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다 1
S모 증권사의 김팀장은 요즘 수억대의 가외 소득을 쏠쏠하게 챙기고 있었다.
미래골드가 투자하는 종목을 중심으로 추격매수를 한 탓이다.
그는 증권가에 혜성처럼 등장한 김한빈을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를 능가하는 투자천재로 평가했다.
당연히 김팀장은 한빈이 투자하는 종목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따라갔다.
그 결과 9억원에 달하는 투자수익을 얻었다.
허나, 그는 이같은 사실을 가족과 지인, 회사 동료들에게 철저히 함구했다.
자신이 먹을 파이가 작아질까 우려한 탓이다.
D모 증권사의 이전무는 작년부터 미래골드의 오너인 한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그 역시 한빈을 불세출의 투자천재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일까, 이전무 역시 미래골드가 투자하는 종목에 그동안 모은 사재와 가족 지인들의 돈을 미친 듯이 쏟아부었다.
그 결과 이전무는 무려 7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얻었다.
모두 한빈 덕분이었다.
N모 증권사의 고위간부 역시 한빈이 투자하는 종목에 사재를 전부 털어넣었다.
그런 탓으로 110억에 달하는 투자이익을 얻었다.
이런 현상이 증권가에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
이성택은 요즘 한빈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그가 투자하는 종목마다 상한가 행진을 거듭한 탓이다.
그런 탓일까, 성택 역시 한빈이 투자하는 종목에 비자금을 투입하기로 작심했다.
비지니스에 자존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은밤.
강남 인근의 고급 룸살롱에 성택에 나타났다.
그는 비밀룸으로 들어선 뒤 심복을 호출했다.
성택은 눈 앞에 나타난 심복에게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케이맨 제도에 은닉한 비자금 중에서 미화 3억불(3,600억)을 피닉스 사모펀드 계좌로 이체해."
"예. 부사장님."
"그리고 항상 미래골드를 주시해. 그놈들이 어디에 투자하는지 살펴보라고."
그러자 심복이 우려하는 얼굴로 말했다.
"미래골드를 따라서 추격매수에 나섰다가, 큰 손실을 보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염려마. 김한빈 그놈은 보통이 아니라고. 당분간 믿어도 좋을거야."
"그래도 저는 걱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걱정하지말고, 당신은 내가 시키는대로 움직여."
심복이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
미래골드 김호철 이사는 요즘 살판이 났다.
10억에 달하는 기본 연봉은 물론이고, 90억에 육박하는 투자유치 인센티브마저 지급받은 탓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직속상사인 한빈은 쓸데없는 잔소리 따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김호철이 마음 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그런 탓일까, 호철은 나이는 어리지만, 남다른 배포를 지닌 한빈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보기드문 남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회사 일에,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섰다.
특히 거액의 자산가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전력투구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천억대에 달하는 투자 유치 성과를 일구어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
미래골드 마포 사옥.
대표실에서 2차 모의고사를 보았다.
이번에는 이과쪽 모의고사였다.
최근 들어 내 수학 실력이 급상승한 덕분이었다.
그런 탓으로 이과 모의과사도 나름 자신이 있었다.
시험을 다 본 뒤 정답지를 강사에게 건넸다.
다음날 오후.
이재성 컨설턴트가 대표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감탄사를 내뱉었다.
"400점 만점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표님!"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라 별로 놀랍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뒤 담배를 입가에 물었다.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입 밖으로 훅 내뿜었다.
장내를 가득 메운 자욱한 담배 연기를 뒤로한 채 창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묵으로 일관할 무렵 재성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이 정도 성적이면, 서울대 의대 합격도 따논 당상입니다."
"너무 속단하시는거 아닙니까?"
그가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님은 전국 모의고사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기록하셨습니다!"
"그 말이 정말인가요?"
"사실입니다. 대표님."
재성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나를 우러러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대표님은 반드시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재성은 나를 설대 의대에 들여보내고 싶어서 환장한 모양새였다.
"아시다시피 서울대 의대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법대를 능가하는 곳이죠."
그의 말대로 설대 의대는 법대를 한참이나 능가하는 곳이었다.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그럼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재성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
나를 태운 마이바흐 리무진이 한강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잠시 뒤, 종태를 대동한 채 강변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나를 뒤따르는 종태에게 넌지시 말했다.
"죽이고 싶은 놈이 있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즉답했다.
"죽이는 건, 하책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예. 대표님."
종태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것보다는 법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단죄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도소에 오래 머물수 있도록, 사전에 완벽히 조치를 취해야겠죠."
그의 말대로 성택을 죽이는 건,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역시 교도소로 들여보내는 게 상책이었다.
그날 밤.
자택의 거실을 서성이며 성택을 단죄할 방법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놈은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범죄자였다.
수십 건에 달하는 살인교사 혐의가 있었다.
내가 그의 수행기사가 되기 전에도, 여러명의 사람들을 살인교사했다.
그를 30년 동안 수행한 결과 알게된 사실이었다.
문제는 물적 증거가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그때, 성택의 해결사인 박영조의 야비한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박영조의 공식 직함은 술상무였다.
성택을 대신해 술을 마시는 게 주업무였다.
허나, 그의 진짜 업무는 성택의 구린 일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사람 목숨에 관련된 일도 많았다.
박영조를 회유하는 게 급선무였다.
