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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27화 (27/175)

27화 절세미남 벼락부자가 주먹도 강함 2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당연히 한국인들의 관심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모아졌다.

물론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스포츠 따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 탓으로, 월드컵을 뒤로한 채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위스 현지에서 열개 정도의 사모펀드를 추가로 설립하기 위함이었다.

다음날.

제네바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출구로 향했다.

그 후, 주변을 배회하는 택시를 잡아탔다.

"UPS 은행으로 가주십시오."

"네. 손님."

30분 후, 나를 태운 택시가 UPS 은행 앞에서 멈춰섰다.

택시비를 지불한 뒤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나를 전담하는 후베르트에게 용건을 밝혔다.

"저번에 개설한 10개의 비밀 계좌에 각각 7억불(8,400억)을 이체했으니까 잔고를 확인해 보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고객님."

후베르트는 그리 말한 뒤, 내 계좌 잔고를 재빨리 확인했다.

그 뒤, 친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객님의 말씀대로 10개의 계좌에 각각 7억불이 이체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곧바로 잔고 증명서를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후베르트를 향해 훅 내뿜었다.

하지만, 그는 잔고증명서 발급 작업에 여념이 없는 탓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담배 연기에 이골이 난 모양이었다.

10분 뒤.

후베르트가 10장에 달하는 계좌 잔고증명서를 나에게 전달했다.

잔고증명서를 서류가방에 수납한 뒤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사모펀드를 10개 안팎 설립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제가 책임지고, 신속하게 서류 작업을 대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유럽 시민권이 필요한데, 구할 방법이 있을까요?"

후베르트가 두눈을 번뜩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시민권을 만들어 드릴까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유럽에서 실종된 동양인들의 신분으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하거나, 재발급을 요청하면 그만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이 그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고객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루체른 호텔에서 체류할 예정이니까, 그 곳으로 연락을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은행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다음날.

루체른 호텔의 지하 라운지바에서 칵테일을 음미할 무렵, 옆자리에 야시시한 차림의 여성이 착석했다.

그녀는 칵테일을 마시는 한편, 연신 나에게 뜨거운 눈빛을 내비쳤다.

그녀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영국식 악센트가 섞인 억양으로 노골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올타임 300불, 숏타임 200불."

화류계 여성이었다.

곧바로 그녀를 뒤로한 채 장내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을 찰나, 바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후베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업자를 섭외했습니다. 지금 호텔로 갈까요?

"잘됐네요. 지금 오셔도 됩니다."

-한시간 안으로 호텔에 도착하겠습니다.

"804호로 오십시오."

-예. 고객님.

1시간 후.

후베르트와 중년 남자가 호텔방에 나타났다.

후베르트가 남자를 소개했다.

"위조 신분증 전문가인 루첸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죠."

루첸이라는 남자와 악수를 교환한 뒤 그에게 말했다.

"쓸만한 신분증을 만들어 주십시오."

"원하시는 국적이 있습니까?"

"한국계 서유럽인 신분증을 원합니다."

그리 답하자, 루첸이 테이블 위에 여러장의 신분증을 늘어놓았다.

"이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신분증으로 골라 보십시오."

신분증은 모두 한국계 유럽인들의 것이었다.

"이 사람들 모두 실존하는 인물인가요?"

그가 즉답했다.

"당연히 모두 실재하는 사람들의 신분증입니다. 물론 지금은 실종상태죠."

유럽지역에서 실종당한 한국인들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탓인지 등줄기에서 절로 오싹한 한기가 돋아났다.

"이 사람들이 실종 당한 이유를 알수 있을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의 입에서 냉랭한 언사가 흘러나왔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한국계 영국인의 신분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루첸이 머리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비용은 2만불입니다. 당연히 일시불 현금으로 주셔야 합니다."

"알았으니까, 지금 당장 작업을 진행하죠."

"좋습니다."

루첸은 그리 화답한 뒤 베낭 안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 후, 내 얼굴 사진을 카메라에 담는데 전심전력했다.

사진 촬영을 끝낸 뒤, 소파에서 대기 중인 후베르트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미화 2만불을 현찰로, 호텔로 갖고 오십시오."

"인출 계좌와 클라이언트 코드를 말씀해 주십시오."

메모지에 인출 계좌 번호와 클라이언트 코드를 적어서 후베르트에게 전달했다.

그는 메모지를 지갑에 수납한 뒤 재차 입을 열었다.

"계좌 인출 위임장에 자필 서명을 기입해 주십시오."

후베르트가 인출 위임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위임장에 자필서명을 기입한 뒤 그에게 되돌려 주었다.

그는 위임장을 받자마자 호텔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곧바로 게스트룸으로 들어갔다.

루첸의 사진 인화 작업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게스트룸의 불을 모두 꺼놓은 채 인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루첸은 30분만에 인화작업을 끝마친 뒤,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 영국 여권과 영국 신분증에 내 사진을 부착하기 시작했다.

능수능란한 손길이었다.

이 방면의 전문가가 확실했다.

그 무렵, 검은 가죽가방을 손에 든 후베르트가 호텔방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응접실 소파에 착석했다.

