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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30화 (30/175)

30화 절세미남의 말못할 고충

에바는 깊은 잠에 빠진 한빈을 뒤로한 채 호텔을 몰래 빠져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사실 에바는 기혼녀였다.

그녀의 남편은 명문가 출신의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바는, 한빈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한국땅을 밟았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그에게,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 탓이다.

한빈은 그녀의 이상형이었다.

짙은 눈썹과 선굵은 이목구비, 근육질의 훤칠한 체격, 그리고 구리빛 피부 등등...

거기에 다정다감하면서도 쿨한 성격마저 갖고 있었다.

그런 때문일까, 에바는 한빈에게 홀린 듯이 매혹됐다.

허나, 그녀는 원대한 야망을 품은 여자였다.

사랑 때문에 자신의 인생목표를 수정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처럼 틈날 때마다 그와 만나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것에 만족할 생각이었다.

그런 탓으로, 한빈에게 한장의 이별편지만을 남긴 채 호텔을 몰래 빠져나왔다.

그날 오후, 에바는 부친인 아담과 함께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에 홀가분하게 몸을 실었다.

***

한강변을 거닐며, 미국으로 떠난 에바의 아름다운 영상을 오롯이 반추했다.

그녀는 민주당의 촉망받는 여성 정치인이었다.

또한 명문가 출신의 남편과 수년전에 결혼한 상태였다.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미녀였다.

더불어 배경도 보통이 아니었다.

나에게 커다란 보탬이 될만한 여자였다.

마음 속으로 에바의 관능적인 미모를 곱씹을 무렵, 핸드폰 벨이 울렸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이성모의 간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저녁 7시까지 대영호텔 펜트하우스로 오라고. 동생한테 소개해줄 친구들이 있으니까.

"저에게 누굴 소개시키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재벌가 로열패밀리.

별로 내키는 제안이 아니었다.

내 정체를 그들에게 노출시켜봤자 득 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안될거 같습니다. 형님."

-무슨 선약인데?

"런던에서 여자친구가 올 예정이라서요. 미안합니다."

-영국여자?

"그렇죠."

-역시 동생은 비쥬얼이 좋아서 그런지, 서양여자들도 쉽게 후리는구나. 정말 부럽다, 부러워.

"뭐, 어쩌다보니 그리 됐습니다."

-그럼 이번주 금요일 밤에, 우리 호텔 펜트하우스로 찾아오라고.

"사정봐서 찾아가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성모는 내 도움을 받고 싶어 안달난 모양이었다.

당연히 내가 갑이고, 그는 을의 입장이었다.

성모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아는 까닭에, 내 눈치를 살피는 처지였다.

그런 탓으로, 자기 모임에 나를 끼어넣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안봐도 비디오였다.

***

아침 7시.

대송빌딩에 박은영이 나타났다.

그녀는 57층에 위치한 탑층으로 곧바로 올라갔다.

탑층에 들어서자 벽면을 장식한 <타지마할 사모펀드>라는 현판이 보였다.

은영은 대표 사무실 출입구 죄측에 위치한, 사무용 책상에 핸드백을 내던진 뒤 탕비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탕비실에 비치된 대형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갖가지 식음료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모두 회사 공금으로 구입한 식자재였다.

은영은 냉장고에서 삼겹살과 잘 익은 김치를 꺼낸 뒤, 곧바로 김치찌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기보다 요리솜씨가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보고 배운 까닭이다.

은영이 아침 준비를 끝마칠 무렵, 이수경과 장동현이 탕비실에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식탁에 모여들었다.

그 후, 맛깔나는 아침 식사를 온몸으로 탐닉했다.

식사가 끝나자, 은영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팀장님이 설거지를 할 차례인거 아시죠?"

장동현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은영과 수경이 미련없이 자리를 떠났다.

직후, 동현이 능숙한 손길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은영과 수경은 사무실 복도에 비치된 푹신한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편안한 자세로 두런두런 담소를 이어나갔다.

수경이 말했다.

"요즘 대표님에게 너무 미안한 심경이에요. 일은 별로 안하면서 월급만 타먹는거 같아서."

은영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나도 그래. 통장에 꽂히는 월급과 보너스를 볼때마다 대표님한테 너무 송구하더라."

그녀들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허나, 오너인 한빈은 그녀들에게 약속한 연봉과 보너스를 꼬박꼬박 지급했다.

은영과 수경이 내심 한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절절하게 느낄 찰나, 장동현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현은 그녀들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분이 필요해서 우리를 고용한 거니까, 쓸데없이 눈치 볼 필요는 없는거야."

그리 말하며 자신의 사무실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수경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의 여자 친구가 미국인이라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들었니?"

"박기사님이랑 선배님이 며칠 전에, 제 앞에서 그런 말을 하셨잖아요?"

그러자 은영이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직후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냥 모르는 척 하라고. 대표님 여자 문제는 언급 자체를 하지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그러자 수경이 조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소곳이 화답했다.

"예. 선배님."

***

금요일.

학교 강의가 파하자마자 박종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대 정문으로 지금 당장 와주세요."

-네. 대표님.

전화를 끊은 뒤 서울대 정문쪽으로 걸어갔다.

정문에 도착하자 벤틀리 운전석에 앉아 있는 종태가 보였다.

벤틀리 쪽으로 다가가자 그가 재빨리 차에서 내려섰다.

직후 뒷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뒷좌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운전석의 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회사로 갑시다."

"예. 대표님."

40분 후.

우리를 태운 벤틀리가 대송빌딩 정문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1층 로비로 들어갔다.

