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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이 돈을 숨김-41화 (41/175)

41화 벼락부자 쓸만한 그림을 그리다

나를 태운 여객기가 한반도 남단을 비쾌하게 가르고 있었다.

퍼스트 클래스의 안락한 의자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창 밖에 스치는 푸른 하늘과 짙은 운무에 시선을 고정할 무렵, 이쁘장한 여승무원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고혹적인 눈웃음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나를 유혹하듯 말했다.

"안주와 술을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리 말하며 메뉴판을 나에게 내밀었다.

메뉴판을 잠시 살핀 뒤 그녀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캐비어와 로얄 샬루트 38년산, 아르망 샴페인을 부탁합니다."

"예. 고객님."

잠시 뒤, 내가 주문한 술과 안주를 쟁반에 받쳐든 그녀가 눈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간이 식탁에 캐비어와 로얄 샬루트 38년산, 아르망 샴페인을 세팅한 뒤, 흠모하는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 역시 나에게 홀딱 반한 눈치였다.

솔직히 나 역시 그녀가 조금 마음에 들었다.

고운 얼굴과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남자였다.

그런 탓으로, 저 멀리 떠나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순간 여승무원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해졌다.

물론 내 알 바 아니었다.

그녀가 주변에서 사라지자마자, 옆에 앉아 있는 종태와 캐비어를 안주삼아 로얄 샬루트와 아르망 샴페인을 물처럼 들이부었다.

***

제주도 공항에 도착하자, 대영호텔의 제주도 리조트 점장인 이상학과 직원들이 나와 종태를 정중히 맞이했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을 나섰다.

공항 주차장에는 흰색의 대형 리무진 차량이 정차되어 있었다.

이상학은 그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는 리무진의 뒷문을 공손히 열었다.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러자 이상학도 내 옆에 동승하려고 했다.

자기 주제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따끔하게 말했다.

"점장님은 다른 차를 타고 따라오십시오."

순간 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허나, 그는 일개 점장에 불과했다.

그런 탓으로 내 명령을 고분고분 받아들였다.

그가 저 멀리 사라지자 종태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직후 운전기사를 향해 힘차게 말했다.

"대표님을 호텔로 모십시오."

"예."

운전기사는 그리 화답한 뒤 리무진을 부드럽게 출발시켰다.

대영호텔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대형 리조트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향후 계획을 면밀히 구상할 예정이었다.

우리를 태운 리무진이 서귀포 앞바다에 그림처럼 들어선 대영리조트 호텔 앞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뒤 해변과 호텔의 전경을 차례로 둘러봤다.

리조트 호텔 답게, 해안가 전체를 호텔이 독점하는 구조였다.

또한 각종 해양 레저시설이 호텔과 해변에 조성되어 있었다.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앞으로 종종 이 호텔을 애용하기로 결심했다.

그 무렵, 세단 차량이 호텔 앞에 멈춰섰다.

직후, 이상학과 호텔 직원이 차 안에서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을 본체만체하며 호텔 로비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이상학 일행이 똥줄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동서양의 격조높은 인테리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7성급 호텔에 결코 뒤지지않는 수준이었다.

그때, 호텔 직원들이 내 쪽으로 우르르 다가왔다.

직후 나를 향해 90도 각도로 허리를 접었다.

그들에게 목례를 취한 뒤, 제일 이쁘게 생긴 여직원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녀의 가슴어림에는 박소민이란 명찰이 달려있었다.

"호텔의 객실을 시찰하고 싶은데, 박소민씨가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조신하게 화답했다.

"예. 대표님.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리 화답하며 방 한개 짜리 객실로 나를 이끌었다.

그 후, 객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 곳은 호텔에서 가장 기본적인 스탠다드 등급의 객실로, 보시다시피 원룸형 스타일입니다."

그녀는 스탠다드 등급의 객실을 시작으로, 슈페리어, 디럭스, 이그제큐티브, 스위트룸, 펜트하우스 등을 차례로 소개했다.

소민은 외모 뿐만 아니라, 목소리마저 참으로 고왔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펜트하우스에 들어선 뒤, 나를 뒤따르는 이상학에게 넌지시 물었다.

"박소민씨의 직급이 어떻게 되죠?"

그가 즉답했다.

