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벼락부자 대영호텔을 인수하다 2
대영호텔의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를 방문했다.
그 후, 이성모와 구체적인 인수협상에 돌입했다.
"아버지는 호텔 임직원들의 고용승계를 원하고 있거든."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재차 말을 이었다.
"3조7천억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고용승계를 해주기를 원하시는거 같아."
"고용승계를 거부하면 어찌되는 겁니까?"
"매각 가격을 다시 높이려고 하시겠지."
"호텔 임직원들의 숫자를 알려주십시오."
"임원과 정규직, 비정규직 사원을 총합할 경우, 2천명이 조금 넘을거다."
"원하는대로 임직원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회장님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그러자 성모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고맙다. 역시 우리 동생 성격은 정말 시원시원하구나. 우하하하..."
녀석의 입에서 특유의 우렁찬 광소가 터져나왔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성모의 웃음소리가 가라앉은 뒤 넌지시 물었다.
"리베이트를 입금할 계좌를 알려주십시오."
그가 기다렸다는 듯 메모지 한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메모지에는 5개의 외국 은행명과 각각의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녀석이 차명으로 설립한 사모펀드의 금융계좌였다.
그 역시 여러개의 차명 사모펀드를 보유한 모양이었다.
"오늘 밤에 계좌이체를 해드리겠습니다."
녀석이 감격한 얼굴로 내 손을 두손으로 마주잡았다.
***
그날 밤.
내 집에 장동현 법무팀장이 나타났다.
그에게 명함 박스를 내밀었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 명함이 뭡니까?"
"킬리만자로 인베스트먼트의 한국 지사 법무팀장 명함입니다. 언론에 그 명함을 돌리세요."
"저에게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있죠. 내일 오전에 국내 언론사에 킬라만자로 명의로 공문을 발송하세요."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킬리만자로 인베스트먼트는 대영호텔 임직원들의 고용을 100% 승계할 것입니다.'라는 공문을 언론사에 돌리십시오."
장변이 납득한 얼굴로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대표님."
그를 집에서 내보낸 뒤 UPS 은행의 후베르트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된 후 내 요구를 전달했다.
"키나발루 계좌에서 2억5천만불(3천억)을 인출해서 내가 지정하는 다섯개 은행의 계좌에 각각 이체해 주십시오."
-은행명과 계좌번호를 팩스로 전송해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리 말한 뒤 곧바로 팩스를 전송했다.
이체작업을 끝마치자마자 성모에게 전화를 돌렸다.
***
대송빌딩 1층 로비에 들어서자 관리인이 나를 향해 부동자세로 경레를 올려부쳤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나는 킬리만자로 인베스트먼트 명의로 대송빌딩을 2,500억에 인수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기존의 관리인은, 나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게 처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대송빌딩의 임대차계약서와 임대수익, 제반 관리비용이 자세히 나와있는 보고서를 오늘 안으로 제출하세요."
내 명령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1층 로비에 카페를 입점시킬 계획이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 검토해 보십시오."
관리인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복명했다.
"넵. 대표님!"
종태를 대동한 채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탑층에 들어서자 '킬리만자로 인베스트먼트'와 '히말라야 부동산 리츠'라는 법인명이 적힌 명패가 벽면을 새롭게 장식하고 있었다.
명패를 잠시 동안 주시한 뒤 일렬로 도열한 장동현과 박은영, 이수경 등과 인사를 교환했다.
그 후, 사무실 안으로 나 홀로 들어갔다.
사무실 책상에 좌정한 채 줄담배를 만끽할 무렵, 이수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내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모닝 커피를 대령했다.
"고마워요. 수경씨."
나름 친근한 언사를 내뱉자, 그녀가 베시시 웃으며 화답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뭘."
그리 말하며 사무실에서 조신하게 물러났다.
그녀가 내온 커피를 입안에 한모금 들이킨 뒤 대화면 TV에 이목을 고정했다.
-대영유통은 산하에 있는 호텔부문을 영국계 사모펀드인 킬리만자로 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영유통의 호텔 부문을 인수한 킬리만자로 인베스트먼트 측은 호텔 임직원들의 고용을 100% 승계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영유통의 관계자는 자세한 매각가격은 대외비인 관계로 밝힐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중략...
