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절세미남 벼락부자의 안빈낙도 2
유럽의 명품 가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를 찾았다.
업체 사장에게 내 요구를 밝혔다.
"최고로 좋은 사무용 가구를 추천해 주십시오."
그가 친절한 얼굴로 화답했다.
"요즘 유행 중인 유럽의 엔틱 사무용 가구를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사장은 나를 매장 안에 전시 중인 엔틱 사무용 가구 코너로 안내했다.
나는 그날, 수억원을 호가하는 엔틱 사무용 가구를 법인 카드로 구입했다.
***
벤틀리를 몰고 일산으로 향했다.
자유로에서 심신의 스트레스를 마음껏 해소하고 싶었다.
허나, 그런 내 계획은 초장부터 대차게 틀어졌다.
맞은편 차선에서 나타난 덤프 트럭을 목도하자마자, 심장이 터져나갈 듯한 압박감에 휩싸였다.
동시에 숨이 멎을 듯한 극통이 엄습했다.
흔히 말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갓길에 차를 정차했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대형차를 볼때마다 나를 무자비하게 덮칠 것만 같았다.
그런 탓일까, 운전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주변을 지나치는 트럭만 봐도 숨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결국 보험회사에 견인을 요청했다.
도저히 차를 몰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날 밤.
나는 심각한 교통사고 후유장애를 겪고 있었다.
대형 차량이 나를 덮칠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탓이다.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나 대신 운전을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박종태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뇌리에 떠올랐다.
그는 나름 믿을 만한 남자였다.
종태는 수유동 인근의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를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다.
***
토요일 오후.
박종태가 사는 수유동 인근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누구신데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광수대 형사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종태가 의혹에 휩싸인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물었다.
"그런 얘기는 누구한테 들으신거죠?"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일단 제가 박종태씨를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경호와 운전기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줄 베테랑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박종태씨가 적격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종태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는 내 명함을 자세히 살핀 뒤, 고민스런 얼굴로 말했다.
"실은 제가 보안업체와 얘기가 오가는 중이라..."
종태는 말끝을 흐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경호업무와 수행기사 업무를 수락해 주신다면, 연봉 1억2천만원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400%에 달하는 상여금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내 말은 계속 됐다.
"일주일 안에 확답을 주십시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종태의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
일요일 오후.
전생에 내 개인비서로 일했던 박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차례 간 뒤,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퍼졌다.
-누구시죠?
"박은영씨 되십니까?"
-맞는데요. 왜 그러시죠?
"저는 타지마할 사모펀드의 한국 지사 대표인 크리스 킴이라고 합니다."
-죄송한데, 저는 그런 회사를 모르는데요?
"제가 은영씨에게 전화를 드린 이유는 여비서로 채용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네에...?
"연봉은 6천만원까지 보장하고, 상여금도 400%를 약속 드리겠습니다. 거의 억대 연봉이나 마찬가지죠."
-죄송한데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혹시 사기를 치려는 건가요?
"궁금하시면,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대송빌딩으로 와주십시오. 일단 만나서 대화를 나눕시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박종태는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타지마할 사모펀드의 한국 대표인 크리스 킴에게 너무 좋은 영입제안을 받은 탓이다.
연봉과 보너스를 합할 경우 거의 1억6천만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허나, 그는 보안업체에 입사하기로 이미 구두로 합의한 상태였다.
그 업체는 전직 경찰 출신들이 다수 근무하는 곳이었다.
종태는 돈과 의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뇌리에 병원에 입원한 와이프의 여윈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와이프는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탓으로 종태는 한푼이 아쉬운 처지였다.
수술비와 간병인에게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그는 돈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
드디어 겨울 방학이 찾아왔다.
그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침 일찍 타팰을 나섰다.
그 후, 길가를 배회하는 택시를 잡아 탔다.
당분간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날이 갈수록 운전 공포증 증상이 심해진 까닭이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대송빌딩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어제 오후에 사장님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죠?"
"내일 오전 9시에 다시오라고 말하니까, 알겠다면서 사라지더군요."
박종태인 모양이었다.
전화를 하면 될 일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탑층으로 올라갔다.
타지마할 사모펀드는 탑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탓으로 보증금과 월세가 비쌌다.
나는 층 전체를 속편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다른 업체 사람들과 마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한 탓이다.
복도 화장실 옆에 위치한 탕비실로 들어갔다.
탕비실에는 조리기구와 냉장고 선반 등이 구비된 상태였다.
거의 살림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탕비실의 찬장을 열자 컵라면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주전자에 물을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그 후, 냉장고에서 참치캔을 꺼냈다.
잠시 뒤.
컵라면에 참치캔을 들이부은 후, 젓가락으로 무자비하게 휘저었다.
컵라면과 참치캔은 나름 궁합이 잘 맞았다.
맛과 영양 측면에서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사이 좋은 파트너라고 할 수 있었다.
컵라면과 참치캔으로 배를 채운 뒤, 달달한 커피를 음미하며 흡연에 돌입했다.
탕비실에 자욱한 담배 연기가 들어찰 무렵,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후, 종태의 선굵은 목소리가 탑층 전체에 울려퍼졌다.
"대표님 계십니까?"
담배를 입에 문 채 탕비실을 빠져나왔다.