탑층에 올라가자 먹음직스런 냄새가 코끝을 기분좋게 간질였다.

그때, 탕비실에서 장동현과 이수경, 박은영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목례로 화답한 뒤 곧장 탕비실로 들어갔다.

식탁 위에는 맛깔나는 순두부찌개가 차려져 있었다.

안그래도 아침을 거른 탓에 몹시 시장하던 참이었다.

찬장에서 사기 그릇을 꺼낸 후, 전기밥솥에서 밥을 한웅큼 퍼서 그릇에 옮겨담았다.

그 후, 회사 식구들과 때늦은 점심 식사를 오롯이 만끽했다.

우리는 식사를 끝낸 뒤, 곧바로 가위바위보를 실시했다.

설거지 당번을 정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종태가 설거지 당번으로 낙점됐다.

그는 설거지에 이골이 난 탓인지, 별다른 내색 없이 묵묵히 맡은바 소임에 최선을 다했다.

사무실로 들어가며 이수경에게 넌지시 말했다.

"달달한 커피 한잔 부탁해요."

그러자 수경이 화사한 얼굴로 답했다.

"네. 대표님."

커피를 음미하며 모니터 화면에 이목을 집중했다.

나는 조세 회피처에서 설립한 사모펀드 명의로, 국내 증권사에 총 11개의 주식계좌를 개설한 상태였다.

증권사와 기관, 개미 투자자들의 추격매수를 사전에 원천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탓에, 11개에 달하는 주식 계좌에는 각각 700억 내외의 잔액이 쌓여있었다.

총 7,700억에 달하는 규모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700억 안팎의 자금을 굴리는 중소규모의 외국계 사모펀드 수준이었다.

그런 탓에 별다른 이목을 끌지 않고, 내 마음대로 주식 투자에 나설 수 있었다.

주식 계좌에 쌓여 있는 잔액 7,700억 전부를, 시중 은행에 개설한 11개의 사모펀드 명의 계좌로 전액 이체완료했다.

재투자에 나서기 위함이었다.

***

삼송증권의 오인환 대표는 최근에 개설된 외국계 사모펀드 계좌를 유심히 관찰했다.

거의 동시에 설립된 그들 계좌는 총 11개였으며, 각각 700억 내외의 주식잔액을 기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국내 주식투자에 나선지 6개월 만에, 400%에 육박하는 엄청난 차익을 실현했다.

그런 탓일까, 오인환은 11개에 달하는 사모펀드의 실소유주를 파악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두뇌를 굴렸다.

그 결과, 타지마할 사모펀드의 한국 지사 대표인 크리스 킴을 유력한 인물로 점찍었다.

얼마 후, 그는 타지마할 사모펀드에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

회사에 도착하자 박은영이 환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삼송증권의 오인환 대표가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내 입장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인물이었다.

나는 사모펀드 운영에 집중하는 처지였다.

나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에전처럼 자산운용사를 경영했다면 투자자 유치를 위해 그를 스카웃 할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그 사람한테 다시 전화가 오면, 박비서가 알아서 차단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은영은 그리 복명한 뒤 나를 향해 다소곳이 허리를 숙였다.

그녀를 지나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 스타일의 고풍스런 책상에 좌정한 채, 내일 일정에 대해 생각했다.

내일은 일요일 이었다.

그런 탓에, 박종태를 부려먹을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일요일 하루는 반드시 쉬게 해 주겠다.'라고 호언장담한 처지였다.

내 운전공포증은 더욱 심해진 상태였다.

운전대 자체를 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요일에 학교 도서관에서 열공모드에 돌입해야 하는 처지였다.

학기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결론은 택시 혹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허나, 택시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차를 놔두고,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한단 말인가?

결국 내 몸종이나 마찬가지인 조만석을 부려먹기로 작심했다.

***

토요일 밤.

조만석이 타펠 펜트하우스에 나타났다.

녀석은 냉장고에서 캔맥 3개를 꺼내자마자 곧바로 입안에 들이부었다.

내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는 눈치였다.

만석은 캔맥 3개를 뚝딱 해치운 뒤 자기 멋대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 후, 드레스룸에서 명품 수트와 구두 등을 유심히 살핀 뒤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녀석은 1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앓는 듯한 얼굴로 애원했다.

"다음주 일요일에 친누나가 결혼식을 올리거든. 그래서 말인데, 양복이랑 구두 좀 빌려주라. 제발 부탁이다. 친구야."

내 드레스룸에는 명품 수트와 구두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빌려주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잘된거 같았다.

안그래도 녀석을 일요일 전용, 운전기사로 부려먹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빌려줄테니까 내일 아침에 내 집으로 와라. 네놈한테 시킬 일이 있으니까."

"그게 뭔데?"

"대리기사 노릇이나 해라."

그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네가 운전하면 되잖아?"

"임마. 형은 교통사고 후유 장애 때문에 운전을 못하는 처지라니까."

그제야 녀석이 납득한 얼굴로 흔쾌히 답했다.

"좋아. 형이 인심 한번 제대로 쓴다."

"오냐. 그러니까 이제 내 집에서 꺼져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치사한 자식아!"

만석은 그 말을 끝으로 내 집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학교 도서관에서 학기말 시험 공부에 열중할 무렵, 여대생이 내 맞은편 자리에 착석했다.

그녀는 비어 있는 많은 자리를 놔두고, 유독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나를 흠모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하라는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내 얼굴을 감상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결국 공부를 뒤로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후, 도서관 밖으로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내 신경을 자극하는 그녀 곁에서 멀리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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