10분 뒤, 모든 작업을 끝마친 루첸이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에게 영국 여권과 영국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가 건넨 여권과 신분증에는 내 얼굴 사진이 당당하게 박혀있었다.

누가 봐도 감쪽같은 수준이었다.

더구나 여권과 신분증에 존재하는 사람은 실제로 한국계 영국인이었다.

뒷탈이 날 우려가 전혀 없었다.

후베르트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루첸에게 곧바로 돈가방을 전달했다.

루첸은 현금을 확인하자마자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직후 후베르트가 서류 가방에서 10장에 달하는 회사 설립 서류를 꺼냈다.

"회사의 사명과 오너의 성명이 전부 달라야 합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명의를 빌리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돈이 얼마나 들죠?"

"1인당 1만불 정도만 지불하시면 될 겁니다. 물론 그 대가로 모든 법적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습니다."

"그럼 10명 정도를 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고객님."

후베르트는 그리 화답한 뒤, 호텔방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며칠 후.

나는 여전히 호텔방에 거한 채, 사모펀드의 사명을 선정하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허나, 마음에 드는 사명이 당최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전 세계의 명산 이름으로 사모펀드 사명을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K2,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남미의 파타고니아, 뉴질랜드의 밀포드,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티벳의 카일라스, 베네수엘라의 로라이마 등을 사명으로 선정했다.

기억하기 쉽고 나름 임팩트 있는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사명을 정한 뒤, 후베르트에게 전화를 돌렸다.

수화기에서 후베르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명의 대여자들을 모두 섭외했습니다. 고객님.

"그럼 서류 수속 작업을 신속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예. 고객님.

"10만불을 드릴테니까, 명의 대여자들에게 알아서 전달하십시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객님.

"내일 은행으로 갈테니까 명의대여 작업을 마무리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끝마쳤다.

***

UPS 은행.

후베르트에게 10만불을 전달한 뒤, 넌지시 말했다.

"뉴욕 메릴린치 증권사에 11개 정도의 증권 계좌를 개설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저 대신 계좌 개설 작업을 해주십시오."

"증권사의 연동 계좌를 비밀 계좌로 지정하실 생각입니까?"

"예. 그리고 계좌 개설명은 제가 보유한 11개의 사모펀드 명의로 해주십시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증권 계좌에 미화 6억불(7,200억)을 이체해 주세요."

후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1개의 계좌번호와 클라이언트 코드를 서류에 기입해 주십시오."

"그럽시다."

서류 작업을 끝마친 뒤 은행을 빠져나왔다.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다음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 증시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기 위함이었다.

***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월가에 위치한 메릴린치 증권을 찾았다.

내 담당자인 오마하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제가 관리하는 11개의 사모펀드 증권 계좌에서 전액을 인출한 뒤, 아마존과 넷플릭스, 애플, 구글, MS 주식을 집중 매입해 주십시오."

그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 많은 돈을 5개 종목에 전량 투입하실 생각입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작업을 시작해 주십시오."

"고객님의 뜻이니까, 어쩔수 없겠군요. 그렇지만 요즘 다른 유망한 종목도 많은데... 재고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는 다른 주식을 나에게 팔아먹을 요량이었다.

허나, 내 결심은 확고부동했다.

"제 말대로 해주십시오. 그럼 이만."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은행을 나온 뒤 센트럴파크 인근의 포시즌 호텔로 향했다.

포시즌 호텔의 스위트룸에 여장을 푼 뒤, 룸서비스를 시켰다.

호텔방에서 늦읒 점심으로 배를 채운 후 곧바로 밤마실을 나갔다.

뉴욕의 명소인 브로드웨이를 방문했다.

오페라의 유령을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100만원에 달하는 표를 구입한 뒤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극장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대다수 동양인 관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이한 광경이었다.

미국인과 유럽인들보다 동양인 관람객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한 탓이다.

잠시 후, 무대에 뮤지컬 배우들이 등장했다.

오페라의 유령을 차분히 감상할 무렵, 내 옆자리에 일남일녀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성택과 이서연 커플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연은 오페라의 유령을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런 탓인지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얼굴로 뮤지컬 공연을 관람했다.

반면, 성택의 얼굴에는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개자식 다운 반응이었다.

그들을 뒤로한 채 뮤지컬 극장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그들과 마주쳐봤자 좋을 일이 없었다.

***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성택과 서연을 목도한 탓이었다.

그중에서도 서연의 아름다운 영상이 뇌리에서 당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전생에 20년 동안 그녀를 짝사랑했다.

그 후유증이 여전한 모양이었다.

결국, 새벽 5시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호텔을 나섰다.

인근의 센트럴파크에서 새벽 조깅을 즐기는 한편, 마음속 깊숙이 틀어박힌 그녀의 영상을 삭제하기 위함이었다.

센트럴파크의 산책로에서 본격적인 조깅에 돌입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백인 여성이 내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검은색 레깅스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건강미 넘치는 몸매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찰나, 저만치 앞서 뛰던 그녀가 갑자기 제자리에서 픽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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