양복차림의 종태가 복도 책상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종태에게 말했다.
"결정을 하신 건가요?"
"예. 대표님."
"그럼 오늘부터 저를 수행해 주십시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복도에 책상이 두개 있으니까, 마음에 드는 책상을 사용하세요. 컴퓨터도 자유롭게 이용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종태는 그리 화답한 뒤 사무실 출입구 우측편에 놓여진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 책상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를 뒤로한 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박은영의 연락을 기다렸다.
허나, 그녀는 일주일이 지났겄만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를 보이스피싱 사기꾼으로 지레짐작한 모양이었다.
타인들에게 번듯한 회사로 보이기 위해서는, 여비서와 수행기사, 경리 아가씨 세명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더구나 박은영은 미모의 재원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여자였다.
곧바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 후, 박종태와 함께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타팰에 도착한 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펜트하우스 전용 주차 코너로 들어서자 내 애마들이 보였다.
서류가방에서 카레라 911 차키를 꺼내서 종태에게 내밀었다.
그는 차키를 받아든 후, 911의 조수석을 공손히 열어주었다.
우리를 태운 카레라 911이 강렬한 엔진음을 과시하며 지하 주차장을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카레라 911이 성수동을 지나칠 무렵, 익숙한 남자를 목도했다.
그는 전직 강력부 검사 출신인 장동현이었다.
장동현은 축 쳐진 어깨를 뒤로한 채 길거리를 쓸쓸히 거닐고 있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방구석에서 백수 노릇을 하는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법무팀장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곧바로 운전석의 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기 청바지와 점퍼를 걸치고 있는 아저씨 곁으로 차를 붙이세요."
"아시는 분인가요?"
"네."
잠시 후.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동현의 앞을 막았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에게 용건이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직 강력부 검사 출신인 장동현씨 맞으십니까?"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장동현은 내 명함을 살핀 뒤 나직한 어조로 물었다.
"저에게 왜, 명함을 주시는 겁니까?"
"장동현씨를 우리 회사의 법무팀장으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연봉으로 2억을 보장해 드리죠."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장동현씨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습니다. 법조계에 나름 지인이 있거든요."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일주일 정도 생각해 보시고,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차에 몸을 실었다.
***
나를 태운 카레라 911이 연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며 종태에게 말했다.
"유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예. 대표님."
그를 뒤로한 채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은영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연대 중앙도서관에서 취업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졸업반이라 그런거 같았다.
은영은 타이트한 청바지와 핑크 컬러의 가죽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나름 세련된 패션이었다.
그런 탓일까, 그녀 주변에 포진한 남학생들은 은영에게 뜨거운 시선을 노골적으로 퍼부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그녀에게 직진했다.
그 후, 내 명함을 그녀에게 건넸다.
은영의 두눈에 이채가 스쳤다.
"도서관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그녀가 뭔가를 잠시 고민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도서관 앞에 위치한 벤치에서 진지한 담소를 이어나갔다.
"저는 은영씨 같은 재원이 필요합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저에 대한 얘기를 누구에게 들으셨나요?"
"교수님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대충 둘러대자, 은영의 얼굴에 긴가민가하는 표정이 그려졌다.
"전화상으로 말씀드린대로 연봉 6천만원과 상여금 400%를 보장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니 1주일 동안 잘 생각해 보시고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다음날.
나를 태운 카레라 911이 테헤란로에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빌딩에 들어선 뒤 관리인에게 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사무실에 현판을 달 생각인데, 아시는 업체가 있으시면 저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관리인이 친절한 얼굴로 화답했다.
"제가 현판 제작업체를 연결해 드리죠."
"연락이 되시면, 제 사무실로 관계자를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를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 후, 잡코리아에 여자 경리를 구인한다는 홍보 문건을 등록했다.
4천만원에 달하는 연봉을 보장하는 조건이었다.
***
장동현은 부장 검사 출신이었다.
허나, 그는 정치권과 검찰 상부에 미운털이 박히는 바람에 지방 한직을 전전했다.
그들이 청탁한 사건을 법대로 엄정히 처리한 후폭풍이었다.
그런 탓일까, 그의 사생활은 별로 순탄하지 못했다.
서울 출신인 와이프와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날마다 부부싸움이 일어난 까닭이었다.
예상대로 그의 와이프는 지방을 전전하는 장동현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당연히 동현은 자신을 이해못하는 와이프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결국 그는 와이프와 합의이혼한 뒤 자녀들의 양육권마저 포기했다.
그 후, 검찰 조직에도 사표를 내던졌다.
모든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서울로 돌아온 동현은 검찰 동기가 차린 변호사 사무실에서 동업을 했다.
그렇지만 변호사 일은 태생적으로 그와 맞지 않았다.
온갖 범법을 자행한 의뢰인들을 변호한다는 사실에, 극심한 자괴감을 느낀 탓이다.
얼마후, 그는 변호사직도 때려치운 뒤 자택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러기를 수년 뒤, 동현은 생활비조차 부족한 형국으로 전락했다.
그는 이미 변호사로 복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처지였다.
50대에 접어든 그를 받아줄 로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만한 돈도 수중에 없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외국계 투자사의 법무팀장직을 제안 받자, 동현은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임을 뼈저리게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