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절세미남 김한빈 인간의 본질을 깨우치다1
김모씨와 박모씨, 이모씨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박영조와 묘령의 여성을 은밀히 미행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들은 능수능란한 손길로 박영조의 양복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소매치기했다.
그들은 백화점 화장실에서 휴대폰에 도감청 장비를 재빨리 설치한 후, 박영조의 양복에 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귀신이 곡할 솜씨였다.
평일 오후.
박영조의 광진구 아파트에 여성 검침원이 나타났다.
그녀는 가스를 검침하는 한편, 능숙한 손길로 주방과 거실 으슥한 곳에 도감청 장비를 설치했다.
그 후, 박영조의 자택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회사에서 업무에 매진할 무렵, 대포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종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박영조의 휴대폰과 자택에 도감청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특이 사항이 발견되는 즉시 나에게 보고해."
-예. 대표님.
"돈은 충분한가?"
-자금이 떨어지면 그때, 말씀 드리겠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감사합니다. 대표님.
통화를 끊은 뒤, 이태강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날 밤.
충남 보령의 낚시터를 찾았다.
태강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소문난 낚시광답게, 틈만 나면 낚시터에서 심신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강태공 같은 남자였다.
낚시터에 도착하자 그가 나를 반겼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곳까지 찾아온거야?"
"형님한테 할 말도 있고, 겸사겸사 왔습니다."
"얼굴 표정을 보니까, 뭔가 심각한 분위기가 느껴지는군."
태강은 눈치가 빨랐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호숫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태강에게 넌지시 말했다.
"제 복수를 도와주시면, 형님에게 수천억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그런 말은 하는 저의가 뭔가?"
"제 심기를 거스르는 개자식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놈이 누구지?"
"대영그룹의 후계자인 이성택입니다."
태강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재차 말했다.
"형님의 목표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강은 깊은 침묵으로 일관한 채 낚싯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를 잠시 살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복수에 동참해주시면, 수천억을 아무 조건 없이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태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쉽지 않은 일이야. 이성택 뒤에는 이철성 회장이 있어. 정치권과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지."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명백한 범죄혐의 없이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증거는 제가 찾겠습니다."
"왜 그렇게, 이성택에게 집착하는 건가? 둘 사이에 대체 어떤 원한이 있는 거지?"
"그건 나중에 따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장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
나는 2004년도 수능에서 유일한 만점을 기록한 수험생이었다.
그런 탓일까, 서울대 의대에 손쉽게 합격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허나, 아직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의대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면접을 봐야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만사를 제쳐둔 채 서울대로 직행했다.
서울대 의대 건물로 들어서자 재학생들이 면접 장소를 안내했다.
얼마 후, 면접실로 들어갔다.
면접실에는 다섯명의 의대 교수들이 기다란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호기심 그득한 얼굴로 질문을 퍼부었다.
"자산운용사 CEO가 서울대 의대에 지원한 이유가 뭐죠?"
"실례지만 보유재산이 얼만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소문에 의하면, 수조원에 달하는 개인 재산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요?"
"김한빈씨는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재벌이나 마찬가진데, 뭐가 아쉽다고 의대에 지원한 겁니까?"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나름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평소 의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흉부외과 의사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제 목표는 만인의 생명을 살리는 흉부외과 써전입니다."
그러자 면접관들이 감탄한 얼굴로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답변은 계속 됐다.
"저는 한국에서 대영그룹의 이철성 회장 다음으로 돈이 많을 겁니다."
순간 면접관들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떠억 벌렸다.
그들의 상상을 한참이나 초월한 막대한 부를 소유한 탓이었다.
잠시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면접관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박수 갈채를 쏟아냈다.
짝짝짝짝짝짝짝...!
그들은 서울대 의대를 길이 빛낼 위인으로 나를 점찍었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
이른 아침.
미래골드 마포 사옥 VIP 라운지에 김소정을 필두로 4명의 여성 사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은 VIP 라운지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들 모두 미래골드에서 내노라하는 미모를 지닌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탕비실에서 커피를 음미하며 회사의 오너인 김한빈을 화제로 즐거운 담소를 이어나갔다.
"김한빈이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데!"
"맞아. 나도 그 소문을 들었어."
"정말 대단한 남자 아니니! 돈과 두뇌 비쥬얼, 모든 걸 갖춘 남자잖아!"
"누가 아니래! 정말 살다살다 그렇게 잘난 남자는 처음이라니까."
"2004년도 수능에서 유일한 만점을 기록했데."
"하여튼 우리 김대표는 너무 잘나서 탈이라니까."
"나는 그것보다는 그이가 너무 빨리 결혼한게 너무 애석해. 그이가 미혼남이었으면 내 남자로 만들었을텐데."
"이년아. 헛소리 그만하고 고객 응대나 준비하셔."
소정은 동료 여직원들의 대화를 귀를 쫑긋 세운 채 세이경청했다.
그녀 역시 김한빈을 연모하는 수많은 그녀들 중의 한명이었다.
***
회사에 출근한 뒤, 펀드 수익 현황에 이목을 집중했다.
4호, 5호 펀드의 수익률은 각각 조단위를 돌파한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내 개인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의 10조원이 넘는거 같았다.
