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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37화 (37/175)

37화 서울 오피스 빌딩을 무차별적으로 매입하다 1

내 재산은 33조7천억에 육박했다.

나는 이 중에서 최소 20조원 이상을 서울의 업무용 빌딩과 충청남도 연기군, 공주시, 충북 청원군의 토지를 매입하는데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세차익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유한 11개의 외국계 사모펀드 명의로 한국의 부동산을 취득할 생각이었다.

한국 정부는 외국계 자본에 무척 허약했다.

그들을 잘못 건드릴 경우, 외국 투자자가 제기한 국가 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ISD 제도였다.

그런 탓에 한국 정부는 외국계 자본이 취득한 부동산에 대해서 함부로 조세를 부과할 수 없었다.

당연히 징벌적인 세금 부과는 꿈도 못꾸는 처지였다.

나는 그 점을 철저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조세 회피처에서 설립한 외국계 사모펀드 명의로 한국의 부동산을 무차별적으로 매입할 계획이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노크 소리와 동시에 박은영의 고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똑똑똑!

"대표님에게 전해드릴 서류가 있어요."

"들어오세요."

은영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서류철이 들려있었다.

"오늘 아침에 스위스 UPS 은행에서 보내온 겁니다."

그리 말하며 나에게 서류철을 넘겼다.

서류를 살피자, 예상대로 비밀 계좌의 잔고 증명서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장변에게 내가 보잔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커피 두잔도 부탁해요."

"예. 대표님."

몇분 뒤, 장동현 법무팀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일단 앉으시죠. 장변에게 의논드릴 사항이 있으니까."

"네. 대표님."

우리는 소파 테이블에 놓여진 커피를 음미하며 본격적인 담소에 돌입했다.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부동산 리츠 회사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장변이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동산 리츠 회사는 여러종류가 있습니다.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는 쪽과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분야로 세분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부동산 직접 투자와 관리를 모두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확보한 부동산이 있으신가요?"

"조만간 생길 겁니다. 그러니 장변께서는 부동산 리츠 회사 설립 작업을 신속하게 마무리해 주십시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강남과 광화문, 을지로, 명동, 여의도의 업무용 빌딩들이 급매로 나온 게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

대영유통 사장에 취임한 이성모는, 비자금을 축적하는 재미에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그런 탓일까, 대영유통 산하에 있는 대영호텔을 처분하기로 작심했다.

대영호텔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수천억대의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함이었다.

그의 뇌리에 막대한 자금동원력을 보유한 한빈의 잘 생긴 얼굴이 떠올랐다.

성모는 이번에도 한빈을 철저히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녀석을 잘만 구슬리면 3천억 이상의 비자금을 한방에 먹을수 있다고!'

그의 얼굴에 비열한 탐욕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그날 밤.

성모는 한남동을 방문했다.

그 후, 부친이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는 이철성 회장에게 인사한 뒤 본론을 꺼냈다.

"노우현 정부가 다음달에 정식으로 출범하면, 부동산이 일제히 폭락할 겁니다. 그리되면 대영호텔의 가치 역시 급락할 겁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이번 기회에 대영호텔을 국내외 자본에 매각하시는 게 어떨런지요?"

"흐으음..."

이철성 역시 신정부가 출범할 경우, 부동산 시장이 일제히 폭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더구나 대영그룹은 전자와 자동차의 경영권을 사수하기 위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낭비한 상태였다.

그 바람에, 그룹의 자금경색이 연일 심화되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이 회장이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도 모르게 국내외 자본과 접촉해 보거라."

"호텔 매각을 허락하시는 겁니까?"

"그래. 대신 반드시 제값을 받아야 한다. 알겠느냐?"

성모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그런 탓인지 좋아죽는 얼굴로 화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책임지고 제 값을 받아내겠습니다. 우하하하...!"

그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길게 흘리며 서재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박종태와 나란히 카레라 911에 몸을 실었다.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충남 연기군으로 갑시다."

종태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볼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쓸데없이 묻지 마십시오."

그제야 녀석이 납득한 얼굴로 경부 고속도로를 향해 차를 몰아갔다.

2시간 후.

충남 연기군 인근의 밥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우리 둘은 늦은 점심으로 배를 채운 뒤 식당 앞에서 식후연초를 즐겼다.

그 무렵, 이성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에게 중요한 제안이 있는데, 오늘 시간이 있나?

"오늘 밤에 제 집으로 오십시오."

-좋아. 오늘 밤, 11시를 전후해서 동생 집으로 찾아갈게.

"네. 그럼 있다 밤에 봅시다."

통화를 끊은 뒤, 종태와 함께 주변에 위치한 부동산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장년의 남자가 보였다.

그에게 내 용건을 밝혔다.

"이 동네 토지를 사고 싶은데, 매물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거의 모든 토지를 싹쓸이 했습니다. 그 바람에 매물이 거의 없어요."

노우현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대선 공약 중의 하나는, 수도권 이전 공약이었다.

더구나 이 곳은 수도권 이전 예정지였다.

그런 노우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발빠른 부동산 투기자들이 연기군의 토지를 이미 오래전에 싹쓸이한 모양이었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결국 공주시로 발길을 돌렸다.

혹시나하는 기대감의 발로였다.

공주시와 충북 청원군 역시 오래전에 매물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한발 늦은 모양이었다.

결국 빈 손으로 서울로 되올아왔다.

***

그날 밤.

내 집에 이성모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서류가방에서 호텔 카탈로그를 꺼내서 소파 테이블에 펼쳐놓았다.

