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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31화 (31/175)

31화 퍼스트 파트너스 사모펀드

의대 학과 사무실로 직행했다.

그 곳에 있는 조만석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녀석은 예과 대표라 학과 사무실에서 살다시피했다.

학과 사무실에 들어서자 조만석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곳에 나타난거냐?"

"그냥. 심심해서."

그리 말하며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담배 연기를 말아올리며 썰렁한 사무실을 휘 둘러보았다.

"애들은 어디에 간거야?"

"당연히 도서관에 있지. 학기말 시험이 코앞인데 미쳤다고 학과 사무실에 오겠냐?"

원래 의대생들은 공부량이 많은 탓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럼 너 혼자, 외롭게 사무실에서 공부하는거냐?"

"할수 없잖아. 나라도 사무실을 지켜야지."

"문 잠그고 도서관으로 가면 되잖아?"

"싫어. 나는 여기가 편해."

녀석은 그리 대꾸하며 의학 서적에 시선을 고정했다.

공연히 내가 그를 방해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사무실을 은근슬쩍 빠져나왔다.

공부에 매진하는 녀석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

학기말 시험을 끝으로 예과 2년 과정을 모두 끝마쳤다.

더불어 겨울 방학 시즌에 돌입했다.

그 무렵, 이성모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의 생파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밤.

나를 태운 벤틀리가 압구정 명품관에 도착했다.

종태를 뒤로한 채 브리오니 수트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브리오니는 명품 맞춤정장 브랜드였다.

샵에 들어서자 재단사가 나를 맞이했다.

"춘하추동 맞춤 정장을 각각 20벌씩 제작해 주십시오. 그리고 연미복도 10벌 정도 만들어 주십시오."

재단사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지며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조아렸다.

잠시 후, 재단사가 본격적으로 내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

명품 수트와 시계, 구두 등으로 중무장한 채, 대영호텔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를 방문했다.

펜트하우스 입구에 들어서자, 연미복 차림의 박인범이 나를 맞이했다.

그는 곧바로 나를 실내로 안내했다.

펜트하우스 내부로 들어서자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경쾌한 왈츠곡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포켓볼 다이에서 샴페인을 음미하며, 지인들과 당구를 즐기는 이성모가 보였다.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성모는 나를 발견하자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잘 왔다. 크리스."

"형님 생일인데 제가 빠질수 있나요. 하하..."

그리 화답하며 준비해온 선물을 그에게 전달했다.

성모는 내가 건넨 선물함을 시원하게 개봉했다.

직후 파텍 필립의 다이아몬드 시계가 영롱한 자태를 오롯이 과시했다.

성모와 그의 지인들은 내 선물이 10억원을 호가한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봤다.

그런 탓인지 나를 향해 일제히 엄지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성모가 감격한 얼굴로 화답했다.

"역시 나를 생각해주는 건, 우리 동생 밖에 없구나. 정말 고맙다. 우하하하...!"

녀석이 내뱉는 감사의 변을 귓등으로 흘리며, 웨이터가 가져온 샴페인 한모금을 입안에 머금었다.

잠시 후, 본격적인 생일파티가 시작됐다.

성모는 커다란 케이크를 지인들과 자르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나는 그의 지인들을 매의 시선으로 살피며, 쓸모가 있는 인간이 누군지 유심히 관찰했다.

바로 그때, 나에게 뜨거운 시선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던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그녀가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녀는 나에게 한눈에 반한 눈치였다.

안봐도 비디오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선망에 그득한 눈빛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쓸데없는 사랑고백을 해왔다.

"크리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저랑 본격적으로 사귈래요?"

그녀는 재계순위 20위권인, 반도그룹 주명승 회장의 막내딸인 주한나였다.

별 볼 일 없는 배경이었다.

게다가 얼굴과 몸매마저 내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런 까닭에 한나에게 냉랭한 어조로 대꾸했다.