놈의 입을 열게 만든다면, 성택을 얼마든지 감빵으로 보낼 수 있었다.
***
다음날.
종태와 단 둘이 시중 은행을 방문했다.
그 후, 현찰로 5억을 인출했다.
은행을 나선 뒤 종태와 한적한 카페로 자리를 이동했다.
맞은편에 앉은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이성택의 심복 중에 박영조 상무라는 놈이 있어. 주로 논현동에 위치한 '아나콘다'라는 고급 룸빵에서 시간을 보내거든."
종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이성택을 빵에 보낼 생각이다."
"그와 사적인 원한이 있습니까?"
"조금."
"흐으음..."
종태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인 뒤, 그에게 다시 말했다.
"이번 일만 제대로 해결해주면, 너에게 부귀영화를 약속하지."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아니. 생각하지마라. 너는 그저 '예, 아니오.'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
"그리 말씀하시니 너무 고민되는군요."
"왜, 이성택이 무섭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상대는 재계 서열 1위인 대영그룹의 후계잡니다."
"자식. 보기보다 겁이 많구나."
비웃듯 말하자, 종태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내 앞에서 자존심 세우지마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있는 게, 돈 밖에 없어. 내 재산이 얼만지나 아나? 무려 8조원이 넘는다고."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를 수천억대의 준재벌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종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박영조 상무라는 놈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해. 놈의 핸드폰과 집에 도감청 장비를 설치해야 할거다."
종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정말 이성택과 사생결단을 내실 생각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잔말 말고, 이 돈부터 받으라고."
그리 말하며 은행에서 찾은 현금 5억원이 든 돈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돈으로 도감청 전문가를 섭외해. 그리고 네 일을 봐줄 친구들도 불러모으고. 물론 입이 무거워야겠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당분간 회사에 나올 필요는 없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이 대포폰으로 연락하고."
그리 말하며 투박한 폴더폰을 그의 손에 건넸다.
"앞으로 무조건 대포폰을 사용해라. 특히 나에게 연락할 때는."
종태가 결심한 얼굴로 답했다.
"이왕 하기로 한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표님."
"그래. 잘 생각했다. 내 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그럴 듯한 공을 세우라고."
종태를 뒤로한 채 카페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박종태는 전직 광수대 수사관 출신이었다.
당연히 도감청 전문가를 나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김한빈과 한배를 타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막강한 재력은 물론이고, 넓은 배포를 지닌 그를 남자로서 신뢰한 탓이다.
종태는 한번 결심하면 뒤를 돌아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탓으로 카페를 나서자마자 용산 전자상가로 직행했다.
그날 오후.
그는 용산 전자상가 인근의 카페에서 도감청 전문가인 은종수와 만남을 가졌다.
"휴대폰과 집에 도감청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쓸만한 기술자들이 있을까?"
"목표가 누구죠?"
은종수가 노회한 눈빛을 내비쳤다.
"네놈은 알 필요없고, 필드에서 활동할 기술자나 섭외해."
"페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형사님."
"얼마나 필요한데?"
"큰거 5장은 주셔야 할 겁니다."
"5백만원?"
"장난하세요? 아무리 못해도 5천은 주셔야 한다고요? 그리고 기간이 초과될 때마다 추가 페이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기본 조건을 자세히 말해봐?"
"설치비와 15일치 수당으로 5천이 필요하고요. 15일이 초과되면 매일 200만원을 추가로 입금해 주십시오."
"알았으니까, 기술자나 섭외해."
종태는 그리 말하며 돈가방에서 현찰 5천만원을 꺼내서 테이블에 툭 내던졌다.
"선금이다. 내 돈 먹고 튀었다가는 네놈 조직을 가루로 만들어주마."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말씀을 왜 그렇게 섭하게 하십니까? 낄낄낄..."
은종수는 야비한 웃음을 길게 흘려보내며 돈뭉치를 서류 가방에 재빨리 수납했다.
***
이서연은 내심 한빈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의 매력적인 비쥬얼과 친절한 매너에 홀린 듯이 빠져든 탓이다.
그런 때문 일까, 서연은 회사에 출근해서도 일에 제대로 집중 할 수 없었다.
거의 하루종일 한빈의 연락을 기다리는데 심력을 소모한 탓이다.
결국 그녀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자기가 먼저 한빈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그때, 이성택이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서연에게 키스를 한 뒤, 노골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회사에서 퇴근한 후에,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어. 오늘 밤에 찾아갈테니까."
그녀는 복잡한 심경에 빠져들었다.
사실 서연은 성택의 오피스 와이프였다.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의 문을 연 탓이다.
더구나 그녀의 부친인 이경만은 성택에게 거액의 빚을 진 상태였다.
부도위기에 내몰린 공장을 살리기 위해 그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찰나 장내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성택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낯을 잔뜩 찡그렸다.
잠시 후.
성택은 전화를 끊은 뒤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마누라년이 너와 내 사이를 눈치챈 모양이야. 너를 회사에서 짜르라고 지랄발광을 하더라."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오늘은 안되겠어. 마누라가 너무 지랄해서."
성택은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직후, 서연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길게 새어나왔다.
"휴우..."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 곧바로 한빈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그를 꼭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마이바흐 리무진을 몰고 대영전자의 서초동 본사로 향했다.
서연이 나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이성택의 모든 것을 빼았을 계획이었다.
그 중에는 서연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