***
점심 시간을 이용해 사상 최초로 회식을 가졌다.
우리는 회사 인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와 피자, 고급 포도주 등을 즐기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함께했다.
회식이 끝나갈 무렵, 직원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앞으로 회사가 많이 바빠질 겁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는 70개에 달하는 업무용 빌딩을 관리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세이경청했다.
그들을 휘 둘러본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대영호텔도 이번에 인수했습니다. 그 호텔을 관리하는 일도 우리 몫입니다."
그리 말하자 은영이 호기심이 그득한 얼굴로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하실 말씀이 있나요?"
"네. 궁금한 점이 있어요. 대표님."
"그게 뭐죠?"
"저희가 대영호텔 임직원들을 관리하는 건가요?"
장동현과 박종태, 이수경 역시 호기심이 그득한 얼굴로 양귀를 종끗 세우고 있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통 큰 언사를 내뱉었다.
"앞으로 장동현 법무팀장께서는 대영호텔의 본부장 직을 겸임해 주십시오. 그리고 박종태씨는 감사실장을 겸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연봉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인상해 드리겠습니다."
순간 동현과 종태의 얼굴 가득 희열에 벅찬 표정이 그려졌다.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박은영 씨는 비서팀장을 맡아주시고, 이수경 씨는 경리팀장을 책임져 주십시오. 물론 대영호텔에서 근무하는 여비서와 경리 여직원들을 총괄할 수 있는 권리를 두분에게 부여하겠습니다. 연봉도 당연히 인상할 생각입니다."
그녀들 역시 입이 귓가에 내걸렸다.
그런 탓인지, 직원들 모두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킨 채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
다음날.
장동현, 박종태, 박은영, 이수경 등을 대동한 채 대영호텔의 강남 본점을 방문했다.
호텔 출입구부터 로비 안까지 붉은 카페트가 깔려있었다.
또한 카페트 주변에는 임직원들이 양열로 도열한 채 우리 일행을 정중히 맞이했다.
호텔의 임직원들과 두루 악수를 교환한 뒤 탑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당분간 이 곳에서 거처할 계획이었다.
호텔 보안요원들이 철통같은 경계근무를 펼친 까닭이다.
거기에 일류 주방장들이 제공하는 동서양의 진미를, 내 마음대로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단목으로 만든 육중한 책상에 좌정한 채 내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장동현, 박종태, 박은영, 이수경에게 차례로 지시를 내렸다.
"장변은 오늘부터 호텔의 본부장 업무를 인수하시고, 박종태 씨는 감사업무를 인계받으십시오."
"그리고 박은영 씨와 이수경씨는 호텔의 비서와 경리업무를 인수받으세요."
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좌중이 일사불란하게 호응했다.
"예. 대표님."
그 대답과 동시에 장내에서 썰물처럼 사라졌다.
잠시 뒤, 대영호텔의 부사장인 오현민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하 컨퍼런스홀에 대영호텔의 임원과 정규직 사원들이 모두 집합했습니다."
"비정규직 사원들은 참석을 안한 건가요?"
"호텔을 비울수가 없는 탓에, 참석 통지를 안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지하 3층에 위치한 컨퍼런스홀로 내려갔다.
***
컨퍼런스 홀에 들어서자 800명 정도의 임직원이 운집한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을 지나쳐 연단에 천천히 올라갔다.
연단에 마련된 마이크를 손에 든 채 내 입장을 솔직히 피력했다.
"저는 뉴스에 나온대로 대영호텔 임직원들의 고용을 100% 승계할 생각입니다. 물론 비리를 저질렀거나, 근무태도가 매우 불량한 임직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할 계획임도 동시에 밝히는 바입니다."
모두연설이 끝나자 임직원들이 움찔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직장에 목을 메는 전형적인 소시민 타입이었다.
부려먹기 편한 스타일이었다.
그들을 세심하게 살핀 뒤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무엇보다 안정을 중요시 합니다. 그런 이유로 공연한 분란을 결코 만들지 않을 것임을 여러분들에게 맹세하는 바입니다."