"저는 이미 사귀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

그 말과 동시에 장내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펜트하우스 테라스에서 강남의 빌딩 숲을 조용히 관조할 무렵, 성모가 내 곁에 나타났다.

그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동생이 운용하는 자산이 어느 정도지?"

그에게 솔직하게 답했다.

"어림잡아 한화로 10조원은 넘을 겁니다."

그리 답하자, 성모가 재신(財神)을 만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정말인가?"

"원래 타지마할 사모펀드의 모기업은 전 세계 최고의 자산운용사인 블랙스톤입니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됐습니까?"

블랙스톤의 수탁 자산고는 한화로 3,100조원이 넘었다.

성모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내 말을 금세 수긍했다.

"와! 우리 동생은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거물이구나. 우하하..."

"저는 그냥 10조원 내외의 자금을 굴리는 정도죠. 별로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나름 겸양지덕을 과시하며 입가에 담배를 물자, 성모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재빨리 꺼내서, 내 담배에 공손히 불을 붙여주었다.

남들이 보면, 내 아랫사람으로 오해할 정도로 나를 극진히 대했다.

몸이 바짝 달은 모양이었다.

페부 깊숙이 빨아들였던 담배 연기를 성모를 향해 훅 내뿜은 뒤 넌지시 운을 뗐다.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렸다는 듯 답변했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지분을 동생이 몰래 매집해주면 안될까?"

"주식을 모아서, 형님을 지지하는 일에 사용해 달라는 말씀입니까?"

"역시 우리 동생은 나랑 말이 너무 잘통한단 말이지. 헤헤..."

그의 입에서 바보같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봐도 이 작자는 세상을 헛으로 산거 같았다.

사람의 간사한 속성에 대해 별로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나를 자신을 구원해줄 신의 사자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아주 쓸만한 인물이었다.

성모의 은근한 목소리가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나를 전폭적으로 도와주면, 나중에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사내유보금 중에서 최소 1조원 이상을 동생에게 돌려줄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당연히 얼마든지 가능하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가 두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어갔다.

"요즘 한국 재계의 화두는 해외 자원개발이거든. 그룹 이사회에 해외자원개발이라는 안건을 내놓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사통과할 정도지."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물만난 고기처럼 입을 바쁘게 놀렸다.

"그 바람에, 재계 총수들 사이에서 쓸모없는 해외 폐유전과 폐광을 차명으로 매입하는 웃지못할 열풍이 일어났어. 폐유전과 폐광을 자기 그룹에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서지."

성모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폐광과 폐유전의 서류를 조작하는 건 기본이지. 어차피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브로커들이 있거든. 하여튼 그런 방법을 통해서 대기업 총수들은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비자금으로 조성하는 거라고."

자원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사내유보금을 빼돌리는 행위가 비일비재한 모양이었다.

"대영그룹도 그런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겁니까?"

"당연한 걸, 뭐하러 물어. 낄낄..."

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올라갔다.

한국의 재벌 총수들은 하나같이 사내유보금을 빼먹는데 혈안이었다.

"동생이 나를 도와주면,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야금야금 빼먹을 수 있다고."

그가 대영전자와 자동차를 갈구하는 이유는, 그들 기업이 보유한 막대한 사내유보금 때문이었다.

한심한 작자였다.

그렇지만 그런 속마음을 일체 드러내지 않은 채,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을 도와드릴테니까, 나중에 제가 보유한 폐유전과 폐광을 사내유보금을 전용해서 비싼 가격에 매입해 주십시오."

"당연히 그래야지. 그 점은 걱정하지 말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외국계 지분 현황을 하루 빨리 파악해 주십시오."

"정말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인가?"

"그렇다고 너무 서두를 계획은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지분을 늘려갈 겁니다."

"내 입장에서도 그 편이 훨씬 좋아. 그리고 동생이 원하는대로 외국계 지분을 나름대로 조사해볼게."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천천히 사라져갔다.

