명과 인감 도장을 날인한 뒤 나에게 건넸다.
나 역시 계약서에 자필서명과 대표 직인을 날인한 뒤 그에게 전달했다.
계약서 작성을 끝마친 뒤, 재성이 차명으로 보유한 6개의 계좌에 각각 2억원을 입금완료했다.
***
미래골드 여의도 사무실.
오후 2시 무렵, 눈 앞에 수학 강사가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화이트 보드에 복잡한 수학 공식을 적어내려갔다.
그 후, 친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작성한 수학 공식을 머리 속에 암기하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뒤, 화이트 보드를 가득 메운 수학 공식을 외우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했다.
1시간 후.
이번에는 국어 강사가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는 수능에 출제비중이 높은 시조와 국문학을 중심으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1시간 뒤.
국어 강의가 끝나자마자 한국사 강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 친절한 태도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런 탓인지 강의 내용이 머리 속에 제대로 들어왔다.
다시 1시간 후.
영어 강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 정중한 태도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당연히 모두 이해 가능한 내용들이었다.
***
아침에 집을 나서자마자 세진약품의 수원 공장으로 직행했다.
당뇨병 신약 개발이 임박한 탓이었다.
수원공장 안에 위치한 연구실로 들어서자 진익남 연구소장이 나를 반겼다.
그가 희열에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뇨병 신약을 드디어 개발 완료 했습니다."
"언제부터 임상에 돌입하실 예정입니까?"
"국내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다음달부터 임상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대표님 덕분입니다."
그는 예의범절이 남달랐다.
그런 탓으로 준비해간 금일봉을 그에게 전달했다.
"5억입니다. 부담갖지 마시고 받으세요."
진익남이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럼 나중에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연구소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에 동승한 박은영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중동과 경제지 기자들을 점심 식사 자리에 초대해."
"장소를 말씀해 주세요."
"여의도 전경련 빌딩 앞에 위치한 한정식 집으로 오라고 전해."
"예. 대표님."
점심 무렵.
한정식 레스토랑의 룸으로 들어서자 조중동과 경제지 기자들이 나를 반겼다.
그들에게 1천만원이 들어있는 돈봉투를 돌린 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세진약품의 당뇨병 신약이 임상실험에 돌입했습니다. 당연히 탁월한 완치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자님들의 많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자 좌중의 기자들이 흡족한 얼굴로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이성택은 회사일에 전념하는 한편, 세진약품의 주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혹시나하는 우려지심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진약품의 주가 그래프가 오후 장이 시작되자마자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 뒤, 상한가를 기록했다.
증권가에 세진약품의 당뇨병 신약 개발 소식이 파다하게 퍼진 탓이다.
성택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 탓일까, 분노한 얼굴로 유리 재떨이를 사무실 바닥에 큰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쨍그렁!
허나, 그의 화는 당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미칠 듯한 심경에 빠져들었다.
***
오후 수능강의가 끝나자마자 은영과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
우리는 사무실의 휴게실에서 로맨스 영화를 감상하는 한편, 서로의 품을 친근하게 보듬어 주었다.
당연히 은영은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나름 오피스 와이프에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였다.
우리는 저녁 7시까지 로맨스 영화를 감상한 뒤 나란히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 후, 여의도 인근의 호텔로 직행했다.
오붓한 시간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
은영은 한빈에게 홀딱 반한 상태였다.
잘 생긴 외모와 엄청난 능력을 일신에 구비한 탓이다.
한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못할 천문학적인 거금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자본주의의 황태자였다.
은영은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필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그녀는 날이 갈수록 남자 친구가 시시해졌다.
은영의 남친은 노량진 고시촌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봤자 한빈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남자였다.
은영은 그래서 심란했다.
한빈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는 이미 가정이 있는 몸이었다.
그런 때문 일까, 그녀는 한빈의 이혼을 간절히 원했다.
그를 독점하고픈 욕망에 휩싸인 탓이다.
허나, 한빈은 이혼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영은 한빈이 미치도록 좋았다.
그의 마성적인 매력에 푹 빠진 탓이었다.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4년 만기 6호 펀드의 계좌 잔고를 확인했다.
잔고에는 1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 예치된 상태였다.
나는 6호 펀드에 전 재산인 4조 7천억원을 투입했다.
나름 장기 투자를 하기 위함이었다.
곧바로 주식거래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그 후, 바이오주와 IT 주를 중심으로 총 20개의 주식 종목을 일제히 매입했다.
모두 4년 후에 최소 10배에서 최대 20배까지 주가가 상승하는 종목이었다.
나는 앞으로 육개월 동안 20개의 종목을 각각 5천억 가량 매집할 계획이었다.
1차 매집 작업을 끝마친 뒤, 은영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잠시 후,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오늘도 내가 사준 명품 정장룩을 걸치고 있었다.
한벌에 천만원이 넘는 옷이었다.
눈 앞에 나타난 그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압구정동 쥬얼리샵에서 싯가 10억짜리 다이아 목걸이를 구입해."
순간 은영이 기대만발한 얼굴로 물었다.
"저에게 주시는 건가요?"
"다이아는 나중에 선물해줄게."
그녀가 금세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와이프가 오늘 생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마라. 너한테도 조만간 다이아를 선물해 줄테니까."
"그 약속 꼭 지키셔야해요."
"염려마라."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날 밤.
다이아 목걸이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소영은 내가 선물한 다이아 목걸이에 뜨거운 반응을 드러내보였다.
"너무 아름다워. 자기야."
"내가 걸어줄테니까 목을 내밀어봐."
"응."
백설처럼 뽀얀 목덜미에 다이아 목걸이를 걸어주자. 그녀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내 입술에 사랑스러운 키스를 해왔다.
***
오늘도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회사 사무실에서 수능 공부에 매진했다.
그 후, 김철호 이사와 여의도 인근의 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설렁탕으로 배를 채우는 한편, 회사 이전 문제에 대해 논의를 이어갔다.
"마포역 인근의 월드빌딩 매입작업이 끝났으니까, 그 쪽으로 회사를 이전할 생각입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고객들을 응대할 여직원들을 10명 정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이니까 신문에 공고를 내세요."
"예. 대표님."
저녁 식사를 끝마친 뒤, 서초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초동의 단골 일식당 룸으로 들어서자 이태강이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술자리를 즐긴 뒤, 본론에 돌입했다.
"여당의 대표와 대통령 측근 인사들에게 눈도장을 받을 생각이거든."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도 매제의 도움이 필요할거 같아."
"필요한 액수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즉답했다.
"5개 정도의 펀드 계좌에 각각 70억 정도를 채워주게."
태강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특수부 식구들한테도 그럴 듯한 선물을 주고 싶은데, 가능할까?"
그리 말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제가 10억 내외의 펀드 계좌를 20개 정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1년 후에 현금화가 가능합니다."
그러자 태강이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역시 우리 매제 밖에 없구나. 고마워."
"우리 사이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태강의 빈잔에 정종을 넘치도록 따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