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벼락부자 대영호텔을 인수하다 1
이성모는 20개에 달하는 외국계 사모펀드 명의로 서울 강남과 분당 지역의 아파트를 무차별적으로 매집했다.
한빈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탓이다.
그는 걸어다니는 달러박스였다.
성모는 한빈을 광적으로 신봉했다.
그 덕분에 6천억에 달하는 막대한 이득을 취한 까닭이다.
그는 한빈이 강남 부동산에 올인하라고 조언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천억을 강남 아파트에 투입했다.
한빈의 말을 지상최대의 금과옥조로 받아들인 탓이다.
***
장동현은 자택의 거실을 서성이며 김한빈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한빈은 알면 알수록, 커다란 놀라움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그의 불가사의한 막대한 자금동원력 때문이었다.
장동현이 예상하기에 한빈이 운용하는 자금은 최소 20조원이 넘는 규모였다.
더구나 그는 고아출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20대 초반의 고아출신 청년이, 2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굴린다는 사실을 그 누가 믿겠는가?
허나 이건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런 탓일까, 동현은 짙은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한빈이 불법적으로 조성한 자금을 중간에서 관리하는, 국제적인 범죄집단의 핵심 조직원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동현은 준법정신이 투철한 남자였다.
결국 그는 한빈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에게 최소한의 의리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
장동현, 박종태와 회사 근처의 밥집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우리는 설렁탕으로 배를 채우는 한편, 이런저런 대화를 즐겼다.
식사를 끝내고 밥집 앞에서 식후 연초를 즐길 무렵, 장동현이 넌지시 말했다.
"대표님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하세요."
그러자 장변이 옆에서 흡연을 즐기는 박종태를 쳐다봤다.
나와 단 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모양새였다.
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장변과 대화를 나눌 거니까, 종태씨는 자리를 좀 비켜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종태는 그리 화답한 뒤 저 멀리 사라졌다.
직후 동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표님이 관리하시는 자금이, 혹시 불법적으로 조성된 범죄자금 아닙니까?"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눈을 정면으로 직시했다.
흡사 나를 취조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솔직히 말해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대표님은 나이도 어릴뿐만 아니라, 고아 출신입니다."
동현은 커피 한모금을 입안으로 들이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배경을 가지신 분이 최소 20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운용한다는 게,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저는 대표님이 국제적인 범죄집단의 핵심 조직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장변은 고리타분한 남자였다.
그렇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정직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저의 지난 과거를 가감없이 말해야겠군요."
그리 운을 뗀 뒤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말아올렸다.
그 후,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20살 무렵에 희안한 경험을 했습니다. 앞으로 20년 동안 펼쳐질 미래가 훤히 보이는 놀라운 현상을 체험한거죠."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날 이후, 저는 주식가에서 슈퍼개미로 급성장 했습니다. 단돈 4백만원으로 수조원을 벌어들인거죠."
"특히 저는 9.11테러 사건이 발발하기 3달 전에, 풋옵션에 전재산을 투자했습니다. 그 덕분에 무려 3조원이 넘는 엄청난 시세차익을 본 거죠.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동현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말씀이 정말인가요?"
"사실입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으으음..."
그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직후, 의혹에 깃든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그럼 왜, 매사를 이렇게 비밀스럽고 조심스럽게 처리하시는 겁니까?"
"외국계 투기자본으로 위장하는 게, 이상해 보이십니까?"
"예. 정정당당하게 대표님의 명의로 투자하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설마 세금을 덜내기 위해서 이러시는 겁니까?"
"그런 일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세력없는 벼락부자는 권력자와 범죄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제야 장변이 어느 정도 납득한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자신있게 말하는데, 저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그 점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벤틀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타팰 펜트하우스.
메릴린치 증권사에 개설한, 11개에 달하는 주식 계좌로 각각 10억불(1조2천억)을 이체시켰다.
한화로 총액 13조2천억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이제 내 수중에는 6조원 내외의 가용현금이 전부였다.
그 돈으로 대영호텔을 인수하고, 남은 자금으로 한국 증시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그날 저녁.
집안의 거실에서 흡연을 즐기는 한편, 메릴린지 증권사의 오마하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된 뒤 그에게 내 요구를 전달했다.
"11개의 증권 계좌에 예치된 자금 전액을 애플과 아마존 주식을 매집하는데 투입해 주십시오."
-고객님이 원하시는대로 매집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의 뜨거운 물에 전신을 담군 채 두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욕실 밖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동시에 박종태의 선굵은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지금 욕실에 계십니까?"
"샤워 중이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대표님."
샤워를 끝마친 뒤 욕실 밖으로 나가자 소파에서 대기 중인 종태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뒤로한 채 2층 드레스룸으로 올라갔다.
청바지와 긴팔, 다운점퍼를 몸에 걸친 뒤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 후, 종태를 대동한 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 늘어선 네마리의 애마 중에서, 노란색 람보르기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종태가 서류 가방에서 람보르기니 차키를 꺼낸 뒤, 재빨리 그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를 태운 람보르기니가 신사동 쪽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
종태와 신사동 인근의 슈퍼카 매장을 찾았다.
매장 안에 전시된 차량을 두루 시찰할 무렵, 내 마음에 드는 슈퍼카를 발견했다.