"객실부에 소속된 프론트 직원입니다."

"평사원인가요?"

"그렇습니다. 대표님."

"그녀가 마음에 드니까, 내일부터 나를 전담 수행하는 업무를 맡기세요."

그러자 이상학이 쓴웃음을 지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마음에 안드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거죠? 마음에 안드는 눈빛이군요. 시정하세요."

순간 이상학이 겁먹은 얼굴로 부동자세를 취하며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에게 재차 따끔하게 말했다.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오."

그의 허리가 더욱 깊숙이 숙여졌다.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마음 속 깊숙이 대표님의 말씀을 새겨 듣겠습니다."

"이만 나가보세요."

"예. 대표님."

***

그날 밤.

펜트하우스에 안마사가 나타났다.

안마 베드에 누운 채 온몸에 뭉친 근육의 피로를 해소하는데 집중했다.

마사지가 끝난 뒤, 종태를 응접실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캔맥으로 목을 축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의 입에서 쓸만한 조언이 흘러나왔다.

"본격적인 경호체제를 가동해야 할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제대로 된 경호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이심전심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믿을 만한 친구들로 경호팀을 만드세요."

"전직 경찰 특공대 출신들로 경호팀을 구축해도 되겠습니까?"

"신원이 확실하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연봉의 가이드라인을 말씀해 주십시오."

"1억원을 보장하겠습니다."

그리 말하자, 종태가 만족한 얼굴로 화답했다.

"서울에 올라가는 즉시 경호팀 구축 작업에 돌입하겠습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종태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

아침에 눈을 뜨자 응접실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응접실로 나가자, 정장룩 차림의 박소민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조신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소민에게 목례를 취한 뒤 넌지시 말했다.

"커피 한잔 부탁합니다."

"예. 대표님."

그날 오후.

종태와 소민을 대동한 채, 호텔 내에 위치한 초대형 수영장을 찾았다.

인공파도와 각종 레저 시설이 완비된 풀장이었다.

그런 탓인지 호텔 투숙객들과 가족 단위 여행객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시간 가는줄 모르고 물놀이를 만끽했다.

***

다음날.

종태와 인근 호텔 지하에 있는 카지노장을 방문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탓에, 종태는 출입불가 판정을 받았다.

반면 나는 영국 여권을 소지한 덕분에, 카지노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종태를 카지노 출입구에 남겨둔 채 바카라와 블랙잭을 즐겼다.

그런 때문일까, 준비해간 돈이 금세 바닥났다.

거의 5천만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카지노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도박과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펜트하우스에 들어서자 응접실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 있는 소민이 보였다.

내 잘생긴 외모와 매너있는 성격에 홀딱 반한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화사한 눈웃음을 내비치며 내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나름 용기를 내서 하는 행동 같았다.

그 정도로 나를 갈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결국 소민의 애틋한 청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나 역시 소민씨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녀의 양볼에 화사한 복사꽃이 피어났다.

곧바로 소민의 앵두같은 입술에 열정적인 키스를 선사했다.

***

대영금융투자는 협약관계를 맺고 있는 시중은행을 통해, 퍼스트 파트너스의 홍콩 펀드를 국내 투자자들에게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그들은 높은 수익률을 미끼로, 해외 금융정보에 어두운 국내 투자자들에게 대놓고 사기를 쳤다.

허나, 이런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

홍콩 구룡반도의 로열가든 호텔에 이성택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스위트룸에 여장을 푼 뒤, 퍼스트 파트너스의 비밀계좌를 관리하는 제리 장을 면전에 호출했다.

제리 장이 보고를 올렸다.

"오늘까지 한화로 1조3천억에 육박하는 수탁잔고를 달성했습니다."

성택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올라갔다.

그때, 제리 장의 목소리가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저희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목표액을 초과달성한 셈입니다."

성택이 머리를 힘차게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내일부터 홍콩펀드의 판매를 중단해."

"이왕 하시는 김에, 2조원까지 달리시는 게 어떨런지요?

"너무 욕심내지 말자구. 그러다가 뒷탈이 날수도 있으니까."

성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주 목요일까지 퍼스트 파트너스를 폐업조치하는 것도 잊지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 알아서 하니까 도련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리 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잠시 뒤, 스위트룸에 정강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택의 입에서 스산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이번주 금요일에 제리 장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두둑한 보너스를 줄테니까 깔끔하게 뒷처리를 하라고."