그런 탓인지 세계적인 경제지인 포브스는, 나를 전세계 52위권의 자산가로 선정했다.
이철성 회장은 51위였다.
물론 이철성은 드러난 재산보다 숨겨둔 자산이 10배 이상 많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진정한 재산은 한화로 100조가 넘을 것으로 사람들은 예상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탓일까, 하루 빨리 100조원대 재벌이 되고 싶었다.
본능적인 욕망이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입 밖으로 힘차게 내뱉었다.
장내가 뿌연 담배 연기로 뒤덮일 찰나 박은영이 면전에 나타났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들며 사랑스러운 어조를 흘려보냈다.
"구정 연휴에 해외로 놀러가고 싶어요."
"구정에는 힘들고 3월달에 짬을 내서 외국으로 나가자."
"정말이죠?"
"그래.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그리 말하며 은영의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선사했다.
***
서울대 의대는 겨울 방학 중이었지만, 무척 분주하게 돌아갔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자산운용사의 CEO가 의대에 수석합격한 탓이다.
그런 때문 일까, 의대 전임교수인 김봉학은 의대 2년차부터 6년차까지 의대 건물로 집합시켰다.
그는 장내를 가득 메운 의대생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의대에 수석합격한 김한빈은 거대 자산운용사의 CEO일 뿐만 아니라, 나이도 25살인 탓에 의대 6년차 학생들과 비슷한 연배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니 김한빈을 대할 때는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고, 예의를 깍듯이 지키도록!"
김봉학 교수의 엄명이 떨어지자 의대생들이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예. 교수님!"
***
대검찰청.
이태강 역시 한빈이 설대 의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에, 내심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상회하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임이 밝혀진 탓이다.
'매제가 마음만 먹으면 사시 패스도 얼마든지 가능하겠구나.'
태강은 한빈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돈 버는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공부머리도 엄청난 친구였어.'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칠 찰나, 그의 사무실에 정태복 검찰총장이 나타났다.
정태복은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재벌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사정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야."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정태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이번 사정작업의 주요 타겟은 대영그룹이니까, 총수 일가의 약점을 들쑤셔봐."
태강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이철성 회장과 VIP의 관계가 악화된 겁니까?"
"그런 모양이야. 암튼 우리는 수사에만 집중하자고."
"알겠습니다. 총장님."
***
세연이를 장모님에게 맡긴 후, 소영과 남산 근처에 위치한 미술관을 찾았다.
이 미술관은 시장에 매물로 나온 곳이었다.
미술관은 500평 넓이의 부지에 들어선 상태였다.
총 4층으로 구성됐고, 연면적은 1000평 내외였다.
나름 규모있는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장은 시종일관 친절한 얼굴로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과 내부 시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물론 나는 미술에 문외한인 탓에 주로 소영이 미술관장을 상대했다.
그날 밤.
소영과 한남동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하며 미술관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위치도 괜찮고, 평수도 넓은 게 정말 마음에 들어."
"미술품은 어때?"
"자본이 없어서 그런지. 비싼 미술품이 없어 보이더라."
"네가 생각하기에 미술관의 적정가는 얼마인거 같냐?"
그녀가 즉답했다.
"미술관 부지와 미술품을 총합해서 1천억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 역시 그녀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관장이 원하는 가격은 얼마지?"
소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사람도 천억 정도를 생각하는 눈치더라고."
"좋아. 우리 회사 법무팀장에게 이번 일을 일임하자."
"그럼 나야 좋지."
그녀가 해맑은 얼굴로 환한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
주말 무렵.
집에서 세연이를 돌보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즈음, 이태강이 만나자는 전화를 해왔다.
얼마 후, 집 근처 공원에서 그와 만남을 가졌다.
"조만간 대영그룹에 대해서 전방위적인 사정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야."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하늘마저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이철성의 큰아들인 이성택 먼저 칠 생각이니까, 쓸만한 자료가 있으면 나에게 넘겨."
"자료가 준비되는 즉시 형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그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책임지고 이성택을 손볼테니까, 저번에 한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그럼 나중에 보자."
태강은 그리 말하며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늦은 밤.
마이바흐를 몰고 한강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전방에 위치한 승용차가 헤드라이트를 연속해서 점등했다.
곧바로 그 차 곁으로 마이바흐를 몰아갔다.
잠시 뒤, 조수석에 종태가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두툼한 노란봉투를 내 손에 건넸다.
"이게 뭐지?"
"지난 15일 동안 박영조의 통화와 집에서 나눈 대화를 녹취한 자룝니다."
"좋아. 수고했다."
그리 말하며 현찰 3억이 든 돈가방을 그의 손에 건넸다.
"3억이다. 그 돈으로 계속 도감청을 진행해."
"감사합니다. 대표님."
***
집에 도착한 뒤 서재로 들어갔다.
녹취록을 서류가방에 집어넣은 뒤 컴퓨터에 USB 메모리를 연결했다.
USB에는 박영조의 육성파일이 담겨있었다.
예상대로 온갖 범법이 총망라된 내용이었다.
이걸 근거로 특수부에서 수사에 돌입한다면, 이성택은 십중팔구 교도소 행이었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이태강의 대검 사무실에, 녹취자료와 음성파일이 저장된 USB 메모리를 신속하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