순간 장내에 운집한 임직원들이 일제히 감격한 얼굴로 나를 향해 박수 갈채를 쏟아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가라앉은 뒤 연단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 후, 맨 앞자리에 도열한 임원들을 시작으로 차례로 악수를 교환했다.
***
일주일 후, 대영호텔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
동현, 종태, 은영, 수경 등과 응접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채 대영호텔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이어나갔다.
동현이 말했다.
"대영호텔의 임원 숫자는 타 은행보다 12% 이상 비대한 규모로 밝혀졌습니다. 그런 까닭에 연간 10억원에 달하는 추가 인건비가 지출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종태가 말을 이었다.
"광수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서 임원들과 간부들의 비위를 조사한 결과, 호텔 납품 업체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뒷돈을 챙기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직후, 은영도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대영호텔의 비서실에 근무하는 여직원들 태반은, 이성모 전 사장이 자기 멋대로 비서실로 발령낸 여성들로 밝혀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업무능력이 대다수 부족한 것으로..."
그들의 발언을 묵묵히 경청한 뒤 최종결론을 내렸다.
"대영호텔 인수 조건 중의 하나가 고용 승계였습니다. 그런 탓에 임직원들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물론 비리를 저지른 임직원은 경찰에 고발조치하면 되지만, 임원들의 연봉과 비서실 에 소속된 여직원들 문제는 당분간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동현과 은영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재차 피력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임원들의 방만한 연봉 문제를 모른체 할 수는 없습니다. 대표님."
"쓸모없는 여비서를 하루빨리 정리하시는 게, 회사와 대표님 입장에서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최소 6개월은 기다려 봅시다. 그 후에 내가 알아서 결판을 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펜트하우스 2층 욕실로 직행했다.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찬 커다란 욕조에 온몸을 깊숙이 담군 채 창 너머의 강남 빌딩 숲에 시선을 고정했다.
높은 곳에서 강남의 번화한 길거리를 조망한 탓인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좌에 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1층 응접실 쪽에서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욕조에서 몸을 일으킨 뒤 곧바로 샤워를 시작했다.
1층으로 내려가자 예상대로 먹음직한 아침식사가 식탁에 세팅되어 있었다.
푸아그라와 캐비어, 불도장, 제비집 등의 산해진미가 내 식욕을 맹렬하게 자극했다.
아침부터 귀한 음식으로 배를 채운 뒤 거실 책상에 좌정했다.
그 후, 이수경 비서팀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통화가 연결된 뒤 그녀에게 내 요구를 전달했다.
"타팰 집에 있는 내 옷가지와 구두, 시계 등을 모두 호텔로 가져오세요."
-예. 대표님.
대영호텔 강남 점장인 이종익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잠시 후, 이종익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50대 초반의 전형적인 호텔맨이었다.
그런 탓인지 친절이 항상 몸에 베었다.
남들이 보면 느끼함의 절정이라고 말 할 정도였다.
얼굴 가득 느끼한 미소를 드러낸 그에게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제주도에 있는 대영리조트를 시찰할 생각이니까 비행기표를 예약하세요."
이종익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과 내일 제주도 기상이 매우 안좋을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다음주에 둘러보시는 게, 어떨런지요?"
"한국 기상청의 일기예보 수준을 어찌 믿습니까? 그러니까 내 말대로 비행기표를 예약하세요."
그가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TV 뉴스를 시청했다.
-최근 강남과 분당, 목동, 과천, 용인 등지의 아파트 값이 큰폭으로 뛰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수도이전 예정지에 풀린 수백조원에 달하는 토지보상비가, 강남과 목동 지역 아파트로 유입되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며, 정부의 신속한 대책마련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중략...
본격적인 부동산 폭등 시즌에 돌입하는 뉴스였다.
강남과 분당, 목동, 과천 아파트를 시작으로, 서울 요지의 업무용 빌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예정이었다.
그런 때문일까, 뿌듯한 성취감이 온몸에 급속도로 번져갔다.
이 세상은 내가 예측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