"감사합니다. 도련님."

성택은 정강호를 내보낸 뒤 테라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하늘에 오를 듯 기분이 좋아졌다.

1조3천억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거금을, 날로 먹었기 때문이다.

퍼스트 파트너스는 조세회피처에서 설립된 외국계 투자사로 위장한 상태였다.

그런 탓으로 환매중단 조치를 취한다해도, 한국 정부는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

한국 땅에서 외국으로 나간 돈은 절대 환수 할 수 없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성택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이런 대담한 사기 행각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했다.

그 덕분에 피해를 보는 건, 국내 투자자였다.

***

한남동 서재.

이철성 회장은 TV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퍼스트 파트너스가 판매한 홍콩 펀드가 환매중단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퍼스트 파트너스의 홍콩 펀드를 위탁판매한 대영금융투자와 다수의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투자자들의 집단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원금을 되찾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철성은 TV를 끄자마자 대영금융투자 관계자에게 호출령을 내렸다.

그날 밤.

이 회장은 한남동의 고즈넉한 정원을 거닐며 홍콩에 체류 중인 이성택에게 전화를 돌렸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이 회장의 진노한 목소리가 장내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퍼스트 파트너스의 실소유주가 네놈이냐!"

수화기 너머에서 성택의 유들유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아시면서 뭐하러 물으세요. 뻔한 일인데.

"그게 아비한테 할 소리냐?"

-아버지한테 보고 배운걸 그대로 실천할 것 뿐인데, 뭐하러 역정을 내십니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닙니까?

수화기에서 성택의 천연덕스러운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 탓일까, 이 회장이 낙담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 때문에 대영금융투자가 세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단 말이다. 대영그룹 전체의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다고!"

-어차피 법적으로 모든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는 겁니다. 재판에 들어가봤자 우리 책임은 없는 거니까, 아버지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성택은 그 말을 끝으로 제 멋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더 이상 그를 질책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큰 아들의 말이 어느 정도 타당했기 때문이다.

부전자전이었다.

***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학교로 직행했다.

의대 본과 강의실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조만석이 내 앞에 못생긴 얼굴을 들이밀었다.

"겨울방학 동안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닌거냐?"

나는 지난 석달 동안 녀석의 연락을 철저히 차단했다.

만석과 엮일 필요성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는 묻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자고."

그리 말하며 본과 강의실로 들어갔다.

나와 만석은 강의실 뒷편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본과 교수님의 강의에 이목을 집중했다.

강의가 끝나자 녀석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내 사촌이 잘나가는 여배우거든."

"구라 좀 작작쳐라. 너처럼 못생긴 놈의 사촌이 여배우라고?"

"임마. 진짜라니까!"

만석이 정색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속는셈 치고 네놈의 말을 믿어줄게. 그런데, 이런 얘기를 나에게 하는 이유가 뭐야?"

"당연히 너한테 소개해 주려고 그러는거지."

"관심없으니까 주딩이 좀 쳐닫아라."

그리 말하며 강의실을 재빨리 빠져나왔다.

***

그날 밤.

대영호텔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에 이성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성택이 자식이 크게 한탕한 모양이더라."

녀석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어제 저녁에 한남동에 갔었거든. 아버지랑 저녁식사를 같이하려고. 그런데 아버지가 식사 자리에서 뜬금없이 퍼스트 파트너스 얘기를 꺼내는거야."

"알고봤더니 퍼스트 파트너스가 성택이 놈이 설립한 사모펀드라는 거야. 개자식이 간뎅이가 부은거지. 한두푼도 아니고 무려 1조3천억을 날름 해먹은 거잖아!"

성모는 분노와 질투가 번갈아 교차하는 얼굴로 열변을 토했다.

퍼스트 파트너스는 한국 투자자들의 돈을 1조3천억이나 해쳐먹은 외국계 악덕 자본이었다.

그런 탓으로, 연일 TV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성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성택은 외국계 자본을 가장해서 국내 투자자들에게 계획적으로 초대형 금융사기를 친 것이 된다.

그런 탓일까, 쓸만한 그림이 머리 속에 절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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