잠시 뒤, 펜트하우스 내부로 들어서자 성모와 지인들이 왁자지껄한 술판을 벌이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녀석의 지인들은 대다수 후계자와 거리가 먼 재벌가 쭉정이였다.

쓸모있는 인간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 사실을 파악하자, 이 곳에 더 이상 머물 필요성을 못느꼈다.

결국 성모에게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펜트하우스를 재빨리 빠져나왔다.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박은영과 이수경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은영에게 지시를 내렸다.

"스위스 제네바와 미국 워싱턴을 차례로 둘러볼 예정이니까, 항공권과 호텔방을 예약해 주세요. 그리고 수경씨는 미화 5만불을 은행에서 환전해서 갖고 오세요. 백달러 지페로."

그녀들이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예. 대표님."

그녀들을 내보낸 뒤, 지메일 계정에 접속했다.

메일함에 이성모가 보내온 파일이 있었다.

메일을 열자 내가 원하는 자료가 드러났다.

성모가 보내은 파일을 프린트한 뒤 서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미국에서 해야할 일이 생겼다.

흡족한 순간이었다.

다음날.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장동현과 박종태, 박은영, 이수경을 사무실에 불러들였다.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한달 동안 연말 휴가를 다녀오십시오. 특별 휴가비 1천만원을 지급해 드릴테니까 부담갖지 마시고, 속 편하게 휴가를 떠나세요."

그리 말하며 노란색 돈봉투를 그들에게 차례로 돌렸다.

당연히 그들 모두 감격한 얼굴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봉투 안에 천만원이 들어있으니까 여행비용으로 사용하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공항으로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회사를 나섰다.

***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하자마자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UPS 뱅크를 찾았다.

나를 담당하는 후베르트에게 비밀금고 개통 의중을 밝혔다.

그러자 그가 환한 얼굴로 답했다.

"비밀 금고를 영구적으로 사용하시리면, 추가로 2만불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개설비용과 보관료를 합할 경우 5만불이 필요한 건가요?"

"예. 5만불을 일시불로 납부하시면, 지하 금고와 디지털 시크릿키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날, UPS 뱅크에서 비밀 금고를 개설한 뒤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에바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에서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달링. 지금 어디니?

"델타항공의 워싱턴행 퍼스트 클래스."

-정말?

"6시간 뒤면,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할거 같은데, 오늘 만날 수 있을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늘은 남편 생일이라, 시간을 내기 힘들거 같아. 미안해. 자기야.

그녀의 말은 재차 이어졌다.

-내일 오후에 시간이 되거든. 그때 만나면 안될까?

"할수 없지. 그럼 내일 오후에 워싱턴 다운타운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 1107호로 와라."

-알았어. 그때 보자구. 달링. 사랑해.

에바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

홍콩 구룡반도에 위치한 로열가든 호텔에 이성택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스위트룸에서 머리를 맞대고 밀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성택이 탐욕에 절은 얼굴로 김종수 대영금융투자 대표에게 말했다.

"내가 차명으로 설립한 퍼스트 파트너스 사모펀드에 투자자들의 돈을 몰아주십시오."

김종수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법적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대표님은 퍼스트 파트너스가 판매하는 홍콩 펀드에 투자자들을 유치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대표님에게 섭섭치않게 사례를 하겠습니다."

김종수는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성택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영그룹의 차기 총수였다.

그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감히 예측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김종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도련님."

순간 성택의 입에서 우렁찬 광소가 쏟아져 나왔다.

"우하하하하하...!"

그는 하늘에 오를 듯 기분이 좋아졌다.

최소 조단위의 사기를 합법적으로 칠 수 있는 기회를 쟁취한 탓이다.

성택에게는 환매중단(투자원금과 투자수익금 환급 중단)이라는 묘수가 있었다.

외국계 사모펀드에게 부여된 전가의 보도였다.

당연히 그는 전가의 보도인 환매중단을 이용해 한국 투자자들의 돈을 날로 먹을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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