굴강한 남성미가 압권이었다.
딜러에게 곧바로 물었다.
"저 차 이름이 뭐죠?"
그가 친절한 얼굴로 즉답했다.
"부가티 베이론입니다. 지금 현재 전 세계에, 딱 12대만 출시된 차량입니다."
"가격도 알려주십시오."
딜러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45억원입니다. 고객님."
슈퍼카 중에서 가장 비싼거 같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과 가격 모든 면에서, 내 고귀한 품격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인도받을 수 있죠?"
"계약을 하시면, 프랑스 현지에서 제조에 들어가는 시스템입니다. 그런 까닭에 차량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4개월 이상은 대기하셔야 할 겁니다."
"좋습니다. 일단 계약 먼저 합시다."
영맨의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고맙습니다. 고객님."
그리 화답하며 뒤편에 위치한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그날, 키나발루 사모펀드 법인 명의로 부가티 베이론을 계약했다.
***
겨울 방학 시즌이라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런 탓에, 대낮부터 강남 인근의 체육관에서 종태와 실전을 방불케하는 격렬한 스파링에 돌입했다.
종태의 비어있는 턱에 강력한 어퍼컷을 박아넣음과 동시에 매서운 니킥을 그의 복부에 적중시켰다.
퍼억! 퍼어억!
"으악!"
종태는 한소리 비명을 내지르며 매트 위에 큰대자로 뻗어버렸다.
나를 당해내지 못하는거 같았다.
요즘 그는 스파링을 할 때마다, 채 2분을 견디지 못하고 나에게 KO패를 밥먹듯이 당하고 있었다.
솔직한 말로, 내 격투기 스킬은 UFC 헤비급 선수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그런 탓일까, 종태는 여전히 매트 위에서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데미지가 심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를 뒤로한 채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그날 오후.
우리는 체육관 근처의 밥집에서 순두부찌개로 배를 채우며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나갔다.
종태가 울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이상 대표님과 스파링을 못할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살살 해줄테니까, 너무 겁먹지 마세요."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대표님은 프로급의 격투기 실력을 갖추고 계십니다. 저 같은 아마추어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요!"
종태는 그 동안 내 핵펀치와 니킥, 하이킥, 미들킥에 날마다 난타를 당했다.
그런 탓인지, 나와의 스파링을 회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골병이 들까봐, 잔뜩 겁을 먹은거 같았다.
결국 그의 요청을 못 이기는 척 수용했다.
***
나와 종태를 태운 벤틀리가 대송빌딩에 도착했다.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탑층에 들어서자 장동현과 박은영, 이수경 등이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한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에서 웹서핑에 열중할 무렵, 장동현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삼우회계법인의 정밀 실사 작업이 끝났습니다."
"결과를 말씀해 보십시오."
"삼우회계법인 측에서는 대영호텔의 인수 적정가를 4조4천억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영호텔은 서울 요지 세군데에 호텔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에도 대규모 리조트 호텔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의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대영유통의 이성모 사장에게 만나자는 전언을 넣으세요."
"예. 대표님."
"그리고 앞으로 절대 저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동현이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대표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단호한 어조를 내뱉었다.
"업무용 빌딩에 입주한 업체가 2달 연속 임대료를 못낼 경우, 가차없이 퇴거조치를 실행하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대표님."
그날밤.
한남동 인근의 라운지바에 들어서자 기다란 테이블에서 나홀로 칵테일을 즐기는 이성모가 보였다.
그쪽으로 다가가자 녀석이 반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밀 실사 결과가 나왔다면서?"
"네. 예상대로 4조원 내외를 적정 인수가로 결론내더군요."
"당연하지, 우리 대영호텔은 아무리 못해도 4조원 이상은 받아야 하는 호텔이라고."
그에게 내 요구를 전달했다.
"3조7천억으로 합의를 봅시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형님이 차명으로 보유한 사모펀드에 3천억을 리베이트 명목으로 제공하겠습니다."
성모의 얼굴에 극심한 갈등이 표출됐다.
직후, 애끓는 얼굴로 나에게 읍소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가격은 최소 4조원 이상이라구! 그 이하 가격으로는 매각이 힘들다니까."
"그 대신 3조7천억을 일시불로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 같은 점을 회장님에게 어필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형님."
그 말을 끝으로 라운지바를 미련없이 빠져나왔다.
***
한남동 서재에 이성모가 나타났다.
그는 곧바로 보고를 올렸다.
"킬리만자로 인베스트먼트 측에서 3조7천억을 제안했습니다. 대신 인수대금을 일시불로 지급할 의향을 밝혔습니다."
"일시불로 매각대금을 치루겠다는 말이냐?"
"네. 그 조건으로 3조7천억에 호텔을 매각해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흐으음..."
이 회장 역시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다.
대영그룹은 자금 경색이 연일 심화되고 있었다.
대영전자와 자동차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4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탓이다.
결국 그는 킬리만자로 사모펀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속전속결로 거액의 현금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3조7천억으로 매매 계약을 체결해. 대신 약속대로 인수대금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조항을 매매 계약서에 반드시 삽입해야 한다!"
성모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짐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 힘찬 대답이 흘러나왔다.
"예. 아버지!"
대영호텔이 한빈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