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이 돈을 숨김-42화 (42/175)

42화 거침없이 내달린다 1

성모에게 말했다.

"이성택을 사회적으로 철저히 매장합시다."

"퍼스트 파트너스의 실소유자가 그놈이라는 사실을 밝히자고?"

"네. 대검 특수부에 투서를 넣는거죠. 그리고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그런 사실을 폭로하면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질 겁니다."

녀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성택을 밀어내고 대영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상상을 하는거 같았다.

"투서는 형님이 넣으십시오. 저는 알바를 동원해서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을 작업하겠습니다."

그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아. 내일부터 작업에 들어가자고.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동생한테 크게 한 턱 쏠게."

"당연히 그러셔야죠. 하하..."

내 입에서 절로 흡족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음날.

대송빌딩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운전석의 종태에게 지시를 내렸다.

"입이 무거운 알바생들을 동원해서,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에 퍼스트 파트너스의 실소유주가 이성택이라는 글을 동시다발적으로 업로드하세요."

그러자 종태가 우려하는 얼굴로 말했다.

"대영그룹의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면 좋을 일이 없습니다. 대표님."

"걱정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종태씨는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세요."

딱 부러지게 말하자, 그가 체념한 얼굴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대표님."

***

대영그룹의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성택이 서초동 사옥에 나타났다.

그런 탓일까, 출입구부터 그룹의 임직원들이 양열로 도열한 채 성택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는 붉은 레드카펫 위를 씩씩하게 거닐며, 자신에게 허리를 굽힌 임직원들을 오만한 자세로 지나쳤다.

그 후, 부회장실과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35층에 위치한 부회장실에 들어선 성택은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심각한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대형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폭로성 글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초조한 얼굴로 어딘가로 전화를 돌렸다.

그날 밤.

수도권 인근의 컨테이너 창고에 이성택과 정강호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창고 안에 들어앉은 티코 차량을 주시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강호가 말했다.

"검찰이 저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종수를 처리한다면 뒷말이 나올 공산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자살을 가장해서 김종수를 처리하는 게, 어떨런지요?"

"자살을 가장하자고?"

"네. 기관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리 말하며 A4 용지 한장을 성택에게 내밀었다.

"이미 김종수의 자필 유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좋아. 자살을 가장해서 그놈을 죽여."

"예. 부회장님."

정강호는 그리 복명한 뒤 주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놈을 처리해!"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번개탄을 손에 든 수하들이 타코 차량으로 몰려갔다.

***

대검 특수부.

이태강 특수부 총괄 부장은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이목을 고정했다.

-대영금융투자의 전 대표였던 김종수씨가 경기도 모처의 야산에서 자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건 현장을 감식한 경찰은 김종수가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뒤 자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찰은 차 안에서 발견된 자필 유서를 자살의 유력한 증거물로 보고 있습니다. 중략...

태강의 뇌리에 '살인멸구'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갔다.

대영금융투자의 전 대표였던 김종수는 퍼스트 파트너스의 환매중단 사건의 살아있는 스모킹 건이었다.

특히 그는 대영그룹의 후계자이자, 퍼스트 파트너스의 실소유자로 의심받는 이성택의 측근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탓일까, 그는 이번 사건을 자살을 가장한 타살로 규정했다.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그때, 장내에 대검 특수부의 강영식 부장 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태강의 직계 라인이었다.

"이성택을 지금 당장 소환조사 해야 합니다."

"흐으음..."

태강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흔히 말하는, 대영그룹 장학생 출신이었다.

이철성 회장에게서 떡값 명목으로 수십억을 받아챙긴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무려 1조3천억에 달하는 펀드 사기사건이었다.

피해자 숫자만 수만명에 달하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태강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이성택을 피의자 자격으로 소환해!"

***

일본 오사카 근교의 별장에 김창현 법무실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곧바로 이철성 회장이 있는 내실로 들어갔다.

김창현 실장이 긴급 현안을 보고했다.

"큰 도련님이 특수부에 소환됐습니다."

이철성의 얼굴에 짙은 암운이 드리워졌다.

김창현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사안이 워낙 중대한 탓에, 회장님이 직접 나서야 할거 같습니다."

"김종수가 자살해서, 증거가 없지않나?"

"여론이 너무 악화된 상황입니다. 국민 대다수는 퍼스트 파트너스의 실소유주가 큰 도련님 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깁니다."

"흐으음..."

이 회장의 입에서 침통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특수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태강과 자리를 마련해."

"청와대에서 회장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의 미간에 깊은 내천자가 그려졌다.

잠시 뒤, 그의 입에서 결연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조중동 오너들과 자리를 마련해봐."

"예. 회장님."

***

이철성의 오사카 별장에 조중동 사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내실에서 이 회장과 밀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철성의 입에서 통 큰 언사가 흘러나왔다.

"1조5천억에 달하는 광고 물량을 여러분들의 신문사에 몰아드리겠습니다."

조중동 오너들의 얼굴에 저열한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회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대신, 이태강을 여러분들이 단속해 주십시오."

그러자 조중동 오너들의 입에서 은근한 어조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그자를 회유하려면 그럴 듯한 떡밥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회장님."

"그자가 원하는 걸, 던져줘야 우리 말을 들을 겁니다."

이 회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차차기 검찰총장직을 약속하십시오. 그 정도면 이태강 그자도 우리 요구를 수용할 겁니다."

철성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서울시내 모처에 조중동 관계자와 이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중동 관계자들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대영그룹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상징하는 기업입니다."

"맞습니다. 대영그룹의 오너 일가를 건드리시면, 국가경제에 커다란 피해가 발생할 겁니다.