"이게 뭐죠?"

"우리 대영호텔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사진."

"이걸 뭐하러 갖고 오신 겁니까?"

"당연히 동생한테 매각하려고 그러는거지."

"네에?"

"뭘 그리 놀라는 척을 해. 선수끼리."

녀석은 그리 말하며 입가에 담배를 물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말아올리며 간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시세보다 싼 가격에 호텔을 넘겨줄테니까, 리베이트로 3천억만 땡겨줘. 누이 좋고 매부까지 만족하는 일이지."

테이블에 펼쳐진 대영호텔의 전경 사진들을 자세히 살폈다.

대영호텔은 서울 강남과 명동, 을지로, 제주도에서 호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모두 요지에 위치한 곳이었다.

나중에 큰 폭으로 가격이 급등하는 지역이었다.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저조한 시기였다.

내 입장에서 성모의 제안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좋다고 달려들면, 그가 매각 가격을 높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탓에, 겉으로 심드러한 표정을 지으며 관심없다는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별로 땡기지 않는군요."

순간 성모가 안달난 얼굴로 내 손을 두손으로 마주 잡았다.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상황이지만,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 관광 경기가 좋아지면, 호텔의 가치도 덩달아 높아질거다. 내가 보장할게. 그러니까 눈 딱감고 긍정적으로 검토해주라. 부탁이다. 동생."

결국 못 이기는 척, 그의 제안을 수용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성모가 감격한 얼굴로 나를 우러러보았다.

"정말 동생 밖에 없구나.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우하하하..."

녀석의 입에서 특유의 광소가 터져나왔다.

***

장동현은 시장에 매물로 나온 서울 도심의 업무용 빌딩을 발바닥에 땀나도록 두루 살폈다.

그는 빌딩의 가격과 공실현황, 관리비 등을 자세히 살핀 뒤, 곧바로 다른 빌딩으로 넘어갔다.

다음날.

오늘도 장동현은 강남과 종로, 광화문, 여의도, 명동, 을지로를 분주하게 누비며 매물로 나온 빌딩을 파악하는데 전심전력했다.

그 덕분에 몸은 비록 피곤했지만, 마음은 정말 가벼웠다.

나름 자신이 돈 값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 역시 남모르는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는 일 없이 고액 연봉을 받는 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온 탓이다.

허나, 이제 동현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부동산 리츠 회사가 설립되면 할 일이 태산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

박종태와 대송빌딩 1층 로비로 들어설 찰나,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관리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관리인이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건물주가 빌딩을 매물로 내놨습니다. 새로운 건물주가 나타나면, 저도 더 이상 이 빌딩에서 일을 못할거 같습니다."

대송빌딩은 건축된지 6년 밖에 안된 상태였다.

게다가 강남의 요지인 테헤란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건물주가 대송빌딩을 얼마에 내놓은지 아십니까?"

"잘은 모르지만, 시세보다 많이 낮춰서 급매로 내놨다고 하더라고요."

횡재한 심경이었다.

곧바로 관리인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건물주와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네에...? 무슨 말씀이신지...?"

"저도 빌딩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건물주에게 연락을 해주십시오."

그러자 관리인이 반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하하..."

그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내가 빌딩을 인수할 경우, 자신의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

사무실에서 웹서핑에 여념이 없을 무렵, 인터폰에서 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주가 오셨는데요.

"들여보내세요. 그리고 커피 두잔 부탁합니다."

-네. 대표님.

잠시 뒤, 50대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가 건물주였다.

우리는 커피를 음미하며 빌딩 매각에 대해 담소를 이어나갔다.

건물주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최소 3,000억 이상은 받고 싶습니다. 사장님."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워낙 부동산 불황기라..."

말끝을 흐리자, 건물주가 애가 닳은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2,800억 정도로 합의를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저는 2,500억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딱 부러지게 말하자, 건물주가 곤혹스런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집에 가셔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건물주는 축쳐진 어깨를 뒤로한 채 내 사무실에 힘없이 물러났다.

건물주를 내보낸 뒤 은영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장변이 지금 회사에 있나요?"

-외근 중이신데요.

"장변이 회사에 돌아오면 내 방으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예. 대표님.

***

그날 오후.

장동현이 내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두툼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가 건넨 보고서를 세심히 살폈다.

보고서에는 시중에 매물로 나온 업무용 빌딩의 외관 사진과 공실현황, 관리비용, 위치, 매각 가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빌딩의 숫자는 모두 70개였고, 평균 매각 단가는 2,000억 안팎이었다.

총액 14조원에 육박하는 액수였다.

위치가 모두 좋았다.

강남과 광화문, 명동, 을지로, 여의도 등에 위치한 빌딩이었다.

층수도 30층 이상었다.

보고서를 내려놓은 뒤, 장변에게 말했다.

"70개 빌딩 모두 매입할 생각이니까, 건물주들과 신속하게 매매계약을 체결하십시오."

그러자 장변이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이 많은 빌딩을 모두 인수하실 계획입니까?"

"네. 그러니까 지금 당장 건물주들과 계약 일정을 협의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

노우현은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수도이전을 공식화했다.

더불어 충청남도 연기군과 공주시, 충북 청원군 일대의 토지를 본격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수백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정부예산이 토지보상비로 사용됐다.

당연히 그 천문학적인 자금은, 서울의 업무용 빌딩과 강남, 분당, 목동, 과천, 용인 아파트를 폭등시키는 주범이 될 예정이었다.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가 대한민국 전체에 짙은 암운을 드리우는 형국이었다.

내가 경험한 미래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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