"이성택을 무죄로 방면해 주신다면, 차차기 검찰총장직을 약속하겠습니다."

태강의 얼굴에 극심한 갈등이 그려졌다.

허나, 그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제가 책임지고 이성택씨를 무죄로 방면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와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대영호텔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의 응접실 소파에 온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대화면 TV에 이목을 집중했다.

-대검 특수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대영그룹의 이성택 부회장이 자택으로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략...

꼴을 보아하니, 대검은 불구속 기소 정도로 가닥을 잡는거 같았다.

이번에도 이철설 회장의 입김이 통하는 모양새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호텔을 나섰다.

그 후, 종태와 인근의 공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

고즈넉한 도산공원을 거닐며 이성택의 심복인 정강호에 대해서 심사숙고했다.

정강호는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소시오패스였다.

그런 때문인지, 성택과 나름 죽이 잘 맞았다.

둘 모두 소시오패스적인 성향이 강한 탓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정강호는 성택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놈의 신병을 확보한다면, 이성택을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쳐넣을 수 있었다.

놈은 지은 죄가 있는 탓인지, 항상 다섯명 이상의 경호부대를 대동했다.

내가 함부로 손댈수 없는 존재였다.

문득 종태의 믿음직한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정강호의 신병을 확보하려면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내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는 종태에게 넌지시 말했다.

"경호원 구축 작업은 어떻게 되가고 있습니까?"

"믿을 만한 친구들과 접촉을 하는 중입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공원 밖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후, 주변의 밥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육개장으로 배를 채우는 한편, 종태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종태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정강호라는 놈을 아십니까?"

순간 종태가 흠칫한 얼굴로 되물었다.

"대표님이 그런 개자식을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 역시 정강호의 존재를 아는 눈치였다.

"나름의 원한이 있습니다. 제 목표는 그 놈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겁니다."

그리 말하자, 종태가 우려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놈의 뒤에는 대영그룹이 있습니다. 잘못 건드리시면, 도리어 대표님이 큰 화를 당하실 겁니다."

"그래서 종태씨에게 이렇게 부탁하는거 아닙니까?"

그가 심각한 얼굴로 내 눈을 뚫어져라 직시했다.

내 속마음을 파악하려는 모양새였다.

"저에게 원하는게 뭡니까?"

"정강호의 신병을 확보해 주십시오."

"으으음..."

그의 입에서 침중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직후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물론이고, 대표님도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이미 각오하고 있으니까, 사람을 모아서 그놈의 신병을 확보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사례금으로 10억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종태는 내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따님과 아드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제안을 수락하는 즉시 10억원을 일시불로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종태의 무거운 입이 천천히 열렸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24시간 안에 가부를 결정하십시오."

그리 말하며 식당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

강북의 평범한 주택가.

종태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깊은 잠에 취한 어린 자녀들을 물끄러미 쳐다본 뒤, 거실로 나갔다.

그는 거실의 창가를 서성이며 한빈의 제안을 심사숙고했다.

정강호는 대영그룹을 방패삼아 온갖 범법을 자행하는 살인마였다.

종태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광수대에서 근무할 당시, 정강호를 수사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대영그룹의 전방위적인 압력 때문에 그를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다.

정강호는 이성택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해결하는 살인청부업자였다.

일이 잘못될 경우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생사마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런 탓에 종태는 한빈의 제안을 선뜻 수용할 수 없었다.

여러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대영호텔의 제주도 리조트가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동시에 자녀들이 그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광경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다.

'애들과 노모를 제주도에 보내는 조건으로 대표님의 제안을 수락하자.'

한빈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그려졌다.

***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운전석의 종태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의 제안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한가지 선결 조건을 먼저 해결해 주시면, 대표님의 명령대로 움직이겠습니다."

"그게 뭐죠?"

"제 아들과 딸, 그리고 노모를 대영호텔의 제주도 리조트로 보내 주십시오."

"그들의 안전을 걱정하시는 건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대표님."

"좋습니다. 종태씨가 원하시는대로 제주도 호텔에 자리를 마련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날 밤.

대영호텔 강남 본점 펜트하우스.

나와 종태는 홈바에서 칵테일을 즐기며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그가 말했다.

"전직 경찰 특공대 출신으로 팀을 꾸릴 계획입니다."

"그들을 이용해서 정강호의 신병을 확보할 생각인가요?"

종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놈에게서 이성택의 살인교사 혐의를 받아내야 합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백 유도제를 사용하면 얼마든지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자백 유도제가 뭐죠?"

"CIA가 1970년대에 개발한 진정제의 일종입니다."

"그런 귀한 물건을 어떻게 구하신 건가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2층에 위치한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캐비어와 스테이크를 음미한 뒤, 테이블 옆에 공손히 서 있는 이종익 점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후식 메뉴판을 가져 오세요."

"네. 대표님."

이종익이 가져온 디저트 메뉴판에 시선을 모았다.

후식은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들었다.

대영호텔은 대한민국 최고 호텔을 추구했다.

레스토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종익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1인분 용량의 디저트 가격을 일률적으로 6만원 이상으로 인상하십시오."

그가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후식 가격을 너무 고가로 설정하면 고객들의 클레임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인들의 소비 성향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국인들은 비싸면 비쌀수록 환장하는 민족성을 타고났습니다. 더구나 이곳은 나름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호텔 레스토랑이에요."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6만원이 아니라, 10만원에 판다고 해도 환장하고 사먹을 거라는 뜻입니다. 이제 내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종익이 감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직후 머리를 힘차게 끄덕이며 화답했다.

"대표님의 말씀대로 디저트의 가격을 일률적으로 6만원 이상으로 인상하겠습니다."

"내일부터 적용